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Seong-nan Ha,河成蘭
하성란의 다른 상품
|
--- 99/9/8 조창완(chogaci@hitel.net)
나에게 남아 있는 것들이 줄어든다. 유학오며 가져온 책 중에 문학책은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 두세권이나 될까. 전화를 걸 때 마다 기계음으로 나에게 남은 액수를 알려주는 기계는 내가 쓰고 있는 전화카드 잔여금액이 이제 5자리의 수가 아닌 4자리 수 만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그 돈이면 채 10분이 남지 않은 금액이다. 푸른 바다를 보면서 다지던 마음속의 의지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소진하는 내 에너지의 소비로 인해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힘겹게 앉아서 대책을 생각해본다. 문학책이 떨어지면 가져온 사회과학 책을 읽으면 될 것이다. 그도 마음에 안들면 직접 이곳의 책을 사서 읽으면 되지 않는가.(그러기에 내 중국어 실력을 형편없지만 그래도 시도할 만하다) 전화카드가 떨어진다지만 콜렉트콜도 있고, 노력만 한다면 전화카드도 살 수 있다. 또 나에게는 인터넷이라는 가장 유용한 통신수단도 있다. 사그러드는 의지도 점차 이곳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다시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내가 찾는 곳은 이 지구상에 없다. 그냥 노래처럼 말하자면 '내 찾는 곳, 이 땅에 없어라'다. 그렇다고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가. 아니다. 정말 싫다. 남의 집에서 나온 쓰레기나 뒤지면서 자리가 흠모하는 여자의 흔적을 찾으려하는(요즘은 관음증(혹은 스토킹)이 확실한 유행이다) 이가 내 사는 곳 옆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 곳. 술 먹고 담배피는 엄마가 완행열차를 타고 털복숭이에게 몸을 던지는 곳.(비둘기호는 없어진지 벌써 꽤 됐다) 광주를 잊지 못해 기 싸움을 벌어거나, 아들의 묘지를 찾아 훼이훼이 헤매는 어미가 있는 곳.(슬프게도 망월동 5-18묘역도 옮긴지 오래다) 실직 당한고, 더 재수없게 단수까지 된 날 떠난 여자를 잊지 못해 안내 전화로 전화해 785번 교환원을 찾는 이상한 남자가 사는 곳. 재개발 지역에서 귀신처럼 사는 친구를 가진 아이가 사는 곳. 그것에 별다른 희망이 있을까.(아니 삶에 무슨 희망과 바램들이 있을까) 탄생에서부터 치욕을 안은(김동인의 친일 경력 때문에) 동인문학상의 올 수상작집을 읽었다.(거기에 이 상은 조선일보라는 보수우익파쇼매체가 주최한다) 다행히 이 상에 들러리가 되길 거부해선지, 중복 출판이 부담스러워선지 싣기를 거부한 빛나는 세사람 (김영하, 성석제, 윤대녕)이 있어서 이번 수상은 유난히 흥미로웠다. 그리고 정신 사나웠던 얼마간에 정말 정신 사납게 소설을 읽었다. 수상작가 하성란은 요즘 작가답지 않은 개성(세심한 묘사력)을 갖고, 문단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작가다. 수상작 '곰팡이 꽃'은 '진실이란 것은 쓰레기 봉투 속에서 썩어 가고 있다'고 생각해 그 쓰레기를 뒤져 진실은 찾는 남자에 관한 것이다. 책에서 말하듯 쓰레기를 통해 모집단을 분석하는 '가볼러지'라는 사회학 기법을 빌려온 이 소설은 나 같이 불민한 중생에게 그가 찾는 진실이 무엇이고, 뭐할라고 그노모 진실을 찾으려하는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얘기성보다 사물의 사소함이 휠씬 더 현실적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아니어선지 이 소설의 고급한 가치를 읽어낼 수 없어서 유감이다.