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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건국의 아버지가 된 백범 김구의 편지 _6
편지 01 나는야 개구쟁이 _12 편지 02 학문에 뜻을 두고 _18 편지 03 청계동 안 진사와 맺은 인연 _26 편지 04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아야 대장부 _37 편지 05 귀신이 돼서라도 왜놈의 씨를 말리리라! _47 편지 06 새장을 박차고 나온 새 _59 편지 07 머리를 깎고 중이 돼 _69 편지 08 허벅지 살을 떼어 아버지께 _76 편지 09 도깨비불의 정체는? _85 편지 10 왜놈들의 교활한 수법 세 가지 _92 편지 11 감옥에서 만난 도적 괴수 _107 편지 12 임시 정부의 문지기가 되겠소! _120 편지 13 일본 영감 이봉창과 청년 윤봉길 _132 편지 14 가슴에 박힌 총탄 _150 편지 15 일본의 항복을 기뻐하지 않은 이유 _157 편지 16 38도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_167 나의 소원 _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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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정부 5년 나는 내무총장이 됐어. 그즈음 아내는 아들 신을 낳은 뒤 폐렴에 걸려 몇 해를 고생하다가 임시 정부 6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
나는 아내의 장례식을 극히 검소하게 할 작정이었어. 독립운동 기간에는 혼례나 장례 같은 의식을 성대하게 치르지 말자는 생각이었거든. 그러나 여러 동지들의 생각은 달랐어. 내 아내가 그동안 독립운동을 하는 나 때문에 고생한 것은 곧 나라를 위해 일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각자 돈을 거두어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고 묘비까지 세워 줬지. 임시 정부 8년에 어머니는 둘째 아들 신을 데리고 고국으로 돌아가셨어. 이듬해에는 맏아들 인까지 보내라고 하셔서 상해에는 나 혼자 외롭게 남았지. 그해 11월 나는 국무령에 선출됐어. 국무령은 임시 정부에서 최고의 우두머리 자리였기 때문에 처음엔 강력하게 사양했지. “저는 해주 촌구석에서 태어난 상놈의 자식이오. 아무리 임시 정부가 어려움에 처했다 해도 내가 한 나라의 원수가 되는 것은 국가와 민족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일 아니겠소?” “그런 말 마시오. 백범이 나서면 여러 사람이 도와줄 것이니 나라의 앞날을 위해 힘써 주길 바라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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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곧 대한민국의 역사가 된 백범 김구 선생님을 만나다!
김구 선생님이 살던 시대는 외세의 침입과 내부의 갈등까지 겪은 우리나라가 가장 어려웠던 시기라 할 수 있어요. 이런 어려운 시기임에도 선생님은 어릴 적부터 가졌던 신념대로 행동했어요. 명성황후 시해범이라 생각한 일본인을 죽여 사형을 당할 뻔하기도 했고, 계몽 운동을 벌이다 일본인들에게 잡혀 감옥에 가기도 했어요. 그리고 3·1 운동 이후에는 상해로 망명해 임시 정부에서 일하기 시작했지요. 이 모든 것이 역사가 되어 오늘날의 우리나라가 있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백범 김구 선생님을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라 부른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