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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순이 - 식모, 버스안내양, 여공

삼순이 - 식모, 버스안내양, 여공

: 시대가 만들고 역사가 잊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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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9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524쪽 | 760g | 152*225*35mm
ISBN13 9791188990429
ISBN10 118899042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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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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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 책의 독자, 특히 왕년에 ‘삼순이’였던 독자들에게는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과연 삼순이라는 비하 표현이 합당한가?’라는 문제에 봉착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워야 할 때 가장 고단했던 그들을 위로는 못 해줄망정 비하 표현을 해야 하는지, 마침표를 찍으면서까지 고민했다. 하지만 시대 상황에 충실하기로 결단 내렸음을 양해 바란다. 본인의 경험과 다르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굳이 변명하자면 각자 처한 환경이 천차만별이라 ‘최대공약수’를 뽑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마지막으로 알량하지만 필자의 인사를 받아주시길 간청한다.
“고맙습니다.” --- p.15, 「프롤로그」중에서

식모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1970년대 중반, 버스안내양은 1960년대 초부터 1980년대 초반, 여공은 1970년대 초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생활 전선에서 맹활약했다. 대략 20년 간격으로 흥망성쇠를 보여주는데, 이는 삼순이가 시대적 산물이라는 증거다. 그렇다면 이름을 달리한 삼순이가 지금도 존재하고 미래에도 존재할 거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실제로 그렇다. 지금 우리 주변에도 있다. (…) 미래의 삼순이는 누구일까? 필자의 짧은 지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지만, 누가 되었든 그들을 맞이할 우리의 자세에 이 책이 참고가 되길 바란다. --- p.519, 「에필로그」중에서

전 가구의 30퍼센트 이상이 식모를 두는 현상은 선진국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웬만한 중산층도 인건비 때문에 엄두를 못 내는데 당시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인 한국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수학 문제의 정답처럼 명확하다. 식모들의 인건비가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식구 중 한 입이라도 덜고,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하는 구직자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들은 달리 갈 데가 없었다. 고용주들이 우위에 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더해 어린이들까지 이 대열에 합류했다. 작은아버지 손에 이끌려 열세 살에 식모살이를 한 최옥자 씨의 사례에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배경이 있었다. 그러나 전쟁의 피해가 어느 정도 사라진 후에도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하면 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구걸하듯 사정하니 인건비는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서민들도 식모를 둘 수 있었다.

(…) 상황이 이러니 식모를 둘 수 있는 형편인데도 두지 않으면 ‘알뜰 주부’보다는 ‘구두쇠’라는 소리를 들었다. 주부에게 식모는 없어서는 안 되는 가정필수품 같았고, 식모가 없는 주부는 그들 사이에서 손가락질을 받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옛 친구 숙이가 왔다. 손꼽아보면 6년 만에 만남이었다. 그리 좋았던 때가 전설처럼 흘러간 지금 우린 서로 너무 많이 변했다. 결혼을 했고 또 귀여운 아기엄마가 됐으니까. 무엇부터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기쁨과 당황의 순간이었다. 난 따끈한 차라도 마시며 서로 헤어졌던 동안의 얘기를 나누어보려고 찻상을 숙이 앞에 놓았을 때 “이거 국산 홍차로구나. 국산은 맛이 없어.” 찻잔을 거들떠보지 않는 숙이.

“난 네가 왜 동창들의 모임에 늘 빠지나 했더니 식모가 없어 그랬구나.” 싸늘하게 식어가는 찻잔을 앞에 놓고 어떤 조소가 담긴 듯한 단어들이 거침없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대접해준 한 잔의 차가 그리도 못 마실 정도로 향기가 없었고 식모 없이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무심히 표현한 말이라면 그 표현방법이 내 마음에 너무나 큰 저항감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왜 몰랐을까.
- [경향신문] 1972년 12월 8일자
--- pp.80~81, 1부 2장「식모 전성시대」중에서

식모 배제는 주택 구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중산층 집은 식모들 방을 따로 두는 게 일반적이었다. 1962년 대한주택공사(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 개량주택 평면도를 보면 식모방은 크기가 제일 작으며 1~2평 사이로 오늘날 고시원보다 약간 크다. 이 경우 위치가 현관문 바로 앞에 있지만 어떤 집은 제일 안쪽에 있고, 어느 곳이든 부엌과 맞닿았다. 가급적 주인 가족과 마주치지 않거나, 부르기 좋은 위치에 있었다.

