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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정조시대의 규장각 - 김문식
세손 정조의 경희궁 도서관 창덕궁 규장각의 설립 교서관의 통합과 활자 주조 정조의 《근사록》·《심경》 강의 초계문신제의 시행 《규장총목》의 편찬 어제 편찬과 어진의 제작 외규장각의 설립 《규장각지》의 편찬 빈흥과의 시행 정조대에 편찬된 서적 정조 이후의 규장각 2. 고종 연간의 정치 변동과 규장각 - 연갑수 고종 즉위 이전의 규장각 대원군집권기 종친부 기능 강화와 규장각의 기능 약화 대원군집권기 홍문관과 규장각의 위상 변화 경복궁 중건과 규장각 건물 배치의 변화 병인양요와 외규장각의 수난 고종친정기 규장각 기능의 회복과 개화 서적의 수집 갑오개혁기 궁내부 산하기관으로의 변천 대한제국기 규장각의 변천 3. 일제강점기의 규장각 - 김태웅 일제의 규장각 장악과 ‘구관제도조사사업’ 취조국·참사관분실의 규장각 자료 정리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의 규장각 자료 관리 4. 광복 이후 현재까지 규장각의 변화와 발전 - 강문식 한국전쟁과 규장각 도서의 수난 서울대학교 도서관 재건과 규장각 도서 정리 ‘규장각도서관리실’ 설치와 장서 관리의 체계화 규장각의 독립과 연구 기능의 강화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의 출범 5. 규장각에 소장된 주요 자료들 - 신병주 세계적인 기록유산들 어필과 기록화의 세계 전통과 세계의 만남 전통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들 의궤로 보는 조선의 왕실 문화 참고문헌 부록 1.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영인·간행 도서 목록 2.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총서 목록 찾아보기 Abstract |
金文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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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숨 쉬는 역사를 품은 규장각의 어제와 오늘
정조는 조선후기의 정치·사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규장각을 창설하고, 역대 국왕의 어제(御製)와 어필(御筆)을 보관하던 기존 규장각의 기능을 대폭 확대하여 왕실 관련 자료와 조선·중국에서 간행된 각종 도서를 소장하고, 학문적 능력이 뛰어난 관리들을 훈련시켜 국가의 주요 정책 마련을 주관하게 하는 등 학문과 정치의 중심 기구로 발전시켰다. 특히 정조는 국가 통치 이념과 문물·제도 정비의 결과를 정리하여 책으로 펴내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사회의 개혁을 추진해나갔다. 정조대에 규장각을 통해 구현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담고 있는 규장각 도서들은 정조 사후 세도정치기와 고종대, 일제강점기, 광복과 한국전쟁 등 영광과 수난의 역사를 거치면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으로 계승되었다.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집필한 이 책에서는 규장각의 역사적 발자취와 주요 소장 자료를 살펴봄으로써 규장각 도서가 지니고 있는 민족문화의 가치를 새롭게 조망해본다. 정조가 규장각을 창설한 지 230주년이 되던 2006년 2월 규장각은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와 통합하여 ‘규장각한국학연구원’으로 새롭게 탄생하였다. 국내외 한국학 연구의 선도 기관으로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는 ‘규장각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재발견’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동안 규장각을 다룬 개별 연구들은 많이 있었지만 정조대 규장각이 창설된 이후 현재까지 규장각의 역사를 종합적·체계적으로 정리한 연구는 한영우 교수의 『문화정치의 산실, 규장각』(2008)이 거의 유일하다. 이 책은 규장각의 정치적 기능에만 주목하지 않고 규장각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를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필진을 구성하여 내용의 완성도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읽기 쉽도록 구성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독자들은 규장각 속에 살아 숨 쉬는 역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규장각, 정조가 처음 건립했나? 규장각 건립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세조대의 학자인 양성지(梁誠之)였고, 규장각 건물이 처음으로 건립된 것은 1694년(숙종 20)의 일이다. 숙종은 종친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던 종부시(宗簿寺)에 별도의 건물을 세우고 역대 국왕들의 어제와 어필(御筆)을 보관하게 했다. 1776년 9월에 정조가 중건한 규장각은 숙종대의 규장각은 어제와 어필을 보관하는 기구에서 더 나아가 왕실의 물품과 중국 및 조선의 도서를 소장하고, 소수의 정예 관리들이 소속되어 국가의 주요 정책을 마련하는 정치 기구로 발전하였다. 