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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본』이 ‘상품’에서 시작하는 이유
· 『자본』은 어디서 시작하는가 · 영웅 아가멤논은 ‘부자’였을까? · 자본주의사회의 ‘부’와 부의 ‘척도’ · 부의 기본형태로서 ‘상품’ · ‘상품’에는 무언가가 있다 2 상품에 깃든 유령 · 상품이라는 것 · ‘사용가치’는 무엇이고 ‘교환가치’는 무엇인가 · 탁월한 눈과 조잡한 눈 · 거기 있는 것은 유령이다! · 마르크스와 유령 3 추상노동의 인간학 · 노동가치설-상품가치의 척도는 ‘노동’이다 · 노동의 이중성-상품에 체현된 노동은 이중적이다 · 추상노동의 공통성-모두 인간의 노동력을 사용한 것 · 추상노동이 전제하는 ‘인간학’-‘동등한 인간’의 노동 · 근대사회와 평균적 인간-온갖 차이에도 불구하고 같다 · 추상노동의 역사성-태초에는 추상노동이 없었다 · 상품에는 ‘사회적인 것’이 들어 있다 4 상품교환 안에 화폐가 있다-화폐형태의 발생 기원 · 휘황찬란한 화폐에 현혹된 사람들에게 ·만지지 마라, 거기 어디에 내가 있느냐 · ‘가치형태’의 제1형태-단순한, 개별적, 우연적 가치형태 · ‘가치형태’의 제2형태-총체적 또는 전개된 가치형태 · ‘가치형태’의 제3형태-일반적 가치형태 · ‘가치형태’의 제4형태-화폐형태 · 화폐의 논리적 발생-상품교환에 이미 화폐가 있었다 5 물신주의-춤추는 책상 · 춤추는 책상 · 상품의 신비는 ‘형태’에서 생겨나는 것 · 물신주의 · 판타스마고리아-그것은 가상이고, 사라지지 않는다 ·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생산양식일 뿐 ·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기분전환을 위해” · 두 가지 의문 · 자기 시대를 비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역사가 보인다 부록노트 · I-마르크스와 외투 · II-마르크스의 물신주의와 프로이트의 물신주의 · III-상품이라는 상형문자 · IV-엥겔스와 가치법칙 |
고병권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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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나타나는 것, 우리 눈에 보이는 ‘부’는 넓은 집, 멋진 자동차, 커다란 금덩어리입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부’와 ‘부자’를 봅니다. 하지만 집, 자동차, 금덩어리는 모두 사물들이지 그 자체로 ‘부’는 아닙니다. 그런데 ‘부’ 즉 ‘가치’는 그런 것들로 표현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치’는 사물이 아닌데 사물을 통해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마치 그 사물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빛나는 금덩어리를 보면서 그 안에 가치의 원자라도 있는 듯 착각합니다. ― 30쪽
‘가치’란 제 스스로는 나타나지 못하지만 이처럼 어떤 사물에 깃들어 나타납니다. 가치가 깃든 사물을 우리는 상품이라고 부릅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부’는 이런 독특한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 『자본』의 첫 문장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누군가의 몸을 빌려 존재하는 것, 직접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어째 유령 같은 이야기 아닙니까. ― 31쪽 햇볕은 우리에게 소중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햇볕을 쐬고서는 가치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 해도 경제학적으로 가치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화낼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햇볕은 ‘무가치’합니다. 신이 모든 인간에게 내린 축복일지라도, 아니 모든 인간에게 내린 축복이기에, 그것은 무가치합니다. 마르크스는 공기, 미개간지, 자연의 초원, 야생의 수목 같은 것이 그렇다고 했는데요.[김, 50] 글쎄요, 지금은 이것들도 거저 얻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게 되었으니 다른 예를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상품이 갖는 ‘가치’란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소중한 물건’과 ‘상품’은 다른 것입니다. ― 40~41쪽 이 ‘교환가치’라는 것은 따져볼수록 신기합니다. 