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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연월일 골수 천궁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 옮긴이 후기 작가 연보 |
Yan Lianke,閻連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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셴 할아버지는 고개를 들어 이마에 손을 갖다대고는 햇빛을 따라 서쪽을 바라보았다. 멀리 산등성이 위로 자주와 황금빛이 뒤섞여 내려앉고 있었다. 농염하게 붉은 연기와 먼지가 땅 위로 한 겹 내려앉는 것 같았다. 셴 할아버지는 이것이 하룻밤을 쉰 땅의 기운이 햇빛을 오래 받아 피어오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좀 더 가까이 가보니 쩍쩍 갈라진 땅바닥의 빈 틈새들이 마치 땅의 조각들을 가마에서 구운 다음, 다시 깨뜨려 산맥에 뿌려놓은 것 같았다.
마을 사람들은 일찌감치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밀은 이미 밭에서 다 말라죽었고 고산준령이 전부 황무지로 변했다. 세상 전체가 온통 말라죽은 빛깔이었고 농가들은 세월 속에서 기다림에 지쳐갔다. --- 「연월일」중에서 넓디넓은 산맥은 한없이 넓게 주변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주변 수십 리 밖의 하늘과 산맥이 서로 잇닿아 있는 곳마다 이글이글 불빛으로 타고 있었다. 셴 할아버지가 산비탈에 이르자 눈먼 개가 달려와 맞아주었다. 셴 할아버지가 말했다. “우물이 말라버렸더구나. 물이 없단 말이다. 죽은 쥐들이 우물을 가득 채워버렸어.” 그러고 나서 눈먼 개에게 물었다. “쥐들이 여기에 왔었느냐?” 눈먼 개는 셴 할아버지를 쳐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셴 할아버지가 말했다. “너랑 나는 둘 다 여기서 쥐들 손에 죽게 될 것 같구나. 저 옥수수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며칠 버티지 못할 것 같아.” --- 「연월일」중에서 셋째는 발작이 일어나지 않아도 하나부터 일곱까지밖에 세지 못했고, 마을 어귀로 기름을 받거나 소금을 사러 가서는 한 번도 잔돈을 제대로 거슬러 받아오는 법이 없었다. 매달 월경을 할 때도 요우쓰댁이 뒤처리를 해줘야 했다. 요우쓰댁은 셋째가 남자와 여자의 일을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딸애는 시댁을 갖고 싶어 하고 큰언니와 둘째 언니처럼 남편을 갖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가을 옥수수가 무르익은 밭에서 흥분으로 옅은 홍조가 드리운 셋째 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요우쓰댁은 햇볕 속에서 옥수수 줄기 사이로 날아다니는 불꽃을 확인했다. “셋째야, 너 방금 뭐라고 했니?” 셋째가 목을 꼿꼿이 세우고 말했다. “저도 시댁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밤에 큰언니나 둘째 언니처럼 남편을 껴안고 자고 싶어요.” 요우쓰댁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떤 남자를 원하는데?” 셋째가 말했다. “멀쩡한 사람이면 돼요. 절름발이도 아니고 애꾸눈도 아닌 좋은 남자 말이에요. 그리고 저더러 밭에 가서 옥수수를 따오라고 하지 않는 그런 남자요.” 요우스터우가 말했다. “셋째야, 넌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보지 않는 거니?” 요우쓰댁이 말했다. “어떤 모습이라니요? 어떤 모습이든지 간에 전부 엄마 아빠네 집안에서 물려받은 거잖아요.” 요우스터우가 말했다. “저 아이가 온전한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 「골수」중에서 비쩍 마른 몸에 다리를 저는 루류밍은 꼬박 1년 365일을 이렇게 고된 노동에 시달렸다. 처음 벽돌을 등에 질 때는 열여섯 개의 벽돌을 한 줄로 나란히 쌓았다. 엉덩이에서 목까지 전부 벽돌이었다. 그의 등에 커다란 둑이 얹혀 있는 것 같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등에 얹힌 둑이 요동을 쳤다. 다리를 절다 보니 처음에는 가마 입구까지밖에 못 왔는데 벽돌이 무너져내려 다른 죄수의 발등을 찍었다. 그 죄수가 툴툴거렸다. “이런 염병할 절름발이 새끼야, 가서 편하게 양이나 몰 것이지 왜 여기에 와서 난리야.” --- 「천궁도」중에서 “할머니, 젊었을 때는 예쁘셨지요?” 할머니는 예쁜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면서 다시 예뻐지는 게 안 아픈 것만 못하다고 하셨다. 내가 말을 받았다. “할머니가 예쁘지 않았다면 그 지주가 할머니를 데려다 마누라로 삼았겠어요? 우리 할아버지랑 리좡 할아버지가 동시에 할머니를 좋아했겠어요?” 할머니의 얼굴이 단번에 청백색으로 변했다. 나를 쳐다보는 순간, 겨우내 잠을 자던 할머니의 눈이 새하얀 빛을 발했다. 의자를 붙잡고 있던 할머니의 손은 대추나무 가지를 꽉 쥔 것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할머니는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술을 잇몸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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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츠카프카문학상·루쉰문학상·홍루몽상 최고상 수상
