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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인간에 대하여

: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리뷰 총점9.6 리뷰 78건 | 판매지수 30,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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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21년 09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494g | 145*225*20mm
ISBN13 9788965964674
ISBN10 8965964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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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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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라틴어 수업』 한동일 저자가 이번 책에서 말하는 건 인간의 믿음이다. 유럽 역사를 살펴보면 혼란한 시기에 믿음으로 답을 구하려 했던 사람이 있었다.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그러한 사람을 소개하고, 믿음의 본질과 지금 종교가 맡아야 할 역할을 탐구한다. - 손민규 인문 MD

믿음이 사라져가는 시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역사 속, 신을 믿은 인간의 모습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 오늘의 삶을 위한 인간의 태도를 말하다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이 공부하는 학자로서 예루살렘에서 보낸 한 달의 경험과 자기 삶을 바탕으로, 오늘날 종교 공동체와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돌아본 책이다. 저자는 유럽 역사를 들여다보며 지금과 같이 혼란한 시기가 과거에도 있어왔음을 짚어내고, 고통과 환란의 시대에 신을 찾았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종교를 가지고 있든 가지고 있지 않든 각자 마주한 삶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답을 해야 하는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보기를 제안한다.

저자는 예루살렘에서 마주한 분리장벽과 삶의 모습을 통해 신의 존재와 신의 뜻을 생각한다. 나아가 우리가 바라는, 혼란한 삶 속에서 나를 이끌어주고 내가 기댈 수 있는 ‘생각의 어른’이 과연 누구인지, 우리 스스로가 그 같은 어른이 될 수는 없는지 자문한다. 또한 ‘인간’이기에 갖고 있는 ‘같은 아픔’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그것을 깊이 보고 행동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과연 인간이 처한 문제들이 신만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인지 고민한다. 나아가 법학자로서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과 함께 논란이 되었던 ‘종교의 자유’를 법적 측면에서 살펴보면서 진정한 종교의 자유가 무엇인지, 종교 공동체가 보여야 할 모습이 무엇인지도 되묻는다. 그밖에도 중세 시대의 수도자가 육식을 금했던 이유, 로마 시대 의사의 책무, 바티칸 시국의 영토 변화, 가톨릭의 구마 예식 등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이야기를 깊이 있는 시선으로 풀어내고 있다.

『믿는 인간에 대하여』역시『라틴어 수업』과 마찬가지로 저자만이 풀어낼 수 있는 라틴어 명구와 어원 이야기는 화두를 던지며, 저자의 설명을 돕는 사진과 그림은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본문에 다 풀지 못한 설명은 ‘믿는 인간 깊이 읽기’로 덧붙여두었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이야기를 시작하며

01 생각의 어른을 찾다
Quaerere sententiae adultos
02 같음을 찾고 차이를 만든다
Quaerere aequale, facere differentiam
03 신이 있다면 신의 큰 뜻은 ‘작은 것’에 있다
Si Deus est, sensus eius summus est in minimis rebus
04 예수를 배신한 두 사람, 베드로와 유다의 차이
Duo Iesu proditores: differentiae inter Petrum et Iudam
05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Quod fieri potest et quod fieri non potest
06 함께 견디는 아픔, 함께 나누는 고통
Repugnare una dolori, communicare aegrimonias
07 페니키아인의 협상법
Phoenicum navigationis artes
08 시대를 건너는 길목에서
In itinere transeunte tempus
09 수도복이 수도승을 만들지 않는다
Habitus non facit monachum
10 종교의 절대적 자유 vs. 상대적 자유
Libertas religionis: absoluta contra relativam
11 신 앞에서 근심하는 존재
Hominis timor coram Deo
12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신의 것은 신께 돌려 드려라
Reddite igitur quae sunt Caesaris Caesari et quae sunt Dei Deo
13 “사탄의 악과 간계에서 저희를 보호하소서”
“Defende nos in proelio, contra nequitiam et insidias diaboli esto præsidium”
14 혼돈 속에서도 나아가는 발걸음 : 종교에서 의학의 홀로서기
Etiam in confusione, gradum unum facere
15 나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별은 무엇인가? : 로마 시대 의사의 사회적 책무
Quae stella viam meam regit?
16 가난한 자, 부유한 자, 수도자의 식탁
Pauperis, divitis et monachi mensa
17 신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필요로 한다
Deus non indiget nostri, sed nos indigemus Dei
18 천국과 지옥의 차이는 존재의 태도에서 온다
Paradisus et infernus: in hominis animo differentia est
19 인간은 지상 세계의 나그네일 뿐이다
Homo solum advena in terris est

