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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생이 꼭 읽어야 할 한국단편소설

책소개

목차

1. 김동인
배따라기
광화사
감자
태형
붉은 산
광염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2. 이무영
제1과 제1장
죄와 벌

3. 최정희
흉가

4.유주현
장씨일가

5. 강신재
황량한 날의 동화

저자 소개 1

金東仁, 금동琴童, 춘사春士

호는 금동琴童, 춘사春士. 평양 진석동에서 출생했다. 기독교 학교인 평양숭덕소학교와 숭실중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 학원,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교 등에서 공부하였다. 1917년 일본 유학 중 이광수(李光洙), 안재홍(安在鴻) 등과 교제하였다. 1919년 전영택, 주요한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하였다.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시작으로 「목숨」,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광화사」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공헌하였다. 1923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24
호는 금동琴童, 춘사春士. 평양 진석동에서 출생했다. 기독교 학교인 평양숭덕소학교와 숭실중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 학원,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교 등에서 공부하였다. 1917년 일본 유학 중 이광수(李光洙), 안재홍(安在鴻) 등과 교제하였다. 1919년 전영택, 주요한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하였다.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시작으로 「목숨」,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광화사」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공헌하였다.

1923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24년 폐간된 [창조]의 후신 격인 동인지 [영대]를 창간했다.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을 [동아일보]에 연재, [삼천리]에 「광염 소나타」를 발표했다. 1932년 [동광]에 「발가락이 닮았다」, [삼천리]에 「붉은 산」을 발표하였다 .1933년에는 [조선일보]에 『운현궁의 봄』을 연재하는 한편 조선일보에 학예부장으로 입사하였으나 얼마 후 사임하고 1935년 월간지 [야담]을 발간하였다.

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소설 쓰기에 전념하다 마약 중독에 걸려 병마에 시달리던 중 1939년 ‘성전 종군 작가’로 황국 위문을 떠났으나 1942년 불경죄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3년 조선문인보국회 간사로 활동하였으며, 1944년 친일소설「성암의 길」을 발표하였다. 1948년 장편 역사소설『을지문덕』과 단편「망국인기」를 집필하던 중 생활고와 뇌막염, 동맥경화로 병석에 누우며 중단하고 1951년 6·25 전쟁 중에 숙환으로 서울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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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1999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33쪽 | 148*210*30mm
ISBN13
9788970556017

책 속으로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에 저편 아래 물에서 장고(長鼓) 소리와 함께 기생의 노래가 울리어 오며 배따라기는 그만 안 들리게 되었다. 나는 이 년 전 한여름을 영유서 지내 본 일이 있다. 배따라기의 본고장인 영유를 몇 달 있어 본 사람은 그 배따라기에 대하여 언제든 한 속절없는 애처로움을 깨달을 것이다. 영유, 이름은 모르지만 ×산에 올라가서 내다보면 앞은 망망한 황해이니, 그곳 저녁때의 경치는 한번 본 사람은 영구히 잊을 수가 없으리라. 불덩이 같은 커다란 시뻘건 해가 남실남실 넘치는 바다에 도로 빠질 듯 도로 솟아오를 듯 춤을 추며, 거기서 때때로 보이지 않는 배에서 '배따라기'만 슬프게 날아오는 것을 들을 때엔 눈물 많은 나는 때때로 눈물을 흘렸다.

이로 보아서, 어떤 원의 아내가 자기의 모든 영화를 낡은 신같이 내어던지고 뱃사람과 정처없는 물길을 떠났다 함도 믿지 못할 말이랄 수가 없다. 영유서 돌아온 뒤에도 그 '배따라기'는 내 마음에 깊이 새기어져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고, 언제 한번 다시 영유를 가서 그 노래를 한번 더 들어 보고 그 경치를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생각이 늘 떠나지를 않았다.

--- p.46

그날 밤에 된 것이 <성난 파도>였습니다.

그 뒤에 이 도회에서 일어난 알지 못할 몇 가지의 불은 모두 제가 질러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불이 있던 날 밤마다 저는 한 가지의 음악을 얻었습니다. 며칠을 연하여 가슴이 몹시 무겁다가, 그것이 마침내 식체와 같이 거북하고 답답하게 되는 때는 저는 뜻없이 거리를 나갑니다. 그리고 그러한 날은 한 가지의 방화 사건이 생겨나며, 그 밤에는 한 곡의 음악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번수가 차차 많아갈 동안 저의 그 불에 대한 흥분은 반비례로 줄어졌습니다. 온갖 것을 용서하지 않는 불꽃의 잔혹함도 그다지 제 마음을 긴장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차차 힘이 적어져 가네."
선생님께서 제 음악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그러한 때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게서 더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저는 한동안 음악을 온전히 잊어버린 듯이 내버려 두었습니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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