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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프롤로그 1. 경북야구의 아버지 서영무 2. 삼성 라이온즈의 탄생 3. 70년대 한국야구의 드림팀, 삼성 라이온즈 4. 출발선에 서다 5. 잘못 끼워진 단추 6. 악전고투 7. 첫 번째 승리 8. 강자에서 도전자로 9. 첫 번째 준우승 *라이온즈 그때 그 순간! - 만루홈런으로 막을 올리고, 또 막을 내리다 10. 1983년 11. 상처 *라이온즈 MVP1 - 이만수 (1983년 정규리그 MVP) 12. 통합우승 *라이온즈 그때 그 순간! - ‘한국시리즈 4승 투수’의 환호에 가려진 ‘3승 투수’의 눈물 *라이온즈 MVP2 - 김시진 (1985년 올스타전 MVP) 13. 해태 타이거즈와의 악연이 시작되다 *라이온즈 MVP3 - 장효조 (1987년 정규리그 MVP) 14. 한계에 도달하다 15. 준우승 전문 구단 16. 시행착오들 17. 키스톤 콤비, 라이온즈의 최후 저지선을 지켜내다 18. 세대교체 19. 성공, 실패의 어머니가 되다 20. 20-20급 야수들의 시대 21. 이승엽 *라이온즈 MVP4 - 이승엽 (1997, 1999, 2002, 2003년 정규리그 MVP) 22. IMF 시대의 공룡 23. 김응용 감독 시대 24. 두 번째 우승, 그리고 첫 번째 한국시리즈 제패 *라이온즈 MVP5 - 마해영 (2002년 한국시리즈 MVP) 25. 끝내기 홈런 *라이온즈 MVP6 - 배영수 (2004년 정규리그 MVP) 26. 선동열 시대 *라이온즈 그때 그 순간! - ‘멘도사 라인’의 사나이, 작지만 여러 곳에 생긴 빈틈을 메우다 *라이온즈 MVP7 - 오승환 (2005년, 2011년 한국시리즈 MVP) *라이온즈 MVP8 - 박진만 (2006년 한국시리즈 MVP) 27. 오늘, 그리고 내일 에필로그 * 라이온즈 히스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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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감독 자리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서영무 감독의 몫이었다. 그는 경북고를 이끌고 1967년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1974년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고교야구 주요 4개 대회(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기) 우승만 13번이나 차지한 것을 포함해 서울고와 한양대, 중앙대 감독을 거치며 전국규모의 대회에서만 모두 22번의 우승을 기록하고 있었다. 물론 그 화려한 기록과 이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구상고 출신으로서 경북야구의 양대 산맥인 대구상고와 경북고에서 명문팀의 기틀을 다지며 두 학교 출신 선수들과 맺고 있던 끈끈한 선후배와 사제의 인연이었다.---p.37
그 날 삼성은 황규봉을 선발투수로 내세웠고 이만수가 포수 마스크를 쓴 채 4번 타자로 배치됐다. 내야는 함학수, 배대웅, 천보성이 각각 1,2,3루를 맡고 서정환이 유격수로 기용됐으며, 외야에는 실업시절까지 투타 양면에서 재능을 보였던 투수 송진호가 좌익수로 출전해 5번 타자의 중책까지 맡는 진풍경 속에 허규옥과 정구왕이 각각 우익수와 중견수로 출장했다. 김한근은 지명타자로 나섰고, 장태수도 대타로 타석을 밟은 뒤 허규옥과 교체되어 우익수 수비에 투입됨으로써 개막전을 데뷔전으로 삼은 선수가 됐다.---p.58 1984년을 앞두고 삼성은 다시 한 번 대대적인 체제개편을 단행한다. 우선 1983년 10월 25일, 바로 얼마 전까지 경쟁팀의 감독이었으며 프로야구 원년 우승감독인 OB 베어스 김영덕 감독을 영입해 감독으로 선임했고, 김영덕 감독의 주도 하에 대구상고 감독을 지낸 정동진을 수석코치로, 롯데 자이언츠에서 창단감독을 지낸 박영길을 타격코치로 임명하는가 하면 MBC 청룡에서 감독대행을 지내기도 했던 유백만을 투수코치로 영입해 ‘감독급 코치진’이라는 화려한 진용을 꾸리게 된다. 거기에 경북고의 서영무 감독과 나란히 경북 야구를 이끌어온 원로인 대구상고의 박창용 감독을 영입해 2군 육성을 맡기기도 했고, 기존의 플레잉코치 우용득 역시 배터리코치로서 역할을 계속 하도록 했다. 6개 구단 중 가장 화려하고 전문적이며 풍성한 코칭스태프의 구성이었다. 반면 지휘봉을 빼앗긴 이충남 감독대행은 다시 조감독으로 강등되었지만, 얼마 후 스스로 물러나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관계가 정리되고 만다.---p.124 그 모든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봐온 야구인에게 그 중 ‘최고의 키스톤 콤비’를 꼽으라면 ‘강기웅-류중일’ 외의 조합에 쉽게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만큼 민첩성과 범위와 송구능력과 안정성, 그리고 임기응변의 지능적 플레이와 유기적 호흡을 통한 시너지까지 최상의 능력치를 보여준 키스톤 콤비의 완성형이었다. 게다가 타격 능력에서마저 빠지지 않았던 두 선수는 삼성 라이온즈가 선수난 속에서도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기도 했다.