외투 한 벌의 교환가치로 제시한 “x량의 구두약, y량의 명주, z량의 금”을 볼까요. 외투, 구두약, 명주, 금 등은 서로 다른 사물입니다. 그런데도 〈외투 1벌=구두약 x량=명주 y량=금 z량〉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는 것은 개별 사물로서는 완전히 다르지만 ‘동일한 무언가’(ein Gleiches)가 있다는 뜻입니다. 마르크스는 이 대목에서 놀랍니다. 상이한 물건들이 일정 비율로 교환될 수 있다는 것. 우리가 보기에는 별일도 아닌데, 마르크스는 이것을 너무도 신기해합니다. 인류가 물건을 교환한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뭐가 그리 신기하다는 걸까요? 탁월한 눈과 그렇지 않은 눈의 차이는 휘둥그레지는 곳이 다르다는 점일 겁니다. 한쪽이 놀라는 곳에서 다른 쪽은 놀라지 않습니다. ― 48쪽 그런데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관계’가 아니라 ‘사물’을 봅니다. 시리즈 1권에서 인용한 마르크스의 말을 상기해보죠. “흑인은 흑인이다. 그런데 어떤 조건에서 흑인은 노예가 된다.” 비유컨대 인종주의자들은 노예성이라는 것이 관계의 문제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흑인을 그냥 노예로 봅니다. 자기 사회에서 흑인이 노예로 현상(現像)하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노예성을 흑인의 본성에서 찾으려 했지요. 흑인의 본성에는 노예적 근성이 있다고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가치’의 문제를 사물의 본래적 속성으로 봅니다. 마치 체온을 지켜주는 외투의 속성처럼 외투의 가치도 외투에 내재하는 것처럼 보았습니다. ― 49쪽 지금 하는 이 말들이 아주 이상하게 들릴 거라는 걸 압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우리는 마르크스의 ‘표현’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는 노동생산물이 상품이 되는 것은 “초자연적 속성”(ubernaturliche Eigenschaft)을 갖는 것이고,[김, 73] “감각적이면서 초감각적인(sinnlich ubersinnlich) 사물”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김, 93] 어떤 감각적인 몸에, ‘가치’라는 초감각적인 것이 들어 있는 것, 이것이 상품입니다. ― 52쪽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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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자본』〉이란?
천년의상상 출판사는 철학자 고병권이 ‘독자들과 함께’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어나가는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그간 ‘난공불락의 텍스트’로 여겨지며 수많은 독자들을 중도 포기하게 만든, 그래서 늘 미련이 남는 책 마르크스의 『자본』(제1권)을 철학자 고병권의 오프라인 강의와 더불어 제대로 읽어나가려는 기획입니다. 2018년 8월부터 2년간 격월간으로 『자본』을 더 깊이 해석한 단행본이 먼저 출간되고, 책 출간 다음 달에는 오프라인 강의가 진행됩니다(이 강의는 온라인으로도 제공됩니다). 자세한 출간 일정은 책 속의 ‘일러두기’에 있습니다. 1. 〈북클럽 『자본』〉 시리즈의 두 번째 책,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 ―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은 ‘눈’에 대한 비판이다 『다시 자본을 읽자』로 첫선을 보인 〈북클럽 『자본』〉 시리즈가 그 두 번째 책,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을 내놓았다. 시리즈의 1권 『다시 자본을 읽자』가 『자본』의 제목과 부제, 서문 등을 살피며 『자본』이라는 저작 전반을 아울렀다면, 시리즈의 2권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에서 저자는 독자들을 데리고 『자본』의 본문 속으로 발걸음을 내디딘다. 『자본』 제1장 본문에 대한 충실한 설명과 함께 풍부한 예증을 통한 명철한 해석과 통찰을 담은 이 책은 마르크스가 지녔던 ‘특별한 눈’을 드러내는 동시에, 기존 정치경제학자들의 엉뚱한 곳을 보는 눈, 눈앞에 있는 것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맹목적인 눈에 대한 마르크스의 냉혹한 비판을 담고 있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은 한마디로 ‘눈’에 대한 비판입니다. 