1970년대 9월 우리나라 중산층 아파트의 효시가 된 한강맨션아파트가 준공되었다. 시공사인 대한주택공사는 “좌식생활을 벗어나 서양식 생활양식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당시 32평형 도면을 보면 식모방의 크기와 위치는 과거와 같다. 식당과 베란다(혹은 창고)로 통하는 문은 있지만 거실로 통하는 문은 없다. 당시 아파트 ‘입식 구조’ 는 집안일하는 주부의 편리함과 효율성을 고려하여 설계되었다. 다시 말해 식모가 굳이 필요 없는 서양식 아파트를 지향했는데, 그런 곳마저 식모방을 둘 만큼 식모는 ‘대중적’이었다. 식모방에 거실로 통하는 문이 없는 것은 주인집 식구와 마주치는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한 건설사의 ‘배려’였다. 식모는 가정의 범주에 속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러한 설계는 이후 본격적인 아파트 시대를 알리는 여의도시범아파트와 반포아파트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 p.108, 1부 3장「하녀의 다른 이름, 식모」중에서

1951년 3월 서울 재탈환 후 서울로 올라온 사람이 급증했다. 그나마 전쟁 통에 사람과 군수물자를 옮기던 트럭을 버스로 개조하여 버스 부족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정비업소와 운수회사들은 미군 트럭을 싼값에 불하받아 부품을 골라내 버스로 개조했다. 엔진이랑 차대를 떼다가 ‘도라무깡(드럼통)’을 달구면서 망치로 살살 펴 지붕과 문짝을 만들었다. 트럭이 버스로 변신하는 데 3개월이면 충분했다. 미군들은 “코리안은 손재주가 좋다”고 칭찬했다. 2.5톤짜리 군용 GMC 트럭은 40~50인승 버스로 탈바꿈했고, 중형인 쓰리쿼터(4분의 3톤) 트럭은 12~25인승 ‘합승택시’로 변신했다. 이때가 버스업자들에게는 황금기였다. 차의 가격은 싸고 손님은 넘쳐났다.

차츰 버스와 전차 사정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차량은 여전히 모자랐다. 1953년 7월 서울에서 버스 108대, 택시 50대, 전차 105대가 운행 중이었다. 전차는 물론 버스도 최대 수용 범위를 넘어 초만원을 이루었다. 사람들을 하도 많이 쑤셔 넣어 ‘고무로 만든 차’라는 별칭까지 생겼다. 더는 태울 수 없어 정류장을 서지 않고 지나치기 일쑤였다. “민중의 공기인 버스를 타는 날이면 그날 아침 먹은 것이 송두리째” 올라오기 일쑤였다. 정류장 장기 정차도 승객들의 불만을 초래했다. 승객이 안 차면 버스는 정류장에서 보통 20~30분이나 머물렀고 뒤차가 와야 출발하는 등 부산에서의 ‘버스 횡포’가 일상화되었다. 이 시기에는 버스 교통사고도 잦았다. 전차와의 충돌, 전복 등 대형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정비 불량, 만원버스 등 구조적인 문제점이 낳은 필연적 결과였다. 1959년 12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교통사고 방지를 위한 8개 특별지시를 내릴 만큼 버스 교통사고는 사회적 문제였다.
--- p.224, 2부 2장「남성 차장」중에서

저임금과 더불어 악명을 떨친 것은 근무시간이었다.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근무 형태로서 승무하는 날 근무시간은 18시간이었다. 휴일 하루를 감안하면 일일 평균 근로시간은 12시간이 된다.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보다 주 12시간을 더 근무했지만 정부의 ‘간섭’은 전혀 없었다. 임금, 후생복지 등이 해마다 개선되기는 했지만, 1인당 하루 18시간 근무는 버스안내양이 사라질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이병태 교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국 안내양들의 승무일 평균 근로시간은 18시간 27분이었다. 승무시간이 17시간 5분, 준비시간 10분, 대기시간(6회) 총 27분, 차내 청소시간(3회) 총 15분, 수입금 계산시간(6회) 총 20분, 잔업시간 10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24시간에서 이를 빼면 5시간 30분 남짓으로, 여기서 식사시간(3회) 총 30분, 기상하여 준비하는 시간 1시간을 빼면 수면시간은 많이 잡아도 4시간이다. 1981년에 이루어진 다른 조사에 따르면 안내양들의 40퍼센트는 쏟아지는 졸음과 피로를 이겨내기 위해 카페인 성분의 각성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 pp.288~289, 2부 4장「“오라잇, 스톱!”」중에서

