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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베의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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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8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720쪽 | 1042g | 153*224*40mm
ISBN13 9788932919652
ISBN10 8932919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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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농담하는 거죠?」
「제가 드린 말씀은 모두 사실입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뭐든지 말씀해 보세요. 제가 증거를 보여 드릴 테니까요.」
마누엘은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려 경비원을 힐끗 보더니, 다시 그리냔을 쳐다보았다.
「그러니까 알바로가 귀족이었단 말이잖아요. 참, 후작이라고 했죠. 그뿐만 아니라 넓은 땅과 저택이 있고,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가족도 있다고요. 그럼 이제 아내와 자식들이 있다는 이야기만 남았겠군요.」 마누엘이 비꼬듯 말했다
--- p.32

「여러모로 신경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견딜힘이 없어요.」 그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지만, 노게이라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대신 마누엘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주차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알바로는 살해된 겁니다.」 노게이라가 그의 등에 대고 말했다. 마누엘은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는 사고로 죽은 게 아니에요. 살해된 겁니다. 이대로 그냥 넘어가면 모든 게 묻힐 거예요. 평생 그 짐을 안고 살 수 있겠어요.」
마누엘은 온몸이 마비된 듯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 순간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혹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는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 무시무시하면서도 불가해한 어떤 힘이 그를 현실로 내던져 버린 이상, 자신에게 어떤 상황이 닥치든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는 막막한 현실 앞에서 할 일은커녕 아무런 열의도 갖지 못한 채 무기력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저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기만 했다.
--- p.109

피해자와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행하는 것도 아니라면, 저 남자는 왜 굳이 무모한 일에 뛰어들려는 것일까? 그 이유를 도통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상류 계급에 대한 반감과 동성애 혐오 그리고 기성 체제에 대한 반항심 등을 감안하고도 어떤 강력한 이유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마누엘은 그가 수상한 이유를 숨기고 있지 않기만을 바랐다.
--- p.120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 그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우린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녀가 느닷없는 말을 던졌다.
「뭐라고요?」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당신 친구와 아무 짓도 안 했다고요.」
마누엘은 너무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일종의 이중 부정인 셈이죠.」 여자는 알 듯 모를 듯한 농담을 던지고는 혼자서 씩 웃었다. 「그와 만나기는 했지만 이야기만 나누었답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한 번도 그와 살을 섞은 적이 없다는 거예요.」
마누엘은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조용히 그녀를 보기만 했다.
「하지만 그의 동생은 달라요. 그는 여기 단골손님이에요. 그 사람은 혼자서도 여기를 자주 찾는데, 당신 애인은 언제나 그와 함께 왔어요.」
「애인이 아니라, 내 배우자예요.」 그는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그녀는 그의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들었는지 혼자서 계속 떠들어 댔다.
--- p.310

마누엘은 아름다운 시골 정경을 바라보면서 다니엘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음이 어수선하고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는 알바로가 대단한 재능과 능력의 소유자임을 잘 알았다. 뛰어난 업무 능력, 그리고 어떤 일에서든 쉽게 물러서지 않는 강한 자존심. 그가 광고 회사를 운영하면서 충분히 보여 준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다니엘이 말한 바와 같이 그토록 강한 소속감과 전통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건 왠지 낯설게만 느껴졌다. 다니엘의 말을 듣고 있으면 알바로가 전혀 모르는 사람 같았다. 마누엘로서는 쉬이 이해가 가지 않는 점들이 너무 많았다. 정말로 그가 한 일이 그렇게 훌륭한 것이었을까? 모든 것이 순수하고 깨끗했던가? 그렇다면 왜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까?
--- p.268

마누엘은 핸들 위로 고개를 숙였다. 큰 잘못을 저지른 듯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아드레날린이 과하게 분비되어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잠시나마 하는 데까지 해보자고 마음먹었던 자신이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그는 한때 자부심을 주었지만 이후로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그 말, 그리고 언제나 진심이었지만 한편으로 수치심을 안겨 주었던 그 말을 그날 밤 두 번째로 되뇌었다. 〈그는 내 배우자였어요.〉
--- p.322

「이제 그녀를 좀 내버려 두게. 이런 식으로 서로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은 당장 그만두고 같이 행복하게 살 기회를 찾으라고. 설령 각자 제 갈 길을 가게 된다고 해도 말이야.」
노게이라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 곁을 떠난다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다는 투였다.
「안 돼. 절대 그럴 순 없어.」 노게이라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대체 이유가 뭔가? 왜 평생을 불행 속에서 보내려고 하는 거지」
노게이라는 꽁초를 있는 힘껏 집어 던졌다. 담배는 길 위에 떨어지면서 불꽃을 일으켰다. 그는 화난 얼굴로 마누엘을 노려보았다.
「왜냐고? 나는 그래도 싼 놈이니까.」 그가 고함을 질렀다. 「난 그렇게 살아도 싸단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고? 만일 라우라가 나보고 나가라고 하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 그렇지만 그런 말을 하기 전까지는 여기서 꿋꿋하게 버틸 거라고.」
마누엘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한 거지?」 그가 불쑥 물었다. 그 순간 노게이라가 그의 옷깃을 잡았다. 당장이라도 한 대 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마누엘은 그의 코앞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질문을 되풀이했다.
--- p.483

일반 바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자네를 보면 말이야.」 그가 말했다. 「자네가 동성애자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고.」
「그래서 뭘 어쨌다는 거지」 마누엘이 대답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런 모습을 보면 아무도 자네가…….」
「하지만 사실인 걸 어쩌겠어. 노게이라, 난 동성애자라네. 그것도 태어날 때부터 말이야.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노게이라는 연거푸 손사래를 쳤다.
「이런 망할! 게이들하고 말해 먹기 정말 힘들구먼! 그러니까 내 말은, 자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거야. 하여간 미안하게 됐어.」 그는 다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그렇지만,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는 세상 모든 멍청이들 때문에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겠나. 우선 그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싶네.」마누엘은 자기 속마음을 두서없이 늘어놓느라 허둥대는 그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성애자들을 그토록 혐오하던 그가 갑자기 변한 것이 기쁜 나머지 잔을 높이 들었다.
「자, 위하여!」
노게이라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자네가 이상한 게이가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았으니까, 이젠 내 이야기를 할 차례일세.」
--- p.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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