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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닌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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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5월 13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128*188*20mm
ISBN13 9788958561477
ISBN10 895856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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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했던 마지막 말과 그녀의 손에 입 맞추었던 것을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그 순간 부끄러워하는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녀는 내게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들을 선사하지 않았던가?’
--- 「어두운 가로수길」 중에서

그에게 그녀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어 있었다. 키가 낮은 숲 어둠 저편으로 푸르스름한 미명이 사라지지 않고 떠 있었다. 그 빛은 저 멀리 하얀 호수에 약하게 반사되었다. 강가에서 이슬을 머금은 풀 향기가 강하게 풍겨왔다. 〈중략〉 모든 존재들이 어딘가에서 바스락거리고, 기어다니고, 돌아다녔다.
--- 「루샤」 중에서

그 문 뒤로 누군가가 조용히 걸어 다니며 비밀스럽게 무언가를 하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고 침대에서 기어나와 첫 번째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는 귀를 기울였다. 두 번 째 문 너머에서 무엇인가가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그는 얼어붙어버렸다. 정말 그녀의 방일까!
--- 「안티고네」 중에서

그녀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와 헤어지지도 이별하지도 않고, 절망에 빠져 헛되이 기다리면서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예전 같은 생활로 완전히 되돌아갔으면 했다. 타냐는 그런 생각을 지우려고 애쓰면서도 밤이나 낮이나 정원, 들판, 탈곡장 그 어디에서든 얼마든지 자유롭게 오랫동안 그가 자신의 곁에 머무르게 될 행복한 여름을 상상했다.
--- 「타냐」 중에서

아침에도 전보는 오지 않았다. 그는 전화를 했다. 연미복을 입은 눈이 큰 젊은 이탈리아 미소년 심부름꾼이 그에게 커피를 가져왔다. “편지도 전보도 없었습니다, 나리.” 그는 파자마를 입은 채 바다로 쏟아져 황금 바늘처럼 흔들리는 햇빛에 눈을 찡그리며 바닷가를 바라보거나 산책하는 수많은 인파를 바라보기도 하고, 발코니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행복과 즐거움에 기진맥진한 이탈리아 노래를 들으며 발코니 쪽 문 옆에 한동안 서서 생각에 잠겼다.
“빌어먹을 여자 같으니. 이제 다 알겠어.”
--- 「겐리흐」 중에서

그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침대 머리맡에서 타다 남은 양초 아래 회중시계 초침의 째깍째깍 소리가 들릴 정도로 집 전체가 어둡고 고요해지는 은밀한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나는 모든 것이 놀라우면서도 무서웠다. 신이 동시에 서로 다르지만 격정적인 두 개의 사랑을 주며 나를 벌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 「나탈리」 중에서

언젠가 그가 죽는다면 견딜 수 없을 거라고 경솔하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죽음을 견뎌냈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내가 겪었던 모든 일들을 돌이켜보며 내 자신에게 되묻고는 한다. ‘대체 내 삶에 무엇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스스로에게 대답한다. ‘오직 그 차가운 가을 저녁만이 있었을 뿐이야.’
--- 「차가운 가을」 중에서

나에게 그녀는 수수께끼 같고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우리는 아직 완전히 가까워지지 못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나를 끝없이 압박하면서도 고통스러운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와 함께 보내는 매 시간마다 나는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 「깨끗한 월요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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