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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리뷰 총점8.8 리뷰 79건 | 판매지수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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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9년 09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444쪽 | 560g | 148*210*23mm
ISBN13 9791130625843
ISBN10 1130625842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같은 작가로서 시샘이 날 정도이다” _한승원(소설가·심사위원장)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후의 만찬』이 출간됐다. 올해 혼불문학상 응모작은 총 263편이었고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총 6편이었다. 그중에 4편이 최종심에 올랐고 치열한 논의 끝에 신해년(1791년),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의 순교 장면으로 소설을 여는 『최후의 만찬』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심사위원장 한승원 소설가는 이 소설에 대해 “보기 드문 수작이다.” “나는 왜 이런 소설을 쓰지 못했을까, 시샘이 날 정도이다.” “다른 소설가들이 읽으면 깜짝 놀랄 작품이다.” 등의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은 “우리 문학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품격 높은 새로운 역사소설”이 탄생했다는 사실에 주목했으며 “오랜 철차탁마를 거친 깊은 내공의 소유자이며 절제된 시적 문장을 다루고 있다”고 평했다.

혼불문학상은 우리시대 대표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1년에 제정되어, 1회 『난설헌』, 2회『프린세스 바리』, 3회 『홍도』, 4회 『비밀 정원』, 5회 『나라 없는 나라』, 6회 『고요한 밤의 눈』, 7회 『칼과 혀』, 8회 『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등이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혼불문학상 수상작들은 한국소설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며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과 깊은 신뢰를 받고 있다. 제9회 혼불문학상 심사위원으로는 한승원 소설가(심사위원장), 김양호 평론가, 김영현 소설가, 이경자 소설가, 이병천 소설가가 참여했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1부 죽은 자의 권리
신해의 바람 / 은행나무 / 용의 눈물 / 13인의 만찬 / 눈보라 / 하초동충 / 어미의 죽음 / 초라니패 / 불꽃 / 도화서 별제 / 길쓸별 / 제비꽃 그 아이 / 이색홍채 마른 숨결, 젖은 별 / 역린 / 오병이어 / 이화우 / 그 밤의 언약 / 오동나무

2부 길 위의 별들
추적 / 가을장마 / 선율의 밤 / 남사당 / 빈 칼, 질긴 몸 / 세자익위사 / 외인 / 시간의 마루 / 몸과 악기 / 외로운 길 / 누이의 꿈 / 뜻밖의 이름들 / 동시성 / 악의 음계 / 재회의 초가 / 내금위 / 소실점 / 프리메이슨

3부 세상의 향기
향기 도둑 / 오라비 별 / 두 개의 낮달 / 인체비례 / 카메라 옵스큐라 / 외딴곳 / 도검장 / 실증의 허기 / 심역사 / 변음 / 불길한 예감 / 삶의 희구 / 궁중 연향 / 징소리 / 존현각의 달 / 생의 희비 / 최후의 만찬 / 생과 사 / 망자의 권리

에필로그 기억의 끝
심사평 / 작가의 말 / 참고문헌에 관하여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윤지충의 죽음이 들려오던 날, 수원천을 바라보며 입 속을 떠돌던 말이 떠올랐다.

…애끓지 마라. 절실하다고 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너무 간절한 것은 절망에 지나지 않음을…….

처음 십자가를 손에 쥐던 날 약용의 눈에 비쳐든 세상은 거친 파도로 덮여 있었다. 지켜주어야 할 세상이 눈앞에 밀려왔으나 무엇으로 보듬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p.50

누이는 초월의 힘을 누르며 숨을 죽였다. 불을 다루는 능력은 인간의 자유를 억누르는 이상 징후일 뿐이었다. 돌연한 변이의 생태는 누이의 삶을 속박했으며, 인간에 대한 혐오로 왔다. 초월을 짊어진 누이의 삶을 두렵고 가슴 떨렸다. 숨을 쉴 때마다 불을 다루는 염력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의 절망과 다르지 않았다.
--- p.61

구원과 죽음을 다를 것이나 죽음 뒤에 올 구원이 아늑할지, 구원 뒤에 밀려올 죽음이 거룩할지 최무영은 알 수 없었다.
--- p.67

“도와서 별제가 말하길 13인의 만찬은 세상의 비밀을 품고 있다 하옵니다. 화성 행차를 앞둔 근자에 노론의 암투와 다를 바 없다 했사옵니다.”
임금은 왕가의 비기를 생각했다. 오래전부터 비밀리에 전해온 비기에는 세상 안에 감추어진 존재들이 득실거렸다.
--- p.71

