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05월 15일 |
---|---|
쪽수, 무게, 크기 | 332쪽 | 372g | 120*205*22mm |
ISBN13 | 9791190533126 |
ISBN10 | 119053312X |
발행일 | 2022년 05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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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32쪽 | 372g | 120*205*22mm |
ISBN13 | 9791190533126 |
ISBN10 | 119053312X |
세월 - 7p 기억을 말하는 방식 (옮긴이의 말) - 326p |
지독한 것들과 죽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야 했다. / p.203
예전에는 얼른 어른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지만 지금은 한 살이라도 젊어지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러면서 부모님과 다른 어른들의 이야기 하나가 크게 공감이 된다. 세월은 갈수록 빠르게 흐른다는 말. 그때는 이해도, 공감도, 그렇다고 실제로 빠르게 흐르는 것 같지도 않았다. 끝이 없는 학교 생활이 계속 이어질 줄만 알았다.
지금은 너무나 하루하루 빠르게 흐르고 있음을 체감한다. 눈을 감았다 뜨면 일주일, 한 달, 그리고 일 년. 2023 년에 모 방송사의 연말 음악 축제에서 가수 장기하 님의 <새해 복>이라는 노래를 들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 분기가 흘렀다. 아니, 아예 봄이 되어 벚꽃도 졌다. 옷차림도 많이 얇아졌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한 살 카운트가 오를 것임을 알고 있다. 더 빠르게 흐를 세월이 이제는 무섭기까지 하다.
이 책은 아니 에르노의 장편소설이다. 전에 아버지의 삶을 다룬 책이 꽤 인상 깊게 남았다. 다른 이성인 남성의 삶을 객관적으로 나열이 되었다는 점이 지금까지 읽었던 주제와 조금 다르게 느껴졌는데 주변에서 이 작품에 대한 추천을 많이 받았다. 분명히 좋은 기억을 받았다면 이 작품 역시도 만족할 것이라고 했다. 사실 이 책은 꽤 오래 전에 구매했는데 시간이 없어 미루다 이제서야 펼치게 되었다.
소설의 화자는 사진 또는 그림, 영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1941 년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꽤 오랜 시간동안 전개가 된다. 남자를 만나 성애적인 사랑을 나누고, 전쟁과 종교, 사회적인 분위기에 대한 기술도 한다. 끝까지 이름을 밝힌다거나 드러내지 않고 '단지 그 여자는 사진의 누구다.' 정로도 표현된다. 한 사람의 생에서부터 사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읽으면서 여성으로서, 프랑스라는 국가의 국민으로서, 당시 사회를 살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 혼란스러운 사회상과 감정을 어렴풋이 경험할 수 있었다. 나름 기대를 가지고 읽었던 책이었는데 생각보다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것도 묵직하게 와닿았다. 그 지점이 감정적으로 감당하기 조금 힘들었으며, 작품의 문체를 떠나 어려웠다. 어려움과 별개로 화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지점이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첫 번째는 공간적인 배경이었다. 소설이기는 하지만 겪은 이야기를 집필한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작품 역시도 읽으면서 저자의 세월을 다루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주된 무대가 프랑스인데 세계사를 배운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디테일하게 배우지 않다 보니 용어들을 이해하는 게 조금 힘들었다. 아래 주석을 보지 않는다면 더욱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는 여성에 대한 시각이었다. 소설에서는 성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낙태는 하나의 죄악이 되고, 여자는 성적인 욕구를 내비치거나 결혼하기 전 남자와 관계를 가지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시대상과 함께 여성으로서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이런 부분에서 조금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직접적인 단어들이 자주 보였는데 아무래도 보수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이기에 이 부분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외설적인 느낌을 받은 것과 별개로 화자의 감정과 생각 자체는 많은 공감이 되었다.
도전이자 과제를 한다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꾹꾹 완독을 했던 것 같다. 작품을 통해 한 여성의 진실된 삶을 보게 되어 참 인상 깊었다. 그러나 아직은 감정을 받아낸 것보다 어렵게 느껴져서 이 부분은 많이 아쉬웠다. 추후 조금 더 문학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면 온전히 이해하고 싶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이라 관심이 갔고,
첫 책으로 젊은남자를 먼저 읽고서, 이 책을 선택했다.
얇은 책이어서 두 번을 내리 읽었다. 얇다고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다.
"나의 종(種)을 배신하기 위해 나는 글을 쓰겠어?" 라는 작가...기억, 시간, 사랑과 글쓰기...
고령의 작가의 경험과 정수를 녹인 작품들 쉽지 않았다.
번역이 다소 부자연스러워 매끄럽게 넘어가지 않아 여러 번 읽었다.
책은 1984books 책들이 그러하듯 소장 욕구를 일으키니 예쁘다.
그러나 조금 인내와 시간이 필요한 책이었다.
조금 더 나이들어 읽어보면 그때는 이 책이 어떻게 다가올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누구에게나 주워진 똑같은 시간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펄펄 살아 숨 쉬는 것만 같다. 이토록 상세하게. 이토록 감각 있게. 이토록 명징하게. 아니 에르노의 <세월>을 읽고 난 느낌이었다. 그가 살아온 삶의 시간은 어쩜 이렇게나 세세하게 기록될 수 있었을까. 기억력이 너무 좋은 천재이거나 혹은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아니었을까. 삶이 너무나 소중해서 한순간도 허투루 자신의 삶을 낭비한 적 없는 사람의 기록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겠다.