- 믿는 인간 깊이 읽기
- 참고 문헌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인류가 우리 선조들에 대해 간과한 것은 새로운 것을 찾아 기꺼이 이동하고자 했던 인류의 오래된 열망입니다. 오늘날의 속도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들도 요즘의 우리처럼 그 시대를 가로지르는 속도로 그렇게 새로운 곳,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 p.9

오늘날 우리 사회가 바라는 생각의 어른은 많이 공부하고 많이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그가 공부하거나 소유한 것이 많고 적음을 떠나 진심으로 누군가의 곁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생물학적으로 다 자랐거나 나이가 든 사람, 지위나 항렬이 높은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는 사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생각의 어른일 겁니다.
--- p.7

사실 자신과 타인 사이에 선을 긋고 벽을 세우는 건 인간의 본성입니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나는 너와 다르다’라는 자의식 속에서 자아가 형성되고 발전하니까요. 하지만 나와 너는 다르다고 구분 짓는 경계 행위의 끝은 어디이며, 거기에서 무엇이 남을 수 있을까요? 양파도 겉껍질만 적당히 벗겨내고 요리해야지, 자꾸 벗겨내기만 하면 눈물만 날 뿐, 그 끝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너와 나의 차이를 말하기에 앞서 너와 내가 무엇이 같은지를 고민해야 하는 지점에 와 있습니다. 고민하고 돌아보며 다른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이 가진 힘입니다.
--- p.38

모든 것은 ‘바라봄(visio)’에서 시작됩니다. 개인의 고통도, 사회의 아픔과 괴로움도 그 해결을 위한 첫 단계는 ‘보는 것’에서 시작하지요. 여기가 모든 이해의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국적, 성별, 나이, 종교를 비롯해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다를 수 있지만, 인간이기에 분명히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 바라봐야 하는 것은 ‘차이’가 아니라 ‘같음’입니다.
--- p.41

아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고통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찌 보면 인간은 각자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이 있다는 점에서 평등한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그렇게 아파하고 신음하고, 때로는 자신의 실패와 마주함으로써 성장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미래 세대에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 안락한 삶을 사는 법만 강요할 뿐, 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고 다시 일어설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 p.62

종종 많은 이들이 자기가 어쩔 수 없는 것에 휘둘려 힘겨워하곤 합니다. 가정, 학교, 회사와 같은 조직 안에서나 사람들 사이에서나 내가 풀 수 없는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문제들 앞에서 우리는 잘 살펴 분별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새벽을 깨우는 기도 소리를 멈출 수 없는 것처럼 할 수 없는 일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 p.76

신에게 드리는 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신에게 많은 것을 원하고 바라면서 기도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미래를 희망하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정확히 방향을 모르면 올바른 기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갈구하기 전에 자신이 무엇을 희망하는지, 그 희망의 방향성이 맞는지, 그것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거기에서 나아가 신에게 무엇을 어떻게 청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묻고 성찰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 p.95

“수도복이 수도승을 만들지 않는다(L’abito non fa il monaco).” 수도복을 입었다고 해서 모두 수도자나 성직자가 되지 않는 것처럼 ‘옷 자체가 그 옷이 지향하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라는 의미입니다. 믿음을 따르는 인간은 그 믿음으로 예배하고 경배할 공간을 더 화려하고 웅장하게 만들어나갔지만, 그 안에 머무는 인간은 그 예배의 공간만큼 대단하지도 거룩하지도 않았나 봅니다. 그 때문에 ‘수도복이 수도승을 만들지 않는다’라는 관용어가 생겨난 게 아니었을까요?
--- p.119