새벽에 임박한 아이의 기도문이 무의미하지 않다고 약용은 생각했다. 한 줌 재로 돌아간 기도문의 가치는 죽음에 있을 것인데, 죽음을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며, 부활은 영생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약용은 생각했다.
--- p.94

김홍도가 조용히 덧붙였다. 목에서 화원의 체질로 관철하고 수집한 내용이 무겁게 들려왔다.
다반치는 과거 수백 년 전 서양에서 회오리처럼 일어난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라 하옵니다. 그림뿐만 아니라 천재적인 재능으로 과학과 기술에도 능했으며, 사상을 조율하고 수많은 문명을 일으켜 사람들 사이에 이름을 남겼다 하옵니다.“
--- p.188

홍대용은 덧붙였다. 보이지 않은 먼 곳의 우려를 섞은 목소리는 차분하게 들렸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이 있사옵니다. 서역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야기로 분화된 심역사의 지점에 전설처럼 떠도는 자들이 있사옵니다. 어둡고 비밀스러운 자들의 이름은 프리메이슨이라고 하옵니다.”
--- p.273

“인주 포구에 김홍도가 당도했다 하옵니다.”
이양선에 올라 바다를 저어간 지 삼백 일이 지나는 시점에 김홍도의 기별을 놀라움으로 왔다. (……) 밀라노의 낯설음과 장영실의 과거를 싣고 김홍도는 돌아왔을 것이다. 〈최후의 만찬〉에 대한 임금의 의구와 의혹과 의심의 사색을 풀어낼 단서를 쥐고 김홍도는 소리 없이 인주 앞 바다에 당도했을 것이다.
--- p.275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살면서 죽음으로 가는 길
죽음으로써 삶으로 가는 길


200여 년 전 조선,
이념 정치 종교 대논쟁의 시대
양심과 신념의 대격돌!

정조 15년(신해辛亥, 1791년), 전라도 진산군의 선비 윤지충과 권상연이 신주를 불사르고 천주교식으로 제례를 지냈다는 이유로 완산 풍남문 앞에서 처형당한다. 두 선비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였다. 정조는 추조적발 과정에서 윤지충의 집에서 그림 한 점을 압수됐음을 보고 받는다. 열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는 그림. 죽기 전 윤지충이 말하길 예수와 그 열두 제자의 식사 모습이 그려져 있다는 그림…… 다름 아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모사본. 도화서 화원들은 그림을 불살라 없애라고 하지만 임금은 그림에서 조선과 연관된 원대한 꿈과 수수께끼 같은 비밀을 직감한다. 그리고 서학과 유교가 맞서는 난세의 어려움을 풀어가고자 도화서 별제 김홍도를 불러들여 그림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맡긴다.

“순교란 조용하고 무거운 길이다. 길 끝에 천주의 세상과 마주할 것이다. 허나 그 길이 천주의 길이란 말인가?”
답할 수 없는 물음을 던져 놓고 약용은 깊이 시름했다. _42쪽

『최후의 만찬』은 유교와 서학의 충돌 속에서 조선의 앞날을 걱정하는 정조의 심리뿐만이 아니라 순교 소식을 듣고 신앙이 흔들리는 정약용의 심리를 마치 그 곁에서 지켜본 것처럼 그려낸다. 정약용은 “곡기를 끊고 기도에 묻혀도 글 속에 잠재된 천주의 신념은 허기”로 왔으며 “ 순교의 그루터기에서 윤지충은 살아남은 자들의 신앙을 더 어렵게” 했다고 생각한다. “약현, 약전, 약종 형들을 향한 조정의 탄압이 두려웠고, 자신을 겨냥한 노론의 사찰이 두려웠다.”(46쪽) 임금과 정약용은 사건이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으나 공서파를 앞세운 조정은 서학인의 탄압을 시작한다. 한편 박해로 인해 가족을 잃은 여섯 서학인들은 복수를 꿈꾸기 시작한다. 그들은 결의를 다지고 오랜 시간 칼을 신중하게 계획을 세운다. 『최후의 만찬』은 이처럼 새로운 이념·정치·종교가 조선에 밀려오기 시작한 무렵의 대격돌의 현장 속에 살아간 정조, 정약용, 윤지충과 권상연, 감찰어사 최무영, 도화서 별제 김홍도 등의 인물과 도향과 도몽, 박해무, 배손학 등의 서학인을 모습을 보여준다.

