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세 김해솔. 그는 지금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는 상태다.
[당근마켓]
「최신형 에어팟 팝니다. 가격 만원」
이런 게 만 원의 행복이란 걸까. 의심은 되지만 직거래이니 별일 있겠냐며 해솔은 거래자에게 메시지를 넣는다.
직거래 장소에 나타난 사람은 해솔의 또래쯤 되어 보이는 남자다. 정장을 빼입은 모습이 무직인 해솔의 심기를 흔들었지만, 그 위압감에 밀려 풀이 죽는 그였다. 해솔을 발견한 남자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혹시 에어팟 직거래하러 오신 분인가요?”
“아 예, 저 맞습니다.”
“잘 찾아오셨네요. 여기, 에어팟입니다.”
불쑥 나타난 에어팟 상자를 보자마자 해솔은 이건 자신의 것이라는 알 수 없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 「에어팟」 중에서
슈퍼 주인은 전혀 안 믿는 모양새로 떠났다. 그러나 며칠 뒤,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다시 찾아왔다.
“세상에! 총각 말이 진짜였어! 그 노총각이 결혼할 여자를 데려왔다니까? 세상에 마상에!”
이 날을 기다려왔던 김남우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우리 돼지 신령님은 틀리는 법이 없습니다.”
“세상에! 총각! 나 한 번만 더 보자!”
슈퍼 주인은 한 번 더 점을 봤고, 그 점 역시 적중했다. 당연히 슈퍼 주인은 주변에 입소문을 퍼트렸다.
김남우는 동네 상인분들을 중심으로 열심히 점을 보기 시작했다.
「아들이 학교에서 창문을 깹니다.」
「셋째를 임신합니다.」
「가게 간판이 떨어져서 사람이 다칩니다.」
「전국 노래자랑 예선을 통과하고 TV에도 나옵니다.」
모두 돼지 저금통이 하는 예언이었지만, 김남우는 그럴듯하게 한 마디씩 보탰다.
--- 「돼지신령」 중에서
포토샵으로 사진을 수정하는 일을 좋아하는 나는 많은 온라인 카페에 가입해 있다. 페이스북 그룹 ‘포토샵의 모든 것’, 네이버와 다음의 ‘포토샵 카페’에서도 활동한다. 내가 찍은 셀카를 포토샵으로 예쁘게 수정해서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실력이 늘어날수록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수도 함께 따라 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음의 포토샵 카페에서 아무도 보지 않은, 조회수가 0인 게시글을 발견했다. 글이 올라온 지 꽤 되었는데도 조회 수가 ‘0’이었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 게시글을 눌렀다.
‘신비한 일이 일어나는 포토샵 어플. 중학생 전용. 얼른 설치하여 사진을 편집한 후 SNS에 올려보세요!’
--- 「신비한 포토샵」 중에서
나와 가족들은 추석을 맞아 산골짜기에 있는 할머니 집에 가게 되었다. 시골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주위의 건물이란 다 무너져가는 폐가가 몇 채뿐인 할머니의 집이, 정말 끔찍이도 싫다.
“하아아아 지루해지루해. 와이파이도 안되서 게임도 못하고.”
집도 몇 채 없는 곳에 아이들이 놀 곳이란 만무했다. 나는 잠이나 자기로 하고, 장롱을 벌컥 열고 구석에 박혀있는 가장 깨끗해 보이는 베개를 골라 바닥에 누웠다.
“할 것도 없는데 잠이나 자야지. 꿈속에서라도 게임하고 싶다.”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피곤했던 건지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런 나의 눈앞에 플레이스테이션, 오락기, 컴퓨터 등 다양한 게임들이 나타났다. 나는 당장 조이스틱을 잡았다.
--- 「바라는 대로」 중에서
할머니에게 학교에서 외모 때문에 친구들이 나를 피하고 왕따 시킨다는 이야기를 했고, 고개를 끄덕이며 한참 들어 준 그는 나의 주머니에 어떤 마스크를 넣어 주었다.
“할머니 이건 뭐죠…?”
“뭐긴 뭐여, 마스크지 하지만 그냥 마스크가 아닌 특별한 마스크여”
“엥 뭐하는 데 쓰는 건데요…?”
“너의 얼굴을 딴 예쁜 얼굴과 바꿀 수 있는 성형 마스크여. 마스크를 쓰고 얼굴을 바꾸고 싶은 사람의 손을 잡으면 돼. 그런데 이걸 사용하게 되면 너의 본성이 나올 수 있으니 조심혀. 뭐 넌 착한아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말을 마친 할머니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 「성형 마스크」 중에서
「혹시 여러분은 감정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일이 있습니까? 현재 인간들의 감정은 고이고 고여 되려 여러분의 삶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부로 여러분의 감정을 다시 거두어갈 생각입니다. 물론 완전히 가져간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감정이 정화되는 동안만 잠시 사용을 중지한다는 것이지요. 아니 아예 사용을 금해 주셔야 합니다. 그럼 정화가 이루어지는 동안 모두가 감정을 이용하지 않으리라고 믿고 있겠습니다.」
멍한 표정의 사람들을 뒤로하고 신은 그길로 먼지처럼 사라졌다.
