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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 괴테와 마주앉는 시간

리뷰 총점9.3 리뷰 15건 | 판매지수 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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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7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212쪽 | 308g | 130*210*20mm
ISBN13 9788954680592
ISBN10 8954680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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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 괴테가 60년을 쓴 그 작품, 『파우스트』 전체를 한 줄로 요약하라면 누구든 서슴없이 택하는 구절입니다. 지금까지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고 번역되어온 문장이지요. 그러나 이 번역은 ‘노력’에 너무 치우쳐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노력한다’는 말에는 땀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여러 해를, 아니 수십 년을 두고 고민했지만 괴테가 말하고자 한 원래의 뜻이 그런 ‘노력’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굳어진 번역을 부러 바꾸었습니다.
--- pp.13-14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대사는 어찌나 매끄러운지, 어찌나 옳은 소리만 하는지 읽다보면 파우스트가 아니라 메피스토펠레스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옳은 말만 하는’ 이성의 인물 메피스토펠레스의 매끄럽고 멋진 대사에서 빠져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 p.19

어떤 원인으로든, 현재 상태의 자신의 주인은 자기입니다. 그것을 고치든 고수하든 상승시키든 개선시키든 그 모든 것은 원인제공자가, 설령 백 번 개심을 한다 하여도 이제 와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당사자의 자기연민이나 분노가 해결할 일도 아닙니다. 오롯이 자기 자신의 몫입니다. 자신을 빚어나가는 일을 할 사람은, 자기밖에는 세상에 그 누구도 달리 없습니다.
--- p.25-26

세상 앞에서 자신을 닫을 수는 있습니다. 누구든 몰리고 몰리다보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그런데 “증오 없이”라니.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시인은 아직 스물예닐곱 즈음입니다. 바이마르에 막 와서,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 하나를 찾아야 하는 나이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혜안이 생겨났을까요.
--- p.41

조개가 연한 살을 내미는 곳은 짠 바닷물입니다. 우리의 세상과의 만남은 연한 살이 소금물에 닿을 때처럼 아플 수 있습니다. 언제나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면서, 상황에 따라, 그 상황이 어떻든 자신의 사고를 유연하게 열고 옮길 수 있는 힘, 그런 힘이 진정 큰 힘인 것 같습니다.
--- p.71

괴테는 왜 그렇게 써야만 했을까요. 닥친 문제며 많은 경험을 그는 그렇게 만났습니다. 또한 그렇게 극복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늘 얘기합니다. 세상에 문제의 즉답은 없다고 말입니다. 쉬운 답이 있으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면, 신기하게도 그 문제를 감당하는 힘이 생겨납니다. 젊은 괴테, 아니 늙은 괴테에게서도 늘 그랬습니다. 그 많은 문제들, 그 많은 경험들, 어떻게든 감당해야 했을 것입니다. 무언지 알고 싶고, 마음에 새겨두고 싶은 것도 많았겠지요. 그러니 늘 쓸 게 많았지요, 느긋이 책상 앞에 정좌할 겨를도 없이 말입니다.
--- p.92

괴테는 때로는 정말로 취한 사람처럼 쓰기도 했습니다. 젊은 날에도 노년의 끝머리에서도 마찬가지였지요. 물증들도 남아 있습니다. 똑바로 놓을 겨를도 없어 비스듬히 놓인 채로 그 위에다 마구 글을 썼던 냅킨, 차분히 앉을 겨를도 없어 절반쯤 선 채로 엉덩이만 붙인 채 글을 쓰곤 했던 젊은 날의 집, 글 쓰던 책상 앞의 자전거 안장 모양의 높은 의자, 뒷장에다 마구마구 글을 써나가다가 때론 종잇장을 절반쯤 찢기기도 한 해 지난 달력……
--- pp.117-118

이제 책 같은 건 없어도 살 듯한 세상이지만, 저는 책이 있어 산 것 같습니다. 책을 통해, 달리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며 사는 사치까지 누렸습니다. 글을 읽다보면, 좋은 글을 찾아 읽게 되고, 그런 글을 쓴 큰 사람을, 시공과 무관하게 만나게 됩니다. 잠깐 차 한잔을 나누어도 가까워지는데, 누군가가 온 힘을 쏟아, 때로는 인생을 다 바쳐 쓴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 p.195

“지향이 있다는 것은 갈 곳이 있고 목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표가 있는 한 방황한다니. 갈 곳이 있기에 길을 잃는다니. 방황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방황이 바로, 목표가 있고 지향이 있기 때문이라니! 지금 방황해도 괜찮아. 다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 언젠가 어디인가에 닿아. 그런 쉬운 말보다, 말이 될 듯 말 듯한 이 위로가 주는 여운이 큽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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