갑갑했던 학창 시절, 어른들의 삶을 동경하며 세 살씩 자라기를 바랐고, 개인의 사적인 감정, 삶과 사랑에 대한 고민을 날 것 그대로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했으며, 프랑스 사회의 정치적 이념이 힘겨운 시대를 거쳐야 했던 청춘들에게 어떻게 각인이 되었는지, 그 안에서 느꼈던 시대의 아픔과 고뇌가 지적인 언어들의 운동장인 양 <세월>이라는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결혼 후의 삶은 또 어떤가. 엄마의 자리와 커리어, 양립할 수 없는 큰 두 축 앞에서 느껴야 했던 여성의 삶에 대한 묘사는 여전히 진행 중인 여성들의 고뇌를 대변하는 것만 같다. 홀로 아이를 키우며 느꼈을 고독과 외로움은 마치 내 이야기 같아 가슴이 아리다. 특히 이런 글들은 더.
예전의 삶이 3년 전 혹은 그 이상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으며 그 시간을 즐기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다. 그녀들은 음식과 빨래, 소아병을 고민하게 됐다. 절대 어머니를 닮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그녀들은 조금 더 가볍게 어머니의 뒤를 이어갔다. 그것은 제2의 성의 독서와 물리넥스가 여성을 해방시켰다가 장려한 거침없는 형태였으며, 어머니들과는 다르게 이유 없이 의무감을 느꼈던 모든 가치를 거부했다.
아니 에르노, <세월> 본문 117쪽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나를 둘러싼 세계는 적막처럼 고요하게 느껴지고,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해 세상과 나와의 괴리감을 한 번쯤 경험해 봤을 독자들이라면 그녀가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변화의 흐름에 깊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세상을 응시하는 방식에서 불만과 우울이 아니라 섬세하고 예리하게 직시할 줄 아는 그 힘에서 독자들은 어떤 희열도 느끼리라. 세상의 발전이 우리의 행동과 자세까지 어떻게 바꾸어 나갔는지 그에 따른 우리 삶은 얼마나 더 편안함을 추구하고 있으며 만족감은 더 이상 도달하지 못하는 상상의 무엇인 양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린다. 세월 앞에 우리는 모두 조금씩 두렵고, 조금씩 위로받고, 조금씩 절망하고, 같은 크기로 희망하면서.
우리는 일반적인 윤리의 언어를 버렸다. <욕구불만>과 <만족감>처럼 쾌락의 척도가 되는 행동과 자세 그리고 감정을 헤아리는 또 다른 언어를 위해서였다. 세상을 사는 새로운 방식은 <느긋함>이었고, 운동화를 신고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었으며, 자신에 대한 확신과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적절히 섞는 것이었다.
아니 에르노, <세월> 본문 156쪽
이런 문장들은 또 어떤가. 지구 반대편, 낭만으로 기억되고, 선진국으로 대표되는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기 이곳에서 나의 욕망인지 정부의 욕망인지 모를 체제에 순응하며 정체성을 잃은지 오래인 우리 또한 시간을 수축시키며 빠른 속도로 늙어가며 울고 울었던 수많은 날들이 있었다. 전쟁을 겪고, 사회 변화를 겪고, 체제를 경험하고, 눈부신 성장 이면에 불편한 수많은 다툼. 슬프지만 4차 산업이니 대단한 과학 기술의 발전이니 세상이 변한다고 떠들어 댄다고 해도 우리 이후의 아이들의 삶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는 것. 치열하게 살다가 언젠가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애쓰는지도 모른 채 서서히 생을 마감한다는 사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우리 각자는 상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 이 세상을 책임질 몇 명의 뛰어난 사람들의 상상과 머리와 손에 의해 우리는 각자의 부와 편안함만을 추구하며 살 거라는 것.
우리들의 욕망과 은행, 주택 적금으로 이어진 정부의 욕망에 따라, 우리는 <집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게 됐다> 이 실현된 꿈, 이 사회적인 실현은 시간을 수축시켰고 부부의 노화를 앞당겼다. 그들은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함께 살 것이다. 직장, 결혼, 아이들, 그들은 이제 20년 상환 어음으로 단단히 봉인된 재생산 여정의 끝에 이른 것이다.
아니 에르노, <세월> 본문 171쪽
"한밤중에 고개를 들면 수십억 인구가 우글거리는,
광대함이 느껴지는 세상 위에 달이 멀거니 빛났다.
지구 전체에서 의식이 팽창하여 다른 은하계를 항해 갔다.
무한대는 상상의 것이기를 멈췄고,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 죽는다고 말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됐다."
<세월>이니까. 누구나 각자의 세월을 가지고 살아가니까. 이 책은 누가 읽더라도 공감을 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평생 행복했다고도 할 수 없고 평생 고통 속에 살았다고도 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세월이 이 책 속에 있다. 다채로운 세월 속에 찰나의 순간을 살았고, 기록했고, 치열하게 삶을 사랑했던 한 사람의 인생이 있다. 그렇기에 그 가지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들이 그의 작품 세계에 날 것 그대로 녹아들 수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삶을 치열하게 살고 생각하고 느끼고 사랑하며 살아갈 때 그 모든 화학반응들이 일어날 수 있음을 그녀의 세월을 통해 알게 된다. 단지 작가로서의 재능만이 아니라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지적인 노동일 거라고.
아니 에르노는 202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이다. 분명 성공했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녀가 들려준 <세월>을 읽다 보면 알게 된다. 그는 결코 자신의 인생에서 성공이나 실패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대신 그는 자신의 삶을 살았을 뿐이다. 얼마나 삶을 욕망했으며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살아왔고 무엇을 느꼈고 그 세월에 어떤 이야기가 담겼는지를 보여준다. 마치 우리 인생은 별것 없어, 다른 시대를 사는 것 같지만 비슷비슷하게 살고 있어,라고. 그게 곧 인생이야!라고 말하는 듯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라는 수식어도 그에겐 결국 무의미한 한낱 타이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벨 이전에도 이후에도 아니 에르노는 여전히 아니 에르노의 삶을 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