‘중국에서 가장 폭발력 있는 작가’ ‘현실의 부조리를 발견해내는 보기 드문 천재’ 작가 옌롄커가 한국에 최초로 선보이는 중단편 모음집 오랫동안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혀온 옌롄커는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두 가지 본질적 요소인 ‘고통’과 절망‘을 아무런 두려움 없이 적극적으로 묘사하는 작가다. 그의 문학은 한마디로, 가혹한 현실에 대항하여 인간다움을 되찾고 그것을 지키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태어난 그는 시대와 체제가 개인에게 가하는 억압과 모순을 간파하고, 이에 저항하는 인간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 ‘부조리 서사의 대가’로 불려왔다. 가혹한 현실에서도 끝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사랑을 찾으려는 그의 문학적 의도는 역설적으로 왜곡된 현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풍자의 장치로 자리매김했다. 덕분에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 『딩씨 마을의 꿈(丁莊夢)』, 『사서(四書)』 등 그의 대표작들은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중국 내에서 출간 즉시 전량 회수되거나 판매·홍보가 금지되었고, 이런 상황을 우려한 출판사들이 출간을 거절하는 등 ‘중국에서 가장 쟁의가 많은 작가’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럼에도 옌렌커는 현재 중국에서 평단의 지지와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얻으며 당대 최고의 소설가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세계 문학계와 해외 유수 언론들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작가이기도 하다. 시처럼 아름답고 감각적인 묘사, 고통과 절망에 대한 선 굵은 서사가 그려낸 ‘인간다움’의 본질과 원형 옌롄커의 소설은 복잡한 서사와 스토리텔링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 그의 서사는 극도로 간결하고 선이 굵다. 대신 대단히 아름답고 회화적이다. 그가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는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 현실과 충돌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다양한 형태의 절망과 고통이 가득 차 있다. 비극은 너무나 사실적이고 극단적인 탓에 때로는 색다른 웃음과 위트를 자아내기도 한다. 이번 작품집에 수록된 표제작 「연월일」을 비롯해 「골수」, 「천궁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 은 모두 작가가 직접 엄선한 것으로, 네 개의 작품 역시 지독한 가뭄과 굶주림, 장애, 가난 등 극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악전고투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다룬다. 쉽게 벗어던질 수 없는 고단한 삶의 굴레 앞에서 인간과 자연, 부모와 자식, 아내와 남편, 남자와 여자 사이에 벌어지는 묵직한 서사는 진한 페이소스와 함께 마음을 울리는 먹먹한 감동을 선사한다. 『연월일』이 지닌 또 하나의 특징은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수사다. 옥수수 씨앗 하나, 잎 한 줄기, 빗물 한 방울, 바람 한 줄기에 담긴 생명의 엄숙한 원리와 인간의 한계를 시어에 가까운 리듬감 있는 언어와 메타포로 재현한다. 원초적 기쁨과 슬픔을 공감각 가득한 처연한 풍경으로 전환해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심상을 만날 수 있다. 허구와 환각을 넘나드는 초현실적인 상상력의 향연 이와 같은 서사 전략에서 탄생한 옌롄커만의 미학이 신실주의(神實主義)다. 신실주의는 글쓰기 과정에서 현실에 나타나는 표면적 논리 관계를 포기하고 ‘존재하지 않는’ 진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 진실에 가려진 진실을 찾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소설의 특징인 ‘허구’에 ‘환상’적 요소가 결합되며 때로는 기담이나 설화처럼 독자를 신비한 세계로 인도한다. 죽은 등장인물이 살아 있는 것처럼 다시 등장해 이야기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기도 하고, 이제 막 죽어 저승으로 건너가려는 주인공이 자신의 생애를 영화를 보듯 목격하거나, 사실 관계는 알려주지 않은 채 오로지 대화만으로 진상을 더듬어 파악하게 만드는 식이다. 이처럼 옌롄커 특유의 신실주의는 독자의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장치가 되어 예상치 못한 순간에 허를 찌른다. 처절함과 강렬함, 그리고 초현실적인 상상력의 조합이야말로 그 어떤 소설에서도 맛보지 못한 강력한 문학적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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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의 풍자소설가. 현대 중국의 어두운 역사에 색다른 유머와 초현실적 이미지를 배치했다.” - 파이낸셜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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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둘러싼 현실의 부조리를 발견해내는 보기 드문 천재.” - 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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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작가. 옌롄커는 실재하는 피 속에 상상의 상처들을 창조해낸다.” - 뉴욕 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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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각적인 상상력과 풍부한 위트를 보여주는 중편소설.” - 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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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하다. 잔인함, 개방성, 심지어 교활한 유머의 혼합이다.” - 라이브러리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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