종교의 자유는 궁극적으로는 ‘신앙의 자유’와 ‘신앙실현의 자유’, 둘로 나뉩니다. 신앙의 자유는 ‘절대적인 자유’로서 신앙을 선택하거나 바꾸거나 포기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고, 이에 더해 신앙을 갖지 않을 자유까지 포함합니다. 반면 신앙실현의 자유는 ‘상대적인 자유’로서 종교 의식, 종교 선전, 종교 교육, 종교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말합니다. 다만 종교의 상대적인 자유는 다른 사람의 기본권이나 사회 공동체 질서를 해치지 않는, 조화로운 범위 안에서만 인정됩니다.
--- p.129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를 다룬 유럽의 헌법학 서적에서도 감염병의 상황에서는 국가권력에 의해 종교 행사를 일시적으로 금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감염병이 위중하게 유행하는 상황에서 행정당국이 일시적으로 예배를 금지해도 사람들이 별다른 불만을 갖거나 소동이 우리에 비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상대적 자유’인 종교 행사를 일시적으로 불가피하게 제한하는 것은, 본질적이고 절대적 자유인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 p.132

4세기에 이르러서는 공공 의료기관이 설립됩니다. 황제는 황실 병원의 의료원장을 임명해 모든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무상으로 돌보게 했어요. 요즘 표현대로 ‘취약 계층의 의료 사각지대’를 돌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픈 사람이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을 수 없다면 그것을 국가가 해주어야 한다는 개념이 있었던 겁니다.
--- p.205

우리 삶도 가만히 생각하면 그 끝을 알 수 없는 사막 위에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럴수록 사람들이 세워놓은, 시시각각 변하는 이정표만 보고 따라 걷는 건 아닌지 생각해야 합니다. 사막에서 변치 않는 별자리를 보며 걷는 것처럼 우리도 변치 않는 진리, 변치 않는 빛을 보며 걸어가야 합니다. 또한 거기에서 나아가 우리 스스로가 별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별을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남이 보고 따라올 수 있는 별이 되면 좋지 않을까요?
--- p.213~214

신이 인간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신을 필요로 할 뿐입니다. 인간사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고 우리는 그 괴로움을 줄이고자 삶의 대소사부터 존재론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두고 기도로 청합니다. 기도를 통해 마음의 고통을 줄일 수는 있지만, 예배에 참여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에 대한 찬미와 감사의 기도가 부족해서 고통받는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 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도 인간이고, 신을 옹졸하게 만드는 것도 인간입니다. 인간은 더 이상 자신이 필요로 하는 신을, 인간의 욕망에 따라 옹졸하고 속 좁은 또 다른 ‘인간’처럼 만들지 않아야 합니다.
--- p.239~240

인간의 삶은 계속 이어질 테고, 오늘은 내일의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혼란이 일단락된 결과물뿐만 아니라 그 과정 모두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인류의 모든 순간이 기쁨과 환희의 역사는 아닐 테지만, 남겨 놓은 그 기록들이 분명히 새로운 미래를 위한 좋은 근간이 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 p.265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왜 지금 ‘종교’와 ‘믿는 인간’을 이야기하는가
신을 믿은 인간의 역사가 말해주는 오늘


30만 독자에게 울림을 주었던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 작가의 신작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종교를 가진 한 명의 신앙인이자 오랜 시간 법학을 공부해온 저자가 유럽의 역사 속에서 드러난 인간의 믿음과 종교에 대해 탐구하고 얻어낸 결과물이며, 불완전한 한 인간으로서 성찰하고 얻은 깨달음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인간의 유구한 역사에서 종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다. 법과 정치가 종교와 분리된 것은 불과 몇 세기에 지나지 않았고, 10세기 초반 유럽의 혼란한 시대적 상황에 불안에 떨던 민중은 교회로 몰려와 신의 보호와 자비를 청하기도 했다”라고 말하며, 역사 속 종교와 인간이 걸어온 흔적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고대 로마와 중세 시대는 비록 먼 과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늘날 인간 삶의 양식의 바탕이 된 큰 사건들이 많았던 시대였습니다. 종교, 정치, 경제, 생활 면에서 혼돈의 시대이자 지옥의 시간이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시대든 장점과 단점이 공존합니다. 어느 시대라고 특별히 거룩하거나 훌륭하지도 않습니다. (…) 역사는 똑같지는 않아도 조금씩 다르게 되풀이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참조할 만한 가장 좋은 예가 되어줍니다.” (97-98쪽)

