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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봄밤이거늘! 첫눈 아침 버스에서 운봉 철쭉 떠돌이의 밤 하루치의 마음 죽천당 백일홍 똥 밟은 날 상도동 집 겨울밤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아버지 백반천국 쉰 이명―귀뚜라미 화―나에게 카페ㆍ풍경 달빛들 제2부 두레박 연무대 삼거리 사금파리 무등산 수박밭 컵라면, 강아지 제주 뱃길 늙은 억새꽃 어떤 소시민 이명―쇠구슬들 어느 陰宅에서―이규황 식은 죽 한 사발 신파조 봄날 팔리지 않는 것들! 함부로 천박해진 날 감은사지에서 슬픔에 대하여 낮잠 길―집과 마을 제3부 감포 바다 새벽 출어 봄, 거창에서 자살 테러 독도 앞에서 석모도의 저녁 무심코 장모님 청도 뱃길 독도 항행 매달려 사는 것이? 쿵쿵쿵―후리덤 이라크 용두동 골목길 『성애꽃 눈부처』를 읽는 밤에 무궁화는 국화다 남한민국, 1999년, 봄 초식동물의 피 항구의 사내 축제 제4부 삼베빛 저녁볕 향일암에서 불회사 입구 쨔샤 시라는 눈 소쇄원에서 살쾡이 한 마리 동굴 속에서 골짜기 가시고기 젖꼭지 어떤 알리바이 백석론 순리에 대하여 이명―바퀴소리 11월 타향의 방 주둥이 꽉 다문 시 시인의 시론 풍경과 존재의 변증법―시는 어떻게 어디서 오는가 |
李殷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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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적 근대의 삶과 자연을 근원적으로 비판, 성찰해온 시인
1980년대에 민중적 서정성과 순결성을 담은 시를 집중적으로 써온 이은봉 시인은 1990년대 이후 문명비판적 생태의식의 시, 탈자본의 시원성의 시, 파탄된 존재의 내면을 달래는 시를 써온 바 있다. 이은봉 시는 초기부터 줄곧 우의적이고 해학적인 현실 파악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절망을 따스하게 감싸 안고 있다. 물론 그 핵심에는 근대 자본주의가 불러오는 부정적 현실에 대한 치열한 고뇌가 깊이 자리해 있다. 이러한 비판적 인식은 끊임없이 탐구하고 비판하는 가운데 어루만지고 다독여온 자신의 삶과 이 시대의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기인한다. 여덟 번째 시집인 『첫눈 아침』은 이러한 삶과 자연의 부름과 말 건넴에 응답하는 가운데 깨닫고 발견하는 진실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때의 진실은 변화하는 생활과 현실에 직핍해 있다는 점에서 두루 새로운 리얼리즘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만하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리얼리즘은 깨어 있는 서정성을 포괄하는 동시에 지금 이곳의 현대성을 꿰뚫는 섬광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더욱 주목이 된다. '시인의 말'에서 그는 자신의 시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특징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삶과 자연은 늘 내게 이런저런 말을 걸어온다. 나도 늘 이런저런 말로 삶과 자연에 응답한다. 삶과 자연이 내게 걸어오는 말도, 내가 그에 응답하는 말도 서툴기는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은 질문이나 의문이기 때문이다. 질문이나 의문은 본래 단정적이지 않다. 망설임으로 입가를 떠도는 것이 질문이나 의문이다. 망설임으로 떠도는 말은 언제나 양가적이고 중의적이다. 불이의 모순으로 세상을 더듬거리는 이들 말을 나는 차마 어찌하지 못한다. 그래도 이들 말에는 움직이는 진실이 살고 있다. 진실이 살고 있는 말을 감옥에 가두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 정작의 말은 끊임없이 운동하는 생명을 지니고 있다. 이 복잡한 말의 운동이 시이다. 이처럼 그는 시를 삶과 자연이 자신에게 걸어오는 말에 응답하는 말에서 찾는다. 질문이나 의문과 함께하는 망설임으로서의 말은 "언제나 양가적이고 중의적이다." 서툴기 짝이 없는 말들은 언제나 하나의 풍경(장면)을 만들어 그 자신이 깨닫고 발견하는 진실을 담는다. 영적인 감흥과 함께 하는 시의 진실은 끊임없는 거부와 거역의 정신에 기초한다. 주지하다시피 거부와 거역의 정신은 부정의 정신을 가리킨다. 기본적으로 부정의 정신은 생성의 정신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30여년 가까이 쉬지 않고 정진해온 그의 시정신을 압축해 말하면 부정과 생성의 생명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에는 이처럼 끊임없이 의심하고 반문하면서도 어루만지고 다독여온 자신의 삶과 우리 시대의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자리해 있다. 이들 시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번 시집의 표제시 ?첫눈 아침?은 특히 처음의 이미지, 곧 아침의 이미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담고 있다. 30년에 가까운 시력을 이루고 있는 이은봉 시인의 부정과 생성의 생명 의식에 대한 탐구를 통해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시정신을 이 땅의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이번 시집의 표제시 '첫눈 아침'을 소개해본다. 첫눈 아침 첫눈 아침, 바윗돌처럼 단단한 한기 품고 시리게 얼어붙은 웅덩이 속 헤매고 있다 아침 첫눈, 하얗게 번져오는 햇살 품고 막 눈 뜨는 시냇가 버들개지 위 떠돌고 있다 너무 추워 큰 귀때기 쫑긋대는 산노루의 걸음으로 첫눈 아침은 내일 아침에나 온다 너무 시려 빨간 코끝 벌룽대는 꽃사슴의 걸음으로 아침 첫눈은 모레 아침에나 온다 내일 모레, 내일 모레, 내일 모레…… 반야심경처럼 외워 보는 꿈 모레 글피, 모레 글피, 모레 글피…… 법구경처럼 외워 보는 희망 버석대는 명아주 꽃대궁을 밟으며 느릿느릿 걸어오는 첫눈 아침이 있다 뽀얗게 껍질 벗는 버짐나무 줄기를 걷어차며 터벅터벅 걸어오는 아침 첫눈이 있다 그것들, 오늘 여기 있지 않아 마음 환하다 그것들, 지금 여기 있지 않아 가슴 벅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