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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각오하고 대한의 독립을 염원하다
「타이완 의열투쟁 조명하」 조명하는 1905년 황해도 송화군에서 태어났으며, 1926년 신천군청의 직원으로 고용되어 일하면서 같은 황해도 출신의 김구 선생과 노백린 선생 등 독립운동 선각자들의 무용담을 전해 듣고 애국남아로서의 각오를 다졌습니다. '항일을 위해서는 우선 일본을 알아야 한다’는 스승의 가르침 대로 현해탄을 건너 일본 땅에 상륙합니다. 그곳에서 주경야독하던 과정에서 일본인의 차별대우와 모욕적 언사를 수없이 당하였고, 오사카보다는 독립운동을 더 할 수 있는 상해로 가기로 마음먹고 타이완을 거쳐 중국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의 경계가 삼엄하여 잠시 타이완에서 부귀원이란 찻집에서 매달 10원을 받고 일하였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제하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타이완 원주민들의 실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일본인으로 살면서 월급을 더 받아 한 푼이라도 더 군자금에 보탰고, 대만에서도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하면서 신분을 숨기고 살았지만 조선인으로서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강했고, 독립에 대한 마음을 단단히 하고 있었습니다. 조명하를 눈여겨보던 장첸젠의 도움을 받아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칼을 다루는 법을 연마했습니다. 그러던 중 타이완에 일왕의 장인이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928년 5월 14일 타이완 타이중시 중심 도로에서는 일왕 히로히토의 장인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 육군 대장 일행의 긴 차량 행렬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황족'의 일원으로 군부 실력자인 구니노미야는 일본의 본격적인 중국 출병을 앞두고 전초 기지격인 타이완에 주둔하고 있는 군의 전비 태세를 점검하기 위해 '특별 검열사' 자격으로 순시 중이었습니다. 구니노미야가 탄 차가 타이중주 도서관 앞 사거리 코너를 돌려고 속도를 줄이자 그때 한 청년이 인파 속에서 달려 나오더니 구니노미야가 탄 무개차 위로 순식간에 청년이 날아올랐습니다. 그는 독을 바른 단검으로 일격을 가하려 했지만 구니노미야의 곁을 지키던 경호관에게 가로막혔습니다. 놀란 운전기사가 가속 페달을 밟아 차량이 멀어지자 청년은 손에 쥔 단검을 구니노미야를 향해 힘껏 던졌습니다. 날아간 단검은 구니노미야의 상체를 스쳐 지났갔지만 구니노미야는 찰과상을 입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듯했지만 8개월 후인 이듬해 1월 복막염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아마도 조명하의 독검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적을 향해 검을 날리고 난 후 아수라장이 된 그 자리에서 조명하는 “대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재판에서도 끝까지 일본의 탄압을 목소리 높여 지탄했습다. 결국 7월 18일 타이완고등법원 특별공판정에서 소위 ‘황족위해죄와 불경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10월 10일, 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나이 스물네 살, 실로 꽃다운 나이였습니다. 작가의 말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자 독립운동에 자신을 바쳤으리라.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독립운동가분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분들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버지로 아니면 아들, 들이었을 것이고. 그들이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 전선에 뛰어들기까지 인간적인 고뇌가 왜 없었을까. 한줌의 모래알처럼 기억 속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무명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하며 조명하 의사의 독립운동 만화 작업을 했다. 나의 부족한 실력으로나마 그분들을 모래알이 아닌 산맥으로 대하고 싶은 작가의 작은 소망이 독자분들에게 전달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