편입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대한민국의 과거·현재·미래를
보여주는 역사소설


『최후의 만찬』은 기존 역사소설의 문법과는 다르다. “보통 역사소설은 스토리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독자들은 작가가 재구성해 놓은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을 따라 가면 된다. 그런데 『최후의 만찬』은 그렇게 호락호락 독자로 하여금 따라오기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얼핏 조선 후기 정조 무렵에 일어난 천주교 탄압을 다룬 작품이겠거니 하고 예감하기 쉽지만 곧 “독자들은 그 이후에 등장하는 숱한 역사적 인물들, 정약용, 박지원, 김홍도, 정여립, 정조” 그리고 작가가 창조한 “여섯 탈춤패 초라니 암살단 등이 짜놓은 거미줄 같은 미로에 들어와 있음을 알고 적지 않게 당황할 것이다.”(「심사평」에서)

이 작품의 매력은 새로운 사상 앞에 놓인 인물들의 “짙은 향기를 풍기는, 무지개 같은 결과 무늬를 지닌” 심리묘사뿐만이 아니다. 중세 로마 피렌체의 다빈치의 불후의 작품 〈최후의 만찬〉에 머나먼 조선에서 온 불우한 천재 과학자 장영실의 흔적을 발견하는 발상부터 예사롭지 않다. 또한 순교한 여령(女伶)의 여식 도향이 『왕가의 비기』에 기록된 ‘불을 다룰 수 있는 돌연변이’라는 설정 또한 소설을 읽는 맛을 더하게 한다. 조선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프리메이슨’ ‘카메라 옵스큐라’ 등의 단어의 등장은 또 어떤가. “이 소설은 천천히 저작하듯 읽어야 한다. 역사소설은 역사의 몫과 작가의 몫이 있는데, 이 소설의 작가는 작가의 몫을 제대로 하고 있다.”

“이 작가의 감성은 무지갯살처럼 아름답다. 난해하고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문장은 시적이고 환상적이다. 같은 작가로서 시샘이 날 정도이다.”
_한승원(심사위원장)

『최후의 만찬』이 현재의 대한민국에 주는 의미는 크다. 조선의 오랜 통치 수단이었던 유교의 전통과 충돌해가며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인 조선…… 신해년 이후 20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이념과 정치, 신념과 양심이 격돌하고 있다. 과연 신념을 따르고 순교로써 영원한 삶을 택하는 게 옳은 선택인가. 아니면 정약용처럼 신념을 버리더라도 편입하여 살아남는 게 옳은 선택인가. 편입할 것인가, 싸울 것인가. 이 소설은 미래에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지 고뇌하게 하는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김홍도는 (……)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 까닭 모를 두려움이 밀려왔고, 시간이 멎은 듯 눈앞이 캄캄하고 어두웠다. 얼어붙은 느낌은 무엇이 될지, 몸서리치는 것도 잠시 삶과 죽음으로 분할된 양자의 선택이 그림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알았다. _110쪽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최후의 만찬』은 환성적인 소설이다. 작가는 자신이 선택한 역사 속의 인물들을 꿈꾸듯이 재창조하고 역사적인 시간을 재구성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인물, 시대를 초월하는 설정은 소설과 만나는 독자의 눈을 놀라게 한다. 화가 김홍도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 여주인공과 다산의 깊은 영육의 조우, 그녀가 꿈꾸는 세상은 무지개 같은 결과 무늬를 가지고 있다. 이 소설은 천천히 저작하듯 읽어야 한다. 역사소설은 역사의 몫과 작가의 몫이 있는데, 이 소설의 작가는 작가의 몫을 제대로 하고 있다.
- 한승원(소설가)

회원리뷰 (79건) 리뷰 총점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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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 서철원 내용 평점2점   편집/디자인 평점2점 쿠*D | 2020.03.26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최후의 만찬 _ 서철원 _ 다산책방_ 2019 (혼불문학상 9회 수상작)  전라감영에서 윤지충과 권상연이 참형을 당했다. 나라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서학(천주교)을 섬기고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혔다는 이유였다.    ...조상의 신주를 불태우고 가계를 허물었나이다.조상의 신주를 불태운 사실만으로 별장은 윤지충과 권상연을 죄인으로 몰아갔다. 그것만으로 논리가 부족;
리뷰제목

최후의 만찬 _ 서철원 _ 다산책방_ 2019 (혼불문학상 9회 수상작)

 

 전라감영에서 윤지충과 권상연이 참형을 당했다. 나라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서학(천주교)을 섬기고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혔다는 이유였다.

