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2년 11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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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04쪽 | 228g | 140*210*8mm |
ISBN13 | 9788954619585 |
ISBN10 | 8954619584 |
발행일 | 2012년 11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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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04쪽 | 228g | 140*210*8mm |
ISBN13 | 9788954619585 |
ISBN10 | 8954619584 |
세월은 사람을 점점 무디게 만든다. 새로움은 점차 사라지고, 호기심도 줄어든다. 모험심이 발동할만큼 다른 일에 도전할 의욕이 남아 있지 않아 그런 것 같다. 나이가 들어 어른의 삶이라 여겼던 일상의 틀에 자리를 잡으면 익숙한 일들이 반복되고 무심한 삶을 이어가는 순간이 온다. 편안하다기 보다는 힘들어도 버티는 일상이다. 의미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여부를 따질 여유도 없다.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살게 된다. 몸이 익숙해진 일상에, 생각까지 붙들린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란 질문은 가끔 자극이 있을 때만 떠올릴 뿐.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아니면 일상을 뒤흔들 위기를 맞았을 때 가끔은 제 정신으로 돌아온다. 그때서야 일상을 살핀다. 그것도 아주 잠시일 때가 많고, 세밀하게 일상을 더듬는 일도 드물다.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걸 느낄 때마다 결심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자고, 순간을 살아내자고. 무심히 흘려보내는 시간과 순간들에 의미를 더해보자는 절박함을 가져보려 노력한다. 지금 당장 체감하기 힘들지만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 잠시 살다가는 존재란 사실을 반복해 떠올리면서 말이다.
그들은 말했다.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친 거야."
나는 대답했다.
"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어."
에밀 아자르의 장편소설 <자기 앞의 생>을 펼쳤다가 바로 만난 말이다. '생의 맛'이란 말에 꽂혔다. 삶을 감각한다는 말이다. 제대로 느끼며 살아야 한다는 말로 새겼다. 살아있다는 느낌, 살고 있다는 느낌. 그게 없는 삶이 죽음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생의 맛이란 말을 떠올릴 때마다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고 싶어진다.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긴다. 정상이라 믿었던 틀에서 벗어나 삶의 다른 면을 경험해 보고 싶어진다.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강렬한 열정을 가지고 삶에 뛰어들고 싶어진다.
열정이란 단어는 쉽게 입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열정은 말이나 생각으로 끌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삶을 깊숙하게 경험하고 싶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이다. 잠든 것처럼 무심하게 사는 사람이 아닌 깨어서 뭔가를 하고 싶은 사람의 것이다. 살아있는 것처럼 사는 방법, 그리고 삶을 더욱 성숙하게 하는 방법 중 하나가 '사랑'이란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에서 장영희 교수는 충만한 삶에는 뚜렷한 참여의식이 필요하며, 삶에 대한 강렬한 참여의 하나로 짝사랑을 꼽았다. (155쪽)
저 여자들도 나처럼 머릿속에 한 남자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아니면 예전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주말 약속이나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헬스클럽의 미용체조 강습, 아이들의 성적표 따위나 기다리며 무의미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했다. 지금의 내겐 그런 종류의 모든 일들이 하찮고 무덤덤하게 느껴질 뿐이었다.(21쪽)
<단순한 열정>은 한때 한 남자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살았던 작가 자신의 일상을 기록한 책이다. 일방적인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지치고 힘들게 하는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지, 그로 인해 느끼는 아픔과 시련이 평범한 일상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 그리고 내게 무심한 사람을 향해 무한 애정을 느끼는 순간 삶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엿보게 해준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서 히스클리프가 경험했던 것.
나한테 그녀와 관련되지 않은 게 뭐가 있겠어? 무엇 하나 그녀를 떠올리지 않는 게 있어야 말이지. 바닥을 볼 때마다 깔린 돌 하나하나에서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는 걸! 흘러가는 구름송이마다, 나무마다, 밤이면 들이쉬는 공기마다, 낮이면 눈에 보이는 온갖 물체 속에, 나는 그녀의 모습에 둘러싸여 지낸다니까! <폭풍의 언덕>, 492쪽, 더 클래식,
정신과 전문의 유은정씨는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에서 사랑하면서 이루는 성장은, 우리가 일생 동안 이루는 성장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사랑할 때만큼 자신에 대한 열정이 높아지는 때도 없으며, 사랑만큼 성장에 동기를 부여하는 감정도 없다(209쪽)고 말한다. 이 책 <단순한 열정>이 작가 자신의 고유한 개인사가 아니라 성숙한 삶을 향해 가는 과정으로 읽게 되는 이유다. 우리 삶을 깊숙하게 경험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 비록 그 길이 힘들고 아프기만 한 여정이라해도 말이다.
