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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 인문 기행

서경식 저 / 최재혁 | 반비 | 2024년 01월 19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7 리뷰 14건 | 판매지수 4,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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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1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326g | 120*188*16mm
ISBN13 9791192908878
ISBN10 1192908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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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나의 영국 인문 기행』에 이은 ‘나의 인문 기행’ 시리즈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책. 미국 편에서도 식민주의와 디아스포라에 관한 저자만의 냉철한 통찰이 스며 있다. 여전히 횡행하는 국가폭력과 전쟁 속에 인류의 희망을 모색한다. - 손민규 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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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끝에, 어차피 간다면 이참에 오고 갈 때 뉴욕에 들러 시간을 내서 예전에 방문했던 장소를 다시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제 내 나이를 생각하면 앞으로 미국을 여행할 기회는 더 이상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자 먼 옛날 기억의 단편도 되살아났다. 좋은 기억만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라는 인간의 중요한 일부를 이루고 있는, 그런 절실한 기억이다. 그 기억들은 내 속에 있는 ‘선한 아메리카’의 기억과도 연결된다.
--- p.23

일본으로 돌아가는 날, B 씨는 공항까지 배웅을 나와, “비행기에서 먹어.”라며 오늘 아침 삶았다는 달걀을 대여섯 개 건네줬다. 언젠가 내가 삶은 달걀을 좋아한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게다.
그때의 감각이 30년 후에 되살아났다. 거꾸로 말하면 60대 중반을 지난 내 자신이 뜻하지 않게 30대로 다시 돌아간 셈이다. ‘젊다’고 해서 반드시 즐겁고 기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일에 어쩐지 어색하고 미숙하며, 가시가 돋혀 있으며, 더할 나위 없이 고독하기도 하다. 그런 감각까지 맨해튼에서 되살아났다. 30년전의 나는 광기와 죽음의 갈림길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 갈림길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지인들도 적지 않다. 그때 나는 지금 이 나이까지 살아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B 씨는 지금도 건강할까. 그때의 일을 생각해낸 것도 호퍼의 작품이 가진 힘 때문이다.
--- p.41

에드워드 호퍼는 1882년, 뉴욕주 나이액에서 태어났다. 「나이트호크스」는 심야의 다이너(간이 식당)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그린 작품으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도 불린다. 1942년, 즉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제작한 그림이다. 심야 식당에 앉아 있는 남녀는 어떤 관계일까.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까. 아니면 어떤 이야기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닐까. 이 그림은 바라보는 자에게 다양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호퍼가 그린 도회 풍경에는 대부분 이렇게 투명하고 비통한 공기가 감돈다.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미국 대도시의 공기 그 자체인 셈이다.
--- p.41, 43

“주여, 언제까지입니까…….”
이 문구는 말 그대로 끝이 없을 어두운 밤과 같았던 그 당시,많은 한국인들이 공유했던 말버릇과도 같았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다만 나는 이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고 할 때마다 당황해서 삼켜버리기 일쑤였다. 신을 믿지 않는 스스로를 자각했기 때문이었고, 한편으로는 ‘언제까지’라고 물어봤자 희망적인 대답 따위는 있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 p.57

카리타의 공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1930년대 베를린의 어느 카바레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유대인 차별과 배외주의를 부르짖는 나치가 대두하여, 세상 사람들이 ‘설마’라고 중얼거리는 사이에 히틀러가 정권을 잡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군홧발 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왔던 시대다. 지금은 2016년의 뉴욕, 트럼프(당시는 대통령 후보)의 노골적인 인종차별과 전쟁 도발이 먹구름처럼 세계에 나지막이 드리워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서 눈을 돌리듯, “설마 그가 대통령이 되는 일은 없겠지.”라고 중얼거린다.(이러한 낙관은 나중에 배반당한다.) 나는 카리타 마틸라의 노래에 도취되면서 동시에 세계 전체가 몰락해가는 어두운 예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 p.47

세계는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나 자신도 그런 피바다에 빠져 익사할 것만 같았다. 내가 처음 서양 미술 순례를 떠난 것은 1983년 10월. 아키노 살해 사건으로부터 두 달 정도 지난 뒤였다. 일시적이나마 ‘다른 세계’로 몸을 옮겨가고 싶었고, 어떻게 해서든 숨을 쉬고 싶었다. 하지만 미술 순롓길에서 닿는 곳마다 나를 끌어당긴 작품 역시 역사 속 잔혹한 장면을 그린 피투성이 그림들이었다.
--- p.59, 61

