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몇 번의 계절 동안 사랑할까. 튀김우동 끓여 먹던 한겨울을 지나 콩국수 들이켜는 초여름이 되었어도, 우리에겐 여전히 긴 삶이 남아 있다. 걸음 같은 풍경을 보고, 풍경 같은 노래를 듣고, 노래 같은 대화를 나누는, 그런 평범한 날들이 이어지고 이어진다. 돌돌돌 실타래를 감아가듯 이런 느슨하고 부드러운 삶이 좋아. 콩국수를 나눠 먹고도, 저녁이 지나가고도, 계절이 지나가고도, 세월이 지나가고도 헤어지지 않을 사람들이 곁에 있다. 나는 외롭지 않다.
---「고수리_한겨울 튀김우동에서 초여름 콩국수까지」중에서
그렇게 평생을 살아오다가 갑자기 생소한 땅, 시칠리아 시라쿠사에서 멸치 떼를 만난 것이었다. 오늘의 파스타를 시켰는데, 손가락 크기만 한 안초비 수십 마리가 올라간 파스타가 나왔다. 안초비에 가려 파스타 면이 안 보일 지경이었다. 잽싸게 남편 앞으로 파스타를 밀었다. 안초비와 눈도 마주치기 싫어서. 남편이 한입 먹어보더니 눈이 동그래졌다. 얼른 먹어보라며 내 앞으로 파스타를 다시 밀었다. 자기를 믿고 먹어보라며. 진짜 좋아할 거라며. 그 순간 여행자의 도전 정신이 내 옆구리를 찔렀다.
---「김민철_목적지는 음식입니다」중에서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둬야 한다. 기회가 되면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마셔야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는 부족하다. 이렇게 좋은 날씨는 정말 드물다고 여겨지는 날이면, 어떻게 해서든 그날을 테맥의 날로 만들어야 한다. 일기예보 앱을 성실하게 들여다보며 ‘테맥 길일’을 찾아 미리 약속을 잡아두는 정성도 필요하다. 시간도 계절도 우리를 기다려주진 않으니까.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오늘을 지금 여기에서 살아내야 한다.
---「김신지_가장 좋아하는 맥주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중에서
사실 맛으로만 따지면 톤키가 도쿄에서 최고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고기와 두툼한 튀김이 분리되는 이곳만의 특징이 있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촉촉한 밥과 아주 적절한 밸런스의 맛을 가진 돈지루, 그리고 별거 아닌데 자꾸 리필하게 되는 양배추 샐러드의 조화가 이곳을 ‘맛있다’라고 기억하게 만든다. 일본을 다시 간다면, 나는 어김없이 이곳을 또 방문할 생각이다. 10년 뒤에도 이곳의 단골이라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쉽게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시대에 ‘오래도록 함께’는 너무나 소중하니까.
---「무과수_무과수가 사랑한 음식 ③ 돈가스」중에서
새해를 맞아 여러 다짐을 해보지만 올해라고 작년보다 훨씬 근사한 인생을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요즘은 누군가가 나를 앞서가는 것만으로 내가 뒤처졌다고 느끼는 시대니까요. 뭐든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고기 정도는 저도 잘 구울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오늘도 고기를 굽습니다. 아내와 맛있게 나눠 먹는 것만으로 소소한 저녁식사의 행복을 느끼기엔 충분하니까요.
---「스탠딩 에그_고기 굽기에 진심입니다」중에서
오늘도 집에서 1분 거리 에스프레소 바에서 “아이스 카페라테 테이크아웃 하나”를 읊었다. 커피를 받아 들고 서서, 나의 주식인 이 아이스 카페라테를 맛있게 만들어주던 몇몇 카페의 사장과 직원의 얼굴들을 떠올렸다. 헤어진 연인의 얼굴을 종종 떠올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또 한 시절이 지나가는구나. 나는 새로운 아이스 카페라테와 함께 오늘을 맞이한다.
