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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이름 정하기
이랑 이야기책 양장
이랑
위즈덤하우스 201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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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하나, 둘, 셋
오리 이름 정하기
똥손 좀비

2부
이따 오세요
섹스와 코미디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3부
한국 사람의 한국 이야기
나는 오늘 들었다
깃발
너의 모든 움직임을 인지하라
센세이숀-휏숀
증여론

작가의 말 ‘김경형 이야기책’를 기다리며

저자 소개 1

李瀧

가난, 죽음, 슬픔, 불안과 고통을 기꺼이 직시하며 말과 노래의 쓰임을 고민하는 아티스트. 정규 앨범 [욘욘슨] [신의 놀이] [늑대가 나타났다]를 발표했다.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노래상, 제19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음반상과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한 뒤 뮤직비디오, 단편영화, 웹드라마 감독으로도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내가 30代가 됐다』 『대체 뭐 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 『오리 이름 정하기』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기타를 작게 치면서』 등이 있다. ‘이랑’은 본명이다. 2021년 언니 이슬
가난, 죽음, 슬픔, 불안과 고통을 기꺼이 직시하며 말과 노래의 쓰임을 고민하는 아티스트. 정규 앨범 [욘욘슨] [신의 놀이] [늑대가 나타났다]를 발표했다.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노래상, 제19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음반상과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한 뒤 뮤직비디오, 단편영화, 웹드라마 감독으로도 일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내가 30代가 됐다』 『대체 뭐 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 『오리 이름 정하기』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기타를 작게 치면서』 등이 있다. ‘이랑’은 본명이다.

2021년 언니 이슬이 세상을 떠났다. 2024년 20년간 함께 산 고양이 준이치가 이 별을 떠났다. 이랑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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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11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364g | 118*188*23mm
ISBN13
9791190305532

책 속으로

여자 생각해봐. 어차피 우리 집에 있는 식량으로는 일주일도 버티기 힘들 거야. 그러면 그다음에 어떻게 되겠어? 냉동실에 있는 풀까지 먹어치운다고 해도 결국엔 먹을 걸 구하러 나가든지, 아니면 천천히 굶어 죽든지 해야 할 거야.
남자 천천히, 천천히 말해주세요. 잘 모르겠어.
여자 좀비 영화 보면, 주인공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잖아. 나는 그런 게 이해가 안 됐거든? 만약에 온 세상 인구의 99퍼센트가 좀비가 되어버렸다면, 빨리 좀비가 돼서 편하게 아무 걱정 없이 으어어 하면서 돌아다니는 게 낫지 않아? 계속 사람으로 있으려고 하니까 힘든 거 아니야?
남자 좀비? 저기 밖에 있는 게 좀비인가요?
여자 좀비나 뭐 그런 거겠지, 아무튼.
남자 좀비가 되고 싶어요? 좀비가 돼서 뭐 하게?
여자 그럼 사람으로 있어서 뭐 하게?
남자 …….
여자 봐봐, 우리 방금 섹스했잖아. 아까 보니까 콘돔도 두세 개밖에 안 남았어. 이렇게 있다 보면 섹스도 또 하고 싶을 텐데, 그러다가 내가 임신이라도 하면 어떡해?
남자 그러면 안 되죠. 지금 같은 세상에…….
--- 「하나, 둘, 셋」중에서

주님 라파엘아, 너는 이게 뭐 같으냐?
라파엘 예, 주님. 저는 이것이 땅에 올릴 생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한심하다는 듯) 야, 발을 봐봐.
라파엘 예?
주님 발을 보라고. 뭐 같아?

주님의 말에 흠칫 놀라며 오리의 발을 살피는 라파엘. 갑자기 뭔가 발견한 듯 환한 표정이 된다.

라파엘 아, 발에 물갈퀴가 있네요!
주님 (혀를 차며) 그래. 한 번에는 못 보냐?
라파엘 (굽실거리며) 정말 죄송합니다, 주님.
가브리엘 그럼 이 창조물은 수중 생물인 건가요?
주님 아니. 뭐냐, 왔다 갔다 하는 거 있잖아.
가브리엘 왔다 갔다, 뭐지?

가브리엘은 ‘왔다 갔다’라는 말을 반복해 중얼거리며 그에 맞는 표현을 찾으려고 애쓰지만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사탄이 그런 가브리엘을 지켜보다가 대신 말해준다.

사탄 (침착한 말투로) 수륙양용이요.
가브리엘 아, 맞다! 수륙양용!
주님 (사탄을 힐끗 보고) 그래, 그거다.
라파엘 와, 이번에도 정말 멋있는 거 만드셨네요.
주님 (기분 좋은 듯) 그러냐? 한번 해봤어.

