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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한국프로야구의 출발 2. MBC 청룡 3. 외화내빈 4. 끝내기 만루홈런 5. 실책 왕국과 4할 타자 6. 첫 스토브리그 7. 우울한 한국시리즈 8. 문화방송 야구부 9. 운명의 한 방 10. 빨간 장갑의 마술사 11. 야인부대 12. LG 트윈스 13. 꼴찌에서 1등으로 14. 4강이 아닌 우승을 향해 15. 홈런을 미끼로 우승을 낚다 16. V1 17. 일보전진, 이보후퇴 18. 스타시스템 19. V2 20. 잠실의 봄 21. 우승병 22. 겨울노송 23. 어긋난 꿈 24. 야신의 전설, 그리고 저주 25. 잘 하면 6위, 못 하면 8위 26. 변화의 조짐들 27. 김기태호, 불안한 혹은 불운한 출발 28. ‘DTD’와 ‘김성근의 저주’를 넘어서 에필로그 트윈스 히스토리 |
김은식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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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겸 선수로 활약한 백인천의 불멸의 4할 타율
1982년 10월 14일, 이미 다른 4개 팀은 한 주 전에 후기리그까지 80경기를 모두 소화하고 시즌을 마친 그날 MBC 청룡은 삼성 라이온즈와 그해의 마지막 정규리그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전기리그에서 미처 치르지 못해 연기된 한 경기를 마무리 짓기 위한 것이었고, 그래서 이미 결정된 전후기리그의 순위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첫해의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한 총력전이 펼쳐졌다. 더구나 6개월 전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장식한 명승부를 함께하며 그해 프로야구 흥행에 가장 큰 공을 세웠던 두 팀이 아니던가. 그날 경기는 팽팽한 0의 행진이 계속된 가운데 8회 초 삼성이 한 점을 선취하며 앞서갔지만, 이번에도 9회 말 청룡이 2점을 만들어내며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후기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시리즈 행 티켓을 잡은 삼성과 달리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MBC 청룡이었지만, 그나마 위로를 삼을 수 있는 일전이었다. “마지막 날 유백만 코치가 나보고 나가지 말라고 그래. 하지만 내가 ‘무슨 소리냐’고 나갔지. 그런데 이번에는 또 마지막 9회에 찬스에서 타석에 나가려고 하는데 또 말리더라고. 대타 쓰자고. 내가 또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나가서 안타를 쳤다고. 나중에 들으니까 그날 경기 전까지 내 타율이 4할을 넘고 있었는데, 그날 출장해서 안타를 못 치면 4할 밑으로 떨어질 수 있었던 거야. 그래서 말렸는데, 내가 나가서 안타를 두 개 치면서 타율이 오히려 4할 1푼대로 올라갔거든. 그랬더니 이번에는 마지막 타석에 나가서 안타를 못 치면 4할 1푼대 밑으로 떨어지게 되니까 또 말렸던 거지. 그런데 다시 안타를 쳐서 4할1푼2리가 됐어.” -백인천 ·트윈스 창단 첫해, 한국시리즈를 접수하다 4차전은 다음 날인 12월 28일, 대구 시민야구장에서 이어졌다. 이미 승리의 기운은 LG 쪽으로 한참 넘어와 있었지만, 삼성 역시 안방에서 LG가 우승 헹가래를 치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단 1승만이라도 얻어내 자존심을 세워야 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승리의 맛에 도취한 LG 선수들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이 날 LG의 선발투수는 1차전에 선발로 나서 1승을 따낸 뒤 사흘을 쉰 김용수였다. 하지만 피로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7회까지 선발 6안타 2실점. 반대로 LG의 타선은 삼성의 마지막 카드인 선발투수 김상엽을 상대로 3회 초 볼넷 두 개와 안타 다섯 개를 묶어 4점을 선취한 데 이어 5회 초에도 김영직의 안타, 김상훈의 3루타, 김동수의 땅볼을 묶어 2점을 추가했다. 