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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기호의 연작 짧은 소설집] 『눈감지 마라』에서 작가는 돈은 없고 빚은 많은, 갓 대학을 졸업한 두 청년의 삶을 조명한다. ‘눈감지 마라’ 하는 제목 아래에 모인 소설은 눈감고 싶은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작품 곳곳 이기호식 유머가 살아나는 순간 이야기는 생동하고, 피어나는 웃음은 외려 쓰다. -소설 PD 박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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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뒤를 조심하라
이사 이토록 무거운 죽 이 아버지를 보라 빠져든다 옆방 남자 최철곤 휴게소 해후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 첫눈 증인 생일 편지 벚꽃 철야 스승의 밤 우리 어깨에 올라탄 분노 사회 천국의 가장자리 롱 패딩 장착기 아주 못생긴 바위 하나 봄밤, 추심 네 이웃의 불행 창작자의 길 황토에서 나온 것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 할아버지의 기억법 모두 견디는 사람들 나를 뽑아줘 젖소의 운명 어떤 졸업식 자가 격리 눈감지 마라 고사리 한 봉지 교회는 어디로 가시나? 아직 살아 있다 어떤 경비원의 삶 영혼까지 끌어 쓴다는 일 메리 크리스마스 카 푸어의 마지막 밤 목걸이 누군가 머물렀던 사소한 작별 빈자리 누가 공평을 말하는가 실종 신고 그의 행적 작고 여린 스무 살 지방러 도로교통법 제154조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 말할 사람 작가의 말 |
저이기호
관심작가 알림신청LEE GI-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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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은 대체로 섬광처럼 나타나는 ‘순간’이나 ‘사건’에 집중하기 좋은 장르이지만, 아무래도 ‘인물’에 대해선 깊이 들어갈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 단점을 돌파해보고자 지난 5년 동안 소설 속 두 인물, ‘전진만’과 ‘박정용’의 뒤를 부지런히 쫓아다녔는데, 지나고 보니 내가 기록한 것은 그 친구들이 아닌, 그 친구들의 ‘흐르는’ 시간뿐이었던 것 같다. 나는 겨우 그것만 할 수 있었다. 그 친구들의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게 될지, 나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
---「작가의 말」중에서 그거 알아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요! 진만의 목소리는 취기를 이길 수 없어 보였다. --- p.14 나는 왜 늘 그런 벽 뒤에서만 살았을까? 정용은 가만히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바람보다 소리가 먼저 도착하는 방, 소리만으로도 한기가 느껴지는 집, 벽을 만나면 더 커지는 소리들……. 진만과 함께 구한 광역시 반지하 자취방 역시 그랬다. 밤마다 웅웅웅 어디선가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옆방 남자의 코 고는 소리와 위층 사람의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심지어는 누군가의 이 가는 소리까지. 소리는 어두워질수록 더 커졌고, 더 깊어졌다. 정용은 그게 다 가난한 벽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가운데가 텅텅 빈, 합판으로 세운 벽……. 그런 벽 뒤에서 살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의 몸에서도 텅텅, 공기 울리는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 pp.46~47 토요일 밤이었지만,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따뜻한 잠자리를 위해 아찔한 허공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그 사람의 직업이었겠지만,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겐 어떤 위로가 되는 모양이었다. --- p.72 진만은 생각했다. 왜 없는 사람끼리 서로 받아내려고 애쓰는가? 왜 없는 사람끼리만 서로 물고 물려 있는가? 우리가 뭐 뱀인가? --- p.141 정용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자가 격리’라는 단어가 참 이상한 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기 집도 없고, 자기만의 방도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자가 격리를 하는가? 뭐, 마음으로 하는 건가? --- p.208 정용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전염병이 자꾸 들춰내는 것만 같았다. 마음을 들키는 것만 같았다. 그게 불편하고, 또 화가 났다. --- p.209 그래도 아직 살아 있다. 정용은 저도 모르게 그 말을 중얼거렸다. --- p.234 정용은 지금 진만의 수중에 25만 원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남들은 몇억 원씩 되는 아파트를 영혼까지 끌어 마련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진만의 영혼은 과연 어떤 영혼인가? 무슨 다이소 같은 영혼인가? 다이소에서 파는 5천 원짜리 지갑에 깃든 영혼인가? --- p.242 “난 말이야, 카 푸어란 말이 정말 듣기 좋아. 하우스 푸어, 빌딩 푸어, 카 푸어. 이런 말들 멋있지 않냐? 뭔가 막 의지 같은 게 느껴지는 거 같고. 그런 거 빠지면 우린 그냥 푸어잖아, 푸어.” --- p.254 그렇다고 우리가 돈이 필요 없는 건 아니잖아요? 지방에 살아도 매달 내는 휴대폰 요금은 똑같잖아요? 진로니 꿈이니 그런 것도 다 돈 걱정이 없어야 생각할 수 있죠……. --- p.297 때론 어떤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도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그즈음 정용은 깨닫고 있었다. --- p.313 “말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형……. 자꾸 술하고 얘기하는 거 같아요.” --- p.315 |
“왜 없는 사람끼리 서로 받아내려고 애쓰는가?