주님은 라파엘의 입에 발린 칭찬에 기분이 좋은 듯 팔을 뒤로 뻗어 땅을 짚으며 한가롭게 휘파람을 분다. 사탄은 라파엘과 예수가 간신히 붙잡고 있는 오리를 주의 깊게 살펴본다. 그러다가 뭔가를 발견한 듯 고개를 갸우뚱한다.

사탄 주님, 이 창조물은 무게중심이 조금 불안정한 것 같은데요.

휘파람을 불며 하늘을 보고 있던 주님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세를 고쳐 앉는다.

주님 (깊은 한숨을 내쉬고) 야.
사탄 예?

주님은 한동안 말없이 사탄을 노려본다.
--- 「오리 이름 정하기」중에서

“여기 좀비들 분장 좀 봐주세요!”
이제 겨우 한 테이크가 끝났을 뿐인데 보조 출연자들은 극도로 피로감을 느꼈다. 꼭두새벽부터 현장에 나와 특수 분장을 받고, 앞 촬영이 지연되면서 몇 시간씩 대기했으며, 혹여 분장이 지워질까 봐 변변히 물이나 음식도 먹지 못했다. 다음 컷을 찍기 위해 대기하면서 바닥에 주저앉은 보조 출연자들은 자기들끼리 수군수군 대화를 나눴다.
“밥은 대체 언제 먹는 거야?”
“밥을 주기나 하려나. 아까 분장 지워진다고 물도 못 마시게 했잖아.”
“소리는 계속 질러야 할 텐데, 배고파서 소리가 나와야 말이지.”
“대충 지르는 척만 해. 소리야 어차피 나중에 후시 따겠지.”
“그러겠지? 아니, 근데 저 양반은 얼굴이 왜 저 모양이야?”
“네? 저요?”
용훈은 갑자기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오는 길에 사고가 나서 늦어가지고……. 분장을 못 받고 직접 했거든요.”
“그래가지고 어디 한 컷이나 나오겠어? 용쓰네.”
뒤통수에 커다랗게 구멍이 난 보조 출연자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우리 옆에 있지 말고 저쪽에 가서 서요. 괜히 옆에 있다가 나까지 잘려나가지.”
“죄송합니다.”
--- 「똥손 좀비」중에서

기다리는 택배가 있었다면 더더욱 가슴 설레는 순간일 터, 남자도 바로 상자를 열어서 내용물을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포장을 뜯기 전에 송장을 확인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정현도 종종 그 절차를 잊곤 했다. 내 집 앞에 있으면 내 택배. 한국식 공동생활의 암묵적 전제가 아닌가. 당장 뭘 주문했는지 떠오르는 게 없더라도 뜯어볼 수 있다. 그야말로 작용 반작용의 법칙처럼 택배 상자가 있으면 뜯어보는 게 인지상정이니까. 하지만 그 순간 남자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 안에 덩그러니 든 건 자칫 약상자로도 보일 수 있는 콘돔 다섯 박스. 그제야 옆집 남자는 송장을 확인하고 203호가 아닌 202호라는 글자를 발견했을 것이다. 한 호수 차이지만 들어오는 입구부터 다른 옆집.
(...) 만약 상황이 그렇게 흘러갔거나 옆집 남자가 정말 그런 사람이라면 택배를 찾아올 수 있을까? 이따 오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다시 한번 찾아가도 괜찮을까? 혼자 갔다가 괜히 무서운 일이 생기진 않을까? 그렇다면 남자 친구를 기다렸다가 오늘 밤이나 내일 같이 찾아가야 하는 걸까? 아니면 택배 기사한테 끝까지 책임을 물어 다시 집으로 배달해주길 요구해야 하는 걸까? 그런데 나는 내 택배를 두고 왜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걸까?
--- 「이따 오세요」중에서

강 대표의 눈치를 살피던 관조가 머뭇머뭇 입을 떼려는 순간 강 대표가 말을 이어갔다.
“작가님, 제가 이 업계에서 뼈가 꽤 굵습니다. 그런 제가 느끼기에 요즘 이 바닥에 여성의 이야기를 제대로 하자는 흐름이 있어요. 아마 아실 테지만, 미투다 뭐다 해서 말들이 많잖아요. 남자 감독들이 몸을 사려요. 영화는 만들어져야 하는데 감독들이 몸을 사리다 보니까 제 입장에서는 결단을 내릴 때가 된 겁니다. 근데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닙니다. 그건 제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네? 그걸 왜 확실하게 말씀하시는지…….”
“우리가 같이 일을 해나가려면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것 같아요. 저는 페미니스트가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자들이 판을 쳐야 하는 시대인 게 맞고, 그래서 제가 판을 깔아드리겠다는 겁니다.”
관조가 끼어들어 교통정리에 나섰다.
“대표님, 제가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대표님이 앞선 안목과 감각으로 이 만화의 판권을 사두셨는데, 마침 여자 이야 기를 해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맞죠? 그리고 박 작가님은 특히 여자들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쓰시는 분이고요. 그렇죠?”
--- 「섹스와 코미디」중에서

