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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보이지 않는 살인자
1_ 범행 당일 2_ 방범 컨설턴트 3_ 간병 원숭이 4_ 간병 로봇 5_ 탄도 6_ 실험 7_ 보이지 않는 산타클로스 8_ 사장실에서 II. 죽음의 콤비네이션 1_ 하이에나 2_ 다이아몬드 3_ 계획 4_ 살해 5_ 데드 콤보 에필로그 옮긴이의 말 |
Yusuke Kishi,きし ゆうすけ,貴志 祐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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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고속도로와 마주한 북쪽 면은 유리창이 특히 더러웠다. 창문닦이 청년은 세제가 든 양동이에 샴푸를 넣고 유리에 거품을 듬뿍 발랐다.
통증을 참으며 천천히 거품을 쓸어모으는 순간, 오른손에서 스퀴지가 미끄러지며 밑으로 떨어졌다. 커튼 사이로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소스라치게 놀라 창문에 얼굴을 댔다. 사무실 문 바로 옆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움직임이 없었고, 숨을 쉬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살아 있는 걸까? 창밖에서는 판단할 수가 없었다. 잠시 망설이다 주먹으로 유리를 두들겼다. 둔탁한 소리가 났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 p.56 시이나 아키라는 보이지 않는 문을 찾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인생은 전부 잘못되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세계는 이곳이 아니다. 여기 말고 더 어울리는 세계가 있을 것이다. 아키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참고 견뎠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상황을 냉정하게 관망하며 조금이라도 개선하려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결국 깨달은 건, 자신과 자신이 원하는 세계 사이에 투명하면서도 무서우리만큼 단단한 벽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벽을 돌파해야 한다. 그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벽 이쪽에서 수백 번을 기어다녀봤자 어디에도 도착할 수 없다. 그렇다면 벽을 부수고 바람구멍을 내든지, 일부에게만 가능한 보이지 않는 문을 찾아 저쪽 세계로 탈출하는 수밖에 없다. --- p.333 아키라는 빌딩 창문닦이 일에 모든 정성을 쏟았다. 신속하고 꼼꼼하게 일하면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고, 육체의 안전도 보장된다. 더러움을 닦아낸 뒤 아름답게 반짝이는 유리창은 새로운 인생의 상징처럼 보였다. 회사에서도 그런 모습을 인정받아, 어느새 아르바이트 직원이나 신입사원을 지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정신없이 일하다 업무가 궤도에 올라 여유가 생기자, 장래에 대한 수많은 두려움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자신은 사토 마나부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긴급대피이자 거짓인생에 지나지 않는다. --- p.383 ……살아야 할 인간과 죽어야 할 인간을 마음대로 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어. 아무리 그럴듯하게 말해도 결국 돈을 노린 살인 아닌가? 강도살인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아니, 처음부터 사람을 죽이기로 마음먹었으니, 그들보다 더 악질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밟고 죽이고 강간하고 빼앗는 것은 이 사회뿐만 아니라 자연의 섭리다. 법치국가란 말은 최근에야 부르짖게 된 공허한 주장에 불과하며,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방법이 더욱 교묘해져 겉으로 들어나지 않을 뿐, 약육강식의 원리는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아버지는 어리석었기 때문에 사냥꾼의 표적이 되어 처참하게 잡아먹혔다. 난 잡아먹히기를 단호히 거부했다. 잡아먹히기 전에 먼저 잡아먹고, 놈들보다 강해져 오히려 이쪽에서 잡아먹겠노라 결심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도 살인은 용서받을 수 없다. 아키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하려는 일은 누구에게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다. 하지만 굳이 누군가에게 용서받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 p.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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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망치』는 크게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이 시간 단위로 전개되며, 사건이 발생한 후에는 밀실트릭을 풀기 위한 에노모토와 준코의 고군분투가 펼쳐진다. 밀실트릭의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는 듯한데……. 2장에서는 무대가 바뀌고 등장인물도 바뀐다. 드디어 ‘범인’이 등장하는 것이다.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던 그가 어찌하여 ‘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가’로 생각을 바꾸게 되었을까? 무엇이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을까? 기시 유스케는 2장에서 사회적 모순과 부조리, 인간 내면에 깃든 나약함을 섬세한 터치로 그려나간다. 이 책의 범인 역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며 잠재적 피해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판단능력이 부족하고 사소한 쾌락에 눈이 먼 부모로 인해 인생의 출발점부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결국 야쿠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부모가 자식을 선택할 수 없듯이, 자식 역시 부모를 선택할 수 없으니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와 그가 원하는 세계 사이에는 투명하면서도 무서우리만큼 단단한 벽이 자리했다. 따라서 벽을 부수고 바람구멍을 내든지, 일부에게만 가능한 보이지 않는 문을 찾아 저쪽 세계로 탈출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유일한 대상은 바로 돈이었다. 1장을 지배하는 것이 치열한 긴장감과 지적 유희라면, 2장을 지배하는 것은 애절함과 안타까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방범 컨설턴트 에노모토 케이와 변호사 아오토 준코 콤비의 데뷔작 『유리망치』에는 전문적인 지식과 참신한 매력을 겸비한 새로운 형태의 콤비가 등장한다. 방범 컨설턴트이자 전·현직 도둑인 에노모토 케이와 정의감 넘치는 변호사 아오토 준코다. 에노모토는 셜록 홈스, 준코는 왓슨에 비유할 수 있을 듯하다. 기시 유스케는 특히 준코의 캐릭터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왓슨 역할을 만들어낼 때 그는 두 가지 규칙을 적용한다. 첫째, 지적 수준이 독자와 같을 것. 둘째, 탐정 역할에게 질문하는 입장일 것. 그렇게 해야 독자에게 홈스의 생각을 통역해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인간미가 물씬 느껴지는 변호사 준코는 이 책에서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한편, 미혼남녀로서 아오토 준코와 에노모토 케이의 미묘한 감정기류는 이 책을 읽어가며 느낄 수 있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이다. 에노모토 콤비가 등장하는 기시 유스케의 작품은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져 더욱 인기를 끌었는데, 이 책 이후 『도깨비불의 집(2008)』, 『열쇠가 잠긴 방(2011)』이 출간되었다. 역시 기시 유스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치밀한 두뇌 플레이 이 책은 큰 틀에서 밀실트릭을 구사하고 있다. 밀실트릭은 추리소설의 영원한 테마이자 모든 추리작가들이 한 번쯤 꼭 도전해 보고 싶어하는 분야이다. 하지만 근래 들어 밀실트릭을 구사하는 미스터리 소설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작용한다. 첫째, 더 이상의 밀실트릭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저기에서 밀실트릭이 등장하면서, 새롭고 참신한 밀실트릭을 짜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그로 인해 밀실트릭을 구사한 많은 작품이 억지스럽다거나 결과적으로 밀실이 아니라는 지적에 시달리곤 했다. 둘째, 그동안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했다는 점이다. 감시카메라를 비롯해 최신 기기들이 등장한 지금, 완벽한 밀실을 만들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밀실트릭 같은 세밀하고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분야보다, 범죄의 동기를 밝혀내는 심리 미스터리나 사회적 부조리에 주목하는 사회파 미스터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기시 유스케가 누구인가? 한 작품을 쓰기 위해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연구하고 조사하는 작가 아닌가? 그의 명성을 입증이라도 하듯 이 책 또한 치밀한 자료 조사와 수많은 연구로 완성된 탄탄한 리얼리티, 특유의 무결점 논리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책의 중반이 넘어가도록 범인을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밀실트릭을 기반으로 한 작가와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통해 기분 좋은 지적 유희를 마음껏 즐기시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