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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제1편 총론 제1장 역사의 정의와 조선사의 범위 … 13 제2장 역사의 3대원소와 옛 조선사 결점 … 17 제3장 옛 조선의 종류와 그 득실 약평 … 21 제4장 사료 수집과 선택 … 30 제5장 역사 개조에 대한 우견(愚見) … 43 제2편 ‘수두〔단군신앙〕’ 시대 제1장 고대 총론 … 63 제2장 단군왕검의 건국 … 66 제3장 수두 홍포(弘布)와 문화 발달 … 71 제3편 삼조선(三朝鮮) 분립시대 제1장 삼조선 총론 … 83 제2장 삼조선 분립 그 뒤 신조선 … 89 제3장 삼조선 분립 그 뒤 불조선 … 93 제4장 삼조선 분립 그 뒤 말조선 … 96 제5장 삼조선 붕괴 원인과 결과 … 102 제4편 열국쟁웅시대 제1장 열국 총론 … 107 제2장 열국 분립 … 111 제3장 한무제 침략 … 126 제4장 계립령 이남 두 새 나라 … 137 제5편 고구려 전성시대 제1장 기원 1세기 초 고구려의 국력 발전과 그 원인 … 147 제2장 태조·차대 두 대왕 문치 … 155 제3장 태조·차대 두 대왕의 한족 축출과 옛 땅 회복 … 162 제4장 차대왕의 왕위 빼앗음 … 165 제5장 차대왕의 피살과 명림답부의 전권 … 169 제6장 을파소(乙巴素)의 업적 … 174 제6편 고구려의 쇠퇴 징조와 북부여의 멸망 제1장 고구려와 중국의 싸움, 고구려의 패전 … 179 제2장 고구려와 선비의 싸움 … 187 제7편 고구려·백제 두 나라의 충돌 제1장 고구려·백제 두 나라 관계의 유래 … 201 제2장 근구수왕(近仇首王)의 영무(英武)와 고구려의 쭈그러짐(附: 백제의 해외 정벌) … 203 제3장 광개토대왕의 북진정책과 선비 정복 … 208 제4장 장수태왕의 남진정책과 백제 천도 … 214 제8편 남방 여러 나라의 대고구려 공수동맹 제1장 네 나라 연합군과의 싸움과 고구려의 퇴각 … 221 제2장 백제의 위(魏) 침입 격퇴와 해외 식민지 획득 … 225 제9편 삼국 혈전의 시작 제1장 신라의 발흥 … 231 제2장 조령·죽령 이북 10고을 쟁탈 … 240 제3장 동서전쟁(同?戰爭) … 255 제10편 고구려와 수의 전쟁 제1장 임유관(臨?關) 싸움 … 267 제2장 살수 싸움 … 272 제3장 오열홀·회원진 두 싸움과 수 멸망 … 281 제11편 고구려와 당의 전쟁 제1장 연개소문의 서유(西遊)와 그 혁명 … 287 제2장 요수 싸움 … 302 제3장 안시성 싸움 … 303 제12편 백제의 강성(强盛)과 신라의 음모 제1장 부여성충의 위대한 계략과 백제의 영토 개척 … 329 제2장 김춘추의 외교와 김유신의 음모 … 337 제3장 부여성충의 자살 … 344 제4장 나·당 연합군 침입과 백제 의자왕 사로잡힘 … 347 제5장 백제 의병 봉기 … 354 제6장 고구려의 당군 격퇴와 백제 의병의 전성 … 358 제7장 부여복신의 죽음과 고구려 내란 … 363 한국통사 서언(緖言) … 371 제1편… 375 1. 지리의 대강/2. 역사의 대개(大槪) 제2편… 379 1. 대원군(大院君) 섭정(攝政)/2. 경복궁 중건(重建)/3. 서원 철폐/4. 조세 정책 개혁/5. 국방에 대한 관심과 풍속 교정/6. 천주교 금지 및 신도 학살/7. 프랑스군 대파/8. 미국 군함 격퇴/9. 일본과의 교섭/10. 대원군의 환정(還政)/11. 일본과의 첫 번째 조약/12. 청국의 우리나라 자주외교 인정/13. 일본인과의 통상 및 토지 조차(租借)/14. 임오년 군졸의 난/15. 청국병 도래와 일본병 퇴각/16. 일본인의 요구 해결/17. 중국과 일본의 군대 주둔/18. 유럽과 미국 등 열강과의 수호통상/19. 갑신년 개혁당(改革黨)의 난/20. 일본사신의 5개 조항 요구/21. 청국과 일본의 톈진조약/22. 러시아 세력의 확대/23. 대원군의 환국(還國)/24. 황두 배상사건/25. 극에 달한 내정 부패/26. 갑오년 동학란/27. 구원병 요청의 전말/28. 일본군 입성/29. 일본사신의 폐현(陛見)과 상주(上奏) 및 기타 상황/30. 원세개 귀국/31. 일본군의 궁궐 침범/32. 청일 교섭/33. 청일 개전(開戰)/34. 우리나라 개혁의 신정치/35. 잠정합동 및 공수동맹/36. 청국과 일본 평양대전(大戰)/37. 청국과 일본 황해격전(激戰)/38. 일본군 청국 내지(內地) 침입 전황/39. 청·일 시모노세키조약(下關條約)/40. 삼국 간섭과 요동 반환/41. 열강의 청국 군항 분할/42. 오토리 이임과 이노우에 공사 부임/43. 박영효의 재차 망명/44. 을미년의 차관조약/45. 