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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어쩌다 꼰대_4
제1장 동굴: 꼰대의 서식지 증명_17 뭐가 이리 많아?_그들은 어디에나 있다_동굴 속 꼰대_동굴 안에서 끼리끼리_동굴 탈출, 꼰대 탈출의 시작 제2장 인정 욕구: 꼰대의 유치찬란함 증명_37 내가 누군지 알아?_고약한 노인네 증후군_이너서클의 힘_능력 지상주의, 꼰대의 알리바이_네 정체를 알려주마!_네 유치함을 알라 제3장 서열과 신분: 꼰대의 뒷배 증명_59 될 성 부른 꼰대_어디서 감히? 조폭이세요?_꼰대의 뒷배_강고한 서열의 벽_유치한 서열 놀이_느그 아부지 뭐하시노?_내리사랑? 내리 꼰대!_조폭 언어는 조폭에게 돌려주자 제4장 모욕: 꼰대의 존재 증명_87 나한테 왜 그랬어요?_그냥 웃자고 한 소리?_모욕 사회_느닷없이 훅~_내가 쓴 돈이 얼마인데_곱창님 존안을 뵙습니다?_부속품으로서 인간_무감각은 악이다 제5장 반말: 꼰대의 인격 증명_113 서열의 확인, 반말_그들은 거의 반말을 했다_돈도 실력이야?!_그래서 내가 알바비를 안 주었어요_본분에 충실?_인격을 반 토막 내는 반말 제6장 나 때에는: 꼰대의 보상심리 증명_135 니가 젊었을 때? 안 궁금하거든_꼰대는 보상을 원한다_요즘 것들? 예전 것들!_변하지 않는 꼰대_젊은 꼰대, 꼰대의 조로 현상_공감능력 제로의 시대_공감능력, 키우자 제7장 염치없는 오지랖: 꼰대의 무례 증명_165 개 새끼를 키워서 뭐해?_예의 상실_무례 사회_아빠가 사과할게_염치를 알려주마!_침묵과 사과가 필요하다 제8장 답정너: 꼰대의 무오류 증명_189 ‘예’만을 원하는 사회_답은 정해져 있다? 근데 왜 물어?_답정너=무사유_맨스플레인=꼰대질_여자가 어디서?_왜 나는 답정너일까?_바늘 끝이 떨리는 지남철처럼 에필로그 : 꼰대 탈출은 계속된다_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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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는 동굴 속에 갇힌 인간이다. 동굴 속 횃불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자신이라고 인식하는 오류를 저지른다. 실제 자신보다 자기를 더 크게 본다. 또 동굴 밖을 보지 못한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동굴 속이 온 세상인 것처럼 행동한다. 동굴 밖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하는, 즉 타자를 볼 줄도 이해할 줄도 모르고, 오로지 동굴 속 자신의 그림자에만 몰두하는 이가 동굴 속 꼰대라고 할 수 있다. 그 동굴이 내 내면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제1장 동굴: 꼰대의 서식지 증명」중에서
‘내가 누군지 알아?’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내보이거나 어떻게든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일종의 방어막이다. 어렸을 때 했던 힘의 우열 가리기와 다름없다. 그 유치함을 자각해야 한다. ‘내가 누군지 알아’가 ‘우리 아빠 힘세거든’과 동일한 맥락임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아빠’가 ‘나’ 또는 ‘내가 아는 힘을 가진 누군가’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그래야 유치한 꼰대에서 조금은 멀어질 수 있다. ---「제2장 인정 욕구: 꼰대의 유치찬란함 증명」중에서 꼰대는 자기보다 서열이 낮은 이가 자신의 권위를 침범하는 걸 참지 못한다. 그럴 때면 이렇게 말한다. “어디서 감히!” 스테레오타입이다. 사실 이 말은 “내가 누군지 알아?”와 함께 쓸 때 더 피부에 와닿는다. “내가 누군지 알아? 어디서 감히!”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어디서 감히! 니 주제에”와도 잘 어울린다. ‘어디서 감히!’는 ‘나는 너 따위가 범접치 못할 사람이다, 내가 너 같은 건 언제든 자를 수 있는 사람이다, 너 따위가 상대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뭐, 이런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테다. 즉 “너 따위가 감히 나한테 대들어” 혹은 “내 의견에 토를 달아”, “어디서 기어올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제3장 서열과 신분: 꼰대의 뒷배 증명」중에서 꼰대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꼰대는 조직 내에서 한 인간을 독립적인 주체가 아니라 자기가 마음대로 부려도 되는 수단으로만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이 전체주의의 시발점 역할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당하는 꼰대질, 내가 행하는 꼰대질에 이런 무서움이 숨어 있다. 남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일은, 누군가에게는 아주 커다란 상처가 된다. ‘죽고 싶다’는 감정을 들게 할 수도 있고, 실제로 누군가를 죽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 인간을 수단이자 부속품으로 전락시킬 수도 있다. 그러니 남, 모욕하지 말자. 누구에게나 남을 모욕할 권한 따위는 없다. 남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등한시하고 모욕하는 건, 그래선 안 된다는 걸 몰랐다고 해도 용서가 안 되는, 생각보다 거대한 폭력이다. 