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소득공제 오늘의책
미리보기 공유하기

믿는 인간에 대하여

: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리뷰 총점9.6 리뷰 92건 | 판매지수 9,486
베스트
국내도서 top100 1주
11월의 굿즈 : 시그니처 2023 다이어리/마블 캐릭터 멀티 폴딩백/스마트 터치 장갑/스마트폰 거치대
책 읽는 당신이 더 빛날 2023: 북캘린더 증정
『믿는 인간에 대하여』출간 기념 이벤트
소장가치 100% YES24 단독 판매 상품
쇼핑혜택
현대카드
1 2 3 4 5

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1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94g | 145*225*20mm
ISBN13 9788965964674
ISBN10 8965964679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상품 이미지를 확대해서 볼 수 있습니다. 원본 이미지

MD 한마디

『라틴어 수업』 한동일 저자가 이번 책에서 말하는 건 인간의 믿음이다. 유럽 역사를 살펴보면 혼란한 시기에 믿음으로 답을 구하려 했던 사람이 있었다.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그러한 사람을 소개하고, 믿음의 본질과 지금 종교가 맡아야 할 역할을 탐구한다. - 손민규 인문 MD

믿음이 사라져가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역사 속, 신을 믿은 인간의 모습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 오늘의 삶을 위한 인간의 태도를 말하다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이 공부하는 학자로서 예루살렘에서 보낸 한 달의 경험과 자기 삶을 바탕으로, 오늘날 종교 공동체와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돌아본 책이다. 저자는 유럽 역사를 들여다보며 지금과 같이 혼란한 시기가 과거에도 있어왔음을 짚어내고, 고통과 환란의 시대에 신을 찾았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종교를 가지고 있든 가지고 있지 않든 각자 마주한 삶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답을 해야 하는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보기를 제안한다.

저자는 예루살렘에서 마주한 분리장벽과 삶의 모습을 통해 신의 존재와 신의 뜻을 생각한다. 나아가 우리가 바라는, 혼란한 삶 속에서 나를 이끌어주고 내가 기댈 수 있는 ‘생각의 어른’이 과연 누구인지, 우리 스스로가 그 같은 어른이 될 수는 없는지 자문한다. 또한 ‘인간’이기에 갖고 있는 ‘같은 아픔’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그것을 깊이 보고 행동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과연 인간이 처한 문제들이 신만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한다. 나아가 법학자로서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과 함께 논란이 되었던 ‘종교의 자유’를 법적 측면에서 살펴보면서 진정한 종교의 자유가 무엇인지, 종교 공동체가 보여야 할 모습이 무엇인지도 되묻는다. 그밖에도 중세 시대의 수도자가 육식을 금했던 이유, 로마 시대 의사의 책무, 바티칸 시국의 영토 변화, 가톨릭의 구마 예식 등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이야기를 깊이 있는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다.

『믿는 인간에 대하여』역시『라틴어 수업』과 마찬가지로 저자만이 풀어낼 수 있는 라틴어 명구와 어원 이야기는 화두를 던지며, 저자의 설명을 돕는 사진과 그림은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본문에 다 풀지 못한 설명은 ‘믿는 인간 깊이 읽기’로 덧붙여두었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이야기를 시작하며