저자는 특히 흑사병과 기근 등으로 고통의 시기를 겪었던 중세의 모습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오늘날을 비춰보며, 과거 인류가 중세를 거쳐 어떻게 오늘날에 이르렀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예를 들어 흑사병으로 인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으나 그것을 계기로 의학이 어떻게 종교로부터 독립된 학문이 되었고, 역사 속에서 종교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왔으며, 정치로부터 분리될 수 있었는지, 그것이 사회적으로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를 살핀다. 또한 그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불거졌던 ‘종교의 자유’를 언급하며, 오늘날 팬데믹으로 인해 대면 종교 행사나 각종 집회가 금지되고 있는 중에 몇몇 종교 공동체가 내세운 ‘종교의 자유’는 과연 합당한가, 하는 문제를 법학자의 시선으로 짚어낸다. 로마 시대 의사의 특권과 책무를 살피며 오늘날에도 윤리적, 사회적 책무를 지닌 사람들이 추구하는 방향이 우리 삶에도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신이 있다면 신의 뜻은 ‘작은 것’에 있다
신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필요로 하는 것


이 책에는 저자가 그리스도교, 이슬람, 유대교의 성지가 모두 보여 있는 종교의 도시 예루살렘에서 한 달 간 머물렀던 경험이 담겨 있기도 하다. 저자는 그곳에서 각자의 종교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분리장벽을 세우고 전쟁도 불사하는 인간의 모습을 마주하며 신의 존재와 신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고민한다.

“마태오복음 18장 10절을 보면, 청년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Ne contemnatis unum ex his pusillis).’ 우리말이나 라틴어 성경으로는 한 번에 감이 오지 않지만, 그리스어 성경을 보면 ‘보잘것없는(작은)’을 ‘미크론(μικρ?ν?)’이라고 씁니다. 영어 ‘마이크론(micron)’의 어원이 되는 단어입니다. 예수의 말은 그처럼 보잘것없는 이조차 업신여기거나 무시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 작은 이’가 꼭 사람에게만 해당되지는 않을 겁니다. 자연계의 모든 ‘작은 것’을 함부로 업신여기는 인간의 마음이, 현재진행형의 시대적 암울함을 이어가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엄마를 만나고자 하는 어린 형제의 소원이 그렇게 큰 소원인지 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의 작은 바람 하나 이루어주지 못하는 정치 적, 종교적 신념에 얼마나 더 큰 신의 뜻이 있는 걸까요.”

베드로 회개 성당으로 알려진 ‘닭 울음 성당’을 방문한 저자는 스승 예수를 배반한 베드로와 유다가 한 사람은 살고 한 사람은 자결을 택한 이유에 대해 ‘실패’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생각하고, 구시가지에 위치한 ‘십자가의 길’ 초입에 새겨진 “오,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여, 나의 고통과 같은 아픔이 있다면 주의를 기울여 보십시오”라는 문구를 되새기며 인간으로서 ‘같은 아픔’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고민한다. 이처럼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저자의 고민과 성찰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현대 사회를 비추고, 공존하기보다 개별적 삶을 우선하며 각박해져가는 현실을 생각하게 한다. 그밖에도 모든 종교가 천국과 지옥을 말하지만 그 둘을 가르는 차이는 인간 존재의 태도에 있지 않은가, 라는 물음이나, 인간의 고통은 신이 아닌 인간 사회가 만들어온 구조적인 문제에서 더 크게 비롯된다는 지적도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선형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인류의 역사
어김없이 다가올 내일을 위하여


“인류의 역사와 인간 사회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지만 아주 서서히 나선형 모양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인류의 진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더딘 걸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으며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145쪽)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 “오늘의 아픔과 절망을 바꿀 수 있는 내일이 있다면 인간은 그 아픔과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을 견디고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마치 기록적 폭염을 맞고 있다고 해도 곧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과 함께 청명한 가을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혹독하게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봄은 어김없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그 시간을 버티고 견딜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라고 적어두었다. 이 같은 이야기로 문을 연《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역사 속 종교와 신앙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 삶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에 따르면 과거 한국 사회는 경제발전을 위해 나머지 가치들은 무시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다양한 가치가 불균형적으로 성장하면서 대화와 타협의 가능성이 차단되었다. 현재는 그때로부터 벗어나 많은 것이 풍요로워졌지만 이 상처만큼은 치유되지 않은 채로 남았고, 그 결과 성별간의 논쟁, 종교 간 마찰, 정치적 대립 등의 문제가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드러나고 있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어느 한쪽이 오랫동안 강하게 억눌려왔고, 침묵을 강요당해왔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지적하며, 지금과 같은 마찰은 양쪽 모두 자기 목소리를 강력하게 내고 있다는 의미이기에, 그 속에서 ‘변화의 씨앗’을 보며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이 책《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종교와 신을 믿은 인간이 보여준 갈등과 변화의 역사를 돌아보며 그 같은 믿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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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인간에 대하여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S********k | 2021.12.05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믿는 인간에 대하여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저: 한동일 출판사: 흐름출판 출판일: 2021년 9월30일   한동일 신부가 쓴 ‘라틴어 수업’을 읽었던 것이 2017년이니 참으로 시간이 빨리도 지난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 읽었던 그의 에세이가 기억에 남아서, 이번에 출간한 ‘믿는 인간에 대하여’도 펼쳐 들었다. 믿음에 대한 책이라. 생각해보면 종교와 정치에 대해서는;
리뷰제목