일본인의 국모 시해/46. 왕후 폐위 및 복위/47. 지방 의병/48. 러시아 공사관으로의 이필과 김홍집 살해/49. 러시아 세력 확장과 열강 이권 침탈/50. 러시아와 일본의 협약/51. 외국인의 철도부설권 침탈 제3편… 470 1. 대한제국(大韓帝國) 성립/2. 재정 고문의 문제/3. 일본과 러시아의 3차 협약/4. 일본인의 광산 찬탈/5. 일본인의 어업 및 포경권 침탈/6. 일본인의 개성인삼 약탈/7. 울릉도·장고도·월미도·고하도·온양 온천 등의 각 사건/8. 제일은행권 강제 발행/9. 제2차 영·일동맹 및 러시아와 프랑스의 협약/10. 한국과 만주 문제에 대한 일본과 러시아 교섭/11. 일본의 러시아 함대 습격/12. 일본과 러시아의 선전포고/13. 일본군 한성 입성과 의정6조(한일의정서) 체결/14. 이토의 대사 부임/15. 일본의 한국 통신기관 강점/16. 일본 선박의 자유 항행/17. 일본인의 황무지 개간 요구/18. 삼림벌채 및 포대건축, 휼금(恤金), 포사(?肆)사건/19. 일본군·관리의 북한 지역에서의 횡포/20. 일본 헌병의 경찰 업무 대리/21. 일본 헌병의 한인 집회 금지/22. 일본인의 찬정(贊政) 최익현 구속/23. 각 부 일본인 고문/24. 일본인의 우리 군대 감축/25. 군용지 강점, 군수물자 강요, 군용 일꾼 강제 모집/26. 한국 땅에서의 일본과 러시아의 전투/27. 일본과 러시아의 뤼순전투/28. 일본과 러시아의 요동 각지에서의 전투/29. 일본과 러시아의 해전(海戰)/30. 제2차 영·일동맹의 개정/31. 일본과 러시아 강화조약/32. 주영 서리공사 이한응 자결/33. 한국 선비들이 일본 왕에게 소(疏)을 올림/34. 특파대사 이토 내한/35. 이토의 보호조약 강제 체결/36. [황성신문] 봉쇄와 사장 구속/37. 매국을 성토한 상소들/38. 시종무관장 민영환, 원임 의정대신 조병세, 참판 홍만식, 경영관 송병선, 학부주사 이상철, 평양징상병 김봉학 등의 자결 순국/39. 중국지사 반종례의 도해 자결/40. 반대 세력 투옥/41. 찬정 최익현의 전국 사민에 고하는 격문 발표/42. 일본인의 한국 황제 감제(監制)/43. 일본의 진해·영흥만 점령 및 북간도 문제와 일본 차관 등/44. 일본공사의 옥탑 도취(盜取)와 일본군의 석비 절취(竊取)/45. 동양척식회사/46.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 파견/47. 이토의 고종 양위 협박/48. 정미7조약 성립/49. 군대 해산과 참령 박승환(朴勝煥) 순국/50. 원주진위대 정교 민긍호의 거의(擧義)/51. 일본인의 학대 개황(槪況)/52. 한국인 교육 말살/53. 한국인 산업의 억압/54. 장인환, 전명운의 미국인 스티븐스 살해/55. 소네의 통감 취임과 이토의 육군, 사법 양부 폐지/56. 안중근 의사의 이토 저격/57. 이재명의 이완용 살해 미수/58. 일본의 한국 병합/59. 안명근의 데라우치 살해 미수/60. 일본인의 교회 속박/61. 120명 무더기 투옥 결론 … 559 한국통사 후서(後序) … 562 한국통사 발(跋) … 564 『조선상고사』와 『한국통사』에 대하여 신채호와 『조선상고사』 … 569 박은식과 『한국통사』 … 583 신채호 연보 … 595 박은식 연보 … 5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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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이라 역적이라 함은 성패의 별명일 뿐이요, 정론(正論)이라 사론(邪論)이라 함은 진실의 많고 적은 차이일 뿐인데, 게다가 보고 들은 데 잘못이 있고, 쓰는 사람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생각이 섞이지 않았는가?
--- p.54 멀면 1천 년 전후가 다르고, 가까우면 1백 년 전후가 다르니, 지금부터 문명은 더욱 빨리 진보하니 10년 이전이 홍황(鴻荒: 오랜 옛날)이 되고, 1년 이전이 먼 옛날이 될지 모르는 일이니, 이것이 이른바 시대를 따라 성립하는 사회성(社會性)이다. --- p.56-57 당시 영랑과 원효 두 파가 다 노후하여 사회 중심이 되는 힘을 잃고, 새 인물에 대한 기대가 마치 굶주린 사람이 밥을 구함과 같았으니, 그래서 대선생 칭호가 한낱 한문 졸업생에게로 돌아가고, 다음에는 천추(千秋) 혈식(血食)까지 그에게 바쳐, 고려에 들어와서는 영랑과 원효 두 파와 자리를 마주 대하게 되었다. ‘때를 만나면 더벅머리도 성공한다’ 