남의 자존감, 무릎 꿇리지 말자. 그 모욕 때문에 누군가는 하루하루를 사는 것조차 힘든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하자. ---「제4장 모욕: 꼰대의 존재 증명」중에서 노동력을 제공받았으면 그에 맞는 돈을 지불해야 하지만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고용주는 스스로 꼰대가 되어 이들을 가르치려 든다. ‘노동력 제공→임금 지급’이라는 도식이 유독 청소년 노동에서는 ‘노동력 제공→가르침→임금 지급 혹은 미지급’의 도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청소년은 가르쳐야만 하는 존재라는 듯 이들은 자기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청소년들의 소비에 개입한다. 그 방법이 임금을 주지 않는 걸로 나타난다. ‘돈 벌어서 어디에 쓸 거냐’는 지극히 사적인 질문을 해대고 그에 대한 대답을 요구한다. 그 대답이 자기 기준에 맞지 않을 때는 임금을 주지 않거나 그 사람의 인품을 평가한다. 청소년 노동에 대한 이런 대접은 뭐가 되었든 꼰대스럽다. 뻔뻔하기 그지없다. ---「제5장 반말: 꼰대의 인격 증명」중에서 세대가 달라도 이들은 젊었을 적 자신이 한 경험을 들먹이며 요즘은 그때보다 훨씬 나아졌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현재 누리고 있는 경제적 풍요나 높은 직위는 그런 노력에 따른 보상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이야기한다. 아니 보상을 더 받아도 된다고, 지금 젊은이들보다 더한 시절을 견뎌냈으니 젊은이들에게 인정과 존경을 받아도 된다고, 이들을 생각하는 듯하다. ‘나 때에는’을 이야기하고, ‘예전보다 지금이 훨씬 나아졌지’란 말을 하는 꼰대는 보상을 원한다. 이들이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현재의 청년들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제6장 나 때에는: 꼰대의 보상심리 증명」중에서 종종 아이한테 사과를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곤혹스럽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아빠인 내가 아이를 믿지 못하고 오해해서 벌어진 일이다. 그럴 때면 ‘굳이 사과를 해야 하나’란 생각이 든다. 어른이 아이에게 사과하는 걸 경험하지 못했고,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부모가 자식에게 사과를 하는 게 부끄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과를 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한테 사과를 해야 하는 부끄러움보다, 내 잘못된 행동이 부끄러워진다. 아이한테 미안하다고 느끼면 사과부터 하라는 말을 항상 해오던 내가, 그걸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잘못되었다 여기면 사과하라. 아이가 지금보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해오던 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염치를 차리는 데 망설인다. 자식에게는 그리 하라고 이야기해놓고 정작 나는 염치를 차리기까지 ‘숙고’에 ‘숙고’를 더하는 것이다. 이 또한 참 염치없는 일이다. ---「제7장 염치없는 오지랖: 꼰대의 무례 증명」중에서 꼰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를 확실히 보여주는 게 ‘답정너’, 즉 ‘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하면 돼’다. 직장인들은 ‘답정너’ 스타일을 꼰대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꼽는다. ‘하라면 하지 말이 많아’, ‘그냥 시키는 대로 해’란 말속에 담겨 있는 상명하복(上命下服)도 마찬가지다. 꼰대는 다른 사람의 의견 따위는 듣지 않는다. 그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서열이 높은 사람이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서열이 낮은 이의 의견은 묵살하거나 의견을 게재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의견을 내더라도 자신의 직위로 깔아뭉갠다. 꼰대는 ‘나만 옳은 사람’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나와 나보다 서열이 높은 사람의 말은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기보다 서열이 낮은 이들의 의견은 들을 필요가 없다. 소통의 부재를 넘어 소통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제8장 답정너: 꼰대의 무오류 증명」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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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꼰대 공화국’이다
