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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사이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part1 시인의 숲, 소년의 바다 part2 아직 끝나지 않은 여행 part3 별과 디펜스 part4 손끝에는…… 봄 epilogue 먼 훗날 같은 오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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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다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 없던 낯선 12월의 첫날, 저를 지도하기로 한 박사님은 각오 단단히 하라며 잔뜩 겁을 주었지요. 달랑 6개월짜리 비자를 손에 쥔 저에게 그는, 반년 뒤 연구 실적이 좋지 않으면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날이 바로 선생님의 시를 처음 만나게 된 날이었습니다. …(중략) 이른 저녁 아니, 밤에 홀로 아파트의 식탁에서 처음 펼쳐본 선생님의 시집은 그날 밤부터 저에겐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던 이국의 거리,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 실험실, 심지어는 집 아닌 집에서의 텅 빈 시간을 밝혀주던 불빛이었습니다. --- p.14, 「Letter 01, from Lausanne, 조윤석」 중에서
윤석 군의 음악을 들으면서 나의 의과 대학생 시절을 떠올려보았습니다. 본과 일학년, 어둡고 냄새가 심하던 그 교실에서 매일매일 시체 해부를 하면서 드디어 시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나를 위로하고 싶어서 시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내 시는 처음부터 수사학과는 별 관계가 없었지만 그 어느 때에도 진심이 아닌 적만은 없었습니다. 진심 아닌 것이 나를 위로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 p.83, 「Letter 17, from Florida, 마종기」 중에서 윤석 군이 귀국을 하면 그간에 공부한 과학자로서의 길을 포기하지 말고 그 전문직을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과학과 예술의 두 가지 길을 병행시키는 것은 지난한 일이기는 하지만 한 평생을 걸어 볼 만한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 묘한 보완 작용을 할 것입니다. 내가 만일 의사가 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시인의 길을 오래 전에 포기했을 것입니다. …(중략) 윤석 군이 혹 힘들다고 소리를 가끔 지를 수는 있어도 두 가지 전공을 함께 이어가면 생의 끝에 절대로 후회한다는 말을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나에게는 있습니다. --- p.169, 「Letter 36, from Florida, 마종기」 중에서 일전 편지에 과학과 음악을 함께 짊어지고 가보라고 한 것은 엔지니어링이 순수 과학이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행복지수에 기여해서도 아닙니다. 단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시를 쓰지 못해 깊은 고민이나 절망에 빠질 때 그래서 우울증 증세가 보이려 할 때 나를 그 수렁에서 구해준 것은 의학 아니, 의술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기술자의 기술이지요. 죽어가는 사람이 내 도움으로 살아나고 고맙다며 눈물을 흘릴 때, 고통 받는 이를 고통에서 구해주었을 때 내 우울증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면서 콧노래가 절로 나고 살맛이 났지요. …(중략) 윤석 군의 연구가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막연하기만 한 행복지수의 의미가 넘치고도 남을 것 같네요. --- p.186,「Letter 40, from Florida, 마종기」 중에서 선생님의 말씀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것이 제 음악과 노래의 힘이 될 것입니다. 언젠가 마음속으로 누군가 내가 사는 목표가 뭐냐는 질문을 한다면, 저는 ‘knowing'이라고 대답하리라 생각했던 적도 있었어요. 알아가는 것, 깨달아가는 것, 무언가 수동적으로 배운다기보다는 자극에 반응하는 내 내부의 앎, 이것이 저를 밀어가는 힘이자 목표라고 여겼어요. --- p.220, 「Letter 48, from Seoul, 조윤석」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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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의사이자 시인인 마종기와 꿈꾸는 공학도이자 가수인 루시드폴,
한 번도 만난 적 없던 이 두 사람이 편지로 만나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은 마종기와 루시드폴이 2년간 플로리다와 로잔을 가로질러, 예술과 과학, 그리움과 고독, 일상의 기쁨에 대하여 나눈 뭉클한 교감의 기록이다. 예술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좀 더 마음을 열고 서로 비판과 칭찬을 해주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고양시키는 분위기와 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실합니다. 내가 조군과의 교류를 결심하게 된 것도 무의식적으로나마 그런 데에서 기인한 바가 크지요.? - 마종기 시인(p.254) 선생님은 제 인생에 있어 가장 거대한 시인이자 음악인이셨습니다. 언제나 저를 팽팽하게 긴장시키는 시 속에서 선생님의 물리적 나이를 도저히 짐작하지 못하겠더군요.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외람되게도 선생님을 '형'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마치 어느 80년대의 시인이 윤동주 시인을 영원히 '형'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말입니다.? - 루시드폴(p.15) 숱한 이국의 밤, 고독과 그리움으로 시를 쓰고 노래했던 시인과 가수. 