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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번의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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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1

작가이자 번역가. 파리 8대학에서 연극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옮긴 책으로 티아구 호드리게스의 《소프루》, 에르베 기베르의 《연민의 기록》, 베티 본의 《프루스트의 마들렌》, 아니 에르노의 《빈 옷장》 《남자의 자리》 《세월》 《사진의 용도》 《진정한 장소》 등이, 엮고 옮긴 책으로 《생텍쥐페리의 문장들》 등이 있다. 희곡집 《누아》, 산문집 《창문 너머 어렴풋이》 《몽 카페》 《열다섯 번의 낮》 《열다섯 번의 밤》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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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01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268g | 120*188*20mm
ISBN13
9791195869336
크기.체중의 한계
상세 설명 참조

책 속으로

눈물의 무게와 질량이 각기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염분이 한창 진할 때가 있고, 또 그것이 맑아질 때가 있는 것이다. 정돈하지 못한 감정을 응축하여 쏟아 낸 나의 눈물은 바닷물처럼 짰고, 몇 번을 걸러 낸 엄마의 눈물은 담수처럼 맑았을 테다. ---「겨울이었다」중에서

“이것은 희극인가? 비극인가?” 내가 물었다. 인생이 희극도 됐다가 비극도 됐다가 하는 거지 뭐.” 세르지오가 대답했다. 그런데 세르지오의 말에 의하면 희극을 연기할 때는 비극처럼 진지하고 처절하게, 비극을 연기할 때는 희극처럼 가볍게 해야 한다더라. 우리는 술 한잔에 얼마나 가벼워졌던가? 얼마나 많이 웃었던가?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비극을 연기하고 있는 것인가? ---「어느 늙은 배우」중에서

그 애의 청아한 음색이 창틈으로 조금씩 새어 나가는 온기처럼 빠져나간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목소리도, 공기도 잡을 수 없다는 것이. 새어 나가는 어떤 것들을 가만히 두고 봐야 한다는 것은. ---「멀리서 온 청춘」중에서

마리안을 좋아했다. 그녀를 좋아했던 이유를 찾으려고 들면, 그날 바닥에 떨어진 국기의 국적처럼 모호하다. 독일이었던가 체코였던가. 까닭 없이 바닥에서 펄럭이던 그 얇은 천 조각의 모습만 남았다. 그리고 그 날, 해지는 쪽으로 달아나는 개를 차마 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던 마리안의 잿빛 얼굴이 아른거린다.---「마리안의 장례」중에서

가을비에 파리의 찬란했던 모든 색들이 씻겨 내려져 가고 있다. 이곳에서 이십 대를 보냈고,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졌다. 까닭 없이 좋아했고 미워했으며, 술에 취했고, 웃고, 울고, 뜨겁게 달아올랐으나 천천히 식어 버렸다. 그렇게 무언가 지나가 버렸다. 이제 가면 다시 오지 않을 그것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거리에서, 혼자」중에서

다만,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는 맛인 줄 모르고 너무 빨리 삼켜 버린 것이 이제 와 조금 후회된다. ---「여름의 맛」중에서

나눌 수 없는 삶의 몫이 있다. 이 호수를 한 바퀴 돌고 나면, 다만 등을 쓸어내려 주자. 어쩔 수 없는 마음의 구멍을 이해한다고 말하면서, 그저 나란히 걷자.

---「태양을 마주하고」중에서

출판사 리뷰

서른다섯 해의 삶, 십오 년의 이방인 그리고 열다섯 날의 기록

1. 『열다섯 번의 낮』은 작가 신유진의 첫 산문집입니다. 글로 세상을 만들어내 그 속에 자신을 숨겨왔던 소설가가, 조심스럽게 자신이 보내 온 날들을 적어 보냈습니다. 낮을 배경으로 한 열다섯 날의 이야기인데요. 무언가를 보여주기에는 짧을 것 같은 열다섯 날에는, 프랑스에서 이방인으로 보내온 십오 년이, 자신이 살아온 서른다섯 해가 온전히 녹아들어 짧지 않은 글이 되었습니다. 기록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것일 테지요. 작가는 기억이란 결국 시간이 지나면 윤색되고 과장되어 버리는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럼에도 무언가가 그저 흘러가버리지 않게 붙잡으려 애쓰고 있다는 걸 글을 통해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것들을 쓰고 싶다.
그 애가 모두가 기억해야만 하는 것들을 쓰고 싶어 했던 것처럼.
발바닥 밑에 붙은 하찮은 것들, 광원의 반대편에 선 것들, 로자를 품은 그 애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 본문 중에서