왜 없는 사람끼리만 서로 물고 물려 있는가?” 모두 조금씩 ‘견디는’ 고단한 사람들 『눈감지 마라』의 주인공 정용과 진만은, 지방 사립대를 졸업한 후 저렴한 월세 원룸을 구해 함께 살기로 한다. 돈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출장 뷔페와 고속도로휴게소 아르바이트 등을 함께하고, 난방비를 아껴 겨울을 나기 위해서 팬티스타킹을 사 입는다.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들이 마주하는 것은, 역시나 가난한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다. 통닭집 앞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다가 갈등을 일으키는 노부부, 설거지 일이 손에 익지 못해서 민폐를 끼치는 삼계탕집 아주머니, 진만에게 돈을 대신 갚아줘야 하는 택배 기사 최현수 씨……. 어떻게든 생활을 잘 꾸려나가기 위해 애쓰지만 저마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인 것이다. 정용과 진만은 이러한 타인의 삶을 마주할 때마다 때로는 울컥함을, 때로는 면면이 수치심을 느끼기도 한다. “너 왜 가난한 사람들이 화를 더 많이 내는 줄 알아? 왜 가난한 사람들이 울컥울컥 화내다가 사고치는 줄 아냐구!” 진만은 숨을 죽인 채 가만히 정용의 말을 듣기만 했다. “피곤해서 그런 거야, 몸이 피곤해서……. 몸이 피곤하면 그냥 화가 나는 거라구. 안 피곤한 놈들이나 책상에 앉아서 친절도 병이 된다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거라구!” _112~113쪽 진만은 특히 정용보다 조금 더 어리숙하고, 여리고, 이른바 생활력도 부족한 인물이다. 애견미용학원 견습생들의 서툰 미용 실습에 동원되어 학대당하는 강아지들을 보며 마음 아파하고, 만화 카페에서 만난 초등학생과 친구가 된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유제품 가공업체에 취직했다가 금방 그만두기도 한다. 정용은 그런 진만을 안쓰럽게 보는 한편, 조금은 답답함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정용은 진만에게 ‘거지새끼’라는 실언을 하게 된다. 더 심한 농담도 주고받았던 둘이지만, 진만이 내지 못한 원룸 보증금을 정용이 대신 전부 낸 후였기에 진만으로서는 허투루 들을 수 없는 발언이었다. 그렇게 둘은 헤어지고 얼마 뒤 진만은 실종된다. 정용은 쉽게 잠들지 못하고 계속 뒤척였다. 잘된 일이라고, 언젠가 따로 살 날이 올지 알았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래도 내일이나 모레쯤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오겠지, 짐작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퍼뜩, 정용은 어떤 생각이 들어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는데, 아아,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어두운 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보증금 때문이구나, 이 원룸 보증금을 내가 다 냈다고…… 그래서 그 말이 더 상처였겠구나……. 정말 거지가 된 기분이었겠구나……. _269쪽 ‘우린 함께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위트와 페이소스를 넘나드는 이야기의 힘 『눈감지 마라』는 손쉬운 위로를 건네는 소설이 아니다. 이기호는 정용과 진만에게 ‘적당한’ 해피엔딩을 선사하지 않는다.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늘 벅차고, 무섭고, 간신히 버틸 수 있을 만큼 아슬아슬하다. 그러나 소설을 읽다 보면 그들은 ‘함께’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기호의 유머는 진만과 정용이 함께 있는 장면, 그들이 빚어내는 화학작용에서 빛을 발한다. 이는 사람들이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연대’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일 테다. 또한 소설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민재’는 보다 단도직입적인 목소리로 “말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눈감지 마라』에서도 나타나듯 사회를 향한 이기호의 시선은 한층 더 정교해지고, 날카로워지고 있다. 동시대 소설가 중 가장 감각적인 유머리스트의 깊어지는 현실 탐구, 그의 이후 소설 세계가 계속 궁금한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에겐 애당초 보편적인 ‘지방’과 ‘청년’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각기 다른 지방과 각기 다른 청년만 있을 뿐이다. 이야기는 늘 거기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나는 지방에서 태어났고, 지방에서 성장했으며, 지금도 지방에서 살고 있다. 그건 누구도 나에게서 빼앗아갈 수 없는 내 감수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나는 그거 하나에 의지해 글을 쓰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_「작가의 말」에서 |
[2022 내 맘대로 올해의 책]
주변에 흔히 있는 20대 청년 정용과 진만의 짤막짤막한 이야기 49편. 무거운 소재인데 즐겁게 읽었다. 작가님과 유머 코드가 맞는듯. - 권남희 (번역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