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장
2장 옮긴이의 말 |
Yann Martel
얀 마텔의 다른 상품
황보석의 다른 상품
|
이제 나는 사실 눈 물고기를 더 이상 믿지 않지만 아직도 은유로서는 믿는다. 열정적인 포옹을 하고 있는 중에 숨결이, 숨소리가 가장 거세어지고 피부가 가장 짜릿해질 때 나는 아직도 내가 무아지경에서 바다의 일렁임을 듣고 느낄 수 있다는 생각 같은 것을 한다. 지금도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를 할 때면, 우리가 눈의 표면으로 솟아오르는 에인절피시와 해마들을 봄으로써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그 물고기들이 우리 사랑의 분명한 증거라고 믿는다. 어찌 됐든 간에, 나는 아직도 사랑은 대양 같은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 p.33 우리 부모는 일찍부터 페미니스트들이었던 관계로 성을 이야기할 때 ‘상반된다’는 말을 쓰지 않았다. 사실, 무슨 이유로 두 성이 상반된다고 여겨야 했을까? 그 말은 공격적이고 부정적이고 뜻하는 바도 거의 없다. 우리 부모는 두 성이 보완적 - 내게 비슷한 예를 들어 설명해준 좀 더 복잡한 말 - 이라고 했다. 즉 남성과 여성은 비와 토양 같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성에 대해서, 생물학의 일반적인 세부 사항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나는 그 말을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것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이해했다. 그 당시 내게는 우주가 놀랄 만큼 잘 짜여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상상해보자. 완전히 동떨어지고 기원도 다른 저 먼 우주 어딘가에 나에게 맞도록, 나에게 꼭 맞도록 만들어진 성기가 있다고. 그리고 나는 내 보완적인 성기, 내 진정한 사랑을 찾아 떠난다고. --- p.38 “뭐랄까, 사실 그건 양성이야. 지렁이는 암컷이기도 하고 수컷이기도 해. 법칙에 대한 예외인 거지.” 나는 그 우주적인 기적에 도취되었다. 그 말 - “암컷이기도 하고 수컷이기도 해!” - 이 다시 떠오를 때마다 나는 새로이 놀랐다. 만일 하느님이 존재 - ? - 한다면, 남성이건 여성이건, 그 하느님의 머리는 벌레처럼 꿈틀거릴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주 분명하게 잘 보였다. 하늘은 지구를 감싸고 하얀 구름들 사이로 이리저리 우아하게 움직이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벌레였다. 나는 몇 분 동안 예수 그리스도하고 같이 놀다가 생식기관을 찾아보려고 날카로운 칼로 조각조각 잘랐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 p.49~50 한번은 학교 근처의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에서 공교롭게도 나는 소냐, 다정한 소냐와 하필이면 화장실 앞에서 마주쳤다. 한쪽 문에는 신사용, 다른 쪽 문에는 숙녀용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아니, 이건 옳지가 못해. 이런 식이어서는 안 돼. 신사용 숙녀용이 아니라 친구용과 원수용이라야 해. 그러는 게 자연스러운 구분법, 현실을 더 잘 반영하는 구분법일 거야. 그런 식으로라면 소냐하고 나는 한쪽 문으로 같이 들어갈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다른 쪽 문으로 들어갈 수 있어.’ --- p.101 그 일은 하룻밤이 지나는 동안에 걸쳐 이루어졌다. 나는 갑자기 잠을 깼다. 내가 무슨 꿈을 꾸고 있었는지, 왜 깨야 했는지는 모른다. 나는 일어나 앉았다. 혼란스러웠다. 아무것도―내 이름도, 나이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기억이 나지 않았다. 완전한 기억상실이었다. 내 실체는 프랑스어에 매인 몸이었다. 그리고 내가 여자라는 것, 그것도 알 수 있었다. 프랑스어로 말을 하는 여자. 그것이 내 존재의 핵심이었다. --- p.162 나는 사람들이 왜 그것을 강간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내게 그것은 살인이었다. 나는 그날 살해되었고 그 후로 언제까지고 내 안에 죽음을, 다채로운 내면에서 배회하는 회색을 끌고 돌아다녀야 했다. 어떤 때는 죽은 것이 내 위胃였고, 어떤 때는 내 머리, 또 어떤 때는 내 장臟, 그리고 자주는 내 심장이었다. --- p.453~454 |
|
“『셀프』는 얀 마텔의 모든 소설이다. 얀 마텔 소설의 미래다.