선발 전원이 안타를 기록하며 13안타 6득점. 7회부터는 또다시 정삼흠이 나와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경기를 마무리하며 그것으로 승부는 끝이었다. 4승 무패의 완벽한 승리. 특히 내용적으로도 매 경기 선발투수 한 명과 마무리투수 한 명씩만을 소모한, 그래서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김용수, 김태원, 김기범, 정삼흠 네 명의 투수만 마운드에 올려 6점만을 내주었고, 반대로 타선에서는 무려 51안타를 퍼부어 25점을 뽑아낸 압도적인 승리였다. ·1994년, ‘신바람 야구’의 돌풍이 불다 그해 최대의 고비를, LG 트윈스는 한국시리즈에 들어가서야 만나게 됐다. 10월 18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1차전이었다. LG 트윈스의 1차전 선발은 이상훈이었다. 이상훈은 그해 18승으로 다승왕을 차지한 투수였고, 무엇보다도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구위의 공을 던지는 투수라는 점에서 이견이 없었다. 왼손으로 던지는 시속 140킬로미터대 후반의 강속구는, 어느 만큼만 제구가 된다면 그 시절의 타자들이 대응하기 어려운 마구에 가까웠다. 하지만 맞상대해야 할 태평양의 선발 김홍집도 만만치 않은 투수였다. 이상훈, 구대성과 더불어 대학 시절 ‘좌완 3인방’으로 불리던 그는 공의 빠르기와 위력은 이상훈보다 한 수 아래였지만 제구력의 정교함은 한 수 위였고, 그해에도 12승 3패의 성적으로 승률왕 타이틀을 챙긴 정상급 투수였다. 승수가 적었지만, 그것은 그해 김홍집이 방위병으로서 홈경기에만 출장할 수 있었던 사정 때문이었다. 경기는 역시 팽팽한 투수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조금 더 불안한 쪽은 이상훈이었다. 태평양의 김홍집이 1,2회에 1번부터 6번까지를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마무리한 반면, 이상훈은 2회부터는 매회 주자를 내보내고 간신히 위기를 넘기는 패턴을 반복했다. 특히 2회 초 김갑중과 염경엽, 그리고 3회 초 하득인의 배트에 정확히 맞고 날아가 잠실구장 펜스 바로 앞에서 잡힌 뜬공들은 인천구장이었다면 충분히 홈런이 될 수 있을 정도의 큰 타구들이었다. 하지만 선취점을 얻은 것은 LG였는데, 역시 서용빈의 수훈 덕이었다. 3회 말에 그날 7번으로 나선 선두타자 서용빈의 배트에 깎여 맞은 공이 좌익선상 쪽으로 크게 휘어 아슬아슬하게 파울라인 안쪽에 떨어진 뒤 점점 좌익수로부터 멀리 달아나는 2루타가 됐고, 후속 김동수가 희생번트를 대 1사 3루로 만든 다음, 9번 박준태가 볼넷을 얻어 1사 1, 3루, 그리고 1번 유지현이 중견수 희생플라이를 때려내 먼저 1점을 얻어냈다. 태평양의 반격은 7회 초에 이루어졌다. 선두 김경기가 중견수 노찬엽의 키를 넘어가는 2루타로 출루하자 6번 하득인이 좌전 적시타로 불러들여 1-1 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8회 초에는 태평양에게 결정적인 역전 기회가 돌아갔는데, 선두 김성갑이 볼넷을 얻어 출루하자 김갑중이 번트로 1사 2루를 만들었고, 3번 윤덕규의 중전 안타로 1사 1, 3루. 그 지점에서 이광환 감독은 결국 이상훈을 강판시키고 차동철을 올려 김경기를 고의4구로 거르며 1사 만루가 됐고, 그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다시 마운드에 올린 것은 마무리 김용수였다. 김동기의 타구는 3루수 한대화의 글러브로 빨려들었고, 어찌 해볼 도리 없이 2루로 향하던 김경기와 타자 김동기가 줄줄이 아웃되고 말았다. 그렇게 LG는 일단 패배 일보 직전에서 회생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다시 김홍집과 김용수의 투수전이 이어졌다. 그날 태평양 타자들은 이상훈에게 7개의 안타와 3개의 볼넷을 빼앗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김용수를 상대로 해서는 단 한 개의 출루도 얻어내지 못했다. 물론 김홍집도 LG 타선을 완벽히 막아내고 있었다. 연장 10회 말이 끝날 때까지 단 4안타. 경기는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연장 11회 초를 지나 11회 말로 넘어가고 있었다. 연장 11회 말, 선두타자 유지현이 범타로 물러난 후 1사 상황에서 김선진이 들어섰고, 잠시 긴장이 풀렸던지 김홍집이 무심코 던진 밋밋한 초구 슬라이더를 받아쳐 그대로 잠실구장 왼쪽 스탠드에 꽂아 넣었다. 7.1이닝을 1실점으로 막은 선발 이상훈에 이어 3.2이닝 동안 10명의 타자를 무안타, 무사사구로 완벽하게 틀어막은 김용수가 1990년에 이어 또 한 번 한국시리즈 1차전 승리투수가 됐다. 