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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누추하지만 추억이 깃들어 있다!
‘빨리빨리’ 문화를 넘어 광속 단위의 세상에 살다 보니, 어느 새 낡은 것은 버려야 할 것,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합니다. 또 낡은 것은 구태의연한 것, 변화되는 세상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하는 굼벵이의 습성 정도로 폄하됩니다. 그러다 보니 뭐든지 새 것, 새 물건이 좋은 것이고 최고의 것으로 인식하는 버릇이 생기게 됐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문화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금세 싫증을 느껴서 쓸 만한 물건임에도 함부로 내다 버리고, 곧 새 물건으로 대체합니다. 몇 달 쓰던 휴대폰도 새 기종이 나오면 바꿔 버리고, 신상을 가지고 있는 아이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요. 그러나 아끼고 아껴 장만한 장롱이나 텔레비전을 매일 닦고 광내면서 한 켜 한 켜 추억을 쌓았던 이전 시대의 아련함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할머니의 숨결이 느껴지는 자개장 이 그림책에는 낡고 오래된 물건들 속에 숨어 있는 그 시절을 추억하는 작가의 따스한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오래도록 쓰시던 자개장을 이용해서 십여 년 전 두 번째 개인전을 연 적이 있습니다. 아마 그때였지 싶습니다. 주인과 함께 한 물건들에게도 생명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거든요…….’ 아끼고 아껴, 푼돈을 모으고 모아 자개장을 사셨을 할머니, 혹은 시집가서 잘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친정어머니가 큰맘 먹고 혼수로 해주셨을 자개장이었을 겁니다. 할머니가 그 자개장을 매일같이 걸레로 닦고 광을 내면서 아끼고 정성을 기울였겠지요. 그래서 곱게 늙으신 할머니의 얼굴처럼 묵을수록 생활의 윤기가 나서 자연스러운 광이 도는 자개장이 되었을 겁니다. 할머니는 그 자개장을 닦으며 자주 뵙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을 겁니다. 이처럼 낡고 오래 된 물건들에는 애환을 담은 추억들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폐기처분 된 물건들이 로봇친구로 되살아났다! 어느 날, 낡고 오래 된 뚱땡이 텔레비전이 길가에 버려집니다. 졸지에 소중한 집과 가족을 잃은 텔레비전은 몹시 상심합니다. 그런데 이 텔레비전에게 따스하게 말을 건네는 한 소년이 있습니다. 물론 소년의 눈길은 장난감 상점의 최신 로봇에 늘 가 있지만, 버려진 물건에도 말을 거는 따스함을 잃지 않은 소년입니다. 버려진 텔레비전은 어느 새 소년과의 만남을 기대하게 되지만, 결국 낡은 리어커에 실려 폐기물 처리장에 버려집니다. 하지만 텔레비전은 쓸모없이 버려진 자신에게 의미 있는 눈길을 보낸 소년을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장난감이 팔리고 난 뒤 상실감에 빠진 소년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한때는 주인에게 갖은 봉사를 다하고, 소중하게 다뤄졌던 많은 물건들이 폐기물 처리장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텔레비전은 소년에게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에게 즐거움을 주고, 큰 의미가 되고 싶습니다. 똑같이 버려진 운명의 다른 폐기물들은 도대체 우리가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자조합니다. 그렇지만 한데 뭉친 이들은 멋진 로봇으로 재탄생 해 아이의 친구가 되어줍니다. 손때 묻은 물건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 7~80년대 풍경 사진에 나올 것 같은 작은 소도시, ‘또와 문구’ ‘마돈나스넥’ ‘닭잡는날치킨’ ‘묻지마부동산’처럼 촌스럽지만 정감 있는 간판들을 이고 있는 낡은 건물들, 평범하지만 정겨운 이웃들이 바삐 지나다니는 좁은 골목들을 되살린 그림은 어느덧 우리를 향수에 젖게 하고, 추억으로 끌어들입니다. 그렇기에 버려진 뚱땡이 텔레비전이 전봇대 앞에 우두커니 자리를 잡고 있어도, 기와를 올린 건물 장난감 가게 앞에서 아이가 하염없이 로봇을 바라보고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습니다. 연필선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림체와 요란하지 않은 담백한 색채가 조화를 이뤄 아스라이 추억의 한 풍경 속으로 그대로 들어갈 것 같은 공감대를 줍니다. 길을 나서면 동글동글 귀여운 소년의 모습과 뚱땡이 텔레비전이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이런 골목을 맞닥뜨릴 것 같습니다. 그 골목이 환히 밝아지면 어느 순간 멋진 로봇친구와 함께 골목을 내달리는 한 소년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