---p.203 이승엽으로부터 시작해서 정경배, 김태균을 거쳐 김한수까지 이어지는 내야진은 어느새 ‘역사상 최고’라 불리던 ‘강기웅-류중일-김용국’ 라인을 지우고도 공수 양면에서 리그 최강급의 위용을 세우고 있었고, 외야 역시 양준혁-최익성-신동주로 이어지는 ‘20-20’급 야수진으로 채워진 역동적인 공간으로 변모되었다(양준혁은 96년, 최익성은 97년에 20-20을 달성했고, 신동주 역시 97년에 21홈런 18도루에 더해 .326의 고타율을 기록했다). 1997년, 삼성 라이온즈는 무려 7명이 60타점 이상을 기록하고 6명이 두 자릿수 이상의 홈런을 때려내는 진정한 의미의 ‘지뢰밭 타선’을 구축하며 팀 홈런 1위(165개. 2위 해태 133개)와 팀타율 1위(.277 2위 쌍방울 .269), 팀타점 1위(669, 2위 해태 578)를 휩쓸게 된다.---p.235 이승엽은 어느 지도자에게나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라고 고개를 숙이는 겸손한 선수였고, 동시에 그 가르침을 맹신하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치열한 소화의 시간을 가지는 줏대 있는 선수였다. 그래서 그는 기자들이 어느 지도자에 대해 묻건 ‘제 평생의 은인’이라고 답하곤 했고, 그래서 ‘이승엽을 키워낸 장본인’으로 일컬어지는 이들의 이름만 십여 명에 이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p.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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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와 경북 연고팀, 5번의 우승 그러나 9번에 걸친 준우승,
‘명문구단’의 이면에 감춰진 좌절 그리고 성공, 그 감동의 다큐멘터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낡고 좁은, 그래서 2014년 새 전용구장이 문을 열 대구구장이 야구팬들의 열기로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작년 한국시리즈 우승, 아시아시리즈 우승, 그리고 여기에 더해 국민타자 이승엽의 합세로 올해 최강의 팀으로 예상되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 때문이다. 올 시즌 시작부터 모든 야구팬들의 기대와 질시를 받아온 삼성 라이온즈는 매 경기마다 이목의 중심이 되고 있다. 삼성의 성적에 따라 야구팬들의 희로애락이 결정된다. 특히 헐크 이만수, 양신 양준혁, 국민타자 이승엽 등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을 배출한 삼성 라이온즈는 ‘엘리트’ 선수들의 집합체인 동시에 영원한 우승후보이다. 하지만 올해 최강팀으로 예측되고, 우수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도 항상 최강자의 위치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5번 우승했지만 9번 준우승했으며, 2000년대의 많은 우승 이전에는 ‘준우승 전문구단’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숱한 좌절의 시간들을 보냈다. 삼성 라이온즈의 진정한 팬이라면 구단의 창단에서부터 선수들과 감독들의 활약, 아쉬웠던 준우승의 순간들, 빛나는 우승의 장면들 등 그 발자취를 따라가보는 것이 큰 의미가 된다. 삼성 라이온즈의 모든 내용을 정리한 김은식 저자는 팀이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거쳐 지금까지 팀을 이끌고 온 것은 바로 ‘투혼’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삼성 라이온즈가 지닌 저력의 바탕에 깔려있는 투혼을 이렇게 설명했다. “숱한 전설과 신화가 딛고 선 곳에 ‘최강자의 눈물’ 또한 배어있음을 이제는 기억하고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한국프로야구가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중심을 향한 주변의 도전’이 아닌 ‘여덟 개의 드라마’의 구도로 진행되어온 것은 결국 ‘중심이 되고 싶었던 삼성의 좌절, 그리고 결국 좌절에 머무는 우스운 악역에 그치지 않기 위해 분투했던 라이온즈의 투혼’ 때문이다.” 책에는 삼성 라이온즈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스토리가 사진과 함께 담겼다. 맨 앞의 화보페이지에서는 5번의 우승컷, 선수들 경기장면, 구장의 모습 등을 비롯 유니폼, 엠블럼과 로고 등의 변천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역대 감독들과 MVP선수들의 프로필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본문 속에 잊혀지지 않는 순간의 스토리를 담은 ‘라이온즈 그 때 그 순간’, 이만수, 김시진, 장효조, 이승엽, 마해영 등 ‘라이온즈 MVP'의 이야기들도 꼼꼼히 읽어보자.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애착은 배가 된다. 라이온즈의 팬이라면 한 번쯤은 되짚어보고 싶었던 라이온즈의 역사, 우승을 향한 집념의 스토리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것 △대구를 연고지로 받아들이다 1982년 삼성은 대구를 연고지로 받아들이게 되는데,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대구 지역이 삼성 그룹의 발상지라는 점이었다. 