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08월 05일 |
---|---|
쪽수, 무게, 크기 | 184쪽 | 330g | 150*210*12mm |
ISBN13 | 9788932474755 |
ISBN10 | 8932474753 |
발행일 | 2022년 08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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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84쪽 | 330g | 150*210*12mm |
ISBN13 | 9788932474755 |
ISBN10 | 8932474753 |
MD 한마디
[마침내, 헤어질 결심]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헤어질 결심〉의 오리지널 각본. 영화 곳곳에 담긴 치밀하고 아름다운 말과 이야기를 책으로 다시 만난다. 끝내 당신의 ‘미결 사건’이 될 이 영화를 문장으로 새롭게 읽어내며 당신만의 작품 또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망설임, 그거 버려요. 깊은 바다에 버려요. -예술PD 박형욱
問世間, 세상 사람들에게 묻노라,
情爲何物, 정이란 무엇이길래,
直敎生死相許 이처럼 삶과 죽음을 서로 허락하는가
금나라 시인 원호문의 안구사雁丘詞라는 시의 첫 소절이다. 이 소절은 신조협려를 읽어본 故 김용 작가의 팬들이라면 누구라도 잊지 못할 한 소절일 것이다. [헤어질 결심]은 이 시와 신조협려를 떠오르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존 트라볼타와 셀마 헤이엑의 2006년 작 영화인 [론리 하츠 Lonely Hearts]도 떠오르게 만든다. 그 사랑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기억 속의 이 작품들과 맞닿아 버리는 것이다.
농담 안 할 테니까 해준 씨도 솔직히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날 떠난 다음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끼지는 않으셨습니까
아마 살아있는 느낌이 아니었을 것이라 짐작이 됩니다.
당신은 내내 편하게 잠을 한숨도 못 잤죠
억지로 눈을 감아도 자꾸만 내가 보였죠?
당신은 그렇지 않았습니까
그날 밤 시장에서 우연히 나와 만났을 때,
당신은 사는 것 같았죠? 마침내.
서래가 번역기의 힘을 빌려 해준에게 물었던 이 물음들에 대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지난 세월 어디에선가 대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이들도...
삶에서 사랑을 뺀다해도 물론 무슨 맛이든 맛은 날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 빠진 맛은 커피에서 커피 맛이 사라진 것과 무엇이 다를까
보이지 않을 곳들 뼈만 골라서 부러뜨리던 깔끔한 남편 기도수는 서래의 몸에 자신의 것이라는 낙인을 찍듯 KDS라는 문신까지 새겨넣었다. 그런 남편과 살던 그녀였기에 해준이 그녀에게 신문 이후 사준 사시미가 친절하고 다정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해준 역시 처음부터 그녀가 남달랐기에 그리 대접한 것일 테고. 길고양이가 까마귀 사체를 먹이의 답례로 놓아 둔 이후에 그녀의 대사나 그녀의 말을 번역해 들어 보려는 해준의 잔망스러움도 감정의 오고 감이 거듭 느껴지는 연속들 사이에서 인상 깊던 부분이다. 자신을 감시하려 잠복 아닌 잠복하던 그에게서 그녀가 느낀 심정은 후에 대사로 전해지기도 하는데 그녀의 마음을 이미 짐작했지만 그녀의 고백으로 듣는 심정은 더 깊이 와닿았다. 임호신과 재혼한 그녀의 심정도 이해가 갔지만 역시 그녀 자신의 입으로 들으면서 더 깊이 와닿았다.
해준 (답답하다는 듯 약간 톤이 올라가서)
왜 그런 남자하고 결혼했습니까
서래 (눈에 힘주고 똑바로 보면서)
다른 남자하고 헤어질 결심을 하려고, 했습니다.
이 대사 속 다른 남자는 다름 아닌 해준을 이야기하고 그와 헤어질 결심을 했다는 그녀의 면면은 그녀가 결코 그와 헤어질 인연이 아니었고 헤어질 마음도 진심이 아니었음을 보여 준다. 극의 대미에서 보여준 그녀의 최종 결정은, 그녀의 마지막 결심이 헤어질 결심이 아니라 하나될 결심임을 확인시켜준 것이라 생각됐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그녀는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결코 헤어질 수 없는 불멸의 연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그녀에게 해준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대사도 인상적이었다. 론리 하츠란 영화가 깊이 연상된 것도 다음 대사 때문이다.
서래 나는 왜 그런 남자들하고 결혼할까요
... 해준 씨 같은 바람직한 남자들은 나랑 결혼해 주지 않으니까.
얼굴 보고 한마디라도 하려면 살인 사건 정도는 일어나야 하죠.
