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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 48개국 108명의 시인이 쓴 팬데믹 시대의 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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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290g | 128*205*15mm
ISBN13 9791197504181
ISBN10 1197504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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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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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턱에서 떨어지는 것은 피가 아니라 포도주
바깥에서는 새들이 지저귀고 있다:
세계는 지금 우리 것이다.
격리 중에도 당신은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하피즈, 힘내세요, 세계는 없어도 언어가 있으니
설령 당신의 시를 이해해주는 이가 새들밖에 없을지라도.
--- 「1, 괵체누르 체레베이오루(터키)」

여기에는 ‘그 시절’도 ‘다시’도 없다.
미래 없는 존재의 틀 속에 다양한 ‘지금’이 있을 뿐.
나의 모든 ‘지금’의 의미를 잴 수 있다면
그것을 남은 세제에 담그고
내가 신뢰하는 상표를 알아봐주세요, 의미 있는 접촉의 기억을
내 손에서 씻어내기 위해.
--- 「23, 멜리자라니 T. 셀바(말레이시아)」

이게 끝나면 나는 남은 인생을 아름답게 살 거야. 위험한 여자로. 꼭 살 거야. 두 살짜리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많이 죽었어. 아이는 강에서 썩는 오소리, 민들레에 묻힌 짜그라진 들쥐, 길을 건너지 못한 고양이, 바위틈의 웅덩이에 빠진 어린 까마귀에 대해서 말한다. 하지만 세계가 듣고 있는 것은 그 목소리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이국의 바람이, 사나운 혀를 놀리고 우리 고막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있다.
우리는 가만히 있다, 호흡마다 죽음이 있는 것을 알고.
--- 「54, 시안 멜란젤 다피드(영국)」

내일이 또 온다고 했지만
그 내일이 오늘이다
그리고 아무도 숨을 쉬지 못한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어
칠월은 멀었는데 이제 칠월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 「85, 라울 지멜리(카메룬)」

나는 어느 다른 장소들과 맞바꿔 호흡을 얻는다
날개의 모든 깃털 하나하나가?면도날
내 그림자가 목소리들의 바다를 깊이 자르며 간다
고독의 황조롱이가
발톱으로 희망을 움켜쥐고 있다
나의, 그리고 당신의 아이들에게 먹이기 위해.
--- 「100, 이오아나 모퍼고(루마니아)」

나는 잠시 숨을 멈췄어
혹시 내 숨소리 때문에 네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봐
빛이 들어오는 거실, 정돈된 가구와 식기들, 무심코 슬
픔이 찾아올 정도로 조용한 시간
차마 창밖을 내다볼 수는 없었어
그 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났어
--- 「104, 황인찬(대한민국)」

하피즈도 황조롱이도 다 고독한데 그 존재 양식은 정반대다. 하피즈는 평생 한곳에 살면서 깊은 사색으로 정신의 심연까지 내려갔다. 황조롱이는 끝없는 하늘을 향해 어디까지나 일직선으로 날아간다. 그것은 마치 고독 속에서 말을 짜내면서 시공을 넘어 타자 혹은 초월자를 만나는 ‘시 쓰기’의 본질을, 정신의 수직성과 언어의 수평성으로 상징하는 것 같다. 누가 지시한 것도 아니고 의논한 것도 아닌데 이러한 메타포가 자연스레 나타난 것은 경탄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기적도 우연도 아닌, 지성의 바탕 위에 시적상상력을 갖춘 호모사피엔스의 숙명이자 필연일 것이다.
--- 「닫는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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