 

  ...조상의 신주를 불태우고 가계를 허물었나이다.
조상의 신주를 불태운 사실만으로 별장은 윤지충과 권상연을 죄인으로 몰아갔다. 그것만으로 논리가 부족했는지 제사를 갈아엎은 죄를 덧씌워 울먹였다.
  ... 기일에 맞춰 올려야 할 제사를 망각하고 십자가를 집 안에 들였나이다. 그 십자가를 아비보다 높고 임금보다 거룩하다 여겼나이다.
12쪽

 

 정조는 서학인 치죄를 빌미로 나라를 마음대로 움직이려는 노론의 속내를 경계하여, 서학인 치죄를 내켜하지 않는다. 서학인을 향한 노론의 칼날에서 아버지를 뒤주에서 죽도록 몰아간 그물을 떠올리는 정조는 왕권을 공고히 하길 원하나 그 길은 요원하다. 특히나 정조가 총애하는 정약용의 형제들이 연이어 서학인으로 탄압을 받으면서 임금은 자신의 실세에 더욱 위협을 느낀다. 
 임금의 명으로 윤지충과 권상연을 조사하러 갔던 최무영은 윤지충의 집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을 발견하고 보고한다. 그림에 담긴 기운과 속뜻을 수상히 여긴 정조는 도화서 별제 김홍도를 불러 그림에 대해 조사하라 명한다.
 
“나머지 열두 명은 누구라고 하던가?’
“예수라는 자의 열두 제자라고 하였사옵니다.”
임금이 숨을 멈추고 최무영을 바라봤다. 예수와 그의 열두 제자는 그림 속에서 무엇을 구상하고,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임금의 생각과 무관한 지점에서 알 수 없는 누군가 그렸을 그림을 상상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 또한 의문이었다.
36쪽

 

 한편 정약용은 신앙을 깊이 감춰두고 생존을 고민한다. 외사촌이었던 윤지충의 순교를 전해 듣고 정약용은 임금에게도 나아가지 않고 은거하며 서학인을 향한 서슬퍼런 핍박의 칼날을 벗어나려 한다. 그런 정약용 앞에 기묘한 아이, 도향이 나타난다. 도향은 전라도에서 순교한 늙은 여령의 딸로 가야금 연주에 탁월하다. 특히 사람을 죽일 수 있기에 금기로 알려진 변주까지 스스로 익힌 천재다. 그 옛날 가야의 기운을 실은 연주를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도향은 한쪽 눈은 파랗고 한쪽 눈은 노랗다. 정약용은 여령으로서도, 여인으로서도 도향을 마음에 품는다. 그러나 도향은 정약용이 그토록 피하려는 서학을 배워 ‘구원’의 길로 나아가고자 한다. 모두가 평등한 길로, 평등한 세상으로. 

 

 약용의 입 속에 돋던 꿈같이 고요하고 물같이 평등한 나라, 예루살렘 어느 곳에 있다는 골고다 언덕에서 바람과 석양에 기우는 가나안 땅은 결국 허균의 이야기 속 나라 율도와 다를 것 같지 않았다. 멀리 문장으로 임할 수 없는 나라를 생각할 때, 임금은 그림과 현실의 중간을 가늠했다. 목측할 수 없는 나라의 임금으로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인데, 저마다 가고자 하는 세상은 그림 속 인물들의 시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79쪽

 

 김홍도는 <최후의 심판> 그림 속에 숨은 비밀을 임금에게 보고한다. 300년 전에 과학의 힘으로 나라를 바꾸었던 장영실이 이 그림 속에 숨어 있었다. 그림 속 13명의 인물 중 가장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물이 장영실이며, 이는 밀라노에서 직접 확인하고 왔다며 고한다. 300년 전 장영실은 조정을 떠난 후 아무도 모르게 밀라노로 건너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만난다. 과학을 다리 삼아 뜻을 함께한 두 학자는 밀라노에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고 다빈치는 장영실을 그림 속에 넣어 그렸다는 것. 더구나 예수의 뒤로 보이는 산세는 인왕산이었다.

 

 조선 너머 너른 땅에서 살아갔을 장영실을 생각했다. 가본 적 없는 남의 나라에서 장영실은 조선의 긍지로 과학의 삶을 살다 갔을 것이다. 밀라노에서 별무리를 이끌고 날마다 혁신하는 삶을 살았을지 몰랐다. 현주일구에 비쳐든 해그림자를 따라 하염없는 사색으로 유일무이한 조선을 세상의 중심으로 원했을지 몰랐다. 그 삶은 한 덩어리 고뇌를 싣고 너른 세상에서 대동을 외치며 살다 갔을 것이다.
229쪽

 

 그러나 그림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보이지 않는 위협도 함께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둡고 비밀스러운 조직으로 어디든지 마음먹은 대로 세상을 만들어가는 ‘프리메이슨’이 조선에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과 장영실은 이를 경계하고 경고하기 위하여 3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그림으로 다시 조선에 돌아온 것이다.
 때마침 궁궐을 시작으로 향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향기가 없어지면서 미각을 잃고, 감각의 상실을 느끼기 시작한 임금은 국가에 큰 재난을 느낀다.
 