그 사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다른 여자가 겪은 일인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66쪽)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자기 안에 사랑이 충만한 사람이 진심 어린 사랑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성숙한 사람이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성숙해지는 길, 성장하는 길은 온전한 사랑을 경험해 보는 것이 아닐까. 사랑은 아프고 힘든 과정이 함께 하기 때문 일 것이다. 우리는 고민하고 아파하면서 한뼘씩 성장해 간다. 시련이 주는 불편함을 피하면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무심하게 살면서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바쁘고 힘든 일상 때문에 그런 기회들을 외면한다면 제대로 살았다 말하기 힘들 것이다.
만일 지금 당신이 배우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이미 죽어가는 중이다. 모든 사람에게서, 그리고 모든 사물과 상황으로부터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에고라는 적>,147쪽 라이언 홀리데이 저.
우리는 배우기 위해 이 세상에 와 있다. 늘 떠올리려고 노력하는 말이다. 그래야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 사물, 상황으로부터 배우겠다는 태도로 바꿀 수 있다. 모든 상황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게 되고, 세밀하게 일상을 살피는 길이기도 하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처럼,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모든 것이 예쁘고 사랑스러워질지 모른다. 사랑하게 되고 집착할 일도 생긴다. 이 모든 것이 배움의 과정이고 성장의 과정이라 믿는다면 빛이 없는 긴긴 터널 속에 있더라도 출구가 보일 때까지 버티는 힘이 되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열정은 결핍의 다른 이름이다. 누군가를 간절하게 사랑하여 열망하는 일도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갈망하는 것이며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일수록 더 간절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열정의 다른 이름은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인 셈이다. 《단순한 열정》의 주인공 A는 남자 A를 사랑한다. 남자는 여자보다 연하이며 유부남이다. 고급 정장을 좋아했고 대형 승용차를 유난히 좋아하는 ‘프랑스의 지적이고 예술적인 것들이 불러일으키는 가치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실제로 그다지 매료되는 것 같지 않은 ’ 남자는 통속극을 좋아하며 술을 많이 마시는 보통의 남자이다. 여자A는 자신의 모국어조차 할 줄 모르는 외국인 남자와 전혀 정신적인 유대를 이루지 못하는데다가 ‘그의 행동을 완전히 이해하기가 ’힘들지만 자신의 사랑을 '외국인을 사랑하는 특권'이라 생각하며 모든 것을 감수한다. 둘은 전혀 다르지만, 욕망이라는 교집합으로 둘의 사랑을 견고하게 다져나간다. 모든 신경레이다가 남자에게로 향해 있는 동안 여자는 글쓰기로 자신의 모든 감정을 일기처럼 써 나가고 자신이 생각하는 남자에 대한 외연들을 '상상과 욕망'이라는 것으로 대체해 나간다. A는 대중가요가 전해주는 사랑의 의미들로 자신의 사랑을 미화시키지만, 때로는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혼외정사를 다룬 영화들이나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비의적인 문학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비극을 예감하고는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이 독특한 것은 주인공 A가 자신이 겪었던 실제 연애담과 동일하게 내면의 성적인 욕망을 더하지도 않고 빼지도 않은 그대로 일기처럼 적어간 글쓰기라는 점이다. 사랑과 이별에 대한 통증과 여성의 섹슈얼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글쓰기를 보며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거나, 여성으로서의 공감으로 고개를 끄덕거리곤 하였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또 한명의 여인.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의 주인공을 떠올리며 A와 혼동하거나 비교하곤 하였다. 그러나, 사랑에 대한 집착과 강박증은 두 여인이 매우 닮았지만 <슬픈 짐승>의 여인이 상상과 기억속에만 존재하는 사랑, 즉 환상속의 사랑에 머물러 있지만 <단순한 열정>의 A는 지극히 현실적이며 사랑이 주는 환상에 의존하지는 않는 독립적인 현대여성이라는 점이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사람을 끊임없이 기다리고 갈망했던 지난해 봄 그 사람을 떠날 수 없었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그 사람에게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글에는 자신이 남겨놓고자 하는 것만 남는 법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다른 사람에게 읽힐지도 모른다는 고통을 연장시키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내가 글을 써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한, 그런 건 개의치 않는다. -p59-