함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니… --- p.58 이미 안정된 사회의 인물은 늘 이전 사람의 필법을 배워서 이것을 부연하고 확장할 뿐이니, 인물 되기는 쉬우나 그 공이나 죄는 크지 못하며, 혁명성을 가진 인물은 늘 실패로 마칠 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그를 원망하고 미워하여 한 말이나 한 일의 종적까지 없애 버리므로, 후세에 끼치는 영향이 거의 없으며, 오직 3백 년이나 5백 년 뒤에 한두 사람 마음이 서로 통하는 이가 있어 그가 남긴 말을 감상할 뿐이요, 안정되지 않은 사회의 인물은 반드시 창조적 혁명적 남아라야 할 듯하나, 어떤 때에는 꼭 그렇지도 않아, 작은 칼로 잔재주를 부리는 형편없는 재주꾼으로서 외국인 입을 흉내 내서 말하고 웃고 노래함이 그럴듯하여 사람들을 움직일 만하면 거연히 인물 지위를 얻기도 한다. --- p.59 그러나 ‘제석(帝釋)’이니 ‘웅(雄)’이니 ‘천부(天符)’니 하는 따위가 거의 불전(佛典)에서 나온 명사이고, 삼국 시대 초기 사회에도 여성을 매우 존중하였다고 했는데, 이제 남자는 신의 화신(化身)이고 여자는 짐승의 화신이라 하여 여성을 너무 낮게 보았으니 나는 이것이 순수한 조선 고유 신화가 아니요, 불교가 수입된 뒤에 불교도의 점철(點綴)이 적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p.67 봉상왕은 그만 교만하고 방자해져서, 여러 해 흉년으로 백성들은 굶주리고 지쳐 있음에도 나라 안에서 일꾼을 징발하여 대궐을 지으니, 백성들이 달아나서 인구가 자꾸 줄어들었다. 기원 300년에 이르러서는 왕이 여러 신하들의 간하는 말을 모두 물리치고, 나라 안 15살 이상 남녀를 모조리 징발하여 건축공사에 부리자 ‘신가’ 창조리가 간했다. “천재(天災)가 잦아 농사가 되지 않아서 나라 안 인민이 장정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노약자는 구렁에 빠져 죽습니다. 그런데도 대왕께서는 이를 돌아보지 아니하시고 굶주린 백성을 몰아 토목의 역사를 시키십니다. 이는 임금이 할 일이 아닐뿐더러, 하물며 북쪽에는 강적 모용씨가 있어 날마다 우리 틈을 엿보고 있으니, 대왕께서는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후략)” 그러나 왕은 “임금은 백성이 우러러보는 것이니, 임금이 사는 대궐이 웅장하고 화려하지 않으면 백성이 무엇을 우러러보겠소? ‘신가’는 백성을 위해 명예를 구하지 마오.” 했다. --- p.190-191 가난하고 천한 자를 업신여기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이라, 바보도 아닌 온달을 모두 ‘바보 온달’이라 불렀다. --- p.250 동학은 그 발단은 매우 미미했으나 그 결과는 매우 컸다. 희미한 불덩어리가 넓은 평야를 불태우는 데까지 번지고, 방울방울 떨어진 물이 흘러서 강물을 이루는 것처럼 나라 안에 대란(大亂)과 중일(中日) 사이 대전(大戰)도 이로 말미암아 시작되었다. --- p.424 관리의 탐욕과 포학함이 수십 년 동안 계속되고, 잘못된 정치가 날로 심해져서, 권세 있고 지위 높은 신하들은 관직을 돈 나오는 구멍으로 여겼다. 지방 서리들도 백성의 살림을 재화의 샘물로 여기고, 상부에 예물 바치는 일을 가장 중요한 일로 삼았으며, 백성을 후려쳐서 재물을 박탈하는 것을 직무로 하였다.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회벽지죄(懷壁之罪)가 씌워졌고, 소 한 마리가 경작할 만한 땅을 가지고 있어도 위첩지매(僞帖之媒)를 초래하였다. --- p.427 지방관들은 모두 가렴주구를 장기로 하였다. --- p.427 다만 내가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은, 우리나라 당쟁의 역사이다. 우리나라는 이른바 동인, 서인, 남인, 북인이라는 사색당파가 있어 정권을 쟁탈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었고, 이를 불세(不世)의 공으로 생각하였다. 폭탄이 터지듯이 뜨겁고 맹렬한 불꽃같이 치열하여 진신(搢紳)이 어육(魚肉)이 되고 국가의 기틀이 흔들린 지 지금까지 3백 년에 이르렀으나 그칠 줄을 몰랐다. 이런 까닭으로 사대부가 능히 나라를 위해 죽음으로 피를 흘린다든지, 세상에 빛을 발휘한다든지, 혹은 생민에게 복리를 주려는 것은 거의 없고, 한갓 당을 위해 피를 흘리고, 집안 가보(家譜)에나 이름을 올리며, 자손들에게 보복이나 끼치는 것이 매우 많았다. 