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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냄새

태초의 냄새

[ 저자 친필 사인본 , 양장 ] 현대문학 핀 시리즈-소설 049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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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0월 2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210g | 104*182*20mm
ISBN13 9791167902252
ISBN10 116790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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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외할머니도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 산 사람은 자신만의 냄새를 갖게 마련이라고. 아니다. 날 때부터 누구나 냄새를 갖지만 살다 보면 점점 더 자신에게 꼭 맞는 냄새를 갖게 된다고 했었다. 그러다 할머니만큼 나이를 먹으면 슬슬 그 냄새를 풍기게 된다고.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면 눈치챌 수밖에 없을 만큼 아주 풀풀.
--- p.19

“근데 여기 왜 망했을까? 완공됐으면 제법 멋진 아파트였을 것 같아. 평수도 넓고 경치도 좋고……. 이런 데서 살고들 싶어 할 텐데.”
“운이 나빴겠지.”
“넌 맨날 운 때문이라고 하더라.”
“운칠기삼 몰라? 사람은 운이 거의 전부야.”
--- p.48

“나 냄새가 안 나.”
“정말? 다행일지도 몰라. 나 하루 제대로 못 씻었더니 머리 냄새 장난 아니거든. 너한테서는 별로 안 나는 것 같은데.”
“냄새가 아예 안 맡아진다니까. 이거 코로나 후유증 아냐?”
그건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코로나의 후유증이긴 했다. 코로나가 유행일 때 유명한 캔들 제품의 리뷰에 향이 거의 나지 않는다는 항의가 무척 많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 p.83

K는 차를 마실 때마다 그간 향으로 마셔왔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래도 적응해갔다. 냄새가 사라진 세계에 적응하는 것이 아주 어렵지는 않았다. 가끔 무언가가 타는 냄새를 맡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기는 했다. 그래서 요리를 할 때는 가스불을 떠나지 않았고 방 안에서 향초를 피우던 취미도 그만두었다. 하수구 냄새나 뭔가가 썩어가는 것 같은 악취를 맡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맘이 편해지기도 했다. 혹시 자신에게서 냄새가 나지는 않을지, 그런 게 걱정이 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뭐 어쩔 것인가. K는 이제 냄새에 관한 것이라면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 p.89~90

후각을 잃은 지 몇 주 지나지 않았을 때, 그래도 여전히 곧 냄새를 맡게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을 때 영상통화를 하다가 P가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냄새가 그렇게 중요한가? 두 사람은 다른 모든 감각에 비하면 냄새는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치? 냄새는 몇 위쯤 될까? 꼴등이려나? 좋아,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내가 죽었어. 근데 유품 두 가지 중에 딱 하나만 골라서 가져갈 수 있대. 내 비밀 일기가 든 메모리카드랑 내가 자주 입어서 내 냄새가 밴 셔츠. 넌 뭘 가져갈래?”
--- p.104

태초에 냄새가 있었다면 그다음엔 뭐가 있었는데? 그날 꿈에는 할머니가 나왔다. 아주 옛날에 K가 할머니에게 했던 질문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다음엔 작은 바람이, 입김이라고 부를 만한 그런 바람이 있었지. 오물오물한 입을 동글게 말아 태초의 다음 순간을 흉내 내는 할머니의 숨이 방 안에 퍼졌다. 할머니의 싸구려 담배 냄새, 동생의 안전화 냄새, 무당벌레가 싸우는 냄새, 투명한 냇가의 물비린내, 반려견의 냄새, 들개의 냄새, 미처 떠나지 못한 냄새 들이 K의 삶 곳곳에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뒤섞여버리면 어쩔 수 없이 악취가 되어버리는 그 냄새를 꿈속에서 맡고 또 맡았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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