01 생각의 어른을 찾다
Quaerere sententiae adultos
02 같음을 찾고 차이를 만든다
Quaerere aequale, facere differentiam
03 신이 있다면 신의 큰 뜻은 ‘작은 것’에 있다
Si Deus est, sensus eius summus est in minimis rebus
04 예수를 배신한 두 사람, 베드로와 유다의 차이
Duo Iesu proditores: differentiae inter Petrum et Iudam
05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Quod fieri potest et quod fieri non potest
06 함께 견디는 아픔, 함께 나누는 고통
Repugnare una dolori, communicare aegrimonias
07 페니키아인의 협상법
Phoenicum navigationis artes
08 시대를 건너는 길목에서
In itinere transeunte tempus
09 수도복이 수도승을 만들지 않는다
Habitus non facit monachum
10 종교의 절대적 자유 vs. 상대적 자유
Libertas religionis: absoluta contra relativam
11 신 앞에서 근심하는 존재
Hominis timor coram Deo
12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신의 것은 신께 돌려 드려라
Reddite igitur quae sunt Caesaris Caesari et quae sunt Dei Deo
13 “사탄의 악과 간계에서 저희를 보호하소서”
“Defende nos in proelio, contra nequitiam et insidias diaboli esto præsidium”
14 혼돈 속에서도 나아가는 발걸음 : 종교에서 의학의 홀로서기
Etiam in confusione, gradum unum facere
15 나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별은 무엇인가? : 로마 시대 의사의 사회적 책무
Quae stella viam meam regit?
16 가난한 자, 부유한 자, 수도자의 식탁
Pauperis, divitis et monachi mensa
17 신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필요로 한다
Deus non indiget nostri, sed nos indigemus Dei
18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존재의 태도에서 온다
Paradisus et infernus: in hominis animo differentia est
19 인간은 지상 세계의 나그네일 뿐이다
Homo solum advena in terris est

- 믿는 인간 깊이 읽기
- 참고 문헌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인류가 우리 선조들에 대해 간과한 것은 새로운 것을 찾아 기꺼이 이동하고자 했던 인류의 오래된 열망입니다. 오늘날의 속도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들도 요즘의 우리처럼 그 시대를 가로지르는 속도로 그렇게 새로운 곳,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 p.9

오늘날 우리 사회가 바라는 생각의 어른은 많이 공부하고 많이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그가 공부하거나 소유한 것이 많고 적음을 떠나 진심으로 누군가의 곁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생물학적으로 다 자랐거나 나이가 든 사람, 지위나 항렬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는 사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생각의 어른일 겁니다.
--- p.7

사실 자신과 타인 사이에 선을 긋고 벽을 세우는 건 인간의 본성입니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나는 너와 다르다’라는 자의식 속에서 자아가 형성되고 발전하니까요. 하지만 나와 너는 다르다고 구분 짓는 경계 행위의 끝은 어디이며, 거기에서 무엇이 남을 수 있을까요? 양파도 겉껍질만 적당히 벗겨내고 요리해야지, 자꾸 벗겨내기만 하면 눈물만 날 뿐, 그 끝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너와 나의 차이를 말하기에 앞서 너와 내가 무엇이 같은지를 고민해야 하는 지점에 와 있습니다. 고민하고 돌아보며 다른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이 가진 힘입니다.
--- p.38

모든 것은 ‘바라봄(visio)’에서 시작됩니다. 개인의 고통도, 사회의 아픔과 괴로움도 그 해결을 위한 첫 단계는 ‘보는 것’에서 시작하지요. 여기가 모든 이해의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국적, 성별, 나이, 종교를 비롯해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인간이기에 분명히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 바라봐야 하는 것은 ‘차이’가 아니라 ‘같음’입니다.
--- p.41

아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고통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찌 보면 인간은 각자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이 있다는 점에서 평등한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그렇게 아파하고 신음하고, 때로는 자신의 실패와 마주함으로써 성장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미래 세대에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 안락한 삶을 사는 법만 강요할 뿐, 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고 다시 일어설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 p.62

종종 많은 이들이 자기가 어쩔 수 없는 것에 휘둘려 힘겨워하곤 합니다. 가정, 학교, 회사와 같은 조직 안에서나 사람들 사이에서나 내가 풀 수 없는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문제들 앞에서 우리는 잘 살펴 분별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새벽을 깨우는 기도 소리를 멈출 수 없는 것처럼 할 수 없는 일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 p.76