--- 「감정 사업」 중에서
이준우가 건반을 누를 때마다 그랜드피아노 특유의 풍부한 음색이 작업실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김남우가 건반을 누를 때는 그저 툭, 툭, 하는 둔탁한 마찰음이 날 뿐이었다. 혹시 하고 다른 연습용 피아노의 건반을 쳐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이준우는 피아노의 조율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을 남기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어떤 피아노에서든 김남우는 어떤 음색도 낼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주먹으로 피아노 건반을 내리쳐 보기도 했지만 비싼 피아노만 망가질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상실감에 급기야 자살 기도를 하기에 이르렀다. 마침 달려온 이준우가 그의 목숨을 구했다.
--- 「상실감의 기준」 중에서
약에는 주원이가 싫어하는 다양한 과목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수학, 영어, 과학, 국어. 주원이는 ‘수학’이라는 이름의 알약을 먹었다. 먹고 나서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딱히 피로가 풀리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하고 다시 수학 숙제 문제집을 펴는 순간, 주원이의 눈에 모든 문제의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 이상하다. 이 문제들 왜 이렇게 쉬워...’
그렇게 주원이는 보통 3시간은 걸릴 수학 숙제를 30분만에 다 끝내 버렸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주원이는 이번엔 ‘과학’이라고 적힌 알약을 먹었다. 과학 문제집을 펴자, 그동안 이해가 되지 않았던 모든 문제가 너무나 쉽게 풀려나갔다.
--- 「신기한 약」 중에서
우리는 중학교부터 쭉 같이 지냈다. 중학교에서는 폰을 걷어 버려서 학교에선 같이 지낼 수 없다는 게 아쉬웠지만 고등학교에서는 휴대폰을 따로 걷지 않는다고 한다. 좋았어. 현우와 학교에서도 붙어 다닐 수 있다. 2일… 3일… 4일… 현우에게 다가오는 아이는 없는 것 같다. 다행이다.
7일째 되는 날, 한 아이가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아까 발표 잘하더라. 멋있었어! 친하게 지내자!”
뭐지. 쟤는? 그때부터였다. 현우가 점점 나를 찾지 않게 된게.
뭐지…
어디 갔지…
왜 안 오지…
어디 간 걸까…
일주일 동안 현우는 나에게 오지 않았다.
--- 「악성 어플」 중에서
청년은 자기가 알게 된 걸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 그는 문의 사용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다. 그들은 예전의 청년과 비슷한 말들을 했다. 누군가는 그를 보고 오지랖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청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청년은 자신의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말을 아꼈다. 반대로 자신의 말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여하튼, 결과적으로 문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줄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문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잘조잘, 이러쿵저러쿵, 이렇다네 저렇다네.
청년은 알고 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또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그는 자신의 인생을 차근차근 하나하나 해 나갈 것이다.
바른 길이란 애초에 없었다. 구름 아래에 사는 우리들은 구름의 상태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는다. 바람이 기분 좋게 부는 날이면, 청년은 자신의 집 반대 방향으로 산책을 할 것이다. 자신이 가는 방향대로 바람과 집은 그를 따라올 것이기 때문이다.
--- 「문」 중에서
얼마나 지났을까, 해가 넘어가 어둑어둑한 교실은 낮의 왁자지껄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조금 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와 간간이 오는 천둥번개로 한층 스산한 느낌이 더해진 교실은 귀신이라도 나타날 듯한 분위기였고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창틀이 덜컥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폭풍전야와 같은 간간함이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때맞춰 쾅 하고 천둥 소리가 울려퍼진다. 번갯불이 눈부시게 교실을 가리고 이내 걷히자 오래도록 청소되지 않아 분필가루가 눌어붙은 칠판이 저절로 지워져 글자의 형상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t.1?=13^@,0$74z8」
아무 의미 없는 문자며 기호의 연속이었지만 써 낸 스스로도 놀란 모양이다. 열여섯 자만큼 트인 숨통이 갑작스러웠는지 새 펜을 뜯고 나서 하는 필기감 테스트마냥 분필 가루 사이로 이리저리 길이 열린다. 두어 시간을 그리 되풀이하다 제법 익숙해진 폼으로 「안녕하세요」, 「바른 글씨 쓰기」, 「간장 공장 공장장은 강 공장장이고」… 따위를 번듯하게 적어내려갈 때가 되자 그제서야 주변 사정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근 수백 년간 빌어온 일이 이제서야 이루어지다니, 이건 분명 그간 당해 왔던 수모를 갚을 기회라는 거겠지.」
--- 「칠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