반면 그날 최고의 투구를 한 태평양 김홍집은 10.1이닝을 완투하며 5피안타 2실점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DTD와 김성근의 저주를 넘어서 2013년, LG 트윈스는 2002년 이후 무려 12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김성근의 저주’라는 말은 11년 만에 그 힘을 잃게 됐고, 중반기부터 오히려 뚝심을 발휘하며 중위권으로부터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는 저력을 증명함으로써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비아냥도 잠재울 수 있었다. 최근 4년 사이에 트레이드로 내보낸 두 명의 타자가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리그 MVP에 오르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바로 한 해 전 ‘팀의 미래’라고 불렸던 두 명의 투수를 영구제명으로 잃고 7위로 곤두박질치며 절망에 빠졌던 팀이 이루어낸 극적인 반전임에 분명하다. 김기태 감독과 2013년 트윈스의 행보는 조금 더 세월이 흘러간 뒤, 조금 더 높이 평가될 기회가 생길 지도 모르겠다. 조급증에 불운이 겹치며 이어졌던 것이 10여 년의 암흑기였다면, 그것을 극복하는 열쇠는 무엇보다도 느긋함, 그리고 장기적인 전망과 노력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3년의 LG는 요란하지 않게 그 열쇠를 제대로 찾아낸 것으로 보이며, 또한 1994년의 ‘3인방’만큼 빛나지는 않았어도 그 한 해 1군의 라인업을 들락거린 적지 않은 젊은 피들이 조만간 시작될 트윈스의 다음 전성기를 떠받치는 기둥들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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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청룡과 김재박부터 오늘의 트윈스와 이병규까지
그리고 계속되는 트윈스 팬덤을 위하여! ‘신바람 야구’로 한국프로야구를 휩쓸었던 서울의 아이콘, 다시 한 번 ‘한국의 양키스’를 꿈꾸는 트윈스! 1994년 이후 19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노리며 기록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LG트윈스.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끝으로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트윈스는 긴 터널을 지나 올 시즌 트윈스 특유의 호쾌하면서도 세련된 스타일의 야구가 되살아나면서 다시 한 번 ‘신바람 야구’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트윈스 팬들 또한 11년 만에 가을에 유광점퍼를 입고 응원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 이후 31시즌 동안 한국시리즈 2회 우승, 시즌 MVP 0명이라는 초라한 성적표가 말해주듯 쉽지 않았던 트윈스의 아픈 역사와 함께 트윈스 최고의 순간인 1990년, 1994년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트윈스의 레전드 플레이어인 김용수, 이상훈 등의 이야기, 트윈스의 성공을 이끈 백인천, 이광환, 김성근, 김기태 감독의 리더십에 주목해야 한다. LG트윈스의 팬이라면 한 번쯤은 되짚어보아야 할 팀의 역사다. 브레인스토어의 ‘한국프로야구단 시리즈’ 두산베어스, 기아타이거즈, 롯데자이언츠, 삼성라이온즈에 이어 다섯 번째로 출간된 이 책은 LG트윈스 구단의 역사뿐 아니라 지난시절 최고의 선수들과 감독들 간의 에피소드, 기억에 남는 경기장면, 팬들의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서울을 대표하는 세련된 팀, 2번의 우승과 2002년의 준우승을 끝으로 모두의 숙제가 되어버린 ‘가을야구’ 그러나 절대 포기하지 않는 트윈스 그 감동의 다큐멘터리 MBC청룡은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의 중심에서 설계된 팀이었다. 