《단순한 열정》은 A가 2년 동안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열정'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의 글쓰기가 한 권의 '이야기'로 남겨진 책이다. 책을 다 읽고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던 것도 여자의 글쓰기는 여자의 삶의 한 부분을 남겨둔 한 개인의 기록의 의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에 묘하게 끌린다. 내가 근 몇 년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과 삶의 의미로 남지만, 늘 남이 내 글을 읽으면서 판단되는 비판과 공개에 대한 고통에 자유롭지 못하기에 A가 자신의 단순한 열정을 기록하며 쓰는 고통의 절반을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이 범상치 않게 다가오는 이유도 그녀가 자신의 섹슈얼한 욕망에 너무도 솔직했고 자신의 사랑에 너무 솔직했고, 자신의 글쓰기에 너무 솔직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함, 그것은 정말 글쓰는 이로써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때문에 나는 늘 열정 한 가운데에서 들끓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누군가와 함께 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공유하는 시간은 과거로 회귀하여 경험을 떠올리는 시간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괴로워하고 사랑하는 대상과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의 아쉬움을 절절이 담아내는 글에서 애정의 한계를 읽는다. 자유롭게 사랑할 수 없는 대상을 사랑하는 대가로 만나 사랑을 나누고 싶은 마음을 유예하며 지내야 하는 괴로움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시간과 멀어질수록 조바심 내게 된다. 가정이 있는 남자 A를 사랑하며 그가 자신을 찾아주기를 기다리는 주인공의 욕망은 커진다.
부도덕한 사랑이라 지탄받는 사랑의 유형은 여럿이지만 그 중에서도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는 불륜의 파장은 크다. 주인공은 유부남 A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가 집으로 온다는 전화를 기다리며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치장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기다림 끝에 도착한 그와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 끝나고 헤어진 뒤의 헛헛함은 그가 다시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한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은 깊어지고 자아의 본질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 보인다. 개연성 있는 허구를 그리는 소설가처럼 그와의 일을 기억할 때면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럴 듯하게 형상화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언제나 A와 함께 하고 싶지만 현실은 욕망대로 실현하기 힘듦을 알기에 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어느 날 우연처럼 그를 만나 사랑하고 싶어 한다.
현실적 제약은 그녀에게 기다림과 욕망의 근원으로 촉발되었고, 그 역시 오해의 소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그녀와 공중전화로 교신하며 만남을 이어갔다. 가정을 파괴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A와의 만남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이별의 고통은 더 커질 테지만 오지 않은 시간을 당겨 걱정하며 현재의 욕망을 유예하고 싶지 않은 그녀였다. 그가 그녀 생각을 하지 않고 일상을 보내면 어쩌나 염려하며 그 사람의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녀를 보며 상대의 감정에 휘둘리며 사는 일상의 괴로움을 느낄 수가 있다. 상식이 통하지 않은 길을 걷고 환영받지 못한 길을 걸은 대가로 이별 후 그녀가 겪는 심연의 고통은 클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현재 그를 만나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여 다른 생각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오로지 그와의 만남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 속에 그녀는 의미를 찾을 수 있었고 그를 만나지 못할 때의 번민은 깊어갔다.
주인공은 뜨거운 사막에서 보았던 신기루 현상처럼 사라져버릴 그에 대한 사랑의 열정을 지피는데 집중한다. 주말이면 그가 무엇을 하는지 상상하며 그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을 견딘다. 그가 떠난 뒤 그녀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A를 향하였던 마음을 오롯이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와 끝내고 싶지 않았던 시간을 글로 묶어 두고 싶었던 마음이 응축되어 있었다. 그 사람이 연락해주기를 바라며 거지에게 적선하는 주인공의 열정은 그가 떠난 뒤에도 계속 되었다. A와 나누었던 사랑의 시간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강렬한 만큼 그녀의 곁을 떠난 그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고는 자신의 세계로 돌아갔다.
고해와 같은 삶을 살게 하는 것도 사랑이고 사람을 못 살게 하는 것도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원한 사랑을 말하지만 흐르는 시간과 직면하는 상황에따라 사랑은 변해간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질 때처럼 설렘 가득한 사랑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을진대 정당화되기 힘든 사랑은 상실의 아픔만 남길 뿐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상대를 배려하며 서로의 성장을 도모하기보다는 원초적인 욕망을 이루려는 애욕만을 내세우는 감정의 허상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