신에게 드리는 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신에게 많은 것을 원하고 바라면서 기도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미래를 희망하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정확히 방향을 모르면 올바른 기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갈구하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희망하는지, 그 희망의 방향성이 맞는지, 그것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거기에서 나아가 신에게 무엇을 어떻게 청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묻고 성찰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 p.95

“수도복이 수도승을 만들지 않는다(L’abito non fa il monaco).” 수도복을 입었다고 해서 모두 수도자나 성직자가 되지 않는 것처럼 ‘옷 자체가 그 옷이 지향하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라는 의미입니다. 믿음을 따르는 인간은 그 믿음으로 예배하고 경배할 공간을 더 화려하고 웅장하게 만들어나갔지만, 그 안에 머무는 인간은 그 예배의 공간만큼 대단하지도 거룩하지도 않았나 봅니다. 그 때문에 ‘수도복이 수도승을 만들지 않는다’라는 관용어가 생겨난 게 아니었을까요?
--- p.119

종교의 자유는 궁극적으로는 ‘신앙의 자유’와 ‘신앙실현의 자유’, 둘로 나뉩니다. 신앙의 자유는 ‘절대적인 자유’로서 신앙을 선택하거나 바꾸거나 포기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고, 이에 더해 신앙을 갖지 않을 자유까지 포함합니다. 반면 신앙실현의 자유는 ‘상대적인 자유’로서 종교 의식, 종교 선전, 종교 교육, 종교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말합니다. 다만 종교의 상대적인 자유는 다른 사람의 기본권이나 사회 공동체 질서를 해치지 않는, 조화로운 범위 안에서만 인정됩니다.
--- p.129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를 다룬 유럽의 헌법학 서적에서도 감염병의 상황에서는 국가권력에 의해 종교 행사를 일시적으로 금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감염병이 위중하게 유행하는 상황에서 행정당국이 일시적으로 예배를 금지해도 사람들이 별다른 불만을 갖거나 소동이 우리에 비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상대적 자유’인 종교 행사를 일시적으로 불가피하게 제한하는 것은, 본질적이고 절대적 자유인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 p.132

4세기에 이르러서는 공공 의료기관이 설립됩니다. 황제는 황실 병원의 의료원장을 임명해 모든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무상으로 돌보게 했어요. 요즘 표현대로 ‘취약 계층의 의료 사각지대’를 돌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픈 사람이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을 수 없다면 그것을 국가가 해주어야 한다는 개념이 있었던 겁니다.
--- p.205

우리 삶도 가만히 생각하면 그 끝을 알 수 없는 사막 위에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럴수록 사람들이 세워놓은, 시시각각 변하는 이정표만 보고 따라 걷는 건 아닌지 생각해야 합니다. 사막에서 변치 않는 별자리를 보며 걷는 것처럼 우리도 변치 않는 진리, 변치 않는 빛을 보며 걸어가야 합니다. 또한 거기에서 나아가 우리 스스로가 별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별을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남이 보고 따라올 수 있는 별이 되면 좋지 않을까요?
--- p.213~214

신이 인간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신을 필요로 할 뿐입니다. 인간사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고 우리는 그 괴로움을 줄이고자 삶의 대소사부터 존재론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두고 기도로 청합니다. 기도를 통해 마음의 고통을 줄일 수는 있지만, 예배에 참여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에 대한 찬미와 감사의 기도가 부족해서 고통받는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 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도 인간이고, 신을 옹졸하게 만드는 것도 인간입니다.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이 필요로 하는 신을, 인간의 욕망에 따라 옹졸하고 속 좁은 또 다른 ‘인간’처럼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 p.239~240

인간의 삶은 계속 이어질 테고, 오늘은 내일의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혼란이 일단락된 결과물뿐만 아니라 그 과정 모두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인류의 모든 순간이 기쁨과 환희의 역사는 아닐 테지만, 남겨 놓은 그 기록들이 분명히 새로운 미래를 위한 좋은 근간이 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 p.265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왜 지금 ‘종교’와 ‘믿는 인간’을 이야기하는가
신을 믿은 인간의 역사가 말해주는 오늘