엉뚱한 곳을 보는 눈, 눈앞에 있는 것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눈에 대한 비판입니다. 사물의 빛깔이 그 사물에 반사된 빛과 우리 시신경이 맺는 ‘관계’임을 모르는 눈, ‘인간들의 관계’를 ‘사물들의 관계’로 착각하는 눈, 한마디로 ‘춤추는 책상’에 넋을 잃은 눈에 대한 비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시대가 투명해 보이는 눈에 대한 비판입니다. 자기 시대를 통해서 볼 뿐 자기 시대를 보지는 못하는 눈 말입니다.” ― 〈저자의 말〉에서 마르크스는 기존의 정치경제학자들이 휘황찬란한 것, 특별한 것에 눈길이 빼앗겨 정작 자기 시대는 제대로 볼 줄 모른다고 비판했다. 고병권에 따르면, 그들 정치경제학자들이 그렇게 엉뚱한 곳을 볼 때 마르크스는 오히려 평범한 것에 눈길을 주었으며, 오히려 그 평범한 것을 신기해했다. 고병권이 말하는 그 평범한 것이란 바로 ‘상품’이다. 자본주의의 기초를 이루는 ‘상품’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다루면서도 정치경제학자들은 그것이 얼마나 신기한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이상하게 보여야 자본주의가 제대로 보이는 것이라고, 자본주의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독특한 사회형태인지 이해해야 비로소 역사도 보인다고 역설하면서, 마르크스가 『자본』 제1장을 왜 ‘상품’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한다. 2. 마르크스의 『자본』은 왜 ‘상품’에서 시작하는가? ― 『자본』 전체를 통틀어 가장 어렵다는 제1장, 마르크스는 왜 하필 ‘상품’을 이야기하나? 『자본』 제1권은 모두 일곱 편으로 이루어지는데 그중 제1편은 제목이 ‘상품과 화폐’이고, 제1장은 제목이 ‘상품’이다. 즉 마르크스는 『자본』이라는 방대한 저서를 상품에 관해 서술하면서 시작한다는 뜻이다. 왜 그는 ‘상품’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걸까? 왜 하필 거기가 출발점일까? 고병권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은 현실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현상이란 그 자체로는 모호하고 혼돈스러운 표상일 뿐이기에, 과학이 현상에서 시작하는 것은 옳지만 그렇다고 현상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게 곧 과학인 것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그 현상이 어째서 그렇게 나타났는가에 주목했으며, 눈에 보이는 현상의 이면, 즉 물에 넣은 젓가락이 구부러져 보이는 이유를 밝히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작업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상품’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현상을 통해 ‘자본주의’를 깊이 분석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가장 단순한 형태, 즉 경제적 세포로서 ‘상품’을 지목했다. 말하자면 상품은 ‘부르주아사회’와 ‘자본주의’라는 성채를 구축할 때 출발점이 되는 가장 작은 블록이다. 실제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는 ‘방대한 상품더미’로 나타나는데, 개개의 상품은 부의 기본형태”라고 제1장의 첫 단락에서 밝히고 있다. 요컨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부의 기본형태가 ‘상품’이기에 그 ‘상품’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저 ‘상품’이 아니다. 마르크스가 결국 ‘상품’을 이야기하면서 겨냥하는 바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와 ‘가치’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다. ‘자본’을 이해하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자본주의체제 아래서 사람들이 생산하는 ‘부’, 그들이 늘려가고자 하는 그 ‘부’가 대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부’라는 것은, ‘부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마르크스가 보기에 ‘정치경제학’은 ‘부’에 관한 학문이며, 그래서 그는 무엇보다 먼저 ‘부’가 무엇인지 밝히고자 한다. 3. ‘노동가치설’은 마르크스의 발명품이 아니다 ― 마르크스의 천재성은 ‘당대의 노동가치설을 변형시킨 것’ 저자 고병권에 따르면, ‘노동가치설’은 마르크스의 발명품이 아니다. ‘노동가치설’, 곧 서로 다른 두 상품의 교환이 가능한 것은 상품들 사이에 동일한 무언가가 들어 있다는 뜻이며, 그것이 바로 ‘노동생산물이라는 공통 속성’이라는 견해는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 등 19세기 정치경제학자들이 이미 공유하던 바다. 