 위협은 또 있었다. 전라도에서 순교했던 여령에게는 도향이라는 딸과 함께 도몽이라는 아들도 있었다. 도향의 오빠인 도몽은 어머니의 순교를 지켜본 후 복수하기로 마음먹고 초라니패에 합류한다. 초라니패(박해무, 배손학, 김혁수, 김순, 이하임, 도몽)는 서학을 향한 핍박의 칼날에 희생된 저마다의 사연으로 나라에 복수를 하기 위하여 떠도는 자들이다. 이들은 임금이 향기의 회복을 위하여 벌인 연회에 공연단으로 잠입하여 시해를 꾀한다. 그러나 이들의 시해는 도향의 신기 어린 연주에 방해를 받아 실패로 끝나고 초라니패는 사헌부 감찰어사 최무영이 이끈 금위영 나장과 내금위에게 토벌당하여 모두 죽는다.

 

 김홍도의 목에서 임금이 풀 수 없는 의문과 의혹과 의심의 파편들이 무뚝뚝하게 들려왔다.
“하오나 <최후의 만찬>이 중요한 것은 빵과 물고기로 지은 오병이어 기적이 아니옵니다 .이교도의 아가페를 굴복시킨 인간 예수의 참된 눈빛을 바라보소서. 희생과 순교의 의미가 물처럼 출렁이며 그 물은 만 가지 별을 품고 있사옵니다. 순수한 결정만이 세상을 정화하고 조선이 잃어버린 향기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옵니다. 아마도 장영실은 훗날 조선이 처할 불운을 미리 내다보며 그림 속에서 파우스트 폴의 숙명으로 조선을 다독이고 있을 것이옵니다. “
(중략) 임금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파우스트 폴이라고 했느냐?”
“아마도 프리메이슨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옵니다.”
“비밀결사 조직이라고 둘었다. 조선에도 누군가 그 조직과 연결되어 있다고...“
임금이 말을 아꼈다.
349쪽

 

청나라를 거쳐 윤지충에게 전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약용의 머릿속에 뚜렷이 그려졌다. 임금을 경계로 좌우로 갈라선 여섯 신하와 여섯 외인들의 엇갈린 모습은 다빈치의 그림과 다르지 않았다. 카메라 옵스큐라 속에 모두는 <최후의 만찬>으로 맺혀 있었다.
407쪽

 

 정약용은 카메라 옵스큐라에 비친 임금을 중심으로 좌측의 여섯 신하, 우측의 여섯 일당(초라니패)의 구도를 보면서 삶과 죽음, 선과 악, 생성과 소멸 등 시대와 국가를 초월하여 언제나 존재하는 동시성의 가치들을 발견한다. 임금 역시 그림 속에 담긴 것은 결국 동시성의 가치가 아니겠느냐는 김홍도의 보고를 듣고 깊이 사색한다.

--------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저마다의 율도국을 꿈꾼다. 임금으로부터 연약한 여령인 도향까지 모두가 그러하다. 가나안 땅으로, 구원의 처소로, 모두가 평등하고 자기 가치를 확인하며 존재를 존중받고 박해나 눈물이 없는 이상적인 세상으로 건너가려는 각 인물들이 고뇌와 여정을 이 소설은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이야기’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독자가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소설이 아니다. 한 쪽 노를 가지고 보트를 젓듯이,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 자리를 맴맴 돈다. 원을 그리며 제자리에서 버둥거리는 소설이라 스펙터클한 이야기 전개에 매력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이 소설은 답답하게 읽힐 수 있다.

 

 엑셀을 밟고 달리는 드라이브가 아니라 창문을 열어두고 손등을 스치는 미풍을 감지하는 사람에게, 아마 이 소설은 더 즐겁게 읽힐 것이다. 서학이라는 신앙과 그를 향한 핍박이 대두되지만 실상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단순한 종교 탄압이 아니다. 바꾸려는 자와 간직하려는 자, 다음 세상으로 떠나려는 자와 다음 세상을 부정하는 자, 죽음으로 삶을 증명하려는 자와 생존으로 죽음을 건너가려는 자. 어느 나라든, 어느 시대든 사상과 이념이 충돌하는 곳마다 이런 충돌이 벌어진다. 허균의 소설 속에만 등장하는 율도국이 예루살렘과 가나안의 모습에 겹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상상력이 좋고 조선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저 건너편의 나라까지 확장되는 이야기의 흐름이 좋았다. 그런데 너무나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들이 연이어, 어느새 정말 소설 같은 소설로만 느껴졌다. 이 상상에 현실감을 부여하는 개연성, 입증물이 없이 너무나 많은 것들이 난입해 버린다. 다빈치와 장영실의 조우에 적응이 되지도 않았는데 프리메이슨에 파우스트 폴까지, 감당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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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 최후의 만찬 by 서철원 - 지난 역사를 넘나드는 환타지 *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안*쑤 | 2019.12.06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2019년 12월 06일>* 책리뷰 + 독서일기 ** 최후의 만찬 by 서철원 - 지난 역사를 넘나드는 환타지 ** 평점 : ★★★* 최종 읽은 날 : 2019.12.05독서회원들과 같이 읽기 시작했던『최후의 만찬』.사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타이틀이 90%를 차지했다고 해야 맞을것 같다.지역의 문학상인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 하니 읽어봐야 좋겠다, 싶은 마음이 컸다.제;
리뷰제목