30만 독자에게 울림을 주었던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 작가의 신작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종교를 가진 한 명의 신앙인이자 오랜 시간 법학을 공부해온 저자가 유럽의 역사 속에서 드러난 인간의 믿음과 종교에 대해 탐구하고 얻어낸 결과물이며, 불완전한 한 인간으로서 성찰하고 얻은 깨달음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인간의 유구한 역사에서 종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법과 정치가 종교와 분리된 것은 불과 몇 세기에 지나지 않았고, 10세기 초반 유럽의 혼란한 시대적 상황에 불안에 떨던 민중은 교회로 몰려와 신의 보호와 자비를 청하기도 했다”라고 말하며, 역사 속 종교와 인간이 걸어온 흔적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고대 로마와 중세 시대는 비록 먼 과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늘날 인간 삶의 양식의 바탕이 된 큰 사건들이 많았던 시대였습니다. 종교, 정치, 경제, 생활 면에서 혼돈의 시대이자 지옥의 시간이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시대든 장점과 단점이 공존합니다. 어느 시대라고 특별히 거룩하거나 훌륭하지도 않습니다. (…) 역사는 똑같지는 않아도 조금씩 다르게 되풀이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참조할 만한 가장 좋은 예가 되어줍니다.” (97-98쪽)

저자는 특히 흑사병과 기근 등으로 고통의 시기를 겪었던 중세의 모습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오늘날을 비춰보며, 과거 인류가 중세를 거쳐 어떻게 오늘날에 이르렀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예를 들어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으나 그것을 계기로 의학이 어떻게 종교로부터 독립된 학문이 되었고, 역사 속에서 종교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왔으며, 정치로부터 분리될 수 있었는지, 그것이 사회적으로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를 살핀다. 또한 그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불거졌던 ‘종교의 자유’를 언급하며, 오늘날 팬데믹으로 인해 대면 종교 행사나 각종 집회가 금지되고 있는 중에 몇몇 종교 공동체가 내세운 ‘종교의 자유’는 과연 합당한가, 하는 문제를 법학자의 시선으로 짚어낸다. 로마 시대 의사의 특권과 책무를 살피며 오늘날에도 윤리적, 사회적 책무를 지닌 사람들이 추구하는 방향이 우리 삶에도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신이 있다면 신의 뜻은 ‘작은 것’에 있다
신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필요로 하는 것


이 책에는 저자가 그리스도교, 이슬람, 유대교의 성지가 모두 보여 있는 종교의 도시 예루살렘에서 한 달 간 머물렀던 경험이 담겨 있기도 하다. 저자는 그곳에서 각자의 종교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분리장벽을 세우고 전쟁도 불사하는 인간의 모습을 마주하며 신의 존재와 신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한다.

“마태오복음 18장 10절을 보면, 청년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Ne contemnatis unum ex his pusillis).’ 우리말이나 라틴어 성경으로는 한 번에 감이 오지 않지만, 그리스어 성경을 보면 ‘보잘것없는(작은)’을 ‘미크론(μικρ?ν?)’이라고 씁니다. 영어 ‘마이크론(micron)’의 어원이 되는 단어입니다. 예수의 말은 그처럼 보잘것없는 이조차 업신여기거나 무시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 작은 이’가 꼭 사람에게만 해당되지는 않을 겁니다. 자연계의 모든 ‘작은 것’을 함부로 업신여기는 인간의 마음이, 현재진행형의 시대적 암울함을 이어가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엄마를 만나고자 하는 어린 형제의 소원이 그렇게 큰 소원인지 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의 작은 바람 하나 이루어주지 못하는 정치 적, 종교적 신념에 얼마나 더 큰 신의 뜻이 있는 걸까요.”

