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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 7p
기억을 말하는 방식 (옮긴이의 말) - 326p |
저아니 에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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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신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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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성적 욕망처럼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그것은 망자와 산자를, 실존하는 존재와 상상의 존재를, 꿈과 역사를 결합한다.
--- p.12 이러한 환경 속에서 결혼으로 섹스를 허락받기 전까지 자위의 시대는 끝없이 이어졌다. 우리는 이 쾌락의 욕구를 가지고 살아가야만 했고, 쾌락이란 모든 시도와 기도에도 불구하고,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욕구의 충족을 주장하는, 성도착자나 히스테리 환자, 창녀들로 분류되는, 비밀을 안고 있는 어른들을 위한 것이라고 믿었다. (중략) 우리는 침대 혹은 화장실에서 사회 전체의 감시를 받으며 자위했다. --- p.60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나이마다 자신이 살아온 해를 규명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과거를 어떻게 그릴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 p.97 한 개인의 삶에 역사는 의미가 없었다. 우리는 그날그날 그저 행복하거나 불행했다. --- p.20 그녀는 내면의 목표를 빗겨나가 그저 어머니로서만 전진하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조용하고 편안한 이 삶에 정착하는 것이, 자신도 모르게 이 삶을 살아 버리는 것이 두렵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한 순간에도, 그녀는 일기장에 절대 적혀 있지 않은 모든 것들, 함께 하는 삶, 같은 공간을 나누는 친밀함, 그녀가 수업이 끝나면 빨리 돌아가고 싶어 하는 집, 둘이서 자는 잠, 아침의 전기면도기 소리, 저녁의 돼지 삼 형제 이야기, 이러한 것들이 반복되는 일상, 잠시 떨어지면 삼 일을 넘기지 못하고 그리워지는, 그녀가 증오하고 아낀다고 믿는 것들을 ― 사고로 잃는다는 상상만 해도 그녀의 가슴을 옥죄는 모든 것들 ―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p.128 얼굴에는 분노와 경멸, 쾌락이 드러났다. 태도의 자유로움과 몸의 에너지가 화면을 뚫고 나왔다. 그것을 혁명이라고 한다면, 그렇다, 혁명은 그곳에 있었다. 선명하게, 육체의 팽창과 안이 속에, 혁명은 아무 곳에나 앉아 있었다. --- p.134 우리는 여성들의 역사를 돌아봤다. 성적인 자유, 창조의 자유, 남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142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책 한 권이 저절로 써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 p.188 그녀는 태어나서부터 2차 세계대전을 거쳐 지금까지 분리되고 조화가 깨진 그녀만의 수많은 장면들을 서사의 흐름, 자신의 삶의 이야기로 한데 모으고 싶어 한다. 개인의 것이지만 세대의 변화가 녹아 있는 삶. 그녀는 시작하는 순간, 늘 같은 문제에 부딪친다. 어떻게 역사적인 시간의 흐름과 사물들, 생각들, 관습들의 변화와 이 여자의 내면의 변화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떻게 45년의 프레스코화와 역사 밖 자아의 탐구, 고독이란 시를 썼던 스무 살의 일시 정지된 순간들의 자아를 동시에 만나게 할 수 있을까, 등등.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은 ≪나≫와 ≪그녀≫ 사이의 선택이다. ≪나≫ 안에는 너무도 확고부동한 것들, 편협하고 숨 막히는 무언가가 있고, ≪그녀≫ 안에는 너무 많은 외재성과 거리감이 있다. --- p.238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주어진 시대에 이 땅 위에 살다간 그녀의 행적을 이루고 있는 기간이 아니라 그녀를 관통한 그 시간, 그녀가 살아 있을 때만 기록할 수 있는 그 세상이다. --- p.318 |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즈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램 독자상
