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담이 이뤄진 계기를 우선 나부터 간단하게 설명하고 싶다. 기시 마사히코 씨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이 연재 중일 때였다. 웃음에 대해 쓴 글을 보았는데, 인간의 앞뒤 안 맞고 유치하고 애처롭고 잔혹한 측면을 묘사하는 문장을 접하고는 이런 필자가 있는지 몰랐다는 것이 부끄럽고 놀라울 정도였다. (…) 첫 만남은 2015년 4월 오사카에서였다. 주제로 인간 관계 등 몇 가지를 제안했는데, 이야기가 곧 탄력을 받았다. 그때 나는 1년에 한 번씩 떠나는 고베 휴가(1년에 한 번, 지칠 때면 고베로 도망가 1주일 정도 머물곤 했다) 중이었고, 세상 이런저런 일에 대한 피곤이 절정에 달했을 때여서, 기시 선생님께 대고는 어째서 사회가 이렇게 갑갑하고 살기 힘들고 자유롭게 숨도 못 쉬게 되어 가느냐고 물었다. (…) 학문이란 참 대단하다고 바보같이 생각했다. 좀 더 확실히 말하면 ‘진정한 사회학이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시작하며」중에서
첫 대담 장소는 오사카였다. 우리는 한큐 우메다 역 개찰구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아마미야 씨가 나타났다. 보자마자 처음 든 생각은 ‘와, 도쿄가 걸어 온다’였다. 고베 선 플랫폼에서 개찰구 밖에 있는 나를 향해 걸어 온 아마미야 씨는 오사카 시골 사람 눈에는 마치 ‘도쿄 그 자체’처럼 보였다. 그만큼 멋지고 우아했다. 단박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건 ‘돈을 들였다’ ‘화려하다’는 게 아니다. 아마미야 씨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 있다, 라는 주장. 아마미야 씨는 단지 멋진 게 아니라 존재감 또는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대담에 앞서 《여자를 열등감에 빠지게 하여》를 읽고 나는 박살이 났다. 일찍이 이만큼 자신과 정면으로 용맹하게 맞선 사람이 있었을까. 이 책은 아무렇게나 누워서 우하하 웃으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도록 쓰여 있지만, 나는 이 책이 자기와의 장렬한 싸움의 역사를 그린 현대의 일대 서사시라고 생각했다.
---「사이에」중에서
‘실제 만나서 나누는 대화’에는 불필요함도 위험도 많다. 하지만 아직 거기에만 있는 풍요로움도 있다. 무심코 이상한 얘길 해도 허용된다거나 아무 의미 없는 듯한 말에서 서로의 윤곽이 잡혀 간다거나. (…)
사람에게 뭔가를 말하는 것으로 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생각지 못한 반응을 얻는다거나, 생각의 실마리를 얻는다거나, 이야기하던 중에 자기 생각이 정리된다거나, 단순히 격려를 받기도 하고 때로 용기를 얻는 일도 있다.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세계는 풍요로워진다. 자신의 세계도, 타인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이 책이 그러한 대화의 계기가 된다면 많이 기쁘겠다.
---「마치며」중에서
지금 이 후기를 쓰는 시점에서도 아직 책 제목을 정하지 않았다. 그만큼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화제는 타자를 이해하는 것, 신뢰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것 주위에서 빙빙 맴돌았다. 작가와 사회학자, 우리는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응시하고, 그리고 말을 직조하는 작업을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리는 가끔은 양보 없이 대립하면서도, 타자를 신뢰하고 싶고, 타자와 함께 존재하고 싶다는 생각은 공유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담긴, 걷잡을 수 없는, 제목조차 정하지 않은 이야기를 기대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마치며」중에서
아마미야 한번 제대로 겪고 나면 인식하기가 쉬워지지 않나요? 그러면 다음에 부글거릴 때 왜 부글거리는지 이해할 수 있어요. 저는 질투심이라든지 열등감 같은 것과 오랫동안 투닥거려 왔기 때문에 길들이는 데까지 가지 않아도 ‘내가 무엇에 신경이 곤두서는지’를 올바르게 분석하는 건 상당히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과 대면할 때도 많지만, 대개는 그게 가장 포인트죠.
기시 그런 의미에서도 언어화하는 게 중요해요. 제 세미나 중에 자주 커플이 생기는 편이에요. 그런데 한번은 어느 남학생이 “그녀가 이번에 미팅 나간다고 말해서 엄청 싫은데 어떡하면 좋죠?”라고 상담해 오더라고요. “하지만 속박하는 걸로 보이기 싫어서 가지 말라고는 안 할래요” 하더라고요.(웃음) 그때 제가 “미팅에 가지 말라고 강제할 권리는 없지만, 미팅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분을 전할 권리는 있어”라고 했어요. 말로 기분을 전하는 건 가능하다고 하니 “그렇군요!”라면서 납득하더군요.
--- p.72~73
아마미야 ‘(결혼을) 안 해서 좋아’라고 생각하는 쪽이 편하기는 한데, ‘안 해’라고 결정하는 건 뭔가 제 진짜 마음과는 달라요. ‘안 하고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편이 좋겠어’라고 마음먹고는 있어요. 하지만 ‘안 해’라고 결정하는 건 모든 사람에게 실례 아닌가 싶은 마음도 있어요.
기시 그렇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보통 그런 감각을 유지하는 게 어렵지요.
아마미야 자신이 아무리 결혼 시장에서 가치 없는 존재라 해도, 어쩌면 자신과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런데 ‘나는 안 해’라는 건 출입구를 닫고 있는 거니까요.
기시 요컨대 편하기 위해서 아닐까요.
아마미야 포기하는 쪽이 편하죠. ‘희망을 갖지 않는 쪽이 편하다’고 여기고요. 하지만 그건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해요. 희망을 갖지 않는 쪽이 편하다는 건 뭔가를 방기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갖지 않는 쪽이 편하다는 건, 저는… 이런 말은 좀 이상하지만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해요. 살아가는 방식으로서. 상처 받아도 희망을 떠맡는 쪽이 아름다워요. 역시 희망이 좋습니다.
--- p.11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