베드로 회개 성당으로 알려진 ‘닭 울음 성당’을 방문한 저자는 스승 예수를 배반한 베드로와 유다가 한 사람은 살고 한 사람은 자결을 택한 이유에 대해 ‘실패’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생각하고, 구시가지에 위치한 ‘십자가의 길’ 초입에 새겨진 “오,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여, 나의 고통과 같은 아픔이 있다면 주의를 기울여 보십시오”라는 문구를 되새기며 인간으로서 ‘같은 아픔’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고민한다. 이처럼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저자의 고민과 성찰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현대 사회를 비추고, 공존하기보다 개별적 삶을 우선하며 각박해져가는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그밖에도 모든 종교가 천국과 지옥을 말하지만 그 둘을 가르는 차이는 인간 존재의 태도에 있지 않은가, 라는 물음이나, 인간의 고통은 신이 아닌 인간 사회가 만들어온 구조적인 문제에서 더 크게 비롯된다는 지적도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선형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인류의 역사
어김없이 다가올 내일을 위하여


“인류의 역사와 인간 사회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지만 아주 서서히 나선형 모양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인류의 진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더딘 걸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으며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145쪽)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 “오늘의 아픔과 절망을 바꿀 수 있는 내일이 있다면 인간은 그 아픔과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을 견디고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마치 기록적 폭염을 맞고 있다고 해도 곧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과 함께 청명한 가을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혹독하게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봄은 어김없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그 시간을 버티고 견딜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라고 적어두었다. 이 같은 이야기로 문을 연《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역사 속 종교와 신앙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 삶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에 따르면 과거 한국 사회는 경제발전을 위해 나머지 가치들은 무시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가치가 불균형적으로 성장하면서 대화와 타협의 가능성이 차단되었다. 현재는 그때로부터 벗어나 많은 것이 풍요로워졌지만 이 상처만큼은 치유되지 않은 채로 남았고, 그 결과 성별간의 논쟁, 종교 간 마찰, 정치적 대립 등의 문제가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드러나고 있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어느 한쪽이 오랫동안 강하게 억눌려왔고, 침묵을 강요당해왔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지적하며, 지금과 같은 마찰은 양쪽 모두 자기 목소리를 강력하게 내고 있다는 의미이기에, 그 속에서 ‘변화의 씨앗’을 보며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이 책《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종교와 신을 믿은 인간이 보여준 갈등과 변화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 같은 믿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회원리뷰 (92건) 리뷰 총점9.6

혜택 및 유의사항?
[10월] 믿는 인간에 대하여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까****라 | 2022.10.25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라틴어 수업 이후, 두 번째 책이다. 몇 해 전에 펭귄의 추천으로 읽은 책, 라틴어 수업. 지금도 책 읽기는 힘들지만, 그때의 나에게 책이란 아주 높은 장벽 같은 것이었다. 너무 높아서 넘기보다는 돌아가고 싶었던 존재. 그런데 그런 나에게도 책 읽는 즐거움을 어렴풋이 알게 한 책이 바로 ‘라틴어 수업’이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펭귄과 나는 이 책을 선택한다.   예수;
리뷰제목

라틴어 수업 이후, 두 번째 책이다. 몇 해 전에 펭귄의 추천으로 읽은 책, 라틴어 수업.

지금도 책 읽기는 힘들지만, 그때의 나에게 책이란 아주 높은 장벽 같은 것이었다. 너무 높아서 넘기보다는 돌아가고 싶었던 존재. 그런데 그런 나에게도 책 읽는 즐거움을 어렴풋이 알게 한 책이 바로 라틴어 수업이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펭귄과 나는 이 책을 선택한다.