그중에서 뜻밖에 발을 멈춘 채 넋 놓고 본 작품이 바로 조지 벨로스의 「이 클럽의 두 회원」이었다.
정말이지 당시의 내 기분과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보고 있자니 말로 이루 표현 못할 처참함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복받쳐 올라왔다. 단순히 주먹질을 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이를 구경거리로 삼아 도박을 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너무나도 명백한 어리석음과 잔혹함. 그것은 억울한 정치범 여덟 명을 순식간에 처형해버리는 행위, 야당 정치가를 공항에서 사살하는 행위와도 어딘가 서로 통한다.
--- p.67

두 사람은 그때까지 신고 있던 나달거리는 구두를 주저 없이 버린 뒤 새 신발로 갈아 신고 워싱턴 거리를 경쾌하게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떠올랐다. ‘아, 이건 미국 영화다…….’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고 땀과 피가 튀는 벨로스의 그림 속 세계에서 구둣방 장면을 지나, 씩씩하고 시원스럽게 사라져 가는 두 여성의 뒷모습에 이르기까지, 마치 한 편의 미국 영화 같았다. 나 스스로도 그 영화 속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주연 배우는 필경 「허슬러」(1961)의 폴 뉴먼일까. 내 마음은 변함없이 어두웠지만 그래도 이 ‘미국 영화’로 인해 마음을 늘 뒤덮고 있던 검은 구름이 한순간만은 걷히고 맑아진 것 같았다.
--- p.71, 73

멕시코 벽화운동이라는 용어만 듣고서 나는 주로 농민 생활을 그린 민속적 작품을 상상했다. 어리석고 얕은 생각이었다. 리베라를 ‘좌익 화가’라고 여겼던 미숙한 선입관 때문에, 자본가 중의 자본가라 할 만한 포드의 지원을 받았고 작가 스스로도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 역시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직접 벽화 앞에 서보니 그러한 의문을 훌쩍 넘어서는 설득력으로 육박해오는 대작이라는 사실만은 틀림없었다.
--- p.107

사상가, 정치가로서 리베라는 패배자다. 하지만 나는 그런 리베라를 우습게 여길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저 벽화 앞에서 나는 마치 고대 유적 앞에 섰을 때 느낄 법한 깊은 흥미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외경심을 품게 된다. 리베라의 벽화는 인류의 정신사에 있어 중요한 사료다. 리베라가 아즈텍의 지모신(地母神) 코아틀리쿠에에게 영감을 얻었듯, 미래의 인류가 폐허 속에서 이 벽화를 발굴하여 인간해방의 새로운 꿈과 활력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 비웃는 것은 인간 정신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천박함에 몸을 맡겨버리는 일은 아닐까.
세계 각지에서 해방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리베라의 작품은 지금도 말을 건네고 있다. 이를 받아들여 계승하려는 자 역시 끊이지 않는다. 한국의 민중미술 운동이 좋은 예다. 사상가, 정치가로서는 패배자인지 모르지만, 예술가로서 디에고 리베라는 다른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
--- p.123

차를 갓길에 세운 운전사가 계곡 쪽을 가리키며 “저기가 죽음의 산이에요.”라고 말했다. 파나마로 통하는 도로 건설에 동원된 노동자가 많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고 했다. 희생자는 주로 자메이카에서 건너온 흑인 노예였다. 카리브해 제도의 기후에 익숙해 있던 그들은 한랭한 고산 기후와 중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깊숙한 아프리카 대륙에서 대서양 건너로 끌려온 뒤 카리브해 지역에서 다시 이 깊은 산속으로 연행되다시피 하여 목숨을 빼앗긴 셈이다.
햇빛이 드는 아름다운 마을을 품은 분지 저편으로 첩첩이 이어지는 산맥이 보였다. 나는 그 산줄기가 지구를 반 바퀴 돌아 저 멀리 일본 규슈나 홋카이도까지 이어지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도와 광산에서 힘겨운 강제 노동에 쓰러진 조선인의 유해가 묻힌 죽음의 산까지 말이다. 지구 도처에서 식민주의의 폭력으로 희생된 사람들이 원통함과 분함 속에 묻혀간 죽음의 산이 이어지고 있다.
--- p.141

「베드 다운 로케이션」이라는 제목이 붙은 설치 작품은 관객이 방 중앙에 설치된 넓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는 방식으로 감상한다. 거기에는 수없이 많은 별이 반짝이는 예멘이나 파키스탄의 밤하늘이 비친다. 하지만 점차 날이 밝고 해가 떠오르자 하늘은 무인공격용 드론으로 가득 메워진다.
가장 큰 방에서는 대형 스크린에 다양한 사람의 얼굴이 슬로모션으로 흐른다. 모두 아연실색하여 말을 잃은 듯한 표정.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아마 9·11 직후 그라운드 제로를 바라보는 사람들인 듯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 장면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스크린 뒤로 돌아 들어가면 거친 화질의 흑백 영상이 흐른다. 헛간 같은 방에 끌려온 남자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다. 미국 병사인 듯한 인물이 남자를 향해 라이플 총구를 들이대며 “너 알카에다지?”라고 심문한다. 남자가 아니라고 하자 병사는 “파키스탄 정부에 연락해서 네 아내를 잡아넣을 수도 있어!”라고 위협한다
--- p.149, 151

