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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이
우아하고 완벽한 곡선 이어 쓰기 다시 쓰기 너의 삶을 쓴다면 빛이 내는 소리 페른베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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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마음일까? 잠이 오지 않는 건 육체의 일일까, 마음의 일일까. 기준이 불분명한 단어 선택 때문에 수도 없이 많은 ‘마음’과 마음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듣는다.
--- pp.9-10 우아하고 완벽한 곡선, 사실은 그게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아 신경이 쓰였다. 한편으로는 추상적이고 아름다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어떤 형체가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구체적인 형체가 생기는 순간 실망감을 안겨줬으니까. 사랑이 누군가의 신체와 말이 되고, 슬픔이 울음이 되는 순간 구질구질해졌던 것처럼. --- p.13 글이란 게 참 웃기죠? 따지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또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닌 것 같고. 이상하게 힘이 들어가고 그래요. 그냥 텅 빈 곳을 글자로 채우듯이 써봐요. 텅 비어 있으면 쓸쓸하니까. 텅 비어 있으면 쓸쓸하니까. 돌아오는 길에 그 말을 곱씹으며 손에 쥐고 온 책을 훑었다. 글자로 빼곡하게 채워진 종이들. 그렇다면 이것은 쓸쓸함을 채우려는 시도였을까. 그래서 채워졌을까? --- p.41 동이 씨는 나를 어떻게 키웠을까. 나는 가끔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가만히 뒀는데 죽지 않고 혼자 자라는 마음처럼 당혹스럽다. 나는 종종 나 자신이 당혹스럽고, 그런 내 기분에 당황한다. --- p.50 어떤 날은 뭐가 진짜 나인지 모르겠어요. 이 거리도, 나도 다 가짜 같아요. 진짜는 과거에, 저 벽 속에 있고요. 나는요, 삶이 비처럼 내릴 때 그 빗속으로 뛰어드는 사람이고 싶었어요. 그게 내가 되고 싶었던 나인지, 한때 나였던 사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떤 날에는 내가 생각하는 나는 저 벽에 적힌 이름인 것 같아요. 당신이 보는 나는 그 사람이 아니고. 변했다는 뜻인가요? 사는 게 내가 나로부터 멀어지는 일 같다는 뜻이에요. --- p.73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누군가 혹은 되어본 적 없는 나를 그리워하는 마음. 그런 마음을 알아요? 나는 조금 놀라서 물었다. 페른베, 그걸 독일어로 페른베라고 해요. --- p.99 나는 새가 되어 나무에 걸터앉아 눈 내리는 풍경을 지켜보는 상상을 했다. 광기처럼 내리는 눈이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귀로 들어본다. 새는 깃털 안에 귀를 숨기고 산다. 나는 숨겨둔 구멍을 열어 놓친 소리를 듣는다. 왜일까. 서사를 알 수 없는 니나의 글이 절박한 비명처럼 들리는 이유는. --- p.127 소설은 아무 힘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기다리게 된다. 삶에 구원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씩 간절해지는 것처럼. 구해주길. --- p.1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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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뒀는데 죽지 않고 혼자 자라는 마음처럼 당혹스럽다.
나는 종종 나 자신이 당혹스럽고, 그런 내 기분에 당황한다.” 『페른베』의 주인공 ‘희수’는 ‘마음 콜센터’에서 상담원으로 일한다. 타인의 고민과 비밀을 들어주고 기록하는 그의 하루는 타인의 말을 기록하는 일로 시작해 자신의 텅 빈 원룸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난다. 7개월 전 낯선 도시로 이주한 희수는 모든 관계로부터 거리를 둔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아하고 완벽한 곡선’이라는 문구가 적힌 전단지를 발견한다. 호기심에 이끌려 전화를 걸고, 마침내 도시 외곽 장미여관 3층의 글방을 찾아가게 된다. 장미여관은 변화하는 도시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1층에는 ‘시월’이라는 카페가 있는데, 승호라는 인물이 20년 넘게 운영해온 이곳은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삼각주’와 같은 곳이다. 희수는 이곳에서 번역가 ‘니나’를 만난다. 니나를 중심으로 모인 로컬 청년들은 두 명씩 짝을 이뤄 릴레이 소설을 쓰고 있었다. “한 사람이 소설의 반을 쓰면 다른 한 사람이 그 뒤를 이어서 쓰는 것. 이어 쓰기. 그런 게 가능한 것일까?” “이야기가 얼마나 내밀한 것인지 잘 아는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의 반을 꺼내놓았다고 치자. 나머지 반을 누군가가 채운다니…… 그게 가능할까?” 하고 생각하면서도 희수는 자꾸만 그 마음들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이어 쓰는 마음 ‘릴레이 소설’은『페른베』의 중심 모티프다.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 타인과의 깊은 연결을 모색하는 방식이다. 희수는 릴레이 소설을 통해 자신이 닫아두었던 과거의 상처와 마주하게 된다. 특히 6년간 사귀었던 애인과의 관계, 두 사람이 계획했으나 끝내 가지 못했던 ‘뮌헨 여행’과 대신해서 떠났던 ‘해남 여행’의 기억을 자기 안에서 밖으로 끄집어 올린다. “너무 멀다.” 