여러분들께서 각자의 삶을 꿋꿋이 살아내고 계신 덕분에 저도 오늘의 무기력을 이겨내고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만드는 동안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와 제 글을 존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겁에 질리지 않고 자기 기록을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경형 이야기책’ 의 집필이 다시 시작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작가의 말」중에서

출판사 리뷰

“계속 사람으로 있으려고 하니까 힘든 거 아니야?”
당신이 보는 TV 화면 끄트머리에 걸린 우리들의 이야기


영화감독이자 음악가, 에세이스트이자 페미니스트이자 만화가인 이랑 작가의 첫 소설집 『오리 이름 정하기』가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2016년 노래 「신의 놀이」를 통해 “한국에서 태어나 산다는 데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신가요?”라고 물었던 이랑 작가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사회에서 끄트머리로 밀려나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의 삶을 주연으로 끌어와 이야기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믿고 있었던 보편적 인식에 균열을 만든다. 변영주 영화감독은 “좀비가 창궐하는 세기말의 어느 동네에서, 일상의 2호선 지하철 안에서, 마음을 움직여 그 속의 나와 공간을 바라보고 상상하기에 모든 문장들이 정교하고 날카롭다”고 이 이야기집을 평했다.

“순식간에 매료당하고, 기분 좋게 포식한 느낌의 소설이다. 멋지다. 이랑 작가.”
_ 변영주(영화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들여다보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이야기 생산자” 이랑 작가의 이야기책 『오리 이름 정하기』에는 극본부터 스탠딩 대본, 단편소설까지 형식부터 다양한 12편의 이야기가 담겼다. 그 속에는 식인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에서 “계속 사람으로 있으려고 하니까 힘든 거 아니야?”라고 깨닫게 되는 남녀가 나오고(「하나, 둘, 셋」), 천지창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신들의 세계가 웃픈 직장생활처럼 그려지며(「오리 이름 정하기」), 뜻밖의 지하철역 자살 사고로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 보조출연자(「똥손 좀비」)가 등장한다.

또한 “페미니즘을 알기 이전과 이후의 내가 다르다”고 이야기해온 작가의 이야기 속에는 2019년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이란 새삼 얼마나 곤란한 일인지 자연스레 드러난다. 하루 종일 잘못 배달된 택배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성(「이따 오세요」)부터 여자들이 판을 쳐야 하는 시대니까 판을 깔아주겠다는 남성 제작자와 당혹스런 대화를 나누게 되는 여성 시나리오 작가(「섹스와 코미디」), 언제까지 엄마를 무서워해야만 하는지 모르겠는 한국 여자 둘(「한국 사람의 한국 이야기」) 등 여성의 시선에서 처음부터 다시 쓰이는 이야기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 잊지 않으면 어떻게든 살 수 있다고 생각해온 이랑 작가는 가공의 이야기에 빗대어 삶의 궁금증을 스스로 해결해보려는 시도로 ‘신의 놀이’를 한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에 산적한 여러 문제들을 이야기로 능숙하게 풀어내면서도 “겁에 질리지 않고 일하고 싶다”고 선언하는 이랑 작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쩌면 우리 중 누군가도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져 조심스레 펜을 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추천평

20세기, 김준태 시인은 부서지거나 구멍이 뚫리거나 그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모양으로 보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생산자 이랑은 부서지건 혹은 다른 모양으로 변화하건, 이미 사라졌다고 모두들 말한다 할지라도 애초에 “내가”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모든 사물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좀비가 창궐하는 세기말의 어느 동네에서, 일상의 2호선 전철 안에서, 마음을 움직여 그 속의 나와 공간을 바라보고 상상하기에 모든 문장들은 정교하고 날카롭다. 때로는 기묘한 판타지 소설처럼, 때로는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보여주며 옆에서 조근조근 그 행간을 묘사해주는 작가와의 친절한 대화처럼, 순식간에 매료당하고, 기분 좋게 포식한 느낌의 소설이다.
멋지다. 이랑 작가.
- 변영주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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