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들어가는 말
1689년 포플의 서문 관용에 관한 편지 1. 도입 2. 공화국과 교회 3. 관용의 의무 4. 교회의 권리 5. 결론-종파들과 국가의 안전 6. 부록-이단과 종파 분리 해제-존 로크, 종교의 자유와 공화국의 자유를 함께 추구한 사상가 1. 17세기 잉글랜드와 로크의 일생 2. 『관용에 관한 편지』가 주장하는 관용과 자유 3. 21세기 지구화 시대의 『관용에 관한 편지』 주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
John Locke
존 로크의 다른 상품
공진성의 다른 상품
|
어느 누구도, 왕의 신실한 신하이거나 하나님의 정직한 숭배자이거나 간에,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국가에 관한 것과 종교에 관한 것이 구분되어야 하고, 교회와 공화국 사이의 경계가 제대로 정해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만약 이러한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영혼의 구원을 걱정하고 공화국의 안녕을 걱정하는, 혹은 마치 그런 것처럼 가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어떠한 분쟁에도 한계가 정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 「1. 도입」 중에서 교회에 종사하는 사람들 자신만이 무력과 강탈과 온갖 종류의 박해에서 멀어지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사도들의 계승자라고 고백하는 사람에게는, 그리고 가르치는 직분을 가진 사람에게는 더 나아가서 신자들에게도 모든 사람을 향한 평화와 선의의 의무에 대해 권면할 의무가 있습니다. 올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다른 신앙이나 예배 방식을 가진 사람에게도 평화와 선의의 의무를 다할 것을 권면할 의무가 있습니다. --- 「3. 관용의 의무」 중에서 공정하고 온화한 통치는 어디에서나 평온하고 어디에서나 안전합니다. 불의와 폭정에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저항할 것입니다. 분란이 종종 발생함을, 그리고 그 대부분이 종교의 이름으로 일어남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종교적인 이유로 대부분의 신민이 잘못 처벌받고 불공평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를 믿으십시오. 이 분란은 그 어떤 교회사회나 종교사회에 특수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부당한 짐 아래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그리고 자신들의 어깨에 얹혀 있는 무거운 멍에를 벗으려는 사람들의 어디에서나 공통된 관습입니다. --- 「5. 결론-종파들과 국가의 안전」 중에서 그러나 성서에서 정당한 연역을 통해 도출되는 것처럼 당신에게 보이는 것을, 그것이 신앙의 규칙에 조응한다고 당신 스스로 믿기 때문에, 마치 필수적인 신앙의 조항인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받아들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중략) 그 종파들의 교리들을 받아들이고 고백하도록 강요되는 것을 만약 당신이 스스로 공평하다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당신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저 무한하고 영원한 지혜이신 성령이 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분명하고 더 명료하게 자신이 전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불길한 교만함에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 「6. 부록-이단과 종파 분리」 중에서 16세기와 17세기는 종교개혁과 반개혁의 열풍이 유럽 대륙을 휩쓴 때였다. 구교와 신교는, 그리고 신교의 여러 종파는 서로 자신이 옳음을, 즉 ‘정통’임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각자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서 자신이 정통이고 상대가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일은 소모적일 뿐이다. 그래서 로크는 『편지』의 서론에서 교리의 신구나 역사의 장단과는 다른 교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관용이다. 로크는 “관용이야말로 참된 교회를 구별하는 가장 분명한 기준”이라고 주장한다. --- 「해제: 2. 관용에 관한 편지가 주장하는 관용과 자유」 중에서 로크의 시대에 잉글랜드라는 하나의 정치공동체 안에서 분리와 통합이라는 상반된 운동의 원인이 된 것은 종교였다. 그리고 정치공동체와 종교공동체의 경계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은 피나는 전쟁을 불러일으켰다. 17세기의 사람들은 정치와 종교, 국가와 교회를 분리시킴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렇게 종교는 더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20세기에 종교는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다시금 분리와 통합이라는 대립적 운동의 원인이 되었다. 민족공동체와 정치공동체의 경계를 일치시키려는 노력이 일어난 것이다. --- 「해제: 3. 21세기 지구화 시대의 [관용에 관한 편지]」 중에서 |