<2019년 12월 06일>

* 책리뷰 + 독서일기 *

* 최후의 만찬 by 서철원 - 지난 역사를 넘나드는 환타지 *

* 평점 : ★★★

* 최종 읽은 날 : 2019.12.05


독서회원들과 같이 읽기 시작했던『최후의 만찬』.

사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타이틀이 90%를 차지했다고 해야 맞을것 같다.

지역의 문학상인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 하니 읽어봐야 좋겠다, 싶은 마음이 컸다.

제목과 책표지도 멋스러웠고 모든 것이 그렇게 끌어당겼던 소설.

처음 그런 마음과 달리 읽는 기간도 상당히 오래 걸렸던, 가독성이 심히 떨어지는, 자꾸 딴짓을 하게 만드는, 자꾸 오기가 고개들게 만드는 책이었다고 하면 너무한걸까?

이 책을 완도한 지금의 나는 사실 실망스러운 감정이 많다.

다시 읽게 되었을 때 그때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나중의 이야기이고 지금 나는 이 책을 완독했다는 사실만으로 뿌듯해하는 중이다.

개인적인 느낌은 '넘침'이었다.

도돌이표처럼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도대체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이야기의 전개, 2부, 3부로 넘어갈때마다 추가되는 등장인물들, 낯익는 문장과 단어들의 물결로 읽은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문장들.

특히나 '말', '목', '소리', '향기'등등 넘쳐나는 비유법은 집중력을 떨어뜨렸고, 전혀 시적으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적당한 곳에 적당한 비유 한 방이 더 좋았을,

반복스런 이야기와 반복했던 문장들을 걷어내면 더 좋은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은,

또 하나.

이 책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 시작은 제목과 어울리는 서학의 박애당하는 내용이었으나, 뒤로 가니 '최후의 만찬'과 연결하기 위해 과학자였던 장영실이 나오고 이탈리아로 넘어가 다빈치와 친분을 쌓음으로서 그의 알려지지 않은 죽음은 연결되는 것처럼, 거기에 정약용과 모든 것들을 해결해주는 변음이 가능한 여령까지, 시공을 넘나드는 이야기는 난해하며 의뭉스러웠다.

이야기는 그렇게 널을 뛰었다. 앗싸.....!!

책 뒷부분에 참고문헌들이 적혀있는데, 이야기 중간중간은 사실과는 다른 것들도 많았으니 아예 참고문헌들을 빼고 허구 소설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

책을 읽는내내 애증과도 같았던 이 책,

틀린그림찾기처럼, 오탈자를 찾는 것처럼 내가 꽂힌 그 단어, '목에서~'를 찾아내는 것이 이 책을 완독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하나하나 따로보면 너무 멋진 문장인데, 너무 멋진 표현인데, 넘쳐흘렀다.

페이지마다 흘러내려 감성적인 작가의 표현력이 묻혀버렸다.

욕심을 너무 낸 것이 아닐까 싶다.

걷어냈으면 활어처럼 팔딱거릴 표현들이 냉동고에 들어간 물고기처럼 꽁꽁 얼어버렸다. 아쉽게도.


베스트에 오른 책들이 실망을 주듯이, 노벨문학상이라든지 무슨 상을 받은 책들이 기대에 못 미친다든지,

사실 이런 것은 개인적이다.

사람마다 느낌과 성향과 의견이 다르니 당연하다.

그럼에도 나는 전문가들을 나보다 더 신뢰를 했다.

심사위원들의 말과 평가는 그들의 평가일 뿐 그것이 진리가 아닐 뿐더라 정답도 아니며 또 문학에 있어서 정답이 어디 있으랴.

이 책을 읽고 난 후 책을 고르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나에게 맞는 책을 고르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책이 넘쳐나는 지금, 읽을 책이 너무 많으니 말이다.

(p.21) 나라가 정한 자유는 작고 보잘것없었다. 그 안에서 누리고 만끽해야 할 자유는 좁고 가늘어 보였다. 닭장 안에 틀어박힌 자유는 있으나마나했다.

