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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리커버] 트로피컬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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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컬 나이트
[도서] 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저 한겨레출판
10% 13,500
트로피컬 나이트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8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352g | 128*188*30mm
ISBN13 9791160405446
ISBN10 1160405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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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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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채널에서 종종 방영하던 영화 〈할로우맨〉을 기억하나요? 투명인간이 나오는 SF 스릴러요. 그 영화 같았어요. 교실의 누구도 저를 보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좋았죠. 말 그대로 사라지고 싶은 날이었잖아요. 평소에 못되게 굴던 아이에게 골탕을 먹이기도 하고, 자잘한 장난을 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점점 무서워지더군요. 아무도 저를 찾지 않았거든요. 이러다가 정말 영영 사라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울면서 집으로 갔습니다. 다행히 다음 날에는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어요. 아이들은 하루 동안 제가 없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짝꿍이 놀리는 건 여전했지만요. 네? 말도 안 된다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어린 시절이니, 언젠가 꾼 기묘한 꿈을 현실로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생각이 납니다. 어른들도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순간들이 있잖아요. 아이들이라고 다를까요. 왜, 늘 집에 가고 싶다고 울잖아요. 그게 그 말이죠.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곳, 나를 상처 주지 않는 곳에 가고 싶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제 말은 사라진 재이 또한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입니다.
--- pp.11~12

옥주는 자신이 언제든지 먹힐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자신이 키우는 건 말 안 듣는 손주나, 길고양이 같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석류가 자신을 먹어도 상관없다는 말이었다.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그랬다. 옥주는 아이러니하게도 언제 자신을 해칠지 모르는 석류 덕분에 두려움을, 공포를 덜어낼 수 있었다. 외롭게 혼자 죽음을 맞이하고 이불 속에서 썩어갈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석류를 키움으로써 자신은 혼자 죽지 않을 것이다. 썩지도 않을 것이다. 자신이 죽고, 더 이상 고기를 줄 사람이 없으면 눈앞의 양분인 자신을 붉은 눈의 석류가 먹어치울 것이다. 기왕이면 석류가 아주 깨끗이 자신을 발라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썩을 살점도 없을 만큼 깨끗이, 오랫동안 배고프지 않게 두고두고 발라 먹었으면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 좀 더 나중의 일. 그런 미래를 위해서는 석류가 자신의 곁에서 버텨야만 했다.
--- p.41

“엄마도 어렸을 때 넘어온 편이라 그리 어렵지 않게 적응했다고 들었어. 딱히 크게 힘들어하지는 않았다고, 아빠 말로는 그래. 그런데 또 모르는 일이지. 아빠는 엄마가 아니고, 엄마가 되어본 적도 없으니까. (…) 엄마는 활발했어. 직장에서 친구도 많았고, 여기저기 잘 놀러 다니고,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 배워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어서 오히려 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거든. (…)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진짜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는 날들이 있었어. 그럴 땐 되게 난감해. 엄마도 자기가 왜 우는지 모르는데 그냥 막 눈물이 난대. 엄마도 모르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그냥 가만히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거지. 그럴 때면 엄마가 너무 낯설고…… 슬펐어.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 나는 엄마를 평생 완전히 이해할 수 없겠구나. 당연하잖아. 본인도 본인을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렸는데.”
--- pp.92~93

릴리. 나는 아마도 세상을 만지는 시도를 할 거야. 동시에 내가 잃어버린, 떨어져 나간 나의 일부를 찾아 나설 거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 찾아 나서는 과정보다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더 길지도 몰라.
--- p.104

엄마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지금 저 모습이 엄마가 살아온 삶 자체일 테니까. 하지만 엄마와 나는 다르다. 나는 엄마의 삶을 살아본 적 없다. 엄마 역시 내 삶을 살아보지 않았다. 그 당연한 사실을 왜 받아들이지 못하지? 누구 하나 들르는 이 없는 원룸에서 홀로 순간과 감정을 곱씹다 보면 늘 같은 물음을 마주했다. 나는 왜 나를 괴롭게 한 그들보다도 엄마가 더 원망스러운 걸까. 나는 왜 엄마를 쉽게 용서할 수 없나. 그리고 문득 깨닫는 것이다. 애정과 배신감은 정비례한다는 걸. 또한 아직도 나는 엄마를 믿고 싶어 한다는 걸 말이다.
“나는 늘 누군가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해.”
언젠가 연우 언니가 잔뜩 취해 중얼거린 말이 뇌리를 스쳤다. 언니가 사라지기 2년쯤 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복수. 누구를 향한 복수인지,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엄마가 말했지. 괴롭히려고 일부러 이러는 거냐고. 맞다. 난 일부러 이러는 거다. 이건 엄마를 상처 입힌다는 점에서 복수와 비슷하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다. 단지 이해받고 싶을 뿐이다.
--- p.114

[수안아, 나 지우야. 너 미주랑 연락해? 아니라면 다행인데 걔 멀리하는 게 좋아. 걔 다단계야. 동창회 와서 애들 여럿 등쳐먹고 잠수 탔어. 너도 조심해.]
진동과 함께 도착한 재난 경보 문자가 지우의 메시지를 덮었다. 근방에서 먼지바람이 일고 있다는 경고음이 울렸다. 수안은 지우라는 이름의 지인이 보낸 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메시지는 그대로였다. 수안은 핸드폰을 노려봤다. 지우가 누구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워낙 흔한 이름이기도 하고 고등학교 동창 모두를 기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쩌면 진짜 동창이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 동창이 맞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다. 수안에게 이 메시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평소에는 까마득하게 잊고 살다가, 죄책감을 떨치기 위해 아무렇게나 보낸 문자 한 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자신을 등쳐먹기 위해서라도 매일 찾아오는 미주가 더 중요하다. 수안은 무표정으로 답장을 작성했다.
[알고 있으니까 신경 꺼.]
--- pp.184~185

살아 있는 것은 부드럽고 말랑하며 따뜻하다. 그 부드럽고 말랑하고 따뜻한 피부가 나를 감싸자 죽을 것 같았다. 힘은 또 어찌나 센지 숨까지 막혔다. 온몸이 지글지글 타고 있었다. 이러다 정말 프레디 크루거가 되어버릴지도 몰라. 나는 은성에게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나는 진짜 곰 인형이 아니라 곰 인형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배고픈 몽마다. 몽마로서의 역할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몽마. 몽마가 더 이상 나쁜 꿈을 불러오지 못하면 어떻게 되지?
--- pp.221~222

체다가 쪼그려 앉은 나의 어깨를 위로하듯이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감촉이었다. 그대로 체다를 안아 도망치고 싶었다. 고양이 별의 사정이고 뭐고, 그냥 나랑 살면 안 돼? 그런 질문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참았다. 체다의 두 눈에는 어떤 책임감이 서려 있었다. 집 안에 나타난 바퀴벌레를 잡아줬을 때처럼 단단한 눈이었다. 나는 체다를 품에 꽉 안으며 말했다.
“언제든지 돌아와. 기다릴게.”
체다도 팔을 벌려서 내 목을 껴안았다. 부드럽고 따뜻한 털북숭이 팔. 이 온기를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 p.249

“문을 넘었고 많은 걸 보았어. 너를 죽게 하지 않을 거야. 나도 죽지 않을 거고.”
---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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