안내양은 버스에 오르려는 승객들을 뒤에서 힘껏 밀지만 역부족이었다. 안내양을 도와 함께 밀고 자리가 나면 타는 남자들도 있었다. 안내양이 탈 공간은 없었다. 더욱이 문을 닫아야 하는 최소한의 공간마저 확보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간신히 올라 까치발로 서고 양손은 문 손잡이를 잡은 채 “오라잇”을 외친다. 달리는 차에 아슬아슬 매달려 가는 안내양들은 시대의 자화상이었다. 안내양은 미어터지려는 버스의 최후 보루였다. 그가 못 버티면 승객들이 쏟아져 나와 대형사고가 날 수 있었다.「영자의 전성시대」 주인공이 개문발차 사고로 한 팔만 잃은 것은 차라리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안내양은 버스에 마지막 오르는 사람이므로 개문발차 사고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떨어져 버스에 깔려 죽고, 전봇대 등 도로 가설물에 부딪혀 죽고, 운전사끼리 앞지르기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 뒤차에 깔려 죽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도 발생했다.

경찰은 시내버스 단속 때마다 ‘개문발차’를 집중 단속했으나 그때뿐이었다. 1966년 5월 서울시는 처음으로 개문발차 사고 차량에 면허정지 조치를 내렸고, 범칙금도 무겁게 부과했다. 이 경우 안내양들은 대부분 자동적으로 해고되었다. 그렇지만 직접적 원인인 인원 초과는 단속하지 않았고 ‘불법 운행’을 채근한 회사와 차주를 처벌하는 일도 드물었다. 개문발차 사고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경향신문] 1967년 1월 25일자는 문이 완전히 닫혀야만 차가 출발하고, 완전히 정차한 다음에야 문이 열리는 장치가 개발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이 장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상용화되지 못했다.
--- p. 308~310, 2부 4장「“오라잇, 스톱!”」중에서

노동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갔지만 강주룡은 도저히 분을 삭일 수 없었다. 남편을 죽인 년이 된 것도 모자라, 허구한 날 야근하며 화학제품과 가스 냄새를 맡았다. 지난 세월을 떠올리노라니 팔자가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죽자!’ 목을 맬 광목을 샀다. 그런데 죽기로 작정하니 새로운 용기가 솟아올랐다. ‘기왕 죽을 바에 끽 소리 한 번 내자’라는 생각에 평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을밀대로 향했다. 광목을 두 갈래로 찢어 끝에 매듭을 지은 후 지붕 위로 던져 걸었다. 간신히 줄타기를 하여 지붕에 올라 평양 시민들을 기다렸다. 100여 명이 모였을까? “존경하는 인민 여러분. 내래 평원고무공장의 고무 직공 강주룡입네다”라며 입을 뗐다. 연설이라기보다는 죽음을 목전에 둔 한 맺힌 여인의 절규였다.

우리는 49명 우리 파업단의 임금감하를 크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종국은 평양의 2300명 고무직공의 임금감하의 원인이 될 것이므로 우리는 죽기로서 반대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배워서 아는 것 중에 대중을 위하여서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명예로운 일이라는 것이 가장 큰 지식입니다. 이래서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이 지붕 위에 올라왔습니다. 나는 평원공장 사장이 이 앞에 와서 임금감하 선언을 취소하기까지는 결코 내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 그리하고 여러분, 구태여 나를 여기서 강제로 끌어내릴 생각은 마십시오. 누구든지 이 지붕 위에 사닥다리를 대 놓기만 한다면 나는 곧 떨어져 죽을 것입니다.
-「을밀대의 체공녀, 여류투사 강주룡 회견기」, [동광] 1931년 7월호
--- p.416, 3부 별면글「최초 고공농성 노동자 강주룡」중에서

