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동물과 식물, 자연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서로를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모습은 다르지만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에 대한 존중 나아가 생명에 대한 존중의 자세는 공존을 위한 기본적 요건이다. 또한 인간이 가진 힘이 공존을 위한 이로운 방향으로 쓰일 때 변화의 시작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타자의 고통이라는 진실을 직면하고자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작은 관심과 새로운 시각으로 개별 존재를 발견해나가는 작품들을 통해 동식물, 자연이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지, 우리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 그 관계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p.16, 「미술원, 우리와 우리 사이」, 김유진(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중에서
요컨대 건축에서 경계란 경계 자체를 짓는 게 아니라, 경계 너머의 것들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일이다. 경계를 요구하고 구축하는 게 어차피 외부 정치의 문제라면, 차라리 경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거나 경계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져와 경계에 균열을 만들어낸다.
--- p.42, 「경계에 균열을 만드는 건축」, 최나욱(건축평론) 중에서
21세기 이후, 미술관은 다양성, 포용성을 추구하는 사회적 현상과 보폭을 맞추기 위하여 노력하기 시작하는데, 이 역시 약간의 시차를 두고 세계 곳곳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양상 중 하나이다. 특히 자본을 매개로 한 글로벌리즘과 달리 지구 환경과 생태계 문제를 통하여 다른 차원의 지구 공동체 의식이 강화되는데, 이는 곧 미술관이 정치적 가장자리의 미학을 실천하는 플랫폼으로 전환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 p.83, 「반려 문화와 미술관-삶의 일부로서의 미술관」, 정현(미술비평, 인하대학교 교수) 중에서
인간과 인간이 의도적으로 생산한 가축은 이미 지구를 뒤덮었고 야생동물의 터전을 대부분 잠식했다. 무섭게 늘어나는 이 생명들은 과생산을 본질로 갖는 자본주의의 작동에 의해 태어나고 있다. 「 동물원 동물의 삶과 죽음-1. 동물원 동물의 태어남」, 최태규(수의사,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125 쪽
생명, 혹은 전체로서의 생물권이나 생물권을 구성하는 생태계를 기준으로 어떤 존재에게 우월한 지위를 부여할 것인가를 따져 볼 경우 인간이 갖는 고유한 지위는 더욱 흔들리게 된다. 만약 생명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생명체에는 인간 외에 인간 아닌 동물과 식물들이 포함되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들 간에 우위를 이야기하기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 p.155,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해도....-3.인간중심주의: 경향인가 당위인가?」, 김성한(전주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중에서
스스로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과 변화의 의지를 발휘한다면, 그제야 비로소 공존을 약간이나마 언급할 자격과 의미가 생긴다. 그저 요즘의 트렌드라 해서 한 번쯤 건드려보는 수준의 시도라면 아예 처음부터 시작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정책이든, 상품이든, 작품이든 공존을 언급하는 순간 엄청난 혁신의 의무가 수반된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또 안고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수 백 년 이상 지속되어 온 독존(獨存)의 관행을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하며, 그 과정에서 생명과 터전을 잃은 수많은 생명에게 또 하나의 모독을 안겨줄 뿐이다.
--- p.169, 「공존의 자격과 조건」, 김산하(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 중에서
동시대의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자연의 상품화, 디지털 이미지화 과정에서 자연은 매우 파편적이고 시각적이며 추상적인 개념이 되는데, 이는 우리가 대중적으로는 여전히 수동적이며 회화적인 낭만적 자연관을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최첨단 기술을 통해 강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상향으로서의 자연, 혹은 자연에 투사된 유토피아라는 근대의 꿈은 사라지고 장식과 형식만 반복되고 있다.
--- p.177, 「사라지는 꿈, 유토피아로서의 자연- 여전히 유효한 낙원의 꿈, 실천 도구로서의 생태학」, 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중에서
이처럼 지극히 인간중심주의적인 사고가 위험한 것은, 그것이 대멸종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를 비약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명백한 사실이다. 인간중심주의 그 중에서도 ‘폐쇄적 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을 정당화하며 인간 이외의 존재를 타자화하고, 오직 자연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태도를 일컫는다. 「공존 또는 멸종, 그 ‘한 끗’의 함수」, 김기정(뉴스펭귄 대표), 235-236 쪽
현재는 인간이 산업적 영역 등에서 동물을 이용할 때 그들의 신체적 정서적 복지를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는 동물 복지론을 넘어 동물은 본연의 삶의 권리를 가진 주체적 존재로서 인간에 의한 동물 이용은 그 자체로 동물 권리의 침해라는 동물 권리론까지 동물보호와 동물권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실천들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 p.243,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의 공존을 위한 자각과 변화의 시작」, 전진경(동물권행동 카라 대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