시나리오 중반의 서래가 ‘우리 일을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라고 말하고 나서 해준의 대사는 거기까지 각본을 읽는 동안엔 그냥 지나치게도 되었는데 그 대사의 깊음을 극의 종반에 이르러 그것이 얼마나 깊은 사랑 고백이었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하지만 인용해 옮기지는 않겠다. 스포일러를 최소화하려 하지만 그런데도 스포일러가 넘치고 있는 이 리뷰에 최소한의 양심을 담아 남겨 두어야 할 대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나에게 선물을 꼭 하고 싶다면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 주세요.
난 좀 갖고 싶네.
이 말은 극 초반의 서래의 중국어를 번역해 남자 성우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대사로 길고양이만이 아니라 해준에게 꼭 전해져야 할 마음이었고 다행스럽게도 해준은 그녀를 따라가 그녀의 그 말을 녹취해 번역해서 듣는다.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씬들이 잦지만 그녀의 대사와 해준의 집요함이 드러나는 이 장면은 그 중에서도 백미가 아니었나 싶다.
나로서는 이 영화의 스토리 자체와 스토리 보다 튀지 않고 짧은 사랑 이야기를 잘 담고 있는 대사들도 마음에 들었다.
해준과 서래 둘 다가 이 이야기가 전하고 있는 사랑의 정의를 온전히 실천하고 있는 인물들이라 여겨졌다. 사랑이 얼마나 거대한 깊은 원형인지를 다시금 깊이 느꼈다. 각본집부터 보게 되었지만 꼭 영화를 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헤어질 결심]을 읽으며 까만 밤이 보랏빛이 되었다.
아니다, 소화야... 아니야... 진정 용맹한 행동은 사랑이야.
사랑은... 그 외 다른 모든 것의 포기니라
어차피 헤어질 사이라면
<헤어질 결심 각본>을 읽고
2022년 칸 영화제 감독상, 제43회 청룡영화상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등 화려한 수상이력만 봐도 올해의 영화로 손색없는 작품이 있다. 그런데 아직 난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미루고 미루다 결심을 못했을 뿐이다. 해마다 첫날이 밝아오면 고르고 고른(혹은 미루고 미루뒀던) 영화 한 편을 본다. 새해 첫 영화 감상을 위한 준비로, 더불어 얼마 남지 않은 2022년과 헤어질 결심으로 정서경 작가와 박찬욱 감독이 공저한 <헤어질 결심 각본>을 집어들었다.
최근 각종 드라마와 영화의 각본집이 잇따라 나오면서 영상을 좋아하는 팬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의 관심과 주목을 끌고 있다. 지금껏 각본(시나리오)은 배우들과 영상 제작자의 전유물로만 여겼는데, 이번에 처음 만나본 각본집을 통해 영화의 원작 소설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각본집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느냐 또는 영화를 본 다음 소설을 읽느냐에 따라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과 감흥이 달라진다.
소설과 닮은 듯 다른 각본집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자기만의 배우를 캐스팅하고, 실내와 야외 무대 장치를 마련하여 영화 한 편을 지휘하는 기분을 가져다준다. 또한 인상깊은 대사나 장면을 실제 영화는 어떻게 표현해냈을지 상상해보게 만든다. 무릇 이야기에는 인물, 사건, 배경이 나온다. <헤어질 결심 각본>에서는 '산'과 '바다' 그리고 '안개'라는 자연인 동시에 무대라는 요소가 사건을 마주하는 등장인물들의 복잡미묘한 감정과 생각을 더 도드라지게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81. 구소산(낮)
(······)
도수 : 거의 다 왔습니다, 마지막 오버행이 문제라면 문젠데······ 하여튼 보시면 압니다. 말러 오 번을 들으면서 출발하면, 사 악장 끝날 때쯤 도착합니다. 정상에 앉아 오 악장까지 듣고 하산하면 완벽하죠.
얼굴은 땀범벅 손은 상처투성이인 해준, 슬랩에 기대 잠시 쉬다 갑자기 고개를 갸우뚱. 방송을 정지시키고 스마트워치에-
(103~104쪽)
지금껏 산 사람이지만 산(山)사람은 아니라서 산에서 클래식을 들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1악장에서 4악장까지 들으며 산을 오르고, 산 정상에 앉아서 5악장을 마저 듣는 기분은 어떨지 사뭇 궁금해진다. 도수는 자신의 소지품마다(심지어 아내인 서래의 몸에도) 이니셜을 새길 만큼 소유욕이 강한 남자이자,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등산을 하고 그것을 영상으로 남기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각본집을 펼치자마자 그는 산 사람이 아니라 산(山)에서 실족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망자로 등장한다. 이를 계기로 사건 담당 형사 해준과 용의자 서래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다. 여기서 말러가 첫 눈에 반했다는 쉰들러의 러브스토리가 담긴 교향곡을 소개하고 듣는 인물이 해준과 서래가 아닌, 도수라는 사실이 퍽 흥미롭게 다가온다. 텍스트만으로 유추할 수 없는 무언가를 영화에서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72. 주방 - 정안 집(낮)
왼쪽 귀에만 이어폰 끼고 정훈희 「안개」를 흥얼거리는 정안, 오른쪽 이어폰 끼고 설거지하는 해준의 뒤에 서서 안은 상태.