믿는 인간에 대하여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저: 한동일

출판사: 흐름출판 출판일: 2021년 9월30일

 

한동일 신부가 쓴 ‘라틴어 수업’을 읽었던 것이 2017년이니 참으로 시간이 빨리도 지난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 읽었던 그의 에세이가 기억에 남아서, 이번에 출간한 ‘믿는 인간에 대하여’도 펼쳐 들었다. 믿음에 대한 책이라. 생각해보면 종교와 정치에 대해서는 대화의 주제로 하지 말라는 오래 전 이야기가 떠올랐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다툼만 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사실 종교, 믿음에 대한 이야기는 더욱 민감하다. 신의 존재에 대한 무신론자와 유신론자의 평행선, 유신론자 사이에서의 종교적 갈등. 논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어떤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어떠한 양보도 없기 때문이다. 국교도 없고, 종교의 자유가 허락된 이 곳에서도 이런 상황인데 중동에서는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말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는 실제로는 그렇게 엄격한 무신론자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일종의 ‘범신론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 자신이 자본주의적 속성에 너무 물들어 있기 때문일까? 사찰이든 교회에 가든 나는 현세기복적 태도를 보인다. 말하자면, 사찰에 가서 절하고 교회에 가서 기도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내게는 종교는 어쩌면 운을 비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며, 타로카드로 운세를 보는 그 정도일까?

 

사실 이러한 무례한 태도는 종교가 일치감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시대가 지났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도, 의학도, 정치도… 종교에서 분리되어 버렸다. 주변에서 신앙을 가진 사람은 더욱더 적어지는 것 같다. 세속주의는 성공한 것인가? 그러나 종교적 극단주의의 형태를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이슬람에서 행해지는 일부 극단주의자의 테러를 보면 알 수 있고, 탈레반에 넘어간 아프가니스탄을 보면 알 수 있다.

 

부조리한 상황을 접할 때마다, 당연하게 질문한다. 신은 왜 이런 부조리한 상황을 용인하는가? 우리가 상상하고 만들어낸 의인화된 신은 실제와 달라서일까? 신은 관조하되 관여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신에게서 믿음에서 어떤 것을 찾아야 될 것인가? 단순히 현세의 문제는 인간이 만든 문제이고, 그래서 우리 자신이 그 해답을 스스로 찾아야 되는 것일까?

 

오늘날 종교가 외면받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배타적 집단의 원천이 되기 때문은 아닐까? 신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보다는 이들은 스스로의 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닐까? 믿음이라는 핑계로 우리와 나를 나눈다. 자신만이 정의를 독점했다는 오만함을 내보인다. 적어도 현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원래 예수가 이야기했던 가르침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들은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신앙에 신실한 회사 후배가 생각났다. 그는 정해진 시간에 교회에 나가서 기도를 함으로써 믿음을 충만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일종의 압박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코로나 시기로 교회를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스스로 물었다고 한다. 교회에 나가서 예식에 충실한 것이 전부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고, 그것이 자신의 내면에 깊게 침잠된다면 내밀하게 된다면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었다.

