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는 세 자매의 맏이였고, 그래서인지 어디서든 동생들과 어울리는 것에 익숙했다. 중고교 시절에는 쉬는 시간에 후배들이 찾아와 쪽지와 간식거리를 주는 일이 심심치 않았고, 삼수 끝에 입학한 대학에서는 나이 어린 동기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매 학기 과대표를 맡았다. 동생들이 따르는 만큼 은희도 언니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 p.9, 「언니의 일」
― 언니, 난 언니 재능 있다고 생각해요. 재능이 뭐 별거예요?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게 재능이지.
--- p.23, 「언니의 일」
“내가 처음 볼 때부터 걔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어. 예전에도 가까이하고 싶지가 않았다고. 10년 만에 갑자기 만나자고 할 때도 수상하더니.”
“아니야, 세진 씨. 무슨 오해가 있는 거 같아.”
“오해는 무슨 오해요. 설마 언니도 한패예요?”
--- p.37, 「언니의 일」
어떤 사람들은 머리 위에 나뭇잎이나 깃털 같은 것을 붙인 채 걸어다녔다. 그런 사람을 발견하면 은주는 유리창에 대고 입김을 후, 후, 불었는데 처음엔 별 의미 없이 한 행동이었지만 자신의 그런 모습을 지연이 귀여워한다는 것을 안 뒤로는 의식적으로 바람 소리를 내곤 했다.
--- p.42, 「팀플레이」
지연은 장성수의 유고작으로 알려진 ‘낙차’ 역시도 대학원생의 작품을 가로챈 것이라고 했다. 그 작품의 원래 주인인 대학원생 A를 인터뷰해서 기사를 내달라고 했다.
--- p.68, 「팀플레이」
은주는 사무실 안을 돌며 헤드라인을 조금씩 바꿔 똑같은 기사를 입력했다. 기사들이 줄줄이 승인되는 동안 은주의 마음에서는 점차 불안이 사라졌다.
--- p.73, 「팀플레이」
이미 회사에 도착해 사원증을 출퇴근기록기에 가져다 댔어야 할 시각에 눈을 떴다면, 긴 머리를 감고 말리기보다는 질끈 묶어야 할 것이다. 그 회사가 서울에서도 강남 테헤란로에 있다면, 택시를 잡는 것보단 지하철역을 향해 뛰어야 한다.
--- p.77, 「우산의 내력」
무엇이든 부족하기보다는 넘쳐흐를 정도로 과하기로 결정한 이 거리의 풍요로운 얼굴이 희진은 마음에 들었다. 물러설 데 없는 절박한 선택지란 없는 곳.
--- p.84, 「우산의 내력」
이상하게도 저항이 있었다.
어라, 싶어 더 세게 당겼을 때 우산이 불쑥 솟아올랐다.
사람이었다.
--- pp.91~92, 「우산의 내력」
이런 기억도 있다. 일을 하던 중에 아무리 애를 써도 내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을 숨길 수가 없어서, 나만 아는 내 목소리를 감추고 싶어서 계단을 오르던 순간들.
--- p.109, 「쓰지 않는 일에 대해 쓰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