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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를 입은 비너스·7
부록 자허마조흐의 두 개의 계약서·204 작품해설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세계로의 안내·208 옮긴이 주·220 |
Leopold von Sacher-Maso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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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있어서 평등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진지하고도 엄숙한 투로 대답했다. “상대를 지배할 것인지, 아니면 상대에게 지배를 받을 것인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 같은 경우에는 아름다운 여인의 노예가 되는 편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사사건건 바가지나 긁어대며 괴롭히려 드는 여자가 아닌, 차분하고도 자의식에 찬 엄격함으로 상대를 다스릴 줄 아는 여자를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요?”
--- p.38 “난 당신이 내 노예가 되어주었으면 해요. 당신을 내 노리갯감으로 삼겠어요.” “오! 제발 그렇게 해줘요.” 나는 한편으로는 떨리고 또 한편으로는 황홀감을 느끼며 외쳤다. “결혼은 평등과 합의에 바탕을 두지만, 이와 달리 가장 강렬한 열정은 서로 상반된 것들로부터 나옵니다. 우리는 거의 서로 적대적으로 마주 서 있는 양극이지요. 내 사랑은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미움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이지요. 그런 관계로 보면 한쪽 사람은 망치가 되어야 하고 다른 한쪽은 모루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모루가 되고 싶어요.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무시하면서 행복할 수는 없어요. 나는 한 여자를 떠받들고 싶어요.” --- p.52 당신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환상을 일깨워주었어요. (중략) 내가 사랑하고 숭배하는 여인의, 한 아름다운 여인의 노예가 되는 거죠.” “그 대가로 당신을 학대할 수 있는 그런 여자를 말이죠.” 반다는 내 말을 가로막으며 깔깔대고 웃었다. “그래요, 내 몸을 묶은 다음 내게 채찍질을 하고 발길질까지 해대는 그런 여자죠. 그러면서 정작 다른 남자 품에 안겨 있는 여자죠.” “그리고 당신에게 질투심을 불러일으켜 당신을 미칠 지경으로 만들고 당신이 그 운 좋은 연적과 맞서게 한 다음, 당신을 연적의 야수 같은 손에 내맡겨버리는 그런 간이 큰 여자겠죠. 안 그런가요? 마지막 장면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나요?” --- p.65~66 그녀가 욕조에서 일어나 은빛 물방울과 장밋빛 햇살이 그녀의 몸을 타고 흘러내렸을 때 나는 할 말을 잃고 황홀감에 사로잡혔다. 나는 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싸주고 그녀의 아름다운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주었다. 그리고 그녀가 한쪽 발을 마치 발판 위에 올려놓듯 내 몸 위에 올려놓고서 큰 벨벳 외투를 걸친 채 쿠션 위에 누워 있었을 때, (중략) 그리고 몸을 받치고 있는 왼팔은 마치 잠든 한 마리 백조처럼 소매의 검은 모피 속에 누워 있고 그녀의 오른팔은 되는대로 채찍을 매만지고 있었을 때, 나는 다시 한 번 예의 그 조용한 행복감을 느꼈다. --- p.155 화가는 넋 나간 사람처럼 그녀를 쳐다본다. 그의 얼굴은 어린애처럼 놀란 빛이 역력하다. 혐오스러움과 찬미가 뒤섞인 표정이다. 내게 채찍을 휘두르는 동안 반다의 얼굴은 점점 더 예의 그 잔인하고 조롱의 빛이 역력한 표정을 띠어간다. 나를 어쩔 줄 모르게 환희로 물들이는 그 표정이다. “자, 지금 이게 당신 그림에 필요한 표정인가요?” 그녀는 소리친다. 화가는 그녀의 차가운 눈빛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눈길을 떨어뜨린다. “바로 그 표정입니다.” 그가 어물어물 말한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을 그릴 수가 없습니다.” “뭐라고요?” 반다가 조롱조로 말한다. “혹시 도와드릴까요?” “예.” 그 독일 화가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른다. “나도 그렇게 채찍으로 때려주십시오.” --- p.159~1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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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마조히즘’을 남기며
성에 대한 강박을 예술로 승화시킨 독일 사실주의 문학의 걸작 “당신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환상을 일깨워 주었어요. 내가 사랑하고 숭배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노예가 되는 거죠?” _본문에서 카르파티아 산속 휴양지, 귀족 청년 제베린 폰 쿠지엠스키의 집 위층 방에는 반다 폰 두나예프라는 아름다운 미망인이 머물고 있다. 돌로 된 비너스상을 남몰래 숭배해 온 제베린은 비너스상처럼 차갑고 매혹적인 반다에게 반해 청혼하지만, 어떤 구속도 받기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여성인 반다는 이를 거절한다. 그러자 제베린은 그 대신에 모피를 입은 우아한 여인의 노예가 되는 자신의 환상을 실현시켜 달라고 부탁한다. 그녀의 발치에 무릎을 꿇은 자신을 점차적으로 더욱 잔인하게 대하고, 감정의 동요 없이 냉혹하게 채찍질을 해달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거절하고 머뭇거리던 반다는 차츰 이런 행위에 쾌감을 느끼고, 제베린에게 그녀의 노예가 되겠다고 서약하는, 심지어 그를 죽일 수도 있다는 계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는데……. 액자소설 형식 속에 인간 본성에 내재된 사도-마조히즘적 성적 강박, 남녀 관계에 존재하는 사랑과 권력의 역학에 대한 통찰, 지배적 담론에 의한 성의 통제와 이용 등 밀도 깊은 주제가 담겨 있는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사랑하는 여자의 노예가 되는 한 남자의 전례 없는 초상을 통해 작가에게 전 유럽적인 명성을 즉각적으로 가져다준, 19세기 독일 사실주의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전례 없는 초상, 남녀 간의 비틀린 사랑과 인간의 권력구도를 농밀하고도 파격적인 문체로 묘파하다! “사랑에 있어서 평등은 있을 수 없습니다. …상대를 지배할 것인지, 아니면 상대에게 지배를 받을 것인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아름다운 여인의 노예가 되는 편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_본문에서 1886년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은 〈마조히즘〉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사례의 성도착증을 정리하여 밝혔다. 그때까지 명망 있던 작가 자허마조흐와 그의 팬들은 그의 이름이 변태성욕의 상표처럼 되어버린 것에 항의했지만, 결국 자허마조흐는 불명예를 짊어지게 되었고, 그의 문학세계 또한 망각의 늪으로 빠졌다. 사실, 크라프트에빙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서 자허마조흐의 등장인물과 같은 성적 추구 경향을 발견하고, 이에 자허마조흐의 이름을 빌렸을 뿐이었다. 주인공 제베린의 정신세계는 자학의 개념 하나만으로 규정할 수 없으며, 당대 젊은이의 지적?정신적 방황을 그려 보여 주고, 이를 드러내주기 위해 반다라는 여성을 등장시키고 기이한 사랑의 형식이라는 소설적 장치를 사용했다. 따라서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마조히즘〉이라는 병리학적 어휘로 규정되기 이전에 모피를 입은 여인의 아찔한 느낌과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재미있는 하나의 소설 그 자체로 읽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