 

아마도 앞으로 종교가 가야 되는 방향의 일부를 조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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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포토리뷰 [믿는 인간에 대하여 -라틴어 수업, 두번째 시간], 한동일 지음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현*맘 | 2021.11.30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 자격을 얻은 유일한 동양인 한동일 교수님의 [라틴어 수업]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그 이후 [로마법 수업]이 출간 되어 출간기념 저자 북토크에 다녀 온 후 이분이 쓴 책이라면 어떤 책이라도 읽어야 겠다는 결심을 했고 이렇게 [믿는 인간에 대하여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을 만났습니다. 언어에 관한 수업이 첫 번째 시간이었다면;
리뷰제목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 자격을 얻은 유일한 동양인 한동일 교수님의 [라틴어 수업]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그 이후 [로마법 수업]이 출간 되어 출간기념 저자 북토크에 다녀 온 후 이분이 쓴 책이라면 어떤 책이라도 읽어야 겠다는 결심을 했고 이렇게 [믿는 인간에 대하여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을 만났습니다.

언어에 관한 수업이 첫 번째 시간이었다면 두 번째는 믿음에 관한 것입니다. 종교와 신앙에 대한 믿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과 부정적인 영향력, 불안과 폭력적인 사태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믿음, 믿는 인간'의 의미와 믿음이 우리 삶에서 사라지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보자고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신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필요로 한다.'

고난에 처했을 때 우리는 믿음을 가장하여 신이, 남이, 이웃이 나를 도와 주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착한 사마리아인' 처럼 원수인 상대방일지라도 어려움에 처하면 도움을 주는 존재가 수호성인처럼 나를 지켜주기를 원합니다. 자신이 고통받는 남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주거나 '어른' 또는 '멘토'가 될 생각은 안 하면서 필요로만 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시점에서 '내가 생각의 어른이 될 수도 있다'는 문장으로 믿음에 대한 첫단추를 끼우고 있습니다. 생각의 어른은 나이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주변에 있는 생각의 어른을 찾아보고 존중하는 삶, 생각의 어른이 없다면 내가 생각의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는 삶이 지금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문화 사회의 한 요소인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종교 백화점'과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믿는 종교만이 참되고 옳다고 주장하는 종교적 배타주의가 세계 여러 곳에서 목격되며, 자신과 다른 신념을 가진 이들을 죄악시하거나 구원받아야 할 대상으로 폄훼하기도 합니다. (235쪽)

바이러스로 인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종교에 대한 불만은 하늘높이 치솟아 올랐고 모든 종교인에 대해 하나의 기준으로 바라본 것도 사실입니다. 해마다 종교 인구는 감소하고 있습니다. 내가 믿는 종교와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하며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족해졌으나 정신적으로 종교적으로는 여전히 결핍된 우리 사회에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저자는 [믿는 인간에 대하여]에 보물처럼 숨겨놓았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다시 질문을 합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공통의 가치는 무엇이며, 서로 다른 우리가 어떻게 그 차이를 존중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를. 이 두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이 곧 우리를 [믿는 인간에 대하여] 알려 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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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인간에 대하여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d********l | 2021.11.28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카르페디엠 Carpe diem'이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죠? '현재를 충실하게 살라'라는 뜻의 라틴어인데요. 카르페디엠 외에도 '아모르파티' 같이 몇몇 라틴어가 두루 쓰이면서 라틴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죠. 저도 라틴어의 매력에 빠져 몇 년 전 출간되었던 한동일 작가님의 책 '라틴어 수업'을 읽어봤습니다. 단순히 라틴어를 배우는 언어학습이 아닌 종합 인문 수업을 엮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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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디엠 Carpe diem'이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죠? '현재를 충실하게 살라'라는 뜻의 라틴어인데요. 카르페디엠 외에도 '아모르파티' 같이 몇몇 라틴어가 두루 쓰이면서 라틴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죠. 저도 라틴어의 매력에 빠져 몇 년 전 출간되었던 한동일 작가님의 책 '라틴어 수업'을 읽어봤습니다. 단순히 라틴어를 배우는 언어학습이 아닌 종합 인문 수업을 엮어 만든 책인데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었거든요. 얼마 전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이라는 부제로 이 책이 출간되어 얼른 읽어봤어요. 이번 책은 전작보다 좀 더 심도 있게 종교와 역사 이야기를 다뤄서 또 다른 재미를 안겨줬습니다.

