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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르노-벤야민 편지 1928~1940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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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1928~1934 7
제2부 1935~1936 113
제3부 1937 253
제4부 1938~1940 359

옮긴이의 말: 편지들을 다 읽고 515

아도르노의 저술들 551
벤야민의 저술들 555
인명 찾아보기 559

저자 소개 3

테오도르 W. 아도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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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dor Wiesengrund Adorno,테오도어 W. 아도르노, Th.W.아도르노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유대인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921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철학, 음악, 사회학을 공부한 이후 음악비평가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곧 자신의 음악적 자질에 회의를 품고 학문적 전향을 시도해 1924년 에드문트 후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7년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가까워져 이후 지속적인 지적 유대 관계를 맺으며, 1947년에는 공저로 『계몽의 변증법』을 출판했다. 1934년 영국으로 이주했다가 나치의 박해가 심해지자 1938년 미국 뉴욕으로 망명했다. 1949년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재건된 사회연구소에 재직했으며, 1956년에는 프랑크푸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부유한 유대인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921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철학, 음악, 사회학을 공부한 이후 음악비평가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곧 자신의 음악적 자질에 회의를 품고 학문적 전향을 시도해 1924년 에드문트 후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7년 막스 호르크하이머와 가까워져 이후 지속적인 지적 유대 관계를 맺으며, 1947년에는 공저로 『계몽의 변증법』을 출판했다. 1934년 영국으로 이주했다가 나치의 박해가 심해지자 1938년 미국 뉴욕으로 망명했다. 1949년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재건된 사회연구소에 재직했으며, 1956년에는 프랑크푸르트 대학 정교수가 되었다. 1961년 카를 포퍼와 유명한 ‘실증주의 논쟁’을 벌여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며, 1963년에는 독일 사회학회 회장에 취임했다. 1966년 그의 주저 가운데 하나인 『부정변증법』을 출판했으며, 1968년 혁명기에는 학생들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1969년 8월 스위스에서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사후에 미완성 상태로 『미학이론』이 출판되었다. 1970년부터 1986년에 걸쳐 롤프 티데만(Rolf Tiedemann)에 의해 20권 분량의 ‘아도르노 전집’이 독일 주어캄프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1993년부터 같은 출판사에서 그의 유고와 강연, 편지 등을 편찬한 사루 출간물이 계속 출판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신음악의 철학』, 『프리즘』, 『문학 노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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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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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er Bendix Schonflies Benjamin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독일 출신의 유대계 언어철학자, 번역가, 좌파 지식인으로서 한때 20세기 독일어권 최고의 비평가로 자처하기도 했다. 베를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베를린, 프라이부르크, 뮌헨 대학 등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중 나중에 평생의 친구이자 유대사상에서 지적 동반자가 된 게르숌 숄렘을 만난다. 전쟁을 피해 스위스로 간 그는 1919년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에 대한 연구로 베른 대학에서 최우등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신문과 잡지에 기고를 하고 번역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1924년 교수자격 논문인 「독일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독일 출신의 유대계 언어철학자, 번역가, 좌파 지식인으로서 한때 20세기 독일어권 최고의 비평가로 자처하기도 했다. 베를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베를린, 프라이부르크, 뮌헨 대학 등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중 나중에 평생의 친구이자 유대사상에서 지적 동반자가 된 게르숌 숄렘을 만난다. 전쟁을 피해 스위스로 간 그는 1919년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에 대한 연구로 베른 대학에서 최우등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신문과 잡지에 기고를 하고 번역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1924년 교수자격 논문인 「독일 비애극의 원천」을 집필하지만 아카데미 세계로 진출하려던 계획은 결국 좌절하고 만다. 같은 해에 알게 된 연인 아샤 라치스 이외에 나중에 베르톨트 브레히트에게서 유물론적 사유의 영향을 받으면서 비평, 번역, 방송활동을 펼쳐나간다. 파시즘의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유럽에서 스스로를 ‘좌파 아웃사이더’로 이해한 그가 택한 길은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에 거리를 두고, 유대 신학적 사유와 유물론적 사유, 신비주의와 계몽적 사유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아방가르드적 실험정신에 바탕을 둔 글쓰기를 통해 현대의 변화된 조건 속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성찰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었다.