*2019 맨부커상 최종후보작* 주의 깊은 방식으로 공동의 기억을 담은, 진정으로 새로운 작품인 아니 에르노의 『세월』은 그야말로 놀라운 업적이다. - 올리비아 랭, 『이상한 날씨』 저자 의심할 여지없이, 위대한 현대 문학 작품 중 하나! - 엠마뉴엘 카레르, 『왕국』 저자 “≪여자의 운명 같은 것≫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역사 속에서 그녀의 내면과 그녀의 외부에 흐르는 시간을 느끼게 해주는 모파상의 인생 같은 어떤 것, 존재와 사물들의 상실, 부모, 남편, 집을 떠나는 자식들, 팔아 버린 가구들 속에서 끝이 날 ≪완전한 소설≫을.” 자전적 요소와 사회학적 방법론이 결합된, 자신만의 글쓰기 스타일을 만들며 전세계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아니 에르노의 소설 『세월』 개정판이 1984Books에서 출간되었다. 출간 직후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아, 〈마르그리트 뒤라스상〉, 〈프랑수아즈 모리아크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램 독자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후보에 오르기도 한, 아니 에르노의 대표작으로 여겨지는 소설 『세월』은 1941년에서부터 2006년까지, 노르망디에서 노동자 계급으로 태어나 자라온 것에서 시작해 파리 교외의 세르지에서 프랑스 문학을 가르치던 교수 그리고 작가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족 사진첩을 넘기듯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자신의 굴곡진 전 생애를 다룬다. “하나의 삶을 이야기하거나 자신을 설명하는 것을 추구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회고 작업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생각과?믿음, 감각의 변화, 사람과 주제의 변환을 포착하고 세상과 세상의 과거에?대한 기억과 상상을 되찾기 위해서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것이다. 어쩌면?그녀가 경험한 것은 그녀의 손녀와 2070년의 인간들이 경험할 것들에 비하면?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지만, 그녀를 쓰게 만드는, 이미 거기에 있는, 아직 이름 없는 감각들을 뒤쫓는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자서전으로 그치지 않는다. 아니 에르노는 이 책을 자서전에서 일반적으로 택하는 일인칭 시점이 아닌, ‘나’를 배제한 ‘그녀’와 ‘우리’, 그리고 ‘사람들’로 서술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야기 속 ‘그녀’는 아니 에르노 자신이면서 동시에 사진 속의 인물, 1941년부터 2006년까지 프랑스의 사회를 바라보는 여성의 시각이고, ‘우리’와 ‘사람들’은 언급된 시대 속에 형체 없이 숨어 버린 조금 더 포괄적인, 비개인적인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삶을 이야기하거나 자신을 설명하는 것을 추구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회고 작업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책 속에서 스스로 밝혔듯이,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세대의 이야기 속에 위치시키면서 개인의 역사에 공동의 기억을 투영하여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비개인적인 자서전’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탄생시키며 커다란 문학적 성취를 이뤘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무언가를 구하는 것.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글쓰기를 ‘하강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제자리에 서서 흘러가는 것들을 쓰다듬거나 지나간 것들을 불러들이는, 즉 회상의 과정이 아닌, 시간의 결을 스스로 거스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에 적힌 모든 언어는 하강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물론 거기에는 시간이란 한쪽으로 기울어져 흘러가 버리거나 사라지는 것만이 다가 아닌 어딘가에 쌓일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세월이라는 믿음이 필요할 것이다. 다치고, 깨지고, 풍화되나 단단하게 쌓여 가는 층들, 그녀의 언어는 그것을 하나씩 더듬으며 하강한다. 어느 시절의 목소리들이 다시 들릴 때까지, 어느 순간의 감각들이 되살아날 때까지. 하강의 과정은 재연이 아니다. 그녀는 책에 기록된 모든 순간을, 모든 시대를 다시 산다. 그것은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느낌이 아닌, 육체를 통해 감지하는 감각의 부활이다. 시간의 불가역성 속에서 하강하는 것, 그것이 그녀가 쌓아 올린 혹은 더듬어 내려간 세월이 아닐까. 그러니 책의 첫 문장 ‘모든 장면들은 사라질 것이다’라는 그녀의 예언은 틀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모든 장면은 여기, 그녀만의 언어로 기록되어 사라지지 않는다. 이미 방향이 정해진 시간과 시간의 등에 올라탄 우리는 어쩔 수 없을지라도, 이곳에 적힌 ‘삶’만큼은 사라지는 모든 것들 사이에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