---「이랑_아이스 카페라테 테이크아웃 하나요」중에서
음식이라는 건 굉장하다. 단순히 맛을 넘어 마음을 전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근데 그 또한 해봐야 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만큼 많이 받아보기도 해야 한다. 호텔에서 난생처음 애프터눈 티를 맛보고 거기서 영감을 받아 사무실에서 티세트를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친구 집들이를 갔을 때 메뉴판을 손수 적어준 걸 보고 나도 파인다이닝처럼 손으로 연식당 메뉴를 코스로 구성하여 적어둔다. 경험이 중요하고, 그 경험을 직접 해보면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 연식당은 내게 사람과 잘 연결되는 방법을 공부하는 장인 셈이다.
---「이연_연식당의 달인」중에서
내가 운영하는 ‘밑줄서점’의 바로 옆에 카페가 있지만 문득 그때처럼 믹스커피가 먹고 싶을 땐 커피포트에 물을 올린다. 컵 또한 머그잔이 아닌 종이컵을 일부러 꺼낸다. 믹스커피는 종이컵에 마셔야 제맛. 돌이켜보면 낯설고 힘든 회사생활을 버틸 수 있던 건 유일하게 익숙한, 너무 친숙해서 다 아는 그 맛 때문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쓴 커피가 아니라 단 커피라서, 쓰디쓴 현실을 달게 바꿔줄 유일한 희망이었달까. 달달한 게 필요할 때면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믹스커피. 그럴 리 없겠지만 그 어떤 탁월한 마실 거리가 생겨난다 해도 믹스커피만은 사라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유미_나의 믿는 구석, 믹스커피」중에서
누군가 차려준 한 상은 그래서 이 세상에 어떤 이가 나 하나를 생각해주고 있다는 증표처럼 느껴진다. 내가 잘 못하는 일이다 보니 존경과 사랑을 느끼게 한다. 20년이 지나도 잊지 않을 각인이 되고, 사랑을 시작하는 키가 되기도 하며, 말로 다 전하지 못한 위안을 담은 언어가 된다. 밀키트면 어떻고, 배달 음식이면 어떤가. 내 앞에 있는 그 ‘집밥 같음’은 곧 따끈함, 연결,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인 것이다.
---「임현주_집밥, 집밥 같음의 위안」중에서
“밥 왔어요. 식사부터 하세요.” 음식을 세팅하면 폴폴 흘러나오는 냄새에 이끌려 사람들이 기지개를 펴며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고, 아직 앉아 있는 이의 자리로 가서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거 아닙니까? 빨랑 오세요” 하며 잡아끌죠. 그렇게 둘러앉아 서로 왜 야근하고 있냐고 묻고 다음에 시켜볼 음식 이야기도 하는 (먹으면서 먹는 이야기 하는 건 국룰이잖아요), 그 별거 아닌 시간 덕에 힘내서 남은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 -정문정_먹고 살자고 하는 거니까, 우리 일단 밥부터 먹어요」중에서
세상에 절반쯤 되는 음식을 먹는다면, 나머지 절반쯤은 싫어해도 좋다. 무엇이든 그럴 것이다. 나의 가족이나 친구 등 내 곁의 사람이 좋아하는 것의 절반쯤을 내가 싫어하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집단주의 문화를 만들어왔다. 앞으로는 그보다 더 자유롭고 서로의 취향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면 좋겠다. 오이 싫다는 이야기를 너무 거창하게 한 것 같지만, 사실 나에겐 편식과 관련하여 서러운 기억들이 제법 있다. 그래서 ‘편식하는 사람들이여, 단결하라!’를 이번 기회에 외쳐본다.
---「정지우_편식하는 사람들이여, 단결하라 」중에서
나는 정성껏 빵을 굽고, 친구들의 머릿수를 헤아리고, 예쁘게 포장까지 해내는 만두의 시간들을 자주 상상해보곤 했다. 그러다 보면 그 애의 정성이 불가사의해지는 시점이 왔다. 요리를 형벌로 여기는 내게는 만두의 재능과 열심, 착한 마음씨의 존재가 의아했던 것이다. 나중에는 문득, 사람이 사람에게 손수 먹을 걸 만들어주는 것만큼 숭고한 애정 표현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후로는 더럽게 맛없는 식당에 가더라도 예전처럼 화가 나지 않았다. 성의가 있든 없든, 돈을 받든 안 받든, 그게 그 사람의 직업이든 아니든… 내게 온전한 먹거리를 내어주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생긴 것이다..
---「정지음_빵순이 관찰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