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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Ⅰ 이집트의 파라오
쿠푸 | 하트셉수트 | 클레오파트라 PARTⅡ 그리스·로마의 통치자 페리클레스 | 네로 PART Ⅲ 세기의 정복자와 피정복자 한니발 | 알렉산드로스 대왕 | 아틸라 | 샤를마뉴 대제 | 몬테수마 2세 PART IV 영국의 국왕 정복왕 윌리엄 | 헨리 8세 | 엘리자베스 여왕 | 조지 3세 PART Ⅴ 라틴의 왕족 루크레치아 보르자 | 펠리페 2세 PART Ⅵ 프랑스의 군주 루이 14세 | 루이 15세 PART Ⅶ 러시아·프로이센의 황제 표트르 대제 | 예카테리나 여제 | 프리드리히 대왕 PART Ⅷ 왕실의 풍속 왕실의 오락 | 왕실의 식도락 |
William Jacob Cu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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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의 어디선가 태어났다. 아틸라의 어릴 때 모습은 너무 섬뜩해서 그의 어머니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한다. 아틸라의 어머니는 아이가 자라면 좀 나아지겠거니 했지만, 그녀가 코를 뭉개면 뭉갤수록 아들의 모습은 더욱 끔찍해져만 갔다. 여섯 살 무렵에 아틸라는 훈족 전체에서 가장 인상이 험악한 아이가 되었다. 여러분도 짐작하셨겠지만, 밖에 나가 놀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3장. 세기의 정복자와 피정복」중에서 어떤 학자들은 ‘왕’이라는 그의 지위 때문에 루이 14세가 명석해지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비록 왕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이기는 하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귀족들이 일으킨 반란 때문에 이곳저곳을 전전하면서 혼란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학생이 천부적으로 미련하다면, 아무리 훌륭한 선생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 가르치기가 어려워지자 선생들은 못하겠다고 나자빠졌을 것이다. 루이 14세는 어쩌다 가끔은 똑똑한 면을 보여주긴 했지만, 이내 멍청한 상태로 다시 돌아가곤 했다. (…) 이 군주의 일생은 시간과 돈은 많지만, 분별력이 없는 사람 때문에 어떠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가 저질렀던 엄청난 일 몇 가지나 후세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그의 생각들을 살펴보면 참 재미있을 것이다. 에스프리가 넘치던 시대에 살았던 루이는 침묵을 지켰다. 분명히 입을 다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는 에스프리를 싫어했다. 베르사유 궁전 주변에서 나도는 최고 수준의 유머를 들을 때마다 그는 그 유머 뒤에 무언가 다른 의도가 숨어 있으리라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루이 14세의 이름은 역사적으로 유명해진 어느 명언에 자주 등장한다. 1655년 의회 연설에서 그가 “짐이 곧 국가다!”라고 선포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어렵사리 밝혀졌다. 그는 연설을 마친 다음 날에야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1700년 손자인 앙주 공작을 에스파냐의 왕으로 선언하고 “피레네는 이제 없다.”라고 말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확신한다. 루이 14세에게 딱 어울리는 말처럼 들린다. 피레네는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국경을 이루는 산맥으로 루이의 이 말은 이제 국경이 없어지고 피레네 산맥 너머의 땅도 프랑스 영토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 선언의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13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던 에스파냐 왕위계승 전쟁을 불러왔을 뿐이다. 13년간의 전쟁이 끝난 후에도 피레네 산맥은 전에 있던 곳에 그대로 있었다. 피레네 산맥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6장. 프랑스의 군주」중에서 누구나 표트르 대제를 대단한 인물로 평가한다. 그런 평가가 거짓이 아님은 분명하다. 사실, 술에 취하지 않았을 때나 발작을 일으키지 않을 때에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는 백성에게 추운 겨울에 궁전 앞을 지날 때에는 모자를 벗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누구나 담배를 다시 피워도 된다고 공포했다. 그는 러시아 해군을 창설했고, 훌륭한 교육제도를 도입했다. 그뿐 아니라 작은 업적을 몇 가지 남기기도 했는데, 바다코끼리 이빨로 샹들리에를 만들었고,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5파운드짜리 로켓을 만들었다. 그 로켓은 어느 신사의 머리 위에 떨어졌고, 로켓에 맞은 그 신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 표트르는 급진적인 개혁 정책을 추진했는데 때로는 보드카에 만취된 상태로 업무를 보았다. 그는 틀에 박힌 것을 싫어했다. 그는 결국 지나친 폭음으로 방광이 파열되어 숨을 거두었다. 대제는 사망 직전에 “나는, 내가 이룩한 모든 것을…….”이라며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말년에 표트르는 자신이 이루었던 모든 업적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 점에서는 그가 옳았다. ---「7장 러시아·프로이센의 황제」중에서 루이 16세의 식탐은 더 대단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걸어 다니는 위장’이라는 아주 깔끔한 별명을 붙였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함께 튈 르리 궁전에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면서도 엄청난 양의 식음료를 가져감으로써 대식가로서의 진면목을 보여 주었는데 그 규모가 작은 부엌 하나를 통째로 채울 정도였다. 