가수는 시인을 흠모해왔고, 노시인은 드디어 젊은 가수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시인 마종기와 음악인 루시드폴. 두 사람의 편지는 세대의 벽을 허물고 예술적 영감을 꽃피우는 아름다운 소통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 사이에는 36년이라는 시간의 벽이 있고, 사는 곳도 향유한 시대와 문화도 다르지만, 짙은 공감대-시를 쓰는 의사, 음악을 하는 공학박사로서 느끼는 경계인으로서의 자의식. 예술가들의 활발한 소통과 상호교류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다. 한 사람은 고국을 떠나 40년 째 미국에서 머물고 있고, 한 사람은 6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신의 삶에서 가장 긴 여행을 했다. 향수와 고독은 두 사람의 작품에 짙게 배어나오는 감정이었고, 그것은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소외감과 미묘한 고립감이었다. 또한 생명과 사랑, 이 지고지순한 두 단어는 그들이 학문을 통해 성취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예술이라는 우회를 거쳐 다다르게 될 삶의 주제와도 같았다. 이것은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느끼는 호감과 감정이입의 원천이 되었다. 낯선 존재에서 마음을 나누는 벗으로 - 플로리다와 로잔, 시인과 가수, 의사와 공학박사 다른 듯 닮은 두 사람의 만남 루시드폴은 짧지않은 유학 생활 동안 마치 의사의 처방전을 찾듯 마종기의 시를 찾아 읽었다. 고향의 바다가 그립고 외로울 때는 마종기의 「북해」를 읽고, 사랑하는 할머니의 임종을 곁에서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울적해질 때는 「동생을 위한 조시」로 마음을 달랬다. 루시드폴에게 시인의 시는 낯선 도시에서 아무리 마음을 독하게 먹어도 절망하던 고단한 하루의 샘물 같은 것이었고, 어디에서도 얻지 못했던 위로였다. 그러나 마종기에게 루시드폴은 처음엔 생소한 이름이었고, 낯선 존재였다. 나이는 아들 뻘 쯤 되고 가수라는데 들어본 이름이 아니었다. 하지만 편지가 오감에 따라, 서로를 알아가면서 이국의 땅에서 예술(음악)과 과학(공학)을 함께 병행하고 있는 ‘자신과 닮은 모습’의 젊은이임을 깨닫고 호감과 관심을 표현하며 곧 친밀해지기 시작했다. 클래식과 국악만 듣던 시인에게 루시드폴의 음악은 ‘어리둥절한’ 음악에서 가사과 곡이 찰떡궁합처럼 혼연일체가 된 ‘너무 좋은’ 음악으로 변모해갔다. 루시드폴이 좋아한다는 브라질 음악과 삼바 음악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음악과 학업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하는 루시드폴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이 둘은 이렇게 편지를 통해 2년이라는 시간동안 서서히 멀고 낯선 존재에서 마르틴 부버가 말한 이야기가 피어나는 ‘사이 존재’가 되어간다. 세대와 공간을 초월해 우정과 신뢰가 싹트는 아름다운 소통 - 한국판 그르니에와 까뮈의 편지 시인 마종기와 음악인 루시드폴의 대화는 개인의 삶, 시대의 정서와 공기, 예술적 에스프리가 가득한 한국판 그르니에와 까뮈의 편지를 연상시킨다. 까뮈는 그르니에를 두고 ‘나의 스승이자 나의 가장 좋은 친구’ 라고 말했다. 수십 년의 나이차가 있지만 누구보다 가깝게, 스스럼없이 서로의 인생과 예술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은 세대를 불문하고 진실한 우정과 신뢰, 서로에 대한 존중을 싹틔우는 과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준다. 이 ‘즐겁고 의미있는 감정의 모험’이 소통부재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오늘날에 여전히 필요하고 가능하다는 것을 ‘편지’ 라는 가장 사적(私的)이고 시적(詩的)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시를 쓰고 음악을 만들면서 스스로는 물론 타인까지 위로했던 두 사람은 자연몽럽고 소박한 대화를 이어가며 인생의 선배와 후배, 예술의 세계를 유영하는 동지, 시와 음악의 친절한 안내자, 친밀한 마음의 벗이 되어간다. 특히, 마 시인의 편지는 일본 시인 바쇼가 집을 떠나면서 다음에 그 집에 들어오게 될 누군가를 위해 문설주에 붙이는 하이쿠 한 편처럼 그 자체로 한 편의 아름다운 시이자,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따뜻한 인생의 조언이며 미래에 대한 따뜻한 축복으로 읽힌다. 2년간 이어진 대서양 횡단 편지의 끝은 어떻게 됐을까. “2009년 봄 고국 서울 하늘 아래서 만납시다” 2007년부터 이어진 이 대서양 횡단 편지는 평소에 마종기 시인을 흠모해온 루시드폴이 2007년 8월 24일에 플로리다의 시인에게 편지(이메일)를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2년간 54통의 편지가 오갔고 2009년 4월 13일에 고국의 서울 어느 한적한 찻집에서 두 사람이 만남으로써 끝을 맺는다. 2년간 편지로, 그리고 시와 음악으로만 소통해온 두 사람이 서울에서의 만남을 약속하고 만나기까지의 설렘과 진한 흥분이 편지와 에필로그에 고스란히 녹아있어, 읽는 독자들도 함께 이 소통과 만남에 동참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마종기 시인은 「파타고니아의 양」으로 2009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고, 루시드폴은 3집 앨범을 발표했으며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을 결심하기도 했다. 훗날 돌아보면 이 두 사람은 각자의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함께 보냈을 수도 있다. 시인과 가수의 내밀한 고백과 서로를 향한 강렬한 지지와 응원이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밀려오는 서간집 『아주 사적인, 긴 만남』은 그 자체로 문학의 본질과 가치를 오롯이 담고 있어 진한 인간과 문학의 향기가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