사전적 의미에 따르면, 꼰대는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이다. 꼰대라는 말은 번데기의 경상도 사투리인 ‘꼰데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다는 속담처럼, ‘주름 잡는 사람’이란 의미다. 꼰대는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아무 때나 주름을 잡는다. 꼰대라는 단어 자체가 늙은이와 선생을 지칭하기 때문인지 보통 꼰대 하면 세대 간의 갈등을 떠올린다. 나이 많은 사람, 남자 중에 꼰대가 더 많아 ‘개저씨’란 신조어도 유행하고 있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꼰대의 스펙트럼은 이보다 훨씬 넓다. 저자가 생각하는 꼰대는 이런 사람이다. 자기보다 못한 존재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가르치려고만 하는 자. 권위 의식, 서열 의식, 특권 의식을 가진 자. 나이·성별·직업·사회적 지위에 따라 남을 차별하는 자. 의전을 너무 당연시하고 고개 숙일 줄 모르는 자.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믿는 자. 남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역지사지하지 못하는 자. 쉽게 반말하는 자. 남을 무시하며 막말하는 자. 다른 이의 의견을 쉽게 묵살하는 자.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자. 저자는 갑질도 꼰대질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한다. 상하관계 속에서 갑이 을에게 가하는 각종 폭력을 갑질이라고 한다면, 꼰대질은 그런 폭력뿐만 아니라 가르치고, 무시하고, 멸시하는 수준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꼰대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남보다 서열이나 신분이 높다고 여기고, 자기가 옳다는 생각으로 남에게 충고하는 걸, 또 남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등한시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자”다. 저자에 따르면, 꼰대는 우리 사회를 과잉 경쟁 사회로, 서열에 따라 귀천이 갈리는 신분 사회로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명제를 참으로 만드는 게 꼰대다. 남보다 우위에 서야 한다는 걸 꼰대는 끊임없이 보여준다. 꼰대질을 직접 겪게 되면, 꼰대질을 당하지 않기 위해 출세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연스레 생겨난다. 그게 바로 이 사회를 무한 경쟁 사회로 만들고, 서열과 신분을 공고히 유지시키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꼰대 탈출을 위한 첫 걸음은 ‘타자 존중’이다 대한민국은 ‘꼰대 공화국’이지만 공교롭게도 꼰대를 자처하는 이는 거의 없다. 꼰대임을 밝히는 것도 어렵지만, 자신을 꼰대라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을 꼰대로 여긴다면, 그는 이미 꼰대가 아니다. 자타공인 꼰대는 없다. 마찬가지로 성찰(省察)하는 꼰대도 없다. 타인의 입장을 역지사지할 수 있다면, 이를 통해 자신을 돌아볼 줄 알고 남의 처지에 공감할 줄 안다면, 스스로 내뱉은 말과 행동,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성찰할 줄 안다면, 그는 이미 꼰대가 아니다. 꼰대는 타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타자와의 만남과 부대낌을 통해 성찰하고, 사유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행동을 변화시키면서 성장하는 건 꼰대의 태도가 아니다. 대신 꼰대는 남에게 인정을 꼭 받아야 한다. 인정받지 못하면 성질을 부리거나 뭔가 불이익을 준다. 그래서 꼰대는 독불장군이며, 불통의 아이콘이며, 과신과 독선의 산물이다. 저자는 나와 다른 삶을 인정하는 게, 바로 꼰대 탈출의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며 남이 살고 있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안에 살고 있다 해도 각자가 살아온 삶은, 앞으로 살아갈 삶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꼰대 탈출이 가능하다는 게 저자의 제안이다. 또 나만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타자와 내가 평등한 관계라는 걸, 위아래와 우열로 나누지 않고 서로가 같은 인간으로서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꼰대 탈출을 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꼰대 탈출을 해야만 일상에서 개인이 타인과 소통하며 살아갈 수 있고, 세대 간 갈등을 줄여나갈 수 있으며, 타인에게 너무나 쉽게 내뱉는 말과 권위주의적인 행동이 폭력임을 깨닫고, 일상생활에서 자유와 평등, 즉 민주주의의 가치가 자리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꼰대는 성장을 멈춘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변화에 둔감한 것을 떠나 변화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게 꼰대다. 한번 정해진 답은 절대 변하지 않는 것처럼, 한번 옳은 것은 절대 진리인 것처럼 여길 때 꼰대는 탄생하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꼰대 탈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제안한다. “듣자. 회의(懷疑)하자. 의심하자. 변화, 받아들이자. 그럴 때 꼰대는 멀어지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