 

예수를 배신한 두 사람, 베드로와 유다의 차이

나는 아주 작은 사람이다. 물론, 매 순간 그런 것을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화나는 일이 있거나 짜증 나는 일을 겪고 나면 꼭 그래야만 했을까 하는 순간들이 있다. 여러 번 곱씹으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지는 경우도 있다. 실패를 마주할 수 있는 힘에 대한 이야기는 작은 나에게 힘을 주었다. 인간은 각자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이 있다는 사실. 그렇게 아파하고 신음하고, 때로는 자신의 실패와 마주함으로써 성장한다는 말. 고마웠다. ‘실패라는 놈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난다.

 

생각의 어른을 찾다.

몇 달 전에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반갑게도 그 드라마 이야기가 나온다. 담담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지안을 챙기는 어른들의 이야기. 드라마 초반에 아저씨들의 세상에 관한 대사가 나온다. 작가는 그 아저씨들생각의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도 누군가의 아저씨가 될 수 있을까. 아직은 멀고 멀다. 하지만 따뜻한 사람이 되어 가고 싶다. 완성형 인간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책을 읽으면서 노력하고, 스스로를 다듬는다면 나의 마음의 온도도 1도 정도는 오르지 않을까.

 

이렇게 소중한 글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눌 친구가 있음이 감사하다.

 
댓글 0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10월] 믿는 인간에 대하여 (한동일)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e*****a | 2022.10.13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언젠가 이 책을 읽자고 얘기하면서 까치가 말한 적이 있다. " '신을 믿는 인간'에 대하여일까, '내가/우리가 믿는 어떤 인간'에 대하여일까?" 그때 나는 '당연히 전자지!'라고 속으로 혼잣말하며 더 말할 필요도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책 꾸러미를 들고 걸으면서 문득 까치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저자의 전작 '라틴어 수업'을 무척 감명 깊게 읽었다.;
리뷰제목

언젠가 이 책을 읽자고 얘기하면서 까치가 말한 적이 있다.

" '신을 믿는 인간'에 대하여일까, '내가/우리가 믿는 어떤 인간'에 대하여일까?"

그때 나는 '당연히 전자지!'라고 속으로 혼잣말하며 더 말할 필요도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책 꾸러미를 들고 걸으면서 문득 까치의 말이 다시 생각났다.

저자의 전작 '라틴어 수업'을 무척 감명 깊게 읽었다. 이 책은 내 인생 책 중 하나가 되었고, 나는 마음이 우울하고 어두울 때 이 책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나아진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이 책이 나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길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라틴어 수업'은 내가 더 따뜻하고, 더 열려 있고, 더 넓고 깊게 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책이다. 그런 책의 후속편을 읽으려고 하면서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는'과 같은 편협한 단어로 내 사고를 닫아두는 게 맞는 건가? 나와 생각이 다른 친구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는 태도는 좋은 책을 읽기 전이나 후나 내가 별반 바뀌지(나아지지) 않았다는 뜻이 아닌가?

나는 늦게나마 까치의 말에 귀기울이기로 했다. 열어둘 것이다. '라틴어 수업'을 읽으며 느꼈던 '더 나은 나'로 돌아가 따뜻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음 책을 읽을 것이다. 까치야, 고마워.

 

 

저자는 '종교와 신앙에 대한 책'을 써 보라는 밥 친구의 제안으로 '믿는 인간에 대하여'를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서문을 읽으며 나는 좀 당황했다. 종교인이 쓴 본격적으로 '종교와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틴어 수업'이 그랬듯이, 이 책 역시 결국 '인간'에 대한 책이었다. 그동안, 저자는 사제직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이 소식에 나는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했고, 또 조금 슬펐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생을 살아가는 동안 연주해야 할 악보를 지니고 세상에 나오는지도 모릅니다. 혹자는 그거 '운명'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사명'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 이 연주는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어도 외롭고 고독한 존재일지 모릅니다. ...이것이 신이 저에게 주신, 저만이 연주할 수 있는 악보라고 생각합니다."

