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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직한 선과 대담한 컬러가 어우러진 판화풍의 그림, 그 속에서 펼쳐지는 깜찍하고도 감성 풍부한 아이들의 세계
하얀 바탕에 검은 먹선, 토끼 얼굴에 돋아난 빨간 점……. 강한 터치와 선명한 컬러가 눈길을 잡으면, 이내 ‘이 토끼가 지금 무얼 하고 있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작고 귀여운 토끼는 그 자신, 그게 무언지도 잘 모르는 홍역에 걸렸다! 네덜란드의 동화 작가 요세 스트로가 탄생시킨 작은 토끼는 한결같은 동화책 속 주인공 캐릭터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공감대를 만들어 간다. 밝고 건강한 내용들이 주류를 이루는 그림책 세계에서는 다소 꺼려질 수 있는 아픈 토끼를 등장시켜 때묻지 않은 아이만의 순수함과 감정들을 잘 표현한 것이다. 한번쯤 아파 누워 보지 않은 아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요즘에는 거의 사라져 버린 병, 홍역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어두움에 대한 공포, 새로 이사 온 집에 대한 낯설음도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느껴 봤을 감정이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다 보면 아이만의 천진함과 인상적인 그림에 절로 웃음짓게 된다. 새 집으로 이사 온 작은 토끼는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난다. 여느 아이들이 그렇듯 작은 토끼도 어둠이 무섭다. 더구나 새 집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맞닥뜨린 어둠이라니! 소파에 걸쳐 놓은 옷가지는 무시무시한 괴물처럼 보이고, 겁에 질려 이불을 뒤집어 써 보지만 잠은 안 오고……. 잠이 안 오자 몸에 있는 빨간 점의 개수를 세어 보는 모습은 작은 토끼의 아이다운 천진함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작은 토끼는 자신이 아프다고 여기지 않는다. 다만 자신은 평소보다 ‘기분이 안 좋다’고만 생각한다. 긴 귀가 축 처진 작은 토끼의 모습이 안아 주고 싶을 정도로 애처로워 보이는데도 말이다. 피가 나거나 통증을 느끼지 않는 한, 자신이 아픈지 어떤지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도 어린 아이들의 모습 그대로이다. 《작은 토끼의 빨간 점》은 이렇듯 아이들만이 동감하고, 또 생각해 낼 수 있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특히 작은 토끼에게 홍역이 옮아서 토끼처럼 빨간 점이 돋아난 부엉이에게 ‘우리 지금부터 같이 아프자’ 라며 함께 잠자리에 드는 장면은 아이들 세계에서만 볼 수 있는 깜찍한 발상과 행동의 정수라 하겠다. 개성이 뚜렷한 이야기만큼이나 화가가 그려낸 판화풍의 그림 역시 독창적이다. 많은 그림책에 삽화를 그려 온 실력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답게 목판화의 생생함이 그림 속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굵은 선과 강렬하고도 선명한 컬러가 잘 어우러져 간결한 이야기를 힘있게 전달하고, 거친 판화 느낌의 그림이면서도 등장 인물의 표정과 행동을 섬세하게 잘 잡아내 시선을 멈추게 한다. 두 등장 인물은 끝까지 개성을 잃지 않는다. ‘기운이 없어서’ 얼굴이 핼쑥해진 작은 토끼와 언제나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는 부엉이의 모습은 여느 그림책 속의 단순한 등장 인물들이 아니다. 특색 있는 캐릭터에 아이의 심리와 세계를 잘 보여 주는 이야기. 그래서 이 책이 특별하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빨간 점이 덕지덕지 돋아난 작은 토끼. 보기 흉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들 눈에 비친 이 책의 작은 토끼는 두렵거나 낯선 대상이 아니다. 작은 토끼는 바로 우리 아이들을 그대로 빼닮은 다정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