YH무역 여공들은 밤 10시까지 야근하면 야식으로 보름달 빵을 받았다. 이 빵은 값싸고 양도 많을뿐더러 누구나 좋아하는 야식이었다. 장시간 노동에 지치고 출출할 때 달콤하고 부드러운 빵을 받았으니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그러나 여공들은 고향에 있는 동생을 떠올리면 빵을 먹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빵 한 개만 보낼 수는 없어서 몇 개씩 한꺼번에 보내려고 모으다 보면 상하기 일쑤였다. 누군가 아이디어를 냈다. 빵이 나오는 날 10명이 한 사람에게 모아주고, 순번대로 그다음 사람에게 모아주는, 일명 ‘빵계’였다. 100원짜리 빵도 신입들에게는 귀하게 느껴졌다. 초봉은 몇천 원 수준이었고 여기서 기숙사비 1500원과 식대를 빼면 고향에 부칠 돈도 빠듯했다. 빵계를 탄 날, 보름달 빵을 한 입 물면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의 진정한 맛을 알지 못한다”는 괴테의 말이 실감 나지 않았을까?
--- pp.423~424, 3부 2장「나는야, 뺑이 치는 공순이」중에서

‘공순이’는 ‘삼순이’ 중에서도 사회에서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었다. 여공들은 무시와 차별에 시달렸다. ‘산업역군’과 ‘수출전사’는 정부, 기업가, 언론에서 쓰는 상층부 단어였다. 공순이라는 말이 흔하게 사용되기 시작하던 1970년대 언론들은 공순이가 아닌 여성근로자로 부를 것을 주장했고, 공순이는 1977년 3월 공돌이와 함께 방송금지어로 지정되었으나 오늘날에도 자주 접할 만큼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다. 여공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이중적이었다. ‘고향의 가족을 부양하는 소녀’가 동전의 앞면이라면 그 뒷면에는 ‘타락과 문란’이 웅크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공들이 또래끼리 모여 생활하므로 성적으로 탈선하기 쉽다고 단정했다. 실제로 전국의 공단에는 남자와 동거하거나 퇴근 후 술집에 나가는 여공들도 있었다. 상사와 잠자리를 했다는 소문이 공장에 돌았고, 미혼모 문제도 심심치 않게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가부장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결혼이 전제되지 않은 연애는 비도덕적인 행위로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동아일보] 1974년 2월 11일자를 비롯해 “공순이 공돌이들의 숨결로 안양 둑방 일대가 뜨겁다”, “구로공단 주변의 여관 여인숙이 10대 공원들로 초만원” 등 선정적인 주간지들을 능가하는 신문 기사가 등장할 정도였다. 성적 타락에 대한 공장 밖 인식은 조롱을 낳았다.
--- p.442, 3부 2장「나는야, 뺑이 치는 공순이」중에서

그렇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었다. 해고자 277명 가운데 144명은 현대자동차공장의 구내식당 여성노동자 전원이었다. 애초에 노사는 파업 이전 식당 여성노동자 전원인 276명과 남성 직원 1명을 정리해고 대상으로 삼았으나, 132명이 위로금을 받고 자진퇴사하자 나머지 133명을 여러 부서의 남성노동자로 채웠다. 그리고 노동조합은 회사로부터 식당을 인수받아 경영한다는 편법으로 식당 여성노동자 144명을 정리해고 대상에 포함시켰다. 식당 여성노동자들의 평균 나이는 48세, 평균 근무 연수는 14년이었으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실질적 가장이었다. 그들은 공장에서는 동료 남성의 음식을 만들고 집에서는 가족의 밥을 지었다. 총파업 기간 동안 ‘밥주걱 부대’로 불리며 투쟁의 선두에 섰고, 밤샘을 하는 간부들과 사수대의 밥을 짓느라 파업에만 전념할 수 없었다. 총파업 마지막 날 이들이 정리해고자로 발표되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 사실 현대자동차의 정리해고 합의는 경영 악화로 인한 것이 아니라 단지 정부 정책의 시범 케이스였다. 당시만 해도 국내 최대 최고의 강성임을 자랑하던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은 총파업 끝에 타협을 선택했다. 그들은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되 인원 규모를 최소화하기로 하고, 정규직 중 맨 끄트머리에 있는 것 같은 식당 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노동조합은 물론 남성노동자들 중 아무도 이들의 투쟁에 동조하지 않았다. 식당 노동자들을 외면한 그들은 무사했을까? 그해 말까지 식당 노동자 말고도 1만 2000명이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되었다. 여성노동자들의 해고는 시작에 불과했던 것이다.
--- p.500~502, 3부 4장「“망할 놈의 비정규직 세상”」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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