이 책의 제1장에는 정조대의 규장각의 성격과 위상이 잘 정리되어 있다. 정조대에 건립된 규장각의 첫 번째 임무는 영조의 어제를 편찬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1781년 2월 초계문신제(抄啓文臣制)를 시행하여 규장각에 국가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기능을 추가하였다. 초계문신들은 강경(講經) 시험과 제술(製述) 시험 외에도 정조가 문제의 출제에서 채점에 이르는 일체의 과정을 관리하는 친림(親臨) 시험을 매월 한 차례씩 치러야 했다. 정약용(丁若鏞)과 정약전(丁若銓)은 형제는 각각 1789년과 1790년에 초계문신으로 선발된 바 있다. 정조는 교서관을 규장각의 외각으로 통합시키고, 여러 차례 활자를 주조하여 규장각의 출판 기능을 크게 강화여 이후 규장각에서는 정조의 어제를 정리하여 편찬하는 일과 함께 다양한 출판 사업이 이루어졌다. 오늘날 우리가 18세기를 국왕을 중심으로 자국의 제도와 문물을 종합적으로 정비하고 이를 서적으로 편찬한 것에 근거해 ‘조선후기의 르네상스기’라 부르는데, 이 책의 36~40쪽에는 정조대에 편찬된 서적 목록이 정리되어 있다. 정조 이후 규장각의 변화 1800년 6월에 정조가 49세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규장각은 이후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규장각은 정조가 사망한 이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규장각신에게 부여되었던 특별한 권한이 사라졌기 때문에 더 이상 정치 기구로 기능하지 못했고, 국왕들의 물품과 서적을 관리하거나 서적을 출판하는 기능만 남게 되었다. 제2장에는 이와 같이 정조 사후 세도정치기와 고종·순종대를 거치면서 정치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규장각의 위상과 기능이 어떻게 바뀌어갔는지가 잘 정리되어 있다. 특히 1866년 병인양요가 당시 프랑스군의 약탈과 방화로 외규장각 도서는 모두 소실되었다. 프랑스군이 프랑스로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들도 이후 100여 년간 중국 도서로 분류되어 방치되어 있다가 1975년 파리국립도서관의 촉탁 직원으로 근무하던 박병선(朴炳善) 박사에 의해 사실상 ‘발견’되었다. 반면에 병인양요 당시 정족산성 전투에서 조선군이 승리함으로써 화를 면한 정족산사고본 《조선왕조실록》과 각종 도서들은 일제의 강점이나 한국전쟁과 같은 위기 속에서도 안전하게 보존되어 현재 국내에서 한국학 연구의 중요 자료로 이용되고 있어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전쟁을 통한 약탈이 결과적으로 인류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역할을 했다거나, 선진 지역에서 보존되었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탐구되어 인류의 지성을 계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 논리가 허구라는 사실은 바로 프랑스군에 약탈된 외규장각 도서와 약탈을 모면한 정족산사고 도서의 엇갈린 운명을 통해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규장각 도서가 겪은 수난의 역사와 광복 이후 규장각의 발전상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한 이후 규장각은 폐지되었고, 규장각의 도서들은 조선총독부에서 관리하다가 1928~1930년에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되었다. 제3장과 제4장에는 조선총독부의 규장각 도서 정리 과정,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당시 규장각 도서가 겪은 수난의 역사가 잘 정리되어 있다. 이후 규장각 도서 관리를 전담하는 규장각도서관리실이 설치되고(1975), 서울대학교 도서관으로부터 독립하면서(1992) 규장각은 국내의 대표적인 고전적 소장 기관이자 한국학 연구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6년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설립되어 연구 기관으로서의 위상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 책의 제4장에서는 광복 이후 현재까지 규장각의 발전상을 만날 수 있다. 2007년 6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회의(IAC)에서 조선왕조 의궤(儀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결정됨으로써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와 더불어 총 3건의 세계기록유산을 소장하게 되었다. 현재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는 모두 7종의 국보와 25종의 보물 자료를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의 제5장에서는 이와 같은 규장각 소장 자료를 ①세계적인 기록유산, ②어필(御筆)과 기록화, ③전통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 ④동아시아 및 서양 국가들과의 교류에 관한 자료, ⑤의궤(儀軌) 등 다섯 가지 범주로 분류하여 자료의 내용과 편찬 과정, 역사적 가치 등을 상세히 정리하였다.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는 국보 및 보물 자료 목록은 이 책의 140~141쪽에 수록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