2. 그녀가 그렇게 애써 붙잡으려 하는 것들, 쉬이 지나치지 못하고 기어코 마음을 줄 수밖에 없던 것들은 함부로 다루었던 가족사진이나 누군가의 그림자, 혹은 늙은 배우, 사라져버린 건물 관리인, 낡은 스웨터, 버려진 냉장고, 죽은 도마뱀, 누군가의 장례식 등등.... 결국 평범한 일상들 혹은 너무 초라해서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것들뿐입니다. 그것들이 불러오는 지나가버린 시간들이기도 하고요.
그러한 것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의 깊이와 온도는 우리들의 발걸음을 멈추어 서게 만듭니다. 작은 숨을 불어넣고 그것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가벼운 것이 아님을 우리 앞에 넌지시 드러내 보입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결혼식 사진을 보고 떠오르는 기억을 붙잡는 그녀의 방식을 보자면 우리는 잠시 눈을 감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결혼식을 마친 날, 엄마는 주방에서 울었다. 창문을 활짝 열고 제법 쌀쌀한 이른 가을 바람에 얼굴을 맞으며 하얀 거품 같은 설움을 품어내며 울었다. 1993년의 것과는 또 다른 울음이었다. 오히려 주방 옆, 작은 서재에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소리 내어 쏟았던 나의 울음이 1993년의 그것과 닮았을 것이다.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벙긋벙긋했던, 엄마의 미완성 문장들, 그 뒤에 올 말을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눈물의 무게와 질량이 각기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염분이 한창 진할 때가 있고 또 그것이 맑아질 때가 있는 것이다. 정돈하지 못한 감정을 응축하여 쏟아낸 나의 눈물은 바닷물처럼 짰고, 몇 번을 걸러낸 엄마의 눈물은 담수처럼 맑았을 테다.”

3. 그녀의 글 속에 숨은 슬픈 얼굴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작 본인은 “서글픈 글은 쓰고 싶지 않다. 이미 너무 많은 소설과 시가 서글픔을 노래하지 않았는가. 마치 삶의 주제가 그것 하나인 것처럼 우리는 너무 많은 서러운 문장들을 만났다.” 라고 말하지만, 사라져가는 것들 앞에서 어떻게 슬프지 않을 수 있을까요. 눈에 밟혀 글자가 되어 가는 것들을 어떻게 외면 할 수 있을까요.

“나는 여전히 서러운 어떤 것을 쓰고 싶지 않으나, 사라진 보라색 스웨터가 자꾸만 눈에 밟혀 글자가 되어 가고 있다. 아무도 읽어 주지 않을까 봐 겁이 나지만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고 사라지는 것들에 마음이 쓰인다.”

작가는 일상 속 자신이 바라보고 귀 기울였던 것들을 그리고 떠오르는 몇 가지 기억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럼에도 깊은 감정이 전해지는 것은 좋은 글이 반드시 가져야한다고 생각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저는 그것이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목소리’라고 생각합니다. 고작 한 사람이 겪은 날들을 읽는 것이지만, 그 시선과 목소리가 이런 말을 전해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견디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이러한 글이 견딜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말이지요.
평범한 일상을 절제되고 섬세한 문장으로 닦아, 그 안에 숨어있던 의미와 감정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그녀의 첫 산문집은 한 사람의 일상이 단순히 벌어진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어떻게 아름다운 산문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작가의 말

“이 글은 소설이 아니다. 그러니 허구를 이야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없다. 나는 결국 솔직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어느 귀퉁이, 수려하지 않는 문장 하나에, 투박하고 멋없는 진심 하나를 숨겨 놓을 테다. 술래 없는 숨바꼭질을 혼자 하면서 언 제 들킬까 조마조마하며 아니, 들키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행여나 누군가 진짜 나를 찾아줄까 가만히 머리카락을 세울 것이다.” -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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