그래도 ‘선한 아메리카’ 역시 여전히 분투 중이다. 미국 전역으로 퍼진 트럼프를 향한 항의 운동, 비판의 펜을 놓지 않는 매스컴, 미국이 일방적으로 ‘테러 위험국’으로 선포한 이슬람권 7개국 일반 시민의 입국을 일시 금지한 ‘7개국 출신자 입국금지조치’에 사법부가 정지 명령을 내린 것 등이 그 사례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린 입국금지조치에 대한 항의 의사를 담아 모마는 해당 국가 출신인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했다. 전시 해설에는 “환대와 자유라는 궁극의 가치가 이 미술관과 미국에게 불가결하다는 점을 확실히 드러내기 위해 전시를 기획했다.”라는 내용이 쓰여 있다. 「게르니카」의 망명지였던 모마다운 기상이 여기에도 살아 있다.
--- p.153, 155

“아, 벤 샨…….”
옛 동무와 다시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어이, 벤 샨! 여기 있었어?” 어깨라도 두드리며 그렇게 불러 보고픈 기분이었다. 생각해보면 벤 샨이야말로 나에게 ‘선한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화가다.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공화당의 차별주의자 트럼프가 뽑혔다는 소식이 악몽처럼 다가왔던 그때, 모마의 한 전시실에서 그리운 옛 동무와도 같은 벤 샨의 그림과 재회할 수 있었다. 「어느 광부의 죽음」이라는 작품이다.
--- p.165

벤 샨은 보통 ‘사회적 리얼리즘’ 작가로 불린다. 하지만 내가 그의 작품에서 받은 인상은 소련, 동독, 혹은 중국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회화와는 많이 다르다. 따뜻한 색채가 특징이며, 현실의 충실한 재현이라기보다 마치 어린아이의 그림 같은 감촉과 조형 감각을 보여준다. ‘어린아이의 그림’이라고 말하면 오해하기 쉽겠지만, 감미롭고 아기자기하다는 뜻이 아니다. 얄팍한 치유의 의미를 담았다는 것도 아니다. 슬픔이나 노여움 같은 감정이 지닌 본질을 이렇게 따뜻하게 전할 수 있다니…….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벤 샨만의 독특함이다.
--- p.167

나는 사이드에게 음악이라는 측면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꽤 늦게 깨달았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매년 여름 잘츠부르크 음악제를 찾으면서 서양 고전 음악의 깊고 넓은 세계를 만나 그 경험을 『나의 서양음악 순례』라는 책으로 그럭저럭 펴냈을 무렵에야 사이드에게서 음악이 가진 중요성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내 경험은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인 나 자신에게 ‘서양 고전 음악’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라는 질문에 관한 답을 더듬어 찾아가는 일이었다.
--- p.207

지금으로부터 10년 정도 전,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이 오페라를 보았을 때, 피날레 곡인 6중창 「여자는 다 그래」에 이르자 예기치 않게 불의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재미있으면서도 서글프다’고 해야 할까, 정체 모를 ‘인간의 부조리’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감정이복받쳐 오른 탓이다. 이상하고도 신기한 순간이었다. 사이드가 말한 대로 나 자신이 “아이덴티티의 수미일관성”이라는 내적 규율에 속박된 근대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모차르트는 물론, 이런 점을 지적한 사이드 역시 대단한 존재다. 사이드가 지녔던 착종된 아이덴티티를 함께 생각해본다면 그의 「코시 판 투테」론은 적어도 나에게는 충분히 납득이 된다.
사이드라면, 내가 이번에 본 오페라 「로베르토 데브뢰」를 어떻게 평가할까. 그런 생각을 하자니 문득 넓은 객석 어딘가에 그가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 p.213, 215

마음이 편치 않았던 까닭은 그곳이 유명 관광지로 바뀌어 상업주의적인 거대한 기념물이 세워졌으리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9·11이 일어난 배경에는 미국(국제금융자본)이 제3세계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나간 부정과 비리의 역사가 자리하지만, 그 사실에는 굳게 입 다문 채 미국 본위의 서사를 이야기하고 있을 거라는 예측 때문이기도 했다. 9·11을 기점 삼아 오늘날까지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에서 자행된 수많은 잔학과 횡포를 ‘희생자 추도’라는 미사여구로 숨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 p.217, 219