- <믿는 인간에 대하여> 12~14쪽에서 발췌

 

저자는 교회에서 바란 악보와 자신이 연주할 수 있는 악보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고 말한다. 사실은 '라틴어 수업'을 읽으며 나도 조금씩 그걸 느꼈다. 이번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그러한 어조가 더욱 강하다. 나는 그 순간마다 흠칫! 했다가 '맞다, 지금은 사제님이 아니시지.' 하고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고 저자가 신앙인이 아니게 된 것은 아니다. 이 책에는 여전히 저자의 인간적인 고민과 학문적인 지혜 아래로 신에 대한 견고한 믿음이 느리게 흐르는 강물처럼 거대하게 깔려 있다. 나는 여전히 이분을 좋아하고 존경하고, 이분의 신실함에 함께 구원받는 기분이 든다.

 

"Credo quia absurdum est.(부조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

- 테르툴리아누스, <그리스도의 육신>, <믿는 인간에 대하여>에서 재발췌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만큼, 이 책은 '라틴어 수업'과 유사한 구성을 하고 있다. 각 장의 제목은 라틴어 문장으로 되어 있고, 본문에서 그 라틴어 문장과 관련된 저자의 경험과 지식을 풀어가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진다. 조금 다른 점은, 라틴어 문장과 각 장의 본문 내용에 종교 지분이 아주 크다는 정도. 하지만 주제 자체가 종교와 종교인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내용은 3분의 1 정도인 것 같다. 나머지는 종교를 소재로 하지만,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우는 아이들을 두고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의 손은 고된 노동으로 마디마디 굵었고 얼굴은 검게 타 있었지요. ... 아이들의 작은 바람 하나 이루어지지 못하는 정치적, 종교적 신념에 얼마나 더 큰 신의 뜻이 있는 걸까요."

- <믿는 인간에 대하여> 52~54쪽에서 발췌

 

이 책을 처음 읽은 날, 나는 무척 우울하고 슬펐다. 몸이 아프고 무얼 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날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최근에 나는 매우 자주, 어쩌면 거의 매일 우울하다. 이것도 어쩌면 일종의 우울증일까? 코로나 블루 같은 것일까?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해야 할 일들을 미루고 책을 펼쳤다. 위로가 필요했다.

처음에 했던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지으려 한다.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지만, 결론적으로는 까치의 말이 옳았다. 이 책은 신을 믿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결국은 인간에 대한 믿음의 이야기다. '나'와 '우리'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 '더딘 걸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저자의 말을 믿으며 나는 마음을 다잡는다. 부정적인 마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조금 더 미뤄두자고.

 

"길 위에서 멈춰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가기. 이것이 제가 선택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 <믿는 인간에 대하여> 78~79쪽에서 발췌

 

댓글 0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파워문화리뷰 믿는 인간에 대하여(▶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해**이 | 2022.06.13 | 추천3 | 댓글2 리뷰제목
    사람의 태어남과 죽는 것은 자연스런 일인데,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냄은 황망하고 힘들다.  몇 일 전까지 보고 인사 나눴던 사람인데, 갑자기 들려온 비보에 망연자실해진다.  작년 겨울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자주 안부를 나눴던 권사님의 부군되시는 장로님이 소천하셨다. 부부가 소탈하시고 아주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잘 해오셨고, 감사함;
리뷰제목

 

 

사람의 태어남과 죽는 것은 자연스런 일인데,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냄은 황망하고 힘들다. 

몇 일 전까지 보고 인사 나눴던 사람인데, 갑자기 들려온 비보에 망연자실해진다. 

작년 겨울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자주 안부를 나눴던 권사님의 부군되시는 장로님이 소천하셨다.

부부가 소탈하시고 아주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잘 해오셨고, 감사함이 넘치셨는데.....

그 때 처음으로 내가 믿는 하나님께 반문했다.

'하나님, 왜요? 왜 신실하게 잘 믿는 가정에 이별의 아픔을 주시나요?'

얕은 믿음의 신앙이었지만 질문의 뜬금없음에 어쩌면 하나님도 당황했을거다. 