1940년 벤야민은 당시 뉴욕에서 사회연구소(프랑크푸르트학파)를 이끌던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지원을 받아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프랑스를 탈출하던 중 스페인 국경 통과가 좌절되자 자결한다. 그로써 그가 13년간 매달렸던 프로젝트, 즉 마르크스의 ‘상품물신’의 구상을 상부구조(문화) 전체에 적용하여 19세기 자본주의와 모더니티의 근원을 고고학적으로 탐구하려던 필생의 저작 『파사젠베르크』(Das Passagen-Werk)는 미완으로 남는다. 스탈린-히틀러의 밀약을 접한 충격에서 쓴 유물론적 역사철학의 결정체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일명 ‘역사철학테제’)는 그가 남긴 최후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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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자. 서울대학교와 독일 빌레펠트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독일 철학적 미학 발전과정을 연구한 논문으로 빌레펠트대학교 독문과에서 박사학위(Ph.D)를 취득하였다. Aporie des Schonen (Aisthesis, 독일), 『예술, 서구를 만들다』(인물과 사상),『예술과 비판 근원의 빛』(한길사),『아도르노』(한길사), 『민주사회로 가는 독일적 특수경로와 예술』 (길),『테오도르 아도르노, 계몽의 변증법』(커뮤니케이션북스), 『아도르노와 자본주의적 우울』 (풀빛) 등을 썼고,『발터 벤야민』(인물과 사상),『부정변증법 강의』(세창출판사), 『아도르노-벤야민 편지』(길), 『판단력
미학자. 서울대학교와 독일 빌레펠트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독일 철학적 미학 발전과정을 연구한 논문으로 빌레펠트대학교 독문과에서 박사학위(Ph.D)를 취득하였다. Aporie des Schonen (Aisthesis, 독일), 『예술, 서구를 만들다』(인물과 사상),『예술과 비판 근원의 빛』(한길사),『아도르노』(한길사), 『민주사회로 가는 독일적 특수경로와 예술』 (길),『테오도르 아도르노, 계몽의 변증법』(커뮤니케이션북스), 『아도르노와 자본주의적 우울』 (풀빛) 등을 썼고,『발터 벤야민』(인물과 사상),『부정변증법 강의』(세창출판사), 『아도르노-벤야민 편지』(길), 『판단력 비판 첫 번째 서문』, (부북스) 등을 번역하였다. 홍익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조교수. 칸트 판단력 비판과 아도르노 미학 그리고 독일문학 및 고전예술이 주요 연구 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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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8년 12월 3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572쪽 | 952g | 165*232*33mm
ISBN13
9788964452134

출판사 리뷰

후반부로 갈수록 둘 사이의 지적 논쟁은 치열해져 가면서 ‘논문’을 방불케 한다
이 책은 아도르노와 벤야민이 1928년부터 1940년까지 주고받은 121통의 편지를 상세한 독일 편집자 주석과 함께 번역한 것이다. 편지가 갖고 있는 속성상 이 두 지식인의 편지에서 우리는 지성사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속살을 포함해 그들이 처했던 실제 상황을 보다 더 직접적으로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 책의 구성상 제1부와 제2부에 해당하는 부분들에서 처음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하는 때의, 즉 서로 간에 예의를 갖춘 편지에서는 어쩌면 의례적인, 그리고 형식적인 느낌만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제3부에 접어들면서부터 ― 정확히는 제2부 57번 편지부터이다. 이 편지에서 아도르노는 ‘벤야민 씨’가 아니라 ‘발터’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 둘 사이는 보다 친밀감을 드러내 보이기 시작하면서 지적인 대화나 서로간의 곤란한 처지를 솔직히 털어놓기 시작한다. 특히 벤야민의 ‘파사젠베르크’ 저술 작업에 대한 아도르노의 기대와 관여는 우리가 흔히 벤야민이 아도르노에게 많은 지적 영향을 준 것으로 알고 있는 기존의 생각을 새롭게 보게끔 하기도 한다. 아도르노는 지속적으로 ‘파사젠베르크’ 작업이 너무 방대해지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벤야민에게 지적하면서 지속적으로 사유의 고리를 견고한 이론적 틀 내에서 고정시키게끔 하려고 충고한다.

더불어 파리에서의 고단한 집필 과정 속에서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벤야민은 스스럼없이 자신의 처지를 아도르노에게 하소연하면서 경제적 도움을 지속적으로 요청한다. 이에 아도르노는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를 통해 어떻게든 벤야민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며, 이런 노력의 결실 속에서 그나마 벤야민의 지적 작업은 결실을 맺기도 한다.

또한 이들은 프랑크푸르트 학파 내의 구성원이었던 에른스트 블로흐나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에 대해서도 솔직한 자신들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사상적으로 브레히트에 가까워지려는 벤야민에 대한 아도르노의 경계는 두드러지게 나타나기도 하며, 블로흐나 크라카우어에 대한 혹평하는 대목에서는 독자들로서는 의아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둘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어떠한 비밀도 숨기지 않겠다는 듯, 자신들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파국의 20세기를 어떻게 구원해 낼 것인가
히틀러의 파시즘과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가 물질적 진보를 추구하는 가운데 불러들인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었다. 계몽은 진보로 귀결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때, 아도르노와 벤야민은 파국을 가져온 그 물질적 진보의 토대를 재검토하고 방향 전환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끝까지 경주했다. 즉 이 두 천재 이론가들은 세기의 파국을 온몸으로 감당하면서 ‘이론의 세계’를 구출하여 땅에서 멀리 떨어진 저 높은 곳에 올려놓은, ‘딴 세상’으로의 도약을 가능하게 해준 지성의 큰 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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