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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문학은 되풀이 문제되는가
2.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3. 문학은 무엇에 대하여 고통하는가 4. 무엇이 지금 문제되고 있는가 5. 문학 텍스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6. 한국 문학은 어떻게 전개되어왔는가 7. 문학에 대한 논의는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8. 우리는 왜 여기서 문학을 하는가 |
김광남, 金炫, 金光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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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뱃속까지 뜨거워지도록 가차없이 내리퍼붓는 여름날의 뗑볕과 저녁 어스름이 내릴 무렵 평상을 내놓거나 멍석을 펴놓고 모기를 쫓기 위해서 쑥불을 피우면서 잘 보이지도 않는 된장 종지며 반찬 그릇을 어림잡아 찾아다니며 저녁을 먹은후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 얘기의 재미를 거의 모를 것이다. 내가 아는 아버지에게서 들은 옛날 얘기의 대부분은 성경 얘기였다.
선악과를 따먹고 동산에서 쫓겨나는 얘기에서부터 구약성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를 나는 처음에 얘기로서 받아들였다. 고등학교를 다닐때 까지도 그것들은 세계의 원초적인 구조를 보여주는 얘기로 생각되었다. 성경을 하나의 역사적인 저술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나 그럴 필요성이 있다는것을 이해하고 난 뒤에도 그것을 글로 씌어진 것 이상의 의미를 내 속에서 갖고 있었다. --- p.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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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억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억압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어떻게 해서? 문학은 저항한다는 구호에 의해서, 명백한 고발에 의해서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억압하는 기존 질서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우상 숭배적, 물신적 사고를 파괴함으로써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우상 숭배는 억압의 정체를 보지 않아도 되게끔 인간을 가짜로 위로시킨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가는 도중에 유태인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은 그들이 거기에 갈 수 없으리라는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해서이다. 불안할 때, 우리는 그것을 보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새로운 우상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힘있는 문학은 그 우상을 파괴하여 그것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다시 말하거니와 우상을 파괴해야 한다는 높은 소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억압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아도르노의 표현을 빌리면 파괴 그 자체가 됨으로써, 문학은 우상을 파괴한다.
--- p.39, --- '문학은 무엇에 대하여 고통하는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