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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자들에게
십오 년 만의 고백 후지와라 신야, 그리고 인도 1장 어제로의 여행 잘 있거라, 카시미르 소년 기생충 들쥐가 먹은 과일 살아남은 전사가 그린 스러지기 직전의 빵 5패사의 마하트마 간디 성자 혹은 꽃의 걸식도 맨발의 인도인과의 대화 2장 까마귀 화장 모래 폭풍 죽음의 신 헛소동 힌두 오리 솔개 후기 열구의 밑 |
Shinya Fujiwara,ふじわら しんや,藤原 新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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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참하고, 신랄하며, 신성한. 천 일의 인도 대륙 방랑.
김기옥 (flytoafrica@yes24.com)
2010.09.08.
출판사로부터 이 책을 처음 소개받던 날, 선명하고 화려한 이미지로 승부하는 여행서의 홍수 속에서 거칠고 어두운 『인도 방랑』과의 첫 만남은 매우 기묘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때로는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조금은 가벼운 여느 에세이들과는 전혀 다른 인상에 신선한 매력과 동시에 강한 호기심에 사로 잡혔다. 일을 하면서 가장 기분 좋은 순간 중 하나인 '좋은 책을 발견했다'는 생각이 반짝.
우리에게 인도는, 어떤 의미인가. 그 곳에 가면 오랜 시간 품어왔던 끝없는 물음들에 답을 줄 수 있을까? 나 자신과 내 주위의 세계를 통찰할 수 있는 깊이를 얻을 수 있을까? 참으로 유치하게도, 어린 시절의 내게 인도는 그런 이미지였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먼저 머뭇거리게 되는 나이가 되기 전, 세계에 대한 가치관을 매일 새롭게 쌓아가고 고쳐야 하는 젊은 시절이라면 한번쯤은 가봐야 할 것 같던 그 곳. 솔직히 막연한 동경과 신비로 인도를 깊이 있게 생각하기 이전에 허울좋게 포장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후지와라 신야의 글과 사진은 그런 환상 속의 인도를 날 것 그대로 내 눈 앞에 생생히 펼쳐 놓았다. 젊은이들의 인도 여행이 오늘날처럼 유행하지 않던 1969년, 스물 다섯 살의 청년 후지와라 신야는 인도로 떠났다. 기묘한 대륙 인도를 밟고 숨쉬며 그는 슬프도록 못나지만 고귀한 사람들을 만났고, 살아 숨쉬는 강인한 생명력을 흡수했다. 또한, 그 생명이 소멸하는 죽음의 순간을 온몸으로 느끼며 모든 존재의 의미와 진정성, 그리고 그것의 소멸에 대해 새롭게 사유하게 된다. 흔히 여행서를 보고 있노라면, 작가가 여행자의 손을 꼭 잡고 함께 길을 걸으며 친절히 동네를 안내해 주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모퉁이를 돌면 예쁜 벽화가 그려진 벽이 나오지, 이 동네에서는 어떤 음식이 맛있으니 배가 고프면 어느 골목 어느 식당에 꼭 가보렴.'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만 보라며 조곤조곤히 설명해주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 고마운 친절이지만 어딘가 꾸며진 것 같은 느낌이 들거나, 그 이면에 숨어있는 솔직한 모습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 후지와라 신야의 글을 읽다 보면 그의 걸음을 두세 걸음 뒤에서 조용히 따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세계는 늘 아름답지만은 않고, 때로는 충격적일만큼 신랄하지만 그 무엇보다 강한 진실을 담고 있다. 그래서 감히 그를 따르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그가 카메라 렌즈를 통해 담아낸 인도는 어둠 속에서 흔들리고 있지만 그 또한 강렬함과 리얼리티는 보는 이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사진의 에너지가 어둠 속에서 고요히 밀려오면서 순간 모든 것의 흐름을 멈춰 버린다. 이는 거추장스러운 수식어나 기교 없이도 수만 마디의 말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그의 글과 꼭 닮았다. 그의 여행기는 그 어떤 책보다 덜 화려하지만 그 어떤 글보다 분명 압도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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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끌어당기는 후지와라 신야의 회화적인 사진들은 이미 기록의 의미를 떠나 있다. 보이지 않을 뿐 그 안에는 바람 소리가,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 태풍이 꿈틀거린다. 모든 것들은 마치 정지된 시간이 영원할 것 같은 흐릿한 여백에서 나옴을 책을 덮은 후 깨닫게 된다.
정은미 (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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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 시절의 나는 어쩐지 병을 앓고 난 것처럼 보였다.