당을 위해 죽는 혈성(血誠)을 나라를 위해 죽는 것으로 옮긴다면, 우리나라도 천하에 웅비할 수 있으련만 어찌해서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많은 피를 사사로운 권력이나 사사로운 이익의 싸움에 던지고 국가와 민족에게 큰 관계가 되는 대사업에는 던지지 않았던가. --- p.453-454 당쟁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갑(甲)이 제안한 것은 을(乙)이 저지하고, 병(丙)이 심어놓은 것은 정(丁)이 뽑아버리니, 한 가지 계책도 실행되지 못하고, 하나의 일도 세워지지 않으니 정강(政綱)은 퇴락하고 말았다. 동인이 끌면 서인이 막고, 남인이 칭찬하면 북인이 헐뜯어서, 입으로 말하는 데에 좋은 사람도 없고, 몸에도 완전한 모습이 없었다. 인재가 고갈되고, 옳고 그른 것이 전도되었으며, 충성과 역적이 변환하여 아침에 악수하고는 저녁에 창을 잡고 싸우니, 변괴가 망측하였다. 형제 사이도 천륜이 없어지고, 사제(師弟) 사이에도 의리가 끊어지고, 친척 사이에도 문호가 나뉘어져 집안이 부서지고, 친족이 멸하는 것도 드물지 않았다. 심지어 조정에 화가 미치고 왕실에도 해가 이르게 되었다. --- p.4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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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정신독립과 민족주의 사학 부르짖다!
민족사를 새롭게 인식시켜 구국정신을 이끌어내다! 독립운동의 정신적 원동력을 불어넣다! 보라! 신채호·박은식 두 선각자 피눈물의 기록! “역사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를 만드는 것이지, 역사 이외에 무슨 다른 목적을 위하여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역사는 사회 유동 상태와 거기서 발생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 적은 것이지, 지은이의 목적에 따라 그 사실을 좌우하거나 덧붙이거나 달리 고칠 것이 아니다.” -신채호 『조선상고사』에서 “옛사람이 이르기를 나라는 멸할 수 있으나 역사는 멸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나라는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다. 이제 한국의 형체는 허물어졌으나 정신만을 홀로 보존하는 것이 어찌 불가능하겠는가. 정신이 보존되어 멸하지 아니하면 형체는 반드시 부활할 때가 있을 것이다.” -박은식『한국통사』에서 『조선상고사』! 날조된 한국고대사혁파하다!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는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申采浩)가 한민족 역사를 새롭게 인식함으로써 정신 독립과 그 정신 기틀을 찾고자 했던 기록이다. 종래 유교주의 사관과 식민주의 사관의 한국사 왜곡을 바로잡고 이들의 역사인식과 연구방법을 극복하고자 한국 고대사를 민족주의 사관에 바탕하여 쓴 저작이다.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사대주의 노예근성에서 한민족 역사를 무시하고, 성패와 흥망으로 낫고 못함을 가리며 유교적 윤리관에 근거하여 남의 잘잘못을 평가하는 과거 관점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또한 이 책에서 유교주의 역사관에서 명분을 앞세워, 자랑할 만한 우리 역사 사실을 말살했던 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새 왕조가 등장할 때마다 자신들의 혁명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이전 왕조의 사료들을 없애버리고, 왜곡·날조하여 사실을 사실대로 알지 못하게 뒤죽박죽을 만들어 놓았음을 통탄하고 있다. 이는 고려시대『삼국사기』와 조선시대『조선왕조실록』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망국의 한을 안고 민족중흥을 부르짖다! 신채호는 이 책에서 단군→기자→위만→삼국으로 계승된다는 기존 인식체계를 거부하고 대단군조선과 3조선, 부여와 고구려 중심 인식체계를 내세웠다. 