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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ori Ekuni,えくに かおり,江國 香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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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새가 좋아하는 것 중의 한 가지는 세탁기. 내가 세탁기를 돌리면 곁에 다가와 질리지도 않는지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비누 거품과 물이 넘실넘실 소용돌이치는 걸 바라보면 상쾌하다고 했다. 그럴 때 내가 깜빡 뚜껑을 닫아버리면 몹시 기분 나빠 했다. 당황해서 급히 열어주어도 이미 때는 늦다. “내가 그 안을 들여다보기를 좋아한다는 거, 다 알면서.” 화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p.40 * “병이라는 건 하루 종일 누워 있어야 하는 거야. 어디에도 나갈 수 없어. 종일 잠을 자고 아침저녁으로 약을 받아먹으면서 그냥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하는 거라고.” 설명을 마치자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알았어?” 어쩔 수 없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미리 말해두겠는데, 약이라는 건 럼주를 끼얹은 아이스크림이야.” ---p.43 * 기억이라는 건 어떤 구조로 만들어져 있는 걸까. 지금껏 잊고 있던 일들을 작은 새와 함께 살기 시작한 뒤부터 자꾸자꾸 떠올리게 되었다. 예전의 작은 새에 대한 기억. 대개는 좋은 추억이지만 개중에는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도 있었다. ?한 마리의 작은 새로서 내가 도무지 참을 수 없는 너의 결점을 알려줄까? 언제였던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예전에 이 방에 있었던?어느 날 갑작스레 찾아와 어느 날 갑작스레 사라져버린?진한 갈색의 작은 새에게서. ?결점? 나는 되물었다. 여름이었고 우리는 창문을 열어둔 방 안에 있었다. ?너는 남을 지나치게 받아주는 편이야. 작은 새는 내 눈을 쳐다보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그게 잘못인가? ?이따금 몹시 쓸쓸해져. ---pp.56~57 * “너희들, 걸핏하면 입을 맞추더라?” 화가 났다기보다 불만이 많다는 말투였다. “내 입이 부리라는 거, 다 알면서.” 나는 깜짝 놀라서, 그리고 너무 재미있어서 웃어버렸다. “너의 부리는 아주 아름다워. 정말 아름답고 투명한 붉은색이야.” ---p.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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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쿠니 가오리가 쓰고, 권신아가 그린, 따뜻한 겨울 동화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체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작가 에쿠니 가오리가 이번엔 동화 속 이야기 같은 상상력의 공간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1998년 일본 로보노이시 문학상을 받은 작품 『나의 작은 새』는 잔잔한 일상 속으로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든 작은 새 한 마리와의 ‘사랑 비슷한’ 동거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제멋대로에 질투심이 많은 ‘작은 새’, 그런 작은 새의 까다로움을 지나칠 정도로 잘 받아주는 ‘나’, 그리고 요리도 정리정돈도 무엇이든 완벽한 ‘여자친구’, 이 셋은 미묘한 삼각관계 속에서 균형을 이루며 저마다 조금씩 다른 행복의 착지점을 찾아나간다. 이 책의 본문 속 그림은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일러스트로 유명한 권신아 작가가 환상적이고 따뜻하게 표현해냈는데, 에쿠니 가오리와 권신아 두 작가의 섬세한 감성과 상상력은 일상적이면서도 동화적인 시공간으로 우리를 조용히 이끈다. 별일 없이 반복되는 하루하루 속에서 독자들은 ‘작은 새’와 ‘나’와 ‘여자친구’가 만들어가는 풍경을 떠올리면서, 반짝반짝 빛나면서도 사소한 일상 속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출간한 『나의 작은 새』는 1999년 문일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책을 노마문예 번역상을 수상하고 『1Q84』 등을 번역한 바 있는 양윤옥이 다시 옮기고, 몽환적인 일러스트로 유명한 권신아가 그림을 그려 새롭게 내놓은 것이다.) 내게 사소한 행복이 되어준 작은 새와의 ‘사랑 비슷한’ 동거 이야기 눈이 내리는 차가운 아침, 작은 새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불시착. 꼭 그런 느낌이다. 교회를 찾아다니다가 미아가 됐다는 작은 새는 그날 이후 ‘나’의 생활 속으로 파고든다. 삼시 세 끼 럼주를 끼얹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꾀병을 부리고, 화가 나면 “제기랄, 제기랄.” 버릇없는 말을 내뱉고, 자기 좋을 때 시작해서 자기 좋을 때 끝내는 끝말잇기를 좋아하고, 내가 여자친구와 입을 맞추면 볼이 퉁퉁 부어 툴툴거리고, 그렇게 제멋대로에 건방진 작은 새와의 동거가 시작된다. 살아가면서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설레면서도 불편한 일이다. 나의 시간을 쪼개어 그 사람과 공유해야 하고, 나의 보폭을 조정하여 그 사람과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대방에게 무조건 맞추어주기만 해서도 안 된다. 지나치게 남을 잘 받아주는 ‘나’ 때문에 예전에 키웠던 작은 새가 이따금 쓸쓸함을 느꼈던 것처럼, 서로를 알아가고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일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섬세한 과정이어야 한다. 『나의 작은 새』는 겉으로 보기엔 가벼운 동화 같지만 ‘사랑’에 대해, ‘관계’에 대해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이다. 작은 새는 대야 속 얼린 물 위에서 빙글빙글 스케이트를 타며 즐거워하는, 마냥 귀엽기만 할 것 같은 새이지만, 작은 날개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그 자유로움이 주는 쓸쓸함도 잘 알고 있다. ‘나’와 ‘여자친구’와 ‘작은 새’가 함께하는 일상은 또 어느 날 갑자기 변화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작은 새가 예고도 없이 찾아들었던 것처럼 느닷없이 찾아와 느닷없이 떠나가는 것들이 주는 쓸쓸함 또한 우리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은 새에게 ‘나’ 아닌 다른 친구가 있다고 해서 서운해할 필요 없다. 우연처럼 다가와 살포시 내려앉은 작은 새가 지금 ‘나’의 일상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었으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