|
정치와 종교를 향한 통렬한 비판
2004년 모 대통령의 ‘수도 서울 봉헌’ 파문은 종교적 자유와 세속적 자유를 혼동한 상징적인 사건이다. 로크에 따르면 이 사건은 통치를 신의 은총으로 정당화하므로 모순이다. 정치에 대한 종교의 지배, 더욱이 특정 종파의 지배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지배는 종교 자체의 파괴이고 구원의 실종으로 이어진다. 로크는 그것이 ‘그리스도교적이지 않다’고 비판한다. 세속적 권리와 종교적 자유를 혼동한 사례는 인류 역사상 비일비재했지만 17세기 유럽은 그 절정의 시공간이었다. 당시 프로테스탄트는 자유를 위한 권리를 주장했고, 이런 프로테스탄트에 대한 가톨릭의 탄압이 이어졌다. 로마 가톨릭의 정통성을 내세우며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는 구세력은 종교적 자유와 입헌군주제를 옹호하는 프로테스탄트를 정치적 종교적으로 박해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 지식인들은 저마다의 종교적 입장에 따라 논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관용에 관한 편지』는 이 당시 경험론 철학의 선구자인 로크가 정치와 종교의 구분을 주장하는 입장을 드러낸 저작이다. 로크는 구원에 대한 믿음으로 위장된 종교의 지배 욕망을 비판하고, 그리스도교 본래의 순수성을 회복시키려 했다. 그는 종교적 지배 현상이 정치와 종교, 공화국과 교회를 구별하지 못하고 서로 다른 두 영역 간의 경계를 허무는 데에서 비롯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두 사회의 구별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 권력이 어디까지나 인민의 지지에 기초한다고 믿었던 그는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가진 정치적인 정체성과 종교적인 정체성이 구분되지 않은 채 다수가 다수라는 이름으로 국가를 통치할 때, 그 국가는 정치적 통치뿐만 아니라 종교적 지배까지 하게 된다고 말한다. 동의에 근거한 정당한 통치가 아닌 자의적인 지배가 생겨나고, 이렇게 되면 ‘인민 전체의 재산res populi’을 의미하는 ‘공화국res publica’은 불가능해진다. 그러므로 로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정체성인 시민적 정체성과 종교적 정체성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으로 구분하고, 그것을 각각 공화국과 교회의 영역에 국한시킨다. 이로써 종교적 다수가 그대로 정치적 다수가 되어 소수를 억압하지 못하고 나아가 종교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로크의 주장은 후에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자유로운 시장 경쟁을 옹호한 것처럼 종교에서도 국가교회라는 독과점 시대가 끝나고 교파교회라는 자유 경쟁의 시대가 올 것임을 예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관용과 자유를 위하여 로크는 종교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근본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종교나 민족, 언어가 아니라 시장 질서이다. 국가에 대한 시장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국민들의 시민적 자유는 물론 종교적, 언어적, 문화적 자유마저 침해받는다. 교회가 국가를 지배할 때에 시민적 자유는 물론 종교적 자유도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가령 한국 사회에서 영어가 지배적인 언어로 군림하고 있는 것은 이 언어를 사용하는 혹은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다수로서 정치 권력을 장악하여 그들의 언어적 정체성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관용이 뿌리내릴 수 없는 시장이 정치뿐 아니라 다른 영역마저도 지배하여 시장 질서의 다수 공동체만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가 기계적인 중립을 취하거나 방기하는 것은 사실상 종교와 언어, 민족과 문화에 대한 시장의 전제적 지배를 허용하는 것이다. 불신자를 개종시키려면 아무리 강한 부대도 신의 군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로크의 말은 관용 없는 거짓 믿음이 결국 신에 대한 모독으로 이어진다고 비판한 것이다. 다수라는 이름으로 권력이 관용 없는 횡포를 부릴 수 있다는 로크의 주장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를 관용의 눈으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