(언제부터 김윤식교수가 유물론자가 됐을까?) 공선옥의 소설은 태생적인 면에서 광주를 깔고 있고, 박정요와 심상대의 소설을 소재적인 면에서부터 광주를 깔고 있다는 점에서 80년 광주가 아직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 이번 수상집에 3개가 포함된 것은 아이러니다. 그 일이 있은지 18년이 지났고, 그 지역의 한풀이라고 할 수 있는 김대중정부가 들어선 마당에 소설가들은 아직도 광주를 이야기한다.(개인적으로 임철우의 '봄날'을 마지막으로 광주를 직접적인 소재로 쓰는 소설은 그쳐야되지 않을까 싶다) 공선옥의 소설 '술 먹고 담배 피우는 엄마'는 오살스럽게도 방황하고 있는 작가의 일편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자신의 트라우마로 생긴 방황의식과 그것을 붙잡는 아이들의 끌림에 관해 차분하게 풀어낸다. 술 먹고 담배 피운다고 어미가 되지 못한다는 관습(어찌 보면 더 큰 관습의 벽)에 대항하는 즐거운 소품으로 읽었다. 백민석은 언제나처럼 읽히지 않아서 건너뛴다.) 박정요와 심상대의 소설을 80년 광주를 소설의 직접 소재로 하고 있다. 박정요의 소설을 시쳇말로 '내공'을 소설적인 방법으로 끌어들인 재미있는 소설을 썼다. 정신병자인 주인공을 내세웠지만 소설의 방식이 재밌다. 심상대의 소설은 그렇지않아도 진부한 소재를 여전희 진부한 방식으로 다루었다는 생각이다. 조경란의 소설 '녹색광선'은 하성란을 비롯해, 백민석 등 서울예전 문창과 창작군단의 공통적인 특성을 만날 수 있다. 나 역시 현재 이 학교가 문학창작계의 주류를 잡고 있다는 것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만, 차분하게 살펴보면 이 작가군들은 공통적으로 서울, 특히 소비문화의 중심인 명동을 모태로 한 것 같아 그리 달갑게 느끼지 많은 않는다.(선배인 신경숙 등은 비교적 덜 했지 싶다) 이번에 문학동네 가을호에도 비슷한 소설을 상자한 최인석은 요즘작가로는 보기 드물게 소재에서 빈민들을 다루고 있는 작가다.(그 자체로도 이미 빛이난다. 왜냐하면 앞으로 노동자의 상당수는 빈민의 수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는 샤먼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차용한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소설과 샤먼이나 빈민들이 충분히 녹아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기 수상작가인 이윤기씨의 작품은 지난해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다운 천품이 차분하게 배여있는 좋은 소설이다. 깨꼼한 단편이 그리워 계속해서 수상작집을 사지만, 그노므 수상 과정이라는 것이 그리 탐탁치 못하다는 것을 번번히 확인하지만 이번에도 책을 봤다.(사기는 마누라가 했으니) 내년부터는 안 사봐야지. |
|
오층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놀이터는 빗물이 고여 작은 웅덩이 같다. 이틀 전 내린 폭우로 놀이터 곳곳에는 채 빠지지 않은 흙탕물이 고여 있다. 여자가 걸터앉은 시소의 반대쪽도, 아이가 매달려 있는 ‘구름사다리’ 아래도 물이 고여 있다. 여자는 콩깍지를 까고 있다. 깍지를 비틀 때면 벌어진 껍질 사이로 얼룩무늬의 강낭콩 알들이 나란히 나타난다. 여자의 손가락은 풋내가 물씬하다 깍지에서 튄 콩이 모래밭 위로 날아가면 여자는 허겁지겁 엉덩이를 공중으로 쳐들고 콩을 줍는다.