야윈 몸에 긴 머리카락, 수염은 덥수룩하고 불거진 광대뼈가 강한 햇볕을 받아 반들거렸다. 연약해 보이면서도 볕에 그은 검은 어깨가 이 작열의 나라에 대한 청년의 저항의 시간과 여행 모습을 말해주고 있었다. 청년은 뭔가에 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청년은 태양에 지고 있었다. 그리고 청년은 대지에 지고 있었다. 청년은 사람에 지고, 열에 지고 있었다. 청년은 소에게 지고, 양에게 지고, 개와 벌레에게 지고 있었다. 청년은 오물에 지고, 꽃에 지고 있었다. 청년은 빵에 지고, 물에 지고 있었다. 청년은 거지에게 지고, 여자에게 지고, 신에게 지고 있었다. 청년은 냄새에 지고, 소리에 지고, 그리고 시간에 지고 있었다. 청년은 자신을 둘러싼 온갖 것에 지고 있었다. 청년의 지친 눈은 표정을 상실한 듯 보였지만, 내리쬐는 태양에 눈부시게 백열하는 눈앞의 지면을 멍하니 응시할 만큼의 의지는 간신히 남아 있었다. 분명 그것은…… 스물다섯 살 때의 내 모습이었다. 말과 소와 개와 돼지와 염소와 고양이와 흙에서 억지로 태어난 듯한 동물들이 사람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걸어 다녔고, 그런 것들이 모두 뭉뚱그려져 그 도시는 무슨 거무스름한 덩어리처럼 보였던 것이다. TOKYO라는 도시가 잿빛 관처럼 보이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게다가 이 도시는 확실히 ‘공空’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것이 인도 도시와의 첫 만남이었다. 걸을 때마다 나 자신과 내가 배워온 세계의 허위가 보였다. 그러나 나는 다른 좋은 것도 보았다. 거대한 바냔나무에 깃들인 숱한 삶을 보았다. 그 뒤로 솟아오르는 거대한 비구름을 보았다. 인간들에게 덤벼드는 사나운 코끼리를 보았다. ‘코끼리’를 정복한 기품 있는 소년을 보았다. 코끼리와 소년을 감싸 안은 높다란 ‘숲’을 보았다. 세계는 좋았다. 대지와 바람은 거칠었다. 꽃과 나비는 아름다웠다. ‘여행’은 무언의 바이블이었다. ‘자연’은 도덕이었다. ‘침묵’은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침묵에서 나온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좋게도 나쁘게도, 모든 것은 좋았다. 나는 모든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내 몸에 그것을 옮겨 적어보았다. 황량한 지상에 인간 단위의 형태를 부여하려다가 무참히 패배하고, 오랫동안 방치되어 인간의 의지의 흔적마저 거의 다 지워버린, 그리하여 지금 또다시 지상에 삼켜지려 하는 땅덩어리 위를 걷고 또 걸었다. 혹은 인간의 의지를 철저히 거부하는 무서운 지상에 느닷없이 내동댕이쳐져 도망을 꾀하며…… 인파 속으로 섞여들고 또 섞여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인파 속으로 섞여들어도 그 인파는 인도의 황량한 자연과 똑같은 힘으로 인간의 체취를 흩뜨려버리고…… 여행하는 자는 또다시 그곳에서 도망을 꾀할 수밖에 없다. 여행은…… 비참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놀랄 만큼 못나고 어리석기도 하다. 『인도방랑』은 내가 스물네 살 나이에 처음 그 열구 밑 대륙에서 노닐던 때의 기록이다. 처음 그 대지를 밟은 1960년대 말, 일본은 고도 경제 성장이 한창이었다. 물질적 풍요를 얻기 위해 다들 열심히 일했다. 근대화와 경제적 풍요를 좇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도 많았다. 그리고 사회는 관리화 되어가고 있었다. 관리화 시스템 속에서 인간적인 숨결은 은멸되고, 그것에 대한 저항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대학을 버리고 내 모든 경력을 버리고 인도에 갔다. 이 나라는 빈곤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내가 본 것은 물질적 빈곤과 더불어 지금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열이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열이라는 이 하나의 생명의 근본이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관리되어가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그 나라의 열에 들떴다. 그리고 지상에 있어서의 생명의 존재 장소를 분명하게 보았고, 아울러 내 생명의 존재 장소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내 이십대에 있어 하나의 혁명이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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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존재로 삶의 진정성을 찾고자 시작한 천 일의 방랑