나는 이보다 깊고 세밀하게 몽땅 벗어버린 일기를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물어야만 하는 아주 중요한 질문, 얀 마텔 첫 장편소설 『셀프』 리커버 특별판 『셀프』는 여성, 남성이라는 이분법으로 갈라진 인간의 정체성을 탈피하기 위한 처절하고도 철저한 고안이면서, 동시에 한 작가의 탄생을 위한 기획이다. 여기 남자로 태어나 18년을 살다가 여자가 되어 20대를 통과한 다음 다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섹슈얼리티를 갖게 된 한 인간의 셀프가 있다. 그중에서도 사랑의 기쁨, 죽음과 같은 폭력을 경험하는 여성의 시간이 소설의 중심에 놓여 있다. _김혜순(시인,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얀 마텔이 탄생시킨 주인공 ‘나’는 자상한 외교관 부모 밑에서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낸, 젊고 지적이고 솔직하고 변화무쌍하고 허심탄회하고 장난스럽고 삶을 포용할 줄 아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세상을 살펴보고 의심하고 질문하는 어린 ‘나’는 지렁이처럼 부드럽고 암수를 한 몸에 지닌 존재가 부럽고 경이롭다. 그리고 남자답지 못한 ‘나’를 ‘호모’라 놀리는 사내아이들의 폭력과 편견에 상처를 받는다. 그런 그(또는 그녀)가 놀라우리만치 풍부하고 인간적이고 복잡하고 달콤새콤한 세상을 굽이굽이 거치며 살아온 이야기가 바로 『셀프』다. ‘나’는 세상을 누비면서 나를 찾고, 느끼며 살아간다. 낯선 여행지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는 법을 배우고, 낯선 사람, 낯선 언어, 낯선 모든 것들 속에서 마음을 열려 한다. 유년기, 사춘기의 ‘나’에게 일어나는 이야기들은 공감할 수 있는 성장의 드라마로 굽이치며 흐르고, 그 눈에 띄지 않으나 어느 순간 알아차리게 되는 커다란 성장의 면면들이 유쾌하고 의미심장하게 펼쳐진다. “‘오늘 난 사랑할 사람을 찾아냈어.’ 그것은 희망이나 망상이 아니라 약속이었다” 여기, 세상에서 가장 슬픈 섹슈얼리티를 갖게 된 한 인간의 셀프가 있다 우리의 몸-성별은 나에 관한 핵심적인 질문이고 즐거운 탐구여야 하는데, 그것이 폭력으로 강제된다면? 얀 마텔은 이 문제를 ‘세상의 모든 지식’으로 풀어놓는다. 읽기의 쾌락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아름다운 문장, 지적인 즐거움, 정치적 깨달음을 한 작품에서 만날 수 있는 황홀한 체험이다. _정희진(여성학자, 『정희진처럼 읽기』 저자) 그러던 ‘나’는 열여덟 살이던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여성으로 성이 바뀌는 체험을 한다. ‘나’는 예상치 못한 이 변화에 허둥댄다. 그러나 여성이 된 ‘나’는 우주의 이치에 잇닿아 있는 듯한 월경을 체험하고는 두렵지만, 황홀감에 빠진다. 그리고 그 변화를 받아들인다. 변한 것은 육체일 뿐이다. 육체의 변화로 인해 ‘나’는 보다 본질적이며 완전한 것, ‘사랑’을 지향한다. 그리고 사랑을 시작한다. 그 사랑은 이성애이거나 동성애다. ‘나’는 어머니 같은 여성, 친구 같은 남성, 아버지 같은 남성, 형제 같은 남성, 오누이 같은 여성과 서툴거나, 맹목적이거나, 헌신적이거나, 때로는 집착에 괴로워하고 때로는 의심에 아파하는 사랑을 한다. 진정한 사랑, 티토라는 남자를 만날 때까지. 여성이 된 ‘나’는 다양한 인물들과 차례로 사랑에 빠지고, 한때는 무모하리만큼 육체에만 탐닉하는 사랑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진실한 사랑을 만나 지상 최고의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그 사랑이 채 결실을 맺기도 전, 영혼을 부수는 것과 같은 끔찍한 고통(강간)으로 인해 다시 남성이 되고 만다. 소설은, 오랜 방황의 끝에 선 주인공이 따스한 여성의 젖가슴에 자신의 등을 기대며 “그녀의 젖가슴이 나를 통과해서 내게도 젖가슴이 생”기기를 바라며 잠이 드는 안타까운 장면으로 끝난다. 성장의 두려움을 느끼고, 정체성에 관해 의문을 품고, 무언가에 맹목적으로 집착하거나 상처받는 존재, 인간이란 존재와 변화무쌍한 삶의 이야기 독특한 내용을 넘어서서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는 마텔 특유의 빛나는 문장력이다. 소설의 문장은 프랑스어와 영어를 모두 사용하는 작가(또는 주인공 ‘나’)의 의도대로 원문과 번역문을 2단으로 편집하여 병치시킨다. 작가는 두 가지 언어의 느낌과 운이 서로 비교되도록 단어들을 배치하여 “각각의 언어는 그 자체로서만 일가붙이의 엮임인 것이 아니라 쌍둥이, 즉 그 옆에 있는 언어의 해당어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두 언어 사이의 소통일 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의 교류와 소통을 의미하기도 한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겪었을 법한 성性에 관한 아이의 끝없는 의문과 엉뚱한 호기심, 그로 인해 벌어지는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로 출발하는 이 소설은, 점차 녹록치 않은 인간의 삶, 정체성,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야기로 무게를 더해간다. 누구나 삶의 도정에서는 성장의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의문을 품고, 어리석음에 빠지고, 무언가에 맹목적으로 집착하거나,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약해지곤 한다. 작가는 인간이 살면서 겪는 정신과 육체의 대립과 조화, 갈망의 본질에 대해 섬세하고 유려한 그만의 필치로 주인공 ‘나’로 대변되는 인간이란 존재와 그를 둘러싼 변화무쌍한 삶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기발한 문체와 구성, 그리고 인간 욕망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 통찰로 독자들을 휘어잡는 이 작품은, 재미와 감동이라는 소설의 목적을 달성하기에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