다시 말해 마르크스는 가치의 실체가 ‘노동’이라는 말을 ‘처음’ 한 사람이 아니며, 마르크스의 업적은 노동의 양을 가치의 척도로 삼아야 한다거나 노동이 모든 가치의 원천이라고 말한 데 있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다. 고병권이 보기에, 마르크스의 천재성은 노동가치설을 ‘주장’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노동가치설을 ‘변형’한 것, 즉 새롭게 해석한 데 있다. 마르크스의 새로운 해석에 따르면, 상품에 체현된 노동은 이중적이며(유용노동/추상노동), 추상노동은 ‘동등한 인간’의 노동이라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동등한 인간’이라는 개념은 근대사회라는 구조에서 비롯한다. 결국 마르크스가 말하는 ‘추상노동’은 역사성을 띠는 것으로, 이 노동은 태초부터 존재하던 그런 본래적인 구체적 유용노동으로서의 인간 노동이 아닌, 역사적으로 출현한 특수한 형태의 사회, 즉 자본주의에서 이뤄지는 노동만이 지닌 독특한 성격이다. 요컨대 이 노동은 역사 속에서 생겨났고 또 역사 속에서 사라질 그런 것이다. 이렇게 마르크스는 추상노동이 존재하기 위한 역사적 조건들을 고찰한다. 그리고 ‘상품’에 체현된 사회적 성격을 파고들면서, 상품교환에 전제된 ‘화폐형태’의 발생 기원을 추적한다. 저자 고병권은 마르크스의 그 추적기를 따라 밟는다. 4. ‘화폐’는 그 자체로 소중한 것도, 놀라운 것도 아니다! ― 마르크스, 화폐형태의 발생 기원을 밝히다 ‘상품’을 시작으로 ‘부’와 ‘가치’의 실체를 해명한 마르크스는 ‘가치형태’ 논의를 기반으로 ‘화폐’가 무엇인지, 왜 상품교환에 이미 ‘화폐’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설명한다. 고병권이 보기에 네 가지 가치형태를 설명하는 『자본』 제1장 제3절은 매우 특별한데, 그것이 “휘황찬란한 화폐형태”에 눈을 빼앗긴 사람들을 위해 쓰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즉 마르크스는 특정한 사물이 ‘상품들’ 일반의 가치를 표현하는 것에 깜짝 놀라는 “부르주아적 조잡한 눈”을 겨냥해 이 절을 집필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왜 ‘화폐’의 휘황찬란함에 눈길을 빼앗기는가. 고병권의 분석에 따르면, 마르크스가 보기에 진짜 놀라운 것은 화폐가 아니라 두 상품의 교환, 즉 상품들의 가치관계다. 화폐 그 자체는 전혀 놀라울 게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적 분석의 차원에서 보자면, 상품교환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해명해낼 수만 있다면 화폐의 존재 자체는 해명할 것도 없는 문제라는 의미다. 그래서 제3절에서 마르크스는 ‘화폐’ 문제를 통해 가치에 대해, 특히 가치가 우리에게 나타나는 형태를 다루고 있으며, 화폐란 그저 가치형태의 한 형태에 불과함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고전경제학자들이 ‘형태’ 문제를 너무 소홀히 다루었다고 비판합니다. “정치경제학은 어째서 이 내용이 저런 형태를 취하는가라는 물음을…… 한 번도 제기한 적이 없”습니다. 마르크스는 이 문제의 중요성을 환기하고자 긴 주석을 달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고전적 정치경제학의 ‘근본결함’(Grundmangel) 중 하나는 상품 분석, 특히 상품가치 분석에서 ‘가치형태’ 문제를 끄집어내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스미스나 리카도 같은 최고 대표자들도 가치형태를 ‘아무래도 좋은 것’으로 생각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거죠. 이들은 오직 가치량 분석에만 신경 씁니다. 왜 정치경제학자들이 ‘형태’ 문제를 소홀히 했을까요? 역사적으로 얼마나 특이한 것인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현재의 ‘형태’가 아주 자연스러웠던 것이지요. 자본주의적 가치형태를 역사적 형태가 아니라 ‘영원한 자연형태’(ewige Naturform)로 본 겁니다. ― 본문 14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