즉물적 시선과 사유, 압도적 리얼리티로 시대를 뛰어넘어 여행서의 전설이 된 후지와라 신야의 원점이자 대표작 “나는 걸었다. 세계는 좋았다” 즉물적 사유와 존재 성찰, 압도적 리얼리티의 글과 사진으로 시대를 뛰어넘는 여행서의 고전으로 조용한 명성을 이어온 후지와라 신야의 『인도방랑』이 작가정신에서 출간되었다. 작가이자 사진가, 사상가, 평론가로 활약하는 저자는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는,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표현자 중 한 사람이다.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삼 년간의 인도 여행 기록을 담은 이 책은 출간 직후 많은 젊은이들의 발길을 세상 밖으로 이끌었고, 4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쇄를 거듭하며 그 생명력을 입증하고 있다. 1960년대 말, 스물네 살의 청년 후지와라는 고도성장이라는 괴물에 사로잡혀 죽음조차 관리되어가는 사회 시스템이 주는 폐색감을 떨치고 삶의 진정성을 묻고자 인도로 떠났다. 청년은 떠나기 전 가진 모든 것을 처분하고 어떠한 속박도 환상도 정보도 없이 방랑길에 올랐고, 그랬기에 그는 더없이 자유로웠고, 위태로웠다. 그의 여행을 “들쥐처럼 허상을 좇아 몰려드는” 가벼운 여행에 견주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는 어정쩡한 기분으로 회사에 가고, 학교에 다니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음악을 하는 현대 젊은이의 기만을 대물리는 게 두려워 발길을 재촉했다. 그러나 그런 자신도 결국은 돌아갈 곳이 있는 여행자였기에, 저 황량한 땅 위에서 행위를 표현과 결부시키려 한 스스로에 대해 쓴 굴욕감을 맛보아야 했다고 고백한다. “여행은 무언의 바이블이었다. 자연은 도덕이었다. 침묵은 나를 사로잡았다.” 삶과 죽음이 그대로 흡수되는 땅 인도에서 그는 바이블로서의 여행, 도덕으로서의 자연, 침묵의 힘을 배웠다. 그리고 인도의 풍경은 그에게 빛과 어둠, 흐름과 멈춤, 탄생과 소멸, 혼돈, 그리고 이 우주의 무수한 ‘허虛’의 순간과 공간을 가르쳤다. 한 번도 카메라를 잡아보지 않았던 그는 특이하게도 시력이 약한 왼쪽 눈으로 황량한 지상, 인간 의지의 흔적마저 지워버리는 듯한 땅덩어리 위의 네거티브 세상을 포착했고, 그 어둡고 거칠고 투박한 사진 속 세상은 흔들리고 불안하고 어둡지만, 고요하고 영원하고, 데일 것같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인간의 의지를 철저히 거부하는 가공할 저 인도의 ‘풍경’과 ‘공기’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어가는 순간을 경험할 때까지 그 땅 위를 걷고 또 걷고, 인파 속으로 섞여들고 또 섞여들었다. 카시미르에서 푸시카르를 거쳐 남부의 첸나이로, 마이소르로, 길 위에서 길어낸 저자의 아름다운 언어는 침묵에 버금가는 강렬함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걸을 때마다 나 자신과 내가 배워온 세계의 허위가 보였다.” 모순과 부조리의 구조 속에서 인도인들은 그늘 없이 명랑하다. 지저분하고 무신경하지만 그들은 더없이 천진하고 이방인에게 너그럽다. 신화와 현실의 틈바구니에서 사람들은 윤회라는 꿈을 꾸며 유연하게 살아간다. 춤과 노래와 터무니없는 설정이 버무려진 신나는 볼리우드 영화처럼 인도는 혼돈과 무질서와 들끓는 욕망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땅이다. 그래서 인도인의 삶을 정의하는 힌두교는 초월적인 동시에 철저히 세속적이다. 열구의 밑, 황무지에서 비인간적인 자연의 도덕을 본받아 살아가는 사람들, 세상에 내던져진 그대로 풍경의 일부로 살아가는 사람들, 우주의 신비와 삶의 부조리를 종교의 씨앗으로 길러내는 땅에서 태어나 지극히 건강하고 온전하게 살아가는 그 사람들 앞에 서면, 우리는 세계의 변방에서 배운 문명의 미의식이 얼마나 허술한지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어떤 준비를 했느냐는 질문에 저자는 “버리기. 그리고 준비하지 않기”였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서 보니 정작 꼭 필요한 건 ‘칫솔’뿐이었다고 말한다. 전존재로 삶의 진정성을 찾기 위해 천일을 방랑한 어느 지독한 여행자의 기록 『인도방랑』의 한 줄 한 줄에는 젊은 가슴에 뜨거운 ‘열’을 채워 넣고자 희구한 한 청년의 이야기가 한 편의 서사시처럼 펼쳐진다. 그 기록은 그 어떤 아름다운 시보다도 더 큰 울림과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