그는 도주하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점심을 먹기 위해 ‘에토주(Etoge)’라는 작은 마을에서 무려 세 시간을 머물렀다. 그 당시 그들을 지켜줄 안전장치라고는 강하게 불어오는 회오리바람뿐이었다. 결국, 루이는 바렌에서 붙잡혔다. 다시 튈르리 궁전으로 끌려온 루이 16세는 닭 한 마리를 간단히 해치우고는 자신이 돌아오는 길에 후딱 먹어 치운 음식의 이름을 하나하나 수첩에 적어 놓았다. 루이 16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궁전에서 닭고기 구이를 입에 물고 있었다. 루이 16세는 감옥에 가면서도 빈손으로 가지 않았다. 감옥으로 향하는 길에 어느 구경꾼의 손에서 딱딱한 빵 한 조각을 낚아챘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습관 때문이었다. 감옥에서 그는 난생처음 음식을 조금 먹었다. 그가 먹은 음식은 송아지 고기 커틀릿 여섯 조각, 백포도주에 담근 달걀 몇 개, 닭 한 마리, 그리고 들짐승 고기와 와인이었다. 단두대에서 처형되던 날, 그가 점심으로 먹은 음식은 수프 세 접시, 앙트레(수조육류를 재료로 만든 전채 요리) 두 접시, 구운 고기 두 조각, 앙트르메(야채 요리) 네 접시, 설탕 절임 과일 몇 개, 신선한 과일, 백포도주, 적포도주, 그리고 샴페인 등이었다. 처형되기 전날 밤에도 그는 식욕이 좋았다. 이 불쌍한 국왕은 죽음을 앞두고도 배가 몹시 고팠나 보다. ---「8장. 왕실의 풍속」중에서 |
엄청난 자료 조사를 통해 얻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
저자 사후에 이 책을 편집하여 출간한 프레드 펠드캠프의 말에 따르면 그는 어느 주제에 관해서건 글을 쓰기 전에 그 주제와 관련된 거의 모든 책과 기사를 읽었다고 한다. 그렇게 자료를 빠짐없이 읽어 완전히 이해해야만 글을 쓸 수 있다고 믿었기에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찾기 어려운 자료까지도 어떻게든 찾아내 읽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도 이처럼 방대한 양의 자료를 확보한 다음, 3x5인치 크기의 카드에 제목을 달고 내용을 정리하여 수천 장의 카드를 만들었다. 그는 때로 100자짜리 짧은 기사 한 편을 쓰는 데 무려 25권의 두꺼운 책을 읽고 수백 장의 카드를 참조했다고 한다. 그의 아파트는 책으로 넘쳐나서 네 벽은 천장까지 책으로 가득 들어찼고 침실, 부엌, 현관, 화장실마저도 책이 점령하여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처럼, 유머러스하면서도 정확한 사실에 바탕을 둔 그의 글은 진정한 재능의 결과물이었다. 이 책의 원고는 저자가 무려 1만 5천 장의 카드를 만들며 16년 동안이나 매달렸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기에 결국 편집자가 미완성의 상태로 출간했으니, 이 책을 읽다 보면 때로 배를 잡고 웃게 하는 저자의 풍자와 유머 뒤에 얼마나 철저한 사실 확인이 선행되었는지, 그리고 그를 통해 다져진 통찰력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역사의 주인공은 역사가 아니라 인간 역사가들의 엄숙주의는 때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간과하게 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다. 세상을 지배하고 역사의 바퀴를 굴리는 제왕들의 어리석음, 엉뚱함, 편벽과 탐닉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때 국민의 이익이나 국제적 정세보다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제왕들은 이러한 ‘인간적인 약점’을 들춰내는 저자의 예리한 시선을 피하지 못해 때로 한심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수치스러울 정도로 음식과 여자에 탐닉하고, 허망한 질투와 욕심으로 모든 것을 잃고, 때로 제왕의 권위와 책무를 버리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자유롭게 살기를 갈망하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역사와는 다른 또 하나의 역사를 이해하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추천하는 작가 토머스 매더의 글은 독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나는 이 책이 학생들의 역사 수업에 사용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학창 시절,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 공부할 때 이 책의 저자가 보여준 것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배웠다. 내가 당시에 억지로 읽어야 했던 역사책을 저술한 역사가들은 그들이 주목해야 할 대상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단 한 순간도 그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백여 명에 가까운 역사적 인물을 소개한 충실한 주해 이 책에는 중점적으로 소개한 20여 명의 제왕과 여제를 포함하여 백여 명에 가까운 서양 왕가의 인물들이 주요 사건들과 함께 망라되어 있다. 80여 컷에 달하는 선명한 초상과 함께 상세히 소개된 그들의 생애와 업적을 통해 독자들은 서로 다른 왕가 사이의 혈연관계나 갈등관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음은 물론, 인물들을 통해 서양사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짚어보는 자료적 가치도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