당시 창단된 프로야구단 ‘6개 중의 하나’에 불과했던 것이 아니라 한국프로야구를 설계하는 단계부터 중심축에 세워진 기둥이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MBC청룡은 프로야구의 탄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팀이다. 이후 1990년 럭키금성이 MBC 청룡을 인수하면서 현재의 LG 트윈스로 재탄생했다. 『LG트윈스 때문에 산다』는 한국프로야구의 중심에 서 있는 LG트윈스가 1982년부터 2013년까지 31시즌 동안 보여준 영욕의 역사, 즉 1990년과 1994년의 한국시리즈 우승 및 2003년 이후 10년 넘게 지속된 불명예의 역사를 모두 기록했다. 백인천, 김동엽, 어우홍, 유백만, 배성서, 이광환, 천보성, 이광은, 김성근, 이순철, 김재박, 박종훈, 김기태까지 유별나게 다사다난했던 감독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그들의 인터뷰와 함께 담았다. 더불어 한대화, 노찬엽, 김용수, 유지현, 김재현, 서용빈 등 당대 매스컴의 표지를 장식했던 스타플레이어들의 활약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책에는 MBC 청룡의 탄생부터 현재 LG 트윈스까지의 스토리가 모두 담겼다. 맨 앞의 화보페이지에서는 한국시리즈 우승 장면, 선수들 경기장면, 구장의 모습 등을 비롯해 유니폼, 엠블럼과 로고 등의 변천과정을 그림과 사진으로 엮었다. 트윈스의 역대 감독들과 신인왕, 영구결번 선수의 프로필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더불어 트윈스의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담은 ‘트윈스 그때 그 순간’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당시의 에피소드가 아련한 추억으로 되살아날 것이다. 트윈스 팬이라면 한 번쯤은 되짚어보고 싶었던 트윈스의 역사,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애증의 스토리 트윈스를 말할 때 2003년 이후 시작된 트윈스의 ‘흑역사’를 빼놓을 수는 없다. 1990년 LG 트윈스로 이름을 바꾼 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4연승을 거두어 첫 우승을 차지했고, 1994년에는 정규시즌은 물론 한국시리즈까지 완벽하게 재패하면서 프로야구 최고의 인기 구단으로 자리를 굳힌LG트윈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7년과 1998년 그리고 2002년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였으나 준우승에 머물렀고, 2003~2005년 6위, 2006년과 2008년에는 최하위인 8위, 2009년에는 7위, 2010년과 2011년에는 6위, 2012년에는 7위를 기록하면서 오랜 침체기를 맞이한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된 트윈스의 오랜 암흑기는 소위 DTD(Dowm Team is Down)이라는 말과 함께 저주처럼 여겨졌다. 트윈스 몰락의 원인으로는 장기적인 청사진이 없는데다가 구단주의 지나친 간섭 등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감독 교체, 국내외 선수 영입 실패, 실수투성이 트레이드 등 LG트윈스를 뒤덮은 검은 그림자는 걷힐 줄을 몰랐다. 그런 트윈스가 달라졌다. 2013년, LG 트윈스는 2002년 이후 무려 12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하반기에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트윈스는 중반기부터 오히려 뚝심을 발휘하며 중위권으로부터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가는 저력을 증명함으로써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비아냥도 잠재울 수 있었다. 이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팀의 기틀을 유지한 김기태 감독의 리더십, 류제국, 정현욱, 봉중근 등 1994년 못지않은 젊은 피들의 활약이 함께 이루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LG트윈스의 역사는 이제 다시 반등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