(p.30) "누가 됐든 죽음은 애석하고 불온하다. 저마다 살길이 다르니 죽어가는 것도 다를 수밖에……(...)"

(p.59) "무엇을 보았든 상관없네. 그래, 어쩌면 헛것의 세상이 더 간곡할 수 있네. 세상 너머 보이지 않는 진실이 더 소중할 수 있네."

(p.66) "의심없는 신앙은 맹목이옵니다. 나라의 믿음이 엄연한데, 다른 쪽을 바라보고 다른 곳으로 기우는 것은 마음을 탓할 일이 아니라 나라의 근심을 보태는 망극일 뿐이옵니다."
(p.177) "삶이 간절한 건 죽음이 가깝기 때문이오. 죽음이 절박한 까닭은 살고자 하는 사연과 본성이 함께하기 때문이오.(...)"
(p.328) 그 말의 어려움을 약용은 알았다. 평등할 수 없으므로 평등하리란 소망은 사소한 염원일 뿐이었다.

(읽으면서 그때그때 작성했던 독서일기)

(2019.11.26) : 오전에 읽던 기욤 뮈소의《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을 완독하고, 손에 든 책.

손에 들기 전부터 겁이 났다.

다음 독서모임의 지정도서인 이 책을 먼저 읽기 시작한 회원들이 겁을 주는 바람에 말이다.

뒤가 궁금한데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는,

어휘가 그러하고, 상황변화가 계속 제자리라는 말을 해주었다.

천주교가 탄압받는 그 시점의 이야기, 나 역시 그 시대의 어휘는 낯설고, 어려워하니 책장을 쉬이 넘기지 못함을 실감했다.

그보다 표현에서 자연에 배어있는 낯익은 건물들의 이름들이 왠지 어색했다.

너무 잦은 게 흠이리라.

아는 지명들이 나오는 게 좀 드물었으면 반가움이 클텐데, 한 페이지에 내가 사는 지역에 남아있는 문화재들이 다 나오니 버겁다고 해야겠다.

주위에서 겁을 줬으니 최대한 천천히 책장을 넘긴다. 꼭꼬 씹을 정도는 아니지만, 눈과 입으로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30여분사이 30페이지를 읽어냈다.

아, 갈 길이 멀구나....

순교를 당한 두 명의 이야기. 앞으로 어떤 얘기가 펼쳐질지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2019.12.02) : 저번주 화요일부터 읽기 시작한《최후의 만찬》..
진도가 나가지 않아 책을 덮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다.
이 책의 진도가 넘 늦어지는 바람에 저번주 모든 독서 계획 또한 지리해져버렸다.
한 시간 넘게 붙잡고 있어도 30페이지를 읽어내지 못하는.. 가독성이 심히 떨어지는 책이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내기를 할 정도로 읽기 버거운, 독서모임의 지정도서가 아니었으면 계속 읽을 생각조차 하지못할..
이야기의 중간지점에도 오지 못한 나의 느낌은 현재 이렇다.. 마지막에는 이 책을 잘 읽었다고 할 수 있을지, 궁금한 마음으로 완독 목표를 하고 있다..
힘내서 오늘 2부까지라도 읽어보내기를 다짐한다.
 

(2019.12. 03) : 어젯밤 독서습관포스트를 적은 뒤부터 내내 붙잡고 있었다.
자다깨다를 몇번이나 반복하니 이건 잔 것이 아니었다..
졸았다가 맞는 표현일듯하다..
졸다 깨면 책을 집었다..
한 장 두 장 읽어내렸다..
밤새 그러하다 아침 눈 뜨자마자 이 책을 두 손에 들었다..
이렇게 이 책은 나를 지치게 만들었고, 오기가 생기게 만들었고, 작가에게 쫓아가고 싶었고..
작가의 말놀이같은 반복어를 찾는데 혈안이 되었다..
이야기는 반복재생마냥 토씨 하나 둘씩만 바뀌어 등장했다.. 계속되는 문장들의 반복에 이야기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나왔다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고 없었다.. 사라짐은 순식간이었다..
말구덩이에 빠진것처럼 나는 이야기속에서 허우적댔다..
그 허우적댐이 묘하게 사람을 미치게 하니 책을 그만 덮을수도 없는 일이니 끝장을 봐야할것같다..
이제 이야기 마무리까지 80여페이지, 끝이 보이니 마음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2019.12.05) : 뒤로 미뤄놓았던 《최후의 만찬》을 드디어 덮었다.
사실 뒤는 아껴놓았다. 천천히 엔딩을 느끼고 싶어서라고 말해야겠다.
처음, 중간.. 3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전투태세였다.
책이 나에게 싸움을 걸어대는 것 같았고, 나는 그 싸움에서 자꾸 나가떨어졌다.
책에게 자꾸 밀려 책장을 덮어버리기 일쑤, 내 속 어딘가에서 스멀스멀 오기가 삐져나왔다..
널 읽어내고야 말겠다는 오기.
오기로 읽어내려가고, 내 나름대로 문장들 속에서 말놀이거리를 골라내가며 읽으니 어느덧 이렇게 책장을 온전히 덮는 날이 왔다..
잘 읽었다!
그렇지만 이번 기회가 아니었음 절대 읽어내리지 못했을~~^^
마치 애증같은 관계의 나와 이 책..
밉지만 애틋하고 좋아하지만 싫은..
책이 싸움을 걸어올 때가 있었던가.. 머릿속을 헤치며 생각해보지만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
그냥 오랫만이었던 것 같은, 잘 읽었다, 《최후의 만찬》
(P.364) 모두 보풀같은 생을 살았다. 여령과 무동은 세상안에서도 밖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드러나지 않아도 모두는 굴레를 벗고 개성대로 뚜렷이 살아가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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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서철원펴낸이: 김선식펴낸곳: (주)다산북스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며, 조선 후기 서양종교가 탄압받는 상황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판타지로 엮어낸 재미난 소설이다. 그러나 어렵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언어가 아니고 당시대에서 자주 사용하는 언어를 차용해 묘사한 탓으로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끈;
리뷰제목