그 얕은 믿음을 가진 나를 책망했지 하나님께 감히 왜, 무엇 때문에요? 라고 묻지 않았으니까. 

그럴지라도 여전히 사람의 좁은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게 하나님의 생각이다. 

 

한동일 작가의 라틴어 수업 두번째 시간을 수강했다. 책「믿는 인간에 대하여」이다. 

꽤 오랫동안 내 책상에 놓여있던지라 먼지가 소복히 앉았지만,

펼쳐 읽고 다시 읽기를 세 번째..... 겨울 지나 봄 지나, 여름에 진입해서야 읽기를 마쳤다.

이 책을 통해 믿는 인간은 삶에서 관대함과 포용, 배려 등 항목에서 다름을 확인한다.

바로 '사랑'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나의 믿음과 신앙에 대해 생각해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인상깊게 읽은 책들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희미해져간다. 

책 읽을 때 마침 그 기분이 생경하고 좋아서 어쩌면 읽기를 계속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라틴어 수업도 좋았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렇기에 작가들이 계속 개정판을 내놓는 건 아닐까?!;;;;

 

 

우리는 품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이분법으로 나누기를 좋아하고, 선택하기를 강요하고, 다른 것은 틀린거라고 각인시킨다.

물질적으로 많이 넉넉하고 편해진 세상이지만 마음과 관계에서 오는 불안으로 인해 각박해지고 있다. 

알아야 될 것도 많고 얻어야 될 정보들은 매일 쏟아져 나온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단순함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이상하다.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냥 쳇바퀴 돌 듯 살아간다. 

이런 불안과 아무런 기대가 없는 삶 속에서 인간은 신을 찾고, 종교에 의지한다. 

그 믿음과 신앙 속에서 행복해야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정말 어떻게 사는것이 잘 살아내는 것일까?

이런 깊은 고민과 질문 속에서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은 의미있다. 

 

어렸을 때부터 신앙을 가졌고, 믿는 자로서 삶을 살아왔다.

믿는다는 것과 잘 믿는다는 것, 삶에서 살아낸다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도리와 믿음은 별개가 아니었다. 

어렸을 땐 아무것도 몰랐는데, 점점 시간이 흐르고 분별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 속에 거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다.

하나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위로는 하나님 사랑, 땅에서는 이웃 사랑의 실천이다. 

믿는 인간은 결국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고,

하나님 말씀 따라 인애를 베푸는 일 즉, '헤세드'의 회복이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안식일에 병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예배도 중요하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안식일의 주인이 바로 예수님이시니까.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과 관계, 상황에서는 온 맘 다해 예배에 집중할 수 없다.

비단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 뿐만이겠는가.

종교의 자유가 있기에 믿는 자로서 이웃을 향한 존중과 배려가 '헤세드'이다. 

 

믿는 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항상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하지 않을까!

그럴러면 삶으로 증명해내야 한다. 그 삶이 바로 믿는 인간의 충실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지금 여기를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인간이 인간을 돕는 그 순간.... 그 지점에서의 선한 영향력이 퍼지고.

내가 요즘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자, 아주 작게 내 삶에서 실천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믿는다는 것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믿고 말씀 따라 순종하며 살아내는 삶이다.

 

 

 

댓글 2 3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3

한줄평 (34건) 한줄평 총점 9.6

혜택 및 유의사항 ?
구매 평점5점
종교와 믿음, 인간과 절대자에 대해 생각해 보다. 인간의 욕망이 신을 만들어내댜.
이 한줄평이 도움이 되었나요? 공감 0
c********0 | 2022.10.06
구매 평점5점
라틴어 수업 시리즈는 아껴서 읽게 되는 책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YES마니아 : 플래티넘 북* | 2022.01.23
구매 평점5점
흥미진진한 그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토**다 | 2021.12.25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4,4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aniAla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