이병철 회장이 1938년 대구 인교동의 서문시장 근처에서 문을 열고 국수와 청과물, 건어물 따위를 팔았던 ‘삼성상회(인교동에 ‘삼성상회터’가 보존되어 있다)’가 삼성 그룹의 모태였을 뿐 아니라 1955년에는 침산동 일대에 광복 이후 최대인 7만 평 규모의 제일모직 공장을 지으면서 대구를 섬유산업의 본산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한 것 역시 삼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바로 당시를 기준으로 대구와 경북 지역을 연고지로 확보하는 구단이 가장 강한 전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 확실해 보였다는 점이다. 1970년대 내내 전국 고교야구무대의 정점을 지켜온 경북고와 대구상고 출신의 전설적인 선수들을 고스란히 독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최고의 삼성 라이온즈 창단 삼성 라이온즈는 초대 감독으로 서영무 감독, 투수코치와 타격코치로 임신근과 우용득, 그리고 다른 팀 창단멤버들과는 달리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됐다. 국가대표팀 부동의 왼손 에이스 이선희, 오른손 기둥투수 황규봉, 포수 이만수와 천보성, 배대웅, 정현발 등이 A급 선수들로 분류됐다. 선수 명단을 놓고 볼 때 어디 하나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이 바로 삼성 라이온즈였다. △1985년 통합우승 삼성 라이온즈의 첫 통합우승은 1985년이다. 팀 평균자책점(2.95)과 팀 타율(.276) 모두 압도적인 1위였고, 그 결과 전기리그에서는 2위 OB와 무려 11경기차를 벌린 채 승률 .741로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동시석권이냐, 페이스 조절이냐’를 놓고 상황을 가늠하며 조심스레 달렸던 후기리그에서마저도 2위 팀 롯데를 5경기차로 크게 따돌린 승률 .673으로 역시 압도적인 우승을 했다. 그래서 전후기 합? 승률이 무려 .706이었는데 2011년까지 깨지지 않은 전무후무한 연간 최고 팀 승률 기록에 해당한다. △준우승 전문구단 5번 우승, 그러나 9번 준우승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삼성. 2000년에 OB, 롯데, 해태, 빙그레에 이어 LG에게까지 한국시리즈 패권을 빼앗기며 6번째 준우승 기록을 쌓았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지만, 이 무렵부터 ‘준우승 전문팀’이라는 꼬리표가 붙기 시작했다. △2002년, 2005년, 2006년, 2011년 우승 김응용 감독의 2002년, 선동열 감독의 2005년과 2006년, 그리고 류중일 감독의 2011년. 삼성 라이온즈는 우승했고, 2000년대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다. 2012년 역시 ‘최강의 팀’으로 여겨지며 야구팬들의 뜨거운 응원을 받고 있다. 라이온즈의 살아있는 전설 홈런왕 이승엽! 2012년 삼성을 ‘최강의 팀’으로 예측할 수 있는 중심에 존재하는 최강의 선수들, 그 중에서도 이승엽이 있다. 이미 2000년대 홈런왕 타이틀을 독점하고, ‘세계 최연소 홈런 기록’을 지니고 있는 이승엽의 활약은 2000년대 초반까지 삼성의 역사와 같이 했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우용득 감독에게 발탁된 이승엽은 백인천 감독 체제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1996년에 3할대 타자로 올라서더니 3년차를 맞은 1997년에는 32개의 홈런을 터뜨리며 삼성 라이온즈가 배출한 세 번째 홈런왕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던 것이다. 그리고 1998년에 홈런왕 2위에 머물긴 했지만 38개를 때려내며 ‘장종훈을 능가하는 한국인 타자’의 배출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결국 1999년에는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50홈런 시대를 여는 54호 홈런을 때려내며 두 번째 홈런왕 타이틀을 챙겼다. 그리고 2001년과 20002년에도 홈런왕 타이틀을 독식하더니 결국 2003년에는 6월 22일 대구에서 개인통산 300홈런을 때려내며 ‘세계 최연소 300홈런 기록(만 26세 10개월 4일)’을 세웠고, 같은 해 10월 2일에는 일본 프로야구의 오 사다하루가 1964년에 세운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인 55개보다 하나 많은 56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아시아 홈런왕’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기까지 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승엽을 중심으로 양준혁-김기태-마해영이 짝을 이룬 중심타선은 자칫 끊어질 뻔했던 강팀의 이미지를 잇고 증폭시키는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