여자가 걸터앉은 시소가 무게 중심을 찾아 위로 조금 떠오른다. 아이의 체중은 철봉에 매달린 오른손에 실려있다. 사내아이는 지금 셋째 칸에서 넷째 칸으로 건너가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발을 적시지 않고 마른 땅으로 내려오려면 어쩔 수 없이 구름사다리를 다 건너가야만 한다. 흘러내린 바지와 오른팔 쪽으로 치켜 올라간 윗옷 사이로 드러난 맨살에 눈이 부시다. 여자는 남자로부터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남자에게는 여자의 구부린 등과 모래밭에 놓인 플라스틱 바구니만이 보일 뿐이다. 어느덧 바구니에는 강낭콩이 수북이 쌓인다. 오늘 저녁 강낭콩밥을 지으시게요? 남자는 여자에게 넌지시 말을 건다. 하지만 여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여자에게까지 남자의 목소리는 가 닿지 않는다. 그 맛을 어떻게 잊겠어요? 이 사이에서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일품이죠. 저에게도 좀 나눠 주시겠어요? 남자는 베란다 창가에 선 채 계속 입술을 달싹거린다. 콩깍지를 덮고 있는 가실가실한 솜털의 촉감과 콩깍지의 틈을 벌리느라 엄지손톱에 낀 섬유질까지 전부 다 상상할 수 있다. 다행히 여자는 아까부터 남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녀는 지금 콩에만 열중하고 있다. 수학 문제를 푸는 학생 같다. 아이는 건너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여전히 철봉에 매달린 채 이를 앙다물고 있다. 남자는 바지 뒷주머니에 끼고 있던 수첩을 꺼낸다. 엉덩이에 눌린 수첩은 완만하게 구부러들어 있다. 한 장을 넘기려니 덩달아 다른 장까지 붙어 넘어간다. 갈피 사이에 음식 찌꺼기가 묻은 채 그대로 말라 버렸기 때문이다. 콩깍지, 시소, 구름사다리, 사내아이. 물 웅덩이. 남자는 그 여자를 기억할 만한 몇 개의 단어들을 적는다. 콩을 까고 버린 콩깍지는 수많은 쓰레기 봉투 가운데서 그 여자를 식별하는 유일한 단서가 될 것이다. 남자는 그 여자가 몇 호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남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다행히 한 동뿐이지만 모두 90세대의 가구가 살고 있다. 18-19 --- p.18-19,40 |
|
여자는 지금 다이어트 중이다. 여자가 증오하는 것은 사내가 아니라 10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사내의 몸집일 뿐이다. 여자는 남자가 좋아하는 생크림 케이크를 억지로 먹어 주는 데 지쳤고 남자는 여전히 여자가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한다고 믿어 버린데서 생긴 오해가 그들 사이에 틈을 만들었다.
--- p.38 |
|
내 몸뚱일 칭칭 휘감고 뻗어나간 관계들은 실은, 가냘프고 쉬이 삭아 사라질 것 투성이다. 사방팔방 뻥어나가며 그것들은 은색으로 멋지게 반짝이지만, 내 피둥피둥 쪄오른 살 밑에서 오래잖아 삭아 없어질 가닥들이 거개인 것이다. 얼마나 잘 삭는지 관계가 끊어져도, 흉터 하나 남지 않는다.
--- p.116 |
|
남자는 바지 뒷주머니에 끼고 있던 수첩을 꺼낸다. 엉덩이에 눌린 수첩은 완만하게 구부러들어 있다. 한 장을 넘기려니 덩달아 다른 장까지 붙어 넘어간다. 갈피 사이에 음식 찌꺼기가 묻은 채 그대로 말라 버렸기 때문이다. 콩깍지, 시소, 구름사다리, 사내아이. 물 웅덩이. 남자는 그 여자를 기억할 만한 몇 개의 단어들을 적는다. 콩을 까고 버린 콩깍지는 수많은 쓰레기 봉투 가운데서 그 여자를 식별하는 유일한 단서가 될 것이다. 남자는 그 여자가 몇 호에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남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다행히 한 동뿐이지만 모두 90세대의 가구가 살고 있다.
--- p.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