『조선상고사』는 단군시대로부터 백제 멸망과 그 부흥운동까지 다루고 있다. 제1편 총론, 제2편 단군신앙 시대, 제3편 삼조선(三朝鮮)분립 시대, 제4편 열국쟁웅 시대, 제5편 고구려 전성시대, 제6편 고구려 쇠퇴 징조와 북부여 멸망, 제7편 고구려·백제 충돌, 제8편 남방 국가의 대고구려 공수동맹, 제9편 삼국혈전 시작, 제10편 고구려와 수의 전쟁, 제11편 고구려와 당의 전쟁, 제12편 백제의 강성(强盛)과 신라의 음모 등 모두 12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상고사』는 한민족과 고대국가의 독특한 기원과 변천과정을 체계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아울러 민족내부 계급관계를 주목하고 변증법적 역사발전단계설 등 근대적인 역사연구 방법론을 제시함으로써 한국 역사학 수준을 끌어올린 역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통사』! 피눈물로 얼룩진 통한 한국근대사! 한민족에게 가장 통한(痛恨)의 시대인 근대사! 『한국통사(韓國痛史)』는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지낸 백암 박은식(朴殷植)이 근대 역사학적 방법론에 따라 민족주체적 관점에서 한국 근대사를 정리한 근대 민족사학의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파란과 역경으로 얼룩진 시대의 변천상을 뚜렷한 민족의식에 따라 쓴 성찰과 반성의 글로서 1863년 고종 즉위와 흥선대원군 집권기부터 1911년 105인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의 역사를 시대별로 정리하여 중요한 사건에는 지은이 의견을 덧붙이고 있다. 박은식은 『한국통사』머리말에서 한국의 정신을 보존하기 위해서 이 책을 짓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일제 침략과정을 온 세상에 폭로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한국 근세사를 서술하면서도 역사 사실을 중심으로 장(章)을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또한 지은이 논평을 덧붙일 뿐만 아니라 하나의 사실(史實)이 일어나게 된 앞선 사실들을 말하면서 그 결과로 일어난 사실을 함께 서술하는 등 역사를 분석하고 비판하며 종합하는 근대 역사학의 방법론을 적용한 한국 최초의 저작이다. 또한 독립운동에 직접 참여한 박은식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기에 그의 역사관이 잘 반영되어 있다.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된다! 결코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근대사를 돌아볼 때 ‘저 때 우리가 좀 더 일찍 깨치고 나라 힘을 키웠더라면?’하는 물음은 우리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 뿐이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일본보다 앞서거나 적어도 앞설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기득권 집권층의 무지와 무식으로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했고, 그것이 그대로 통한의 한국근대사로 이어졌다. 박은식은 『한국통사』에서 러시아와 중국, 일본 등 강대국들이 세력균형을 통해서 서로 견제하면 한국도 유럽 약소국들처럼 독립할 수 있을 것이나, 어느 한 나라가 독점하고 잠식하게 되면 위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이 처한 상황은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으므로 ‘강대국간 상호 견제를 통해 한국 독립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박은식의 주장은 오늘날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두 나라로 나뉘어 끝없는 이념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