지은이: 서철원

펴낸이: 김선식

펴낸곳: (주)다산북스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며, 조선 후기 서양종교가 탄압받는 상황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판타지로 엮어낸 재미난 소설이다. 그러나 어렵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언어가 아니고 당시대에서 자주 사용하는 언어를 차용해 묘사한 탓으로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끈기있게 꾸준히 읽으면 또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끝까지 읽기에는 인내를 요구한다. 끈기를 가진 독자가 아니면 감히 도전하기 어렵다. 그래도 기나긴 가을 또는 겨울밤에 읽기에 적당한 책일 수도 있다. 읽다보니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니 고개가 갸우뚱 거려진다. 이전까지의 작품들은 민족적 정서가 진하게 깔려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작품은 조금 의외다.

 

 

소설이 허위의 창작품이라는 본질에 충실하다면 어느 정도의 허위가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질까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그림을 두고 조선사람과 머나먼 이탈리아 사람이 연결된다. 지금도 쉽지 않은 일이 당시의 상황에서도 가능했을까 생각이 들지만 소설은 무엇이든 가능하다. 남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상상력을 부여한다고 봤을때 <최후의 만찬>은 비약이 아니다. 또한 당시대의 민초들의 아픔이 임금에게까지 연결되지 않았을지라도 어떤 매개를 통해 임금이 민초들의 곤궁함을 알게 된다면 그 또한 소설의 완성도를 높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가 넘으면 독자들은 허구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리게 되고 그 허구를 허구로 받아들여 가독성이 뚝 떨이진다. 소설을 소설로 인식하면 그 순간 흥미가 뚝 떨어진다. 그런 점에서 <최후의 만찬>도 자유스럽지 못하다.

 

 

최근 몇 년동안 문단이나 영화 등 허구의 세계를 다루는 곳에서 사극 중 가장 많이 다루어진 시대가 바로 영정조 시대였던 것 같다. 노론의 힘으로 왕좌에 앉은 영조는 그들의 힘에 의해 아들을 죽이게 되고 손자마저 생존의 위기에 빠지게 만들지만 그가 한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겨우 혈통을 유지하고 사망한다. 정조는 아버지를 잃고 할아버지에 의해 성장하지만 그 아픔을 고스란히 가직한 결손가정의 대표인물이 된다. 지금도 결손가정이 문제가 되고 있거늘 문제가정의 정조가 왕좌에 오르고 그 자리를 유지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삶이 큰 화제가 되곤 했다. 그런 흐름 속에 <최후의 만찬>은 또다른 시각에서 정조를 보고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신선하고 놀라울 뿐이다.

 

 

우리가 아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당시대를 살아가면서 느꼈을 감정과 생각들이 소설가의 손을 통해 드러나면서 생생하게 살아나는 느낌을 가진다. 익숙한 이름과 인물들이라 더욱 그런듯 싶다. 읽기 조금 어렵지만 충분히 기나긴 가을밤을 재미로 가득채울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최후의 만찬>을 가을 책으로 조심스럽게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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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6건) 한줄평 총점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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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을 | 2020.05.21
구매 평점4점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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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 | 2020.03.03
구매 평점5점
혼불 수상작입니다. 그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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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로얄 k****6 | 2019.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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