해준 : 어떻게 알아? 이 구닥다리 노래를.
정안 : 이 동네선 모르는 사람 없지, 여기 주제간데. 트윈폴리오가 부른 거 알아?
해준 : 그래?
휴대 전화에서 나오는 노래 따라 흥얼거리던 정안, 갑자기 의심스럽다는 듯 해준의 몸 여기저기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얼어붙는 해준. 정안, 무서운 얼굴로 해준의 등짝 내리친다.
정안 : 폈네, 폈어.
(눈만 동그랗게 뜬 해준)
정안 : 담배!
해준 : 아, 수완이 이놈을 그냥······.
(93~94쪽)
책장을 펼치면 '안개'가 펼쳐진 듯하다. <헤어질 결심 각본>에서 안개는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맡고 있다. 안개는 당장 등장인물들의 시야를 뿌옇게 만들 뿐만 아니라 앞으로 그들이 각자 어떤 길에서 만나고 다시 헤어질지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안개」는 정안, 해준 부부가 나눠 낀 이어폰을 통해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귓가를 촉촉히 적신다. 안개만이 자욱한 선율 위를 걷는 듯한 가수 정훈희와 송창식의 목소리는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되었다가 어느 순간 독백으로 바뀌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형사와 사건 용의자로 처음 만난 후 묘한 감정을 쌓아가는 해준과 서래의 이야기를 대신하여 들려주는 것도 같다.
안개는 사람을, 사물을, 사건을 감싸 안는다. 노랫말처럼 바람이 안개를 걷어 가면 애타게 그리운 사람의 그림자라도 볼 수 있을까 싶지만 그의 행방은 묘연할 따름이다. 그래도 마냥 안개가 야속한 것만은 아닌가 보다. 안개 속에서 눈을 뜨면 눈가에 맺힌 눈물이 작은 물방울처럼 보여 슬픔의 흔적을 잠시나마 감출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148. 바닷가 / 해준 차 안(낮)
녹색 플라스틱 양동이를 든 서래, 바다 가까이 와서 잠시 바라보다 왼쪽으로 간다.
정훈희가 부르는 「안개」가 시작된다.
해안 도로를 질주하는 해준, 앞만 보고 운전한다.
산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 가운데로 난 계단을 오르는 서래.
해준의 차가 터널로 들어가면서 갑자기 어두워진다.
산 모양 바위에서 내려오는 서래.
해준 차가 터널을 벗어난다.
(178쪽)
앞서 말한 구소산 변사 사건이 <헤어질 결심 각본>의 출발점이지만, 각본집의 첫 문장은 "검은 화면에 '山' '산'이 동시에 필기체로 적힌다.(7쪽)"로 시작한다. 사건이 일단락 지어진 뒤 해준과 서래가 찾은 절이 산사(山寺)가 아니고, 그후 다시 사건의 실마리를 잡은 해준의 상상을 제외한다면, 두 사람이 함께 산을 오른 적은 없다. 서로의 마음을 숨긴 채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이제 두사람은 헤어질 수 없는 사이로 보인다.
"화면에 '海'와 '바다'가 동시에 필기체로 적히며(110쪽)" 안개 낀 바닷가에서 둘은 다시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일어난 또 한 번의 살인사건은 두 사람을 사건 현장으로 소환시킨다. 스릴러와 멜로 장르를 오가는 전개가 만남과 헤어짐을 되풀이하는 해준과 서래의 기묘한 인연을 표현하는 데에 절묘한 방식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서래는 바닷가에 자리한 산 모양 바위에서 내려오고, 해안도로를 질주하는 해준은 터널의 깜빡임을 통과한다. 안개가 낀 아침은 맑은 날의 전조(前兆)라고 하는데, 과연 두 사람은 헤어지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이어갈 수 있을까?
'결심(決心)'은 어떻게 하기로 먹은 마음 혹은 그렇게 마음을 먹는 일을 뜻한다. 어떤 일을 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전까지 마음을 먹는 과정이 더 어려운지도 모른다. 해준과 서래의 이야기가 어떤 이에게는 공감을, 또 어떤 이에게는 공분을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공감에 더 가까운 입장에서 회자정리(會者定離), 즉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져야한다는 말을 조금 비틀어 마무리를 짓고자 한다. 어차피 만남의 끝에서 이별이 손을 흔들고 있다면, 헤어지는 일이 그토록 힘겹다면, 헤어질 결심은 굳이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이러한 억지가 해준과 서래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제, 영화 <헤어질 결심>을 만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