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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장례

[ 친필 사인본 , 양장 ] 현대문학 핀 시리즈-소설 045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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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2월 2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214g | 104*182*20mm
ISBN13 9791167901903
ISBN10 116790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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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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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의 인생을 훔친다면
그것은 제법 공정한 거래이지 않겠습니까?”

나는 『K의 장례』를 진지한 존경에 관한 이야기로 읽는다. 진지한 존경에는 항상 배반감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 인생의 전반부를 지나는 지금 (다소 끔찍하지만 백세 시대라는 것을 전제했을 때의 이야기다) 그간 숭배에 가까운 존경과 사랑으로 표상되어왔던 모든 존재들에 의문을 갖는 것을 넘어서, 딱히 부정하지도 거부하지도 않는 순간 대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죽음과 더불어 이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 ‘자유’다. 작가 천희란이 여태껏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대상을 진지하게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 사랑과 존경에 책임을 지려하고 최선을 다했는지 나는 증언할 수 있다. (……) 언제나 정직하기에 그만큼 농밀한 문장을 끊임없이 써내려가는 작가가 내내 자유롭기를, 그 자신이 늘 원했듯, 실제로 죽지 않고 죽음에 육박하는 작품을 쓰기 위해 용기 내서 책상에 앉아주기를 바란다.
---「박민정_발문」중에서

나는 몰랐다. K가 내게 언제든 그를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하더라도 그 자유가 내게만 주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을. K가 나를 배반할 자유 역시 존재했다는 것을. 그리고 나와 K, 둘 중 누구도 아닌 제3의 존재가 우리의 계약을 언제든 파기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그것을 단지 죽음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어떠한 제약도 없이 우리의 삶을 쥐고 흔들 수 있었던 존재, 어쩌면 그 운명의 이름이야말로 그도 나도 가질 수 없었던, 자유였다.
--- p.42

‘강재인 선생께’
발신인의 이름은 없었고 연구실의 주소나 연락처도 적혀 있지 않았다. 나는 봉투를 옆구리에 끼고 바닥에 부려놓았던 나머지 우편물을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그리고 연구실 옆에 붙은 명패를 확인했다. 강재인 교수. 본명이 적혀 있기야 했지만, 공식적인 문서나 고지서를 제외하면 쓰일 일이 거의 없어진 이름이었다. 동료 교수나 학생들도 나를 강재인이라 부르지 않았다. 손승미, 나는 그 이름을 선택했고, 그 이름으로 내 삶을 꾸렸고, 나와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승미라 불렀다
--- pp.51~52

“나는 영원히 도망치지 못할 거예요.”
“당신 아버지로부터요?”
“아뇨.”
“그 여자 작가로부터?”
“아니에요.”
“그럼 무엇으로부터요?”
“아마도 나 자신이요.”
--- p.58

문학은 인간을 속인다. 다른 모든 예술처럼, 그 어떤 예술보다 현란하게. 언어로 된 정신의 세계를 문학은 교란하고 지배한다. 좀처럼 장악되지 않는 의미의 공간을 논리에 제압되지 않는 본질의 영역인 양 떠받들게 된다. 진정성, 진실성과 같은 단어들이 뛰어난 작품들을 수식한다. 그러나 그것은 수사에 불과하다. 진실함은 좋은 작품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잘 쓰인 작품은 더 압도적으로 인간 정신을 장악하고, 그때 비로소 작품은 진실이라는 착각으로 정신을 눈멀게 하는 것이다. 내게는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와 그의 동료들이 살아온 삶과 그들이 작품 속에 그려낸 삶의 어긋남이 바로 그 기만의 증거였다.
--- pp.69~70

오랜 고민 끝에 답을 합니다. 궁금했던 사건의 전말을 이렇게 알게 되는군요. 아직도 믿기지 않을 만큼 얼얼하지만, 믿기로 했습니다. 다만 저는 이 이야기를 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전희정 선생님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어떤 유령의 목소리일 뿐이죠. 전희정 선생님의 진짜 목소리는 제가 읽은 것의 그것과는 다르리라고 확신합니다. 파일은 삭제됐고, 제게 남아 있는 파일은 없습니다. 내 아버지는 15년 전에 스스로 세상을 등졌고, 그것이 제가 알고 있는 유일한 진실입니다. 이제 선생님을 묶고 있는 밧줄은 없습니다.
--- pp.117~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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