 

 

 

이 책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신앙과 종교적 색채가 있긴 한데 저도 종교가 있지만 이 책을 읽거나 영상을 시청하는 분들의 종교는 각각 다를 것이기에 최대한 종교적인 부분은 배제하고 인문학적인 내용만 다뤄볼까 합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떠오르는 키워드는 '겸손, 어른, 식별'입니다. 이 3가지 키워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인간은 과연 어떤 생명체이길래 이렇게 번영을 누리며 살게 된 걸까요?

아주 오래전 인류는 맹수들의 먹잇감이 될 정도로 약한 존재였습니다. 이런 인류가 진화하고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류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전략은 '겸손'입니다. 동물들이 환경에 맞춰 진화해나갔다면, 인간은 침략을 받거나 새로운 민족을 마주했을 때 자신보다 나은 상대의 기술이나 생각을 겸손하게 전해 받는 방법을 통해 진화해 왔던 거죠. 언어, 종교, 문화 같은 것들을 떠올려보시면 될 거예요. 라틴어에서 인류와 겸손이 비슷하다는 거 아시나요? 인류라는 뜻의 라틴어 '후마니타스 Humanitas'와 겸손이라는 뜻의 라틴어 '후밀리타스Humilitas'. 얼핏 보기에도 무척 비슷해 보이죠. 후밀리타스가 처음부터 겸손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원래 낮고 비천한 신분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비천하고 보잘것없는 상태를 칭하는 말로 쓰였습니다. 인류는 더 좋은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비천하게 보이는 것을 개의치 않아 하며 발전해 왔던 거죠. 이러한 현상 속에는 '희망'이 내재되어 있을 거예요. 지금보다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선택은 인간의 본능이자 삶의 중요한 원동력입니다.

여러분의 희망은 무엇인가요?

각자 처한 상황에 맞게 희망도 다양할 겁니다. 또 공통된 희망도 있겠죠. 이를테면 멘토 같은 거예요. 책에서는 '생각의 어른'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삶에서 보고 배울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어른'을 바라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어른이 그저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을 의미하는 게 아닌 걸 잘 아실 거예요. 나보다 더 성숙하고 현명해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진정한 어른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하죠. 역설적이게도 어느 누구도 스스로 그와 같은 어른이 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지도자가 없다'라고 탄식하는 국민들에게 '지도자가 없다고 탄식하지 말고 너 자신이 지도자가 돼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생각의 어른'이 된다는 건 어른 대접을 받으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많이 공부하고 많이 소유한 사람도 아닙니다. 진심으로 누군가의 곁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 마음을 열고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생각의 어른일 거예요. 생각의 어른은 나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어리더라도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그가 생각의 어른인 거죠. 이런 어른이 사회 안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알아보고 존중하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생각의 어른이 되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우리의 인생에도 적절한 '식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분별하여 알아본다는 의미를 가진 '식별'이라는 단어를 라틴어로 '디스크레티오 discretio'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베네딕토 성인의 중용사상을 나타내는 말로 과격하거나 지나치지 않음과 깊은 생각에서 나오는 절도 있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한다면 삶의 고민이 절반은 줄어들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두고 힘들어하잖아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의 말과 행동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죠.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꽤 많은데 그중에서도 가장 하기 어려운 것이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이때 필요한 게 식별이라는 지혜입니다. 식별을 잘하면 불필요한 감정을 덜어낼 수 있을 거예요.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오늘의 아픔과 절망을 바꿀 수 있는 내일이 있다면 인간은 그 아픔과 고통이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을 견디고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마치 기록적 폭염을 맡고 있다고 해도 곧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과 함께 청명한 가을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혹독하게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봄은 어김없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그 시간을 버티고 견딜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종교를 가지고 있든 가지고 있지 않든 각자 마주한 삶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답을 해야 하는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겠죠.

 

'베아티투도 beatitudo'라는 라틴어는 '태도나 마음가짐에 따라 복을 가져올 수 있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뿌려놓은 태도의 씨앗들은 시간이 흘러 행복으로 돌아오거나, 괴로움으로 돌아오기도 하죠. 씨앗을 뿌리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니 어떤 씨앗을 뿌릴지 선택하는 마음가짐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책을 직접 읽어보시면서 희망의 씨앗을 마음에 심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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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27건) 한줄평 총점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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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평점4점
괜찮았습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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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7 | 2021.12.06
구매 평점5점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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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 | 2021.12.04
구매 평점5점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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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 | 2021.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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