9·11 테러 발생 직후, 미국의 텔레비전 방송국은 사건 소식에 환호성을 지르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영상을 내보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반사적으로 사이드를 떠올렸다. 사이드라면 지금 어떤 말을 했을까. 문제의 영상은 ‘팔레스타인 사람=테러리스트’라는 서구인의 평균적인 편견을 더욱 공고히 해 적개심을 부채질하는 효과를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민중이 사건 소식에 환호하고 싶어진 감정의 원인을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희생자를 살피는 마음이 부족하다고 비난하기에 앞서, 미국을 뒷배로 둔 이스라엘의 횡포로 팔레스타인 민중은 또 얼마나 부당한 희생을 당해왔는지, 그 희생에 자신은 얼마나 관심과 동정을 가졌는지도 반성해보아야 할 일이다.
--- p.221, 223

세계 각국에서 찾아든 관광객과 뒤섞인 채 밝은 햇볕이 내리쬐는 그라운드 제로에 서서 나는 새삼 생각했다. 9·11에 의해 막이 열린 21세기, 인류는 앞으로 얼마나 더 파괴와 살육을 쌓아나가게 될까.
--- p.223, 225

“파멸을 향해 갈 운명임을 알고 있”다면서도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거의 승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진실을 말하겠다는 의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치 한 편의 시와 같다.
사람은 승리를 약속받았기에 싸우는 것이 아니다. 넘쳐나는 불의가 승리하기 때문에 정의에 대해 되묻고, 허위가 뒤덮고 있기에 진실을 위해 싸운다. 단적으로 말해 사이드는 우리에게 현대를 살아가는 자에게 있어 도덕의 거처는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 p.233

사이드와 마찬가지로 고독한 자, 즉 복수의 공동체에 걸쳐진 인생을 성실히 살아가고자 노력하지만, 그렇기에 어떤 공동체에서도 자기를 이해해주는 동조자를 얻지 못하는 사람이 이 세계에는 적지 않다. 사이드가 느낀 고독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결코 적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저마다 살아가는 장소에서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이며 고독한 자들이다.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놓인 자들은 아주 멀리서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만남을 열망하며 서로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갈라놓고 가로막는 장벽은 여전히 높고 견고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정표나 등대처럼 유달리 높이 서 있어주었던 사이드는 이제 우리 곁에 없다. 얼마나 거대한 상실인가.
--- p.245

그래도 그렇게 나누어진 단편 속에서 내가 ‘선한 아메리카’라고 생각하는 측면(이는 벤 샨이나 에드워드 사이드를 통해 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려 했다. 그 이유는 나 자신이 간직한 ‘선한 아메리카’를 향한 애착에서 비롯되었지만, 미국이라는 국가가 ‘선한 아메리카’의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기대를 놓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으로서는 실낱같은 기대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극동’ 출신의 한 디아스포라의 눈에 비친 ‘선한 아메리카’의 기억을 먼 장래를 위해 남겨두는 것도 무의미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 젊은 나날들, 그 암흑시대에 ‘선한 아메리카’는 나를 격려하며 힘을 불어넣어주던 존재였다.
--- p.252

미얀마에서 벌어진 처형 소식을 접하고, 그때의 애통한 마음이 반세기 넘게 지난 지금 또렷이 되살아났다. 그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반세기 전의 내가 다름 아닌 ‘진실’이며, 그 후로 어떻게든 평화롭게 살아온 나는 ‘허구’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병들고 괴로워하는 상황. 진실은 거기에 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허구’ 쪽이다.
--- p.257

‘아메리카’란 무엇일까. 당연한 말이지만 ‘아메리카’는 단일한 어떤 곳이 아니라, 여럿이 서로 갈등하고 항쟁하는 복수의 문화가 부딪히는 ‘장(場)’일 것이다. 나는 ‘아메리카’를 좋아하며, 동시에 무척 싫어한다. 그리고 이런 극단적 모순과 항쟁이야말로 ‘아메리카’이리라.
--- p.260

그래도 이 책을 쓰면서 당시의 나, 극동에서 온 정치범 가족인 젊은이에게 소박한 선의를 갖고 다가와준 사람들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그런 사람들의 작은 힘이 세계를 바꾼다.” 따위의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그렇게 말하기에는 나는 너무나 암흑만을 보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또는 아직도 더 크고 깊은 암흑을 볼 일이 남아 있는지도.
하지만 나는 지금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세계 여기저기에서 하루하루 현실에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내 경험의 작은 조각이라도 제시하여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간 그 자체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 그것이 나의 끝나지 않는 ‘인문 기행’의 한 페이지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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