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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서론

제1부
1. 전체 저술활동에 있어서의 양의성 혹은 이중성
2. 저자가 종교적인 저술가이고, 또 과거에도 그랬다는 사실에 대한 설명

제2부 저자는 종교적인 저술가라는 관점에서 전체 저술활동을 해명한다
1. 전체 저술활동에 대하여 37
2. 여러 저술의 본질적인 차이에 대응하는 나의 개인적인 실존의 차이
3. 나의 저술활동에 있어서의 하느님의 섭리의 역할

마무리

끝맺음

[부록] 저 외톨이 저자로서 나의 저술에 관한 두 개의 ‘비망록’

역자후기

■ 부록 키에르케고어의 생애에 대한 짧은 이야기

저자 소개 2

쇠렌 오뷔에 키르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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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en Aabye Kierkegaard

쇠렌 키르케고르는 1813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부유한 가정의 아버지 미카엘 페더르센 키르케고르와 어머니 아네 쇠렌다테르 룬 키르케고르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엄격한 기독교적 분위기 속에서 부친으로부터 철학적 상상의 즐거움을 배우며 동부 시민 학교에 다녔다. 키르케고르는 그곳에서 라틴어와 역사에 뛰어난 실력을 보인다. 그 후 성장하여 1830년 아버지 미카엘과 형 페테르의 권유에 따라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하고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신학부에 들어간다.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 키르케고르는 방탕한 생활을 하며 ‘기독교는 광기’라고 말하고 기독교와 멀어진다. 그러다
쇠렌 키르케고르는 1813년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부유한 가정의 아버지 미카엘 페더르센 키르케고르와 어머니 아네 쇠렌다테르 룬 키르케고르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엄격한 기독교적 분위기 속에서 부친으로부터 철학적 상상의 즐거움을 배우며 동부 시민 학교에 다녔다. 키르케고르는 그곳에서 라틴어와 역사에 뛰어난 실력을 보인다. 그 후 성장하여 1830년 아버지 미카엘과 형 페테르의 권유에 따라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하고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신학부에 들어간다.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 키르케고르는 방탕한 생활을 하며 ‘기독교는 광기’라고 말하고 기독교와 멀어진다. 그러다 대학 생활 도중 그의 관심은 신학에서 문학으로, 문학에서 다시 철학으로 옮겨갔다. 그는 지적 생활을 동경해 문학 · 음악 · 오페라 등을 가까이하고 산책을 즐기며 사상을 키웠다. 27세 되던 1840년 코펜하겐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레기네 올센을 만나 청혼한다. 다음 해 1841년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결혼에 환멸을 느끼고 이유를 밝히지 않고 일방적으로 레기네에게 했던 청혼을 파기한다. 그 후로 키르케고르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그녀와의 결별 이후 키르케고르는 여러 가명을 사용해 『이것이냐 저것이냐』 『공포와 전율』 『불안의 개념』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거의 모든 작품을 가명(假名)으로 발표하고 발표한 작품이 자기가 원저자라고 밝혀진 후에도 계속 가명을 사용했다. 그가 모든 작품에 ‘단독자(單獨者)’를 이상적 인간형으로 삼는다. 그는 객관적인 진리 따위는 아무런 가치가 없고 ‘자기’라는 개체로서의 작은 인간, 둘도 없는 오직 하나의 인간, 이것이 그에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라는 단독자의 가장 절실한 혼(魂)의 문제를 파헤치고 기독교인들의 허위와 죄악을 비판하고 기독교의 정화를 위해 힘썼다. 그러다 가명으로 책을 출판했던 것이 탄로나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사람들에게 큰 비난을 받는다. 그 후 자신이 가명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던 이유를 신문에 기고하고 덴마크 기독교 사회를 비난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저작 활동을 하고 평생 직업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 1855년 10월 2일 42세 때 거리에서 쓰러져 프레데릭 병원에 입원하고 11월 11일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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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 키에르케고어 협회를 설립하였다. 키에르케고어의 저서인 『공포와 전율』을 비롯하여 『이것이냐 저것이냐』, 『반복』, 『불안의 개념』, 『그리스도교의 훈련』, 『순간』, 『현대의 비판』, 『죽음에 이르는 병』, 『관점』등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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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1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254쪽 | 128*188*20mm
ISBN13
9788997332007

출판사 리뷰

“1848, 덴마크 코펜하겐”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1848년의 덴마크 코펜하겐이 쇠얀 키에르케고어에게 안긴 시대적 압력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우선 그의 조국인 덴마크가 프러시아와 분쟁을 일으켜서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을 잃었고, 프랑스 혁명의 여파를 받아 절대군주제가 입헌군주제로 바뀌었으며, 또 이 무렵에는 그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산도 거의 바닥이 났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그의 건강마저도 매우 악화되었다. 이런 연유로 키에르케고어는 그의 필생의 테마였던 ‘불안’을 교집합으로 하는 이 불안한 조류에 휩싸인 채, 자신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하고야 만다.
그리고 그의 결심은 자신이 걸어온 저술의 길, 다시 말해서 가명으로 써서 출판해온 많은 책과, 한편으로는 실명을 써서 출판한 많은 강화집, 이런 것들을 세상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치닫는다.
바로 그 결심의 끝에 맺혀진 결정인『관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생전에는 서재 어딘가에서만 소중히 간직되고 있다가, 키에르케고어 사후 그때까지 유일하게 생존해 있던 혈육인 맏형 페더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키에르케고어
자신의 저술활동을 통해 스스로의 내면으로 여행을 떠나다.


1848년, 이 해에도 키에르케고어는 저술의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해『죽음에 이르는 병』을 비롯하여 『그리스도교의 훈련』의 태반과 「위기 및 한 여배우의 생애에 있어서의 하나의 위기」를 썼다. 바로 이런 특징이 『관점』을 그의 사후 출간과 연결시켜 이 책을 그의 저술활동의 회고록이라 평가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간단히 부연하면, 1848년이란 시점에서 볼 때 그의 저술활동 전체는 두 갈래로 나뉜다. 거기에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흐름이 존재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하나는 심미적인 저술에 속하는 일련의 저술들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적인 저술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키에르케고어는 어째서 이런 두 개의 흐름의 저술활동을 하게 되었는가 하는 연유, 즉 이런 이중적인 저술활동의 의미를 밝히고, 더불어 어째서 본래는 종교적인 저술가인 자기가 그런 심미적인 저술을 썼는가를 밝히고 있다. 아울러 그는 저술가로서의 자기가 얼마나 많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는가도 거리낌 없이 밝히고 있다.
따라서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관점』은 말하자면 키에르케고어가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예감하며, 지금까지의 자신이 걸어올 길을 되밟아가며 써내려간 내면의 여행기라 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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