애인을 떠올릴 때마다 반복되는 이 말은 단순한 지리적 거리를 넘어, 과거와 희수 사이의 단절을 상징한다. 희수는 니나와 자신이 쓴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며 비로소 해남 여행 중 자신의 감정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애인의 표정과 애인의 말, 애인 이야기뿐이에요. 여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니나의 질문에 희수는 당황한다. “생각해보니 애인의 모습은 선명하게 떠오르지만 내가 어땠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이 순간, 희수는 처음으로 자신이 얼마나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는지 인식한다. 소설의 또 다른 중심축에는 ‘동이 씨’가 있다. 희수의 어머니인 ‘동이 씨’는 희수를 ‘실수로 태어난 아이’라고 불렀다가, 나중에는 ‘지켜낸 아이’라고 부른다. 희수가 떠난 후 물고기를 키우다 계속 실패하는 동이 씨의 모습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지만 방법을 알지 못하는 이의 안타까운 사랑을 상징한다. 희수는 어린 시절의 기억, 화장품 가게 안채에서의 삶, 커튼으로만 간신히 구분되던 모습 등을 통해 현재의 자신을 이해해간다. “사람은 언젠가 다다를 곳을 향해 이를 악물고 달리다가 여기, 지금을 다 놓치는 것 같다.” 이 깨달음은 희수가 자신의 과거로부터 벗어나 현재를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전혜린으로부터, 다시 쓰기 “나는 누군가를 하나의 세계처럼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혜린을 통해 알았다. 페른베. 먼 곳에 가닿고 싶어 하는 마음. 전혜린의 이야기를 다시 쓰고 싶었지만, 단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누군가의 삶을 다시 쓰는 것은 재현의 일이 아니니까. 그것은 한 생의 경험을 오롯이 통과한 후에 되돌아가려는 마음일 것이다. 내게 글은 생生의 또 다른 이름이고, 내가 다시 쓸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의 삶, 나의 글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_작가의 말 중에서 『페른베』‘희수’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전혜린’이라는 실존 인물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하다. 32세의 짧은 생을 살다간 전혜린은 한국 문학계에 독일 문학을 소개한 중요한 번역가였다. 이 소설은 그녀의 작품과 번역서들, 그리고 타인의 언어와 삶을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와 한계를 탐구한다. 글쓰기는 이 소설에서 구원의 가능성으로 제시되는 것 같다. “쓸수록 선명해지는 세계”는 단순한 문구가 아니라, 타인과 자신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희수와 니나는 릴레이 소설을 함께 쓰며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이해해간다. 그 과정에서 희수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엮어내고, 분절된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로 꿰어낸다. 고독과 위로와 구원에 대한 이야기 『페른베』는 우리에게 특별한 위안을 건네는 소설이다. 완전한 삶을 강요받는 이 시대에, 소설은 우리의 불완전함과 단절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고 등 두드린다. 희수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과거와 어머니 ‘동이 씨’와의 관계를 마주하듯, 우리도 삶의 불편한 진실들과 마주할 때 비로소 선명해지는 세계가 있다고 말한다. 작품의 말미에 등장하는 “11월에 눈이 오면, 시월에 갈 거다”라는 문장은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시간과 공간의 중첩을 담은 상징적 표현이다. ‘시월’은 단순한 달이 아닌, 여기서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카페 ‘시월’이라는 물리적 공간이며, 다른 하나는 시간적 의미에서 ‘시월’(10월) 즉, ‘11월’ 이전의 시간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역설적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욕망, 지나간 것을 다시 찾아가고 싶은 마음을 담고 있다. 또한 “11월에 눈이 오면”이라는 조건은, 니나의 이야기에서 눈보라가 내리던 날의 비극적 경험을 암시하면서도, 그 눈이 멈추고 새로운 시간이 찾아올 것이라는 마음을 함께 품고 있다. 이는 소설이 보여주는 ‘페른베’의 본질, 도달할 수 없는 곳을 향한 그리움, 되찾을 수 없는 것을 향한 갈망을 함축하며, 희수의 여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전혜린이 마지막으로 쓴 편지를 몇 번이고 읽으며, 희수는 ‘원소로 환원되지 않게 도와달라는 말’을 ‘눈 속을 헤매고 싶다는 말’을 떠올린다. 니나를 생각한다. 눈보라 속에서 자신이 놓친 게 무엇인지도. 때론 자신의 삶에서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희수처럼, 우리도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쓰고, 이어 쓰면서 서로의 삶을 보듬어갈 수 있을까.『페른베』는 모든 번역이 불완전하듯, 타인에 대한 이해 역시 항상 불완전할 수밖에 없음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타인을 향해, 그리고 먼 곳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우리 내면에 모르는 사람의 옅은 숨소리처럼 존재하는 먼 곳을 향한 그리움에 귀 기울인다. 고독과 위로와 구원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