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대포에서 큰 파도 하나를 넘지 못해서 분했던 적이 있다. 다섯 시간 동안의 시도에도, 번번이 파도에 내동댕이쳐지면서 흐물거리는 손으로 서프보드를 다시 잡던 그때 나는 참 낱낱이 초라하고 무력했다. 눈 딱 감고 저기만 넘어가면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오기만큼 자란 두려움과 뭍으로 향하려는 몸의 관성은 자꾸 뒷걸음질을 치게 했다. 스스로 밀려나기를 택했으면서 나아가고자 하는 나를 참 딱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넘으려는 대신 변변찮은 파도만 타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제자리가 저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딱 한 번만, 한 번만 넘어가자.
--- 「사진작가 안수향 “그대, 패들링을 멈추지 말아요”」 중에서
서촌에 이사 오고 몇 년간 좋아하던 장미 덤불길이 있다. 경복궁 영추문과 마주보고 선, 청와대로 향하기 직전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야 하던 길. 늦은 밤에 걸어도 이른 새벽같이 느껴지던 깨끗하고 좁고 조용한 길. 초입에는 흰 벽과 담장이 늘어서 있었고 5월 중순부터 이 길을 걷게 되면 누구든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는데, 담장 안쪽으로 이어지던 6~7미터 길이의 장미 덤불 때문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조금은 뜬금없던 덤불길. 분홍, 주황, 빨강, 노랑, 하양, 각기 다른 색으로 끓어오르듯 피던 장미는 다른 곳의 장미들에 비해 크기가 컸고 향도 강해 무더기로 모여 있으면 거대한 조명이나 동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 「시인 김연덕 “장미들”」 중에서
저는 그게 보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오랜 시간 하나를 갈고 닦은 여성들이 솔직하게 자신의 색을 드러내고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고 부딪히고 마지막에 서로에게 박수치는 모습. 그래서 그렇게 많이 울었나 봅니다. 하지만 선생님들도 많이 울던걸요. ‘누가 뭐래도 나는 내 길을 간다’ 하는 눈매와 입매로 강인하게 춤을 추고, 쓰라린 평가에도 의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정말 멋있었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허물어진 표정으로 펑펑 우는 모습을 보며 저도 같이 울었습니다. 누군가가 날 알아준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 「 “〈스트릿 우먼 파이터〉 댄서 선생님들께 보내는 감사의 편지”」 중에서
녹색의 메시지는 넘치는 가운데 실제의 세상은 급속도로 악화되어가고 있는 작금의 모순적 현실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단 한 가지다. 바로 진정한 의미의 변화다. 이 판국에서 이대로가 괜찮다며 변화를 거부하는 이들은 눈을 감고 살겠다고 선언한 것과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혼자 어둠 속에서 살겠다는 것까지 뜯어말릴 수는 없지만, 사회 전체가 절멸을 향해 치닫고 있는 이 위험천만한 노선에 그대로 머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로 말과 행동의 극명한 차이 때문에 변화의 필요성이 더더욱 절실한 것이다.
--- 「야생영장류학자 김산하 “‘자연스러운’ 변화의 시작”」 중에서
아파트단지야말로 지난 세기 개발체제가 남긴 가장 거대한 유산일지 모른다. 그 영향력이 지속적이면서 증대한다는 점에서, 그 바깥을 좀처럼 상상하기가 힘들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파트단지는 지금도 늘어나고 있고, 이에 비례해 도시는 공공이 개입할 가능성이 점점 줄어드는 사유화된 군도로 변모하고 있다. 팬데믹과 거의 정확히 겹친 아파트값 폭등 기간 동안 정부의 수많은 대책이 실효를 거둘 수 없었던 이유도 공급과 수요를 조절할 수 있는 직접적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버스차고지, 고가도로, 빗물펌프장 등 위에 거대한 인공대지를 만들고 그 위에 주택 단지를 만들어 공급하겠다는 서울시의 계획 역시 이런 사정을 드러낸다.
--- 「건축비평가 박정현 “과거를 돌파해야 만날 수 있는 미래”」 중에서
실제로는 다중 한국어의 세계에 살지만 단일한 언어로 호명되는 ‘국어’라는 이름은 현실의 수많은 다른 한국어들을 그 이름 아래로 사라지게 만든다. 더불어 다른 한국어를 쓰는 우리 자신을 타자화한다. 그 이유는 국어라는 단일 언어 이데올로기가 하나의 언어, 하나의 영토, 하나의 민족이라는 강력한 삼위일체의 신앙 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즉 ‘국어’는 국민 모두가 같은 상황에서 같은 말을 할 것을 기대하는 근대 국민국가의 헤게모니 장치다.
--- 「언어학자 백승주 “다중 우주, 아니 다중 언어를 상상하라”」 중에서
인간의 사고과정을 가장 미시적으로 다룬다는 인지심리학자들은 얼마 전부터 사람의 욕망을 두 개의 큰 축으로 구분해서 이해하고 있다. 첫째, 좋은 것을 바라는 욕망이다. 자연스럽게, 둘째는 싫어하거나 두려운 것을 피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 두 욕망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 즉 행동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원하는 대학에 가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면 열심히 공부할 가능성이 높다. 내일 선생님께 꾸중 듣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강하면 당연히 오늘 저녁에 열심히 숙제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욕망을 적절히 자극하면 사람은 더욱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미루기의 심리학”」 중에서
할머니가 운영하던 클럽 자리에 어머니가 시작한 경양식집을 그 아들이 이어가고 있다는 어느 노포에 갔을 때다. 대개의 노포에서 변함없는 맛을 자랑하는 것과 달리 사장님은 “어머니가 만들던 것과 똑같다고 할 순 없어요”라고 말했다. 돈가스 소스에 된장을 살짝 풀어 구수한 맛을 내던 어머니와 달리 자신은 된장을 넣지 않은 데미글라스 소스를 만든다고 했다. 고기도 어머니 때보다 두툼하게 손질한다고. “어머니는 어머니 것이 더 낫다고 하지만 저는 제가 만든 게 더 맛있어요.” 그러곤 덧붙였다. 돈가스든 뭐든 집에서 내 가족을 위해 정성 들여 만들어 바로 먹는 음식이 가장 맛있는 법이라고.
--- 「작가 서진영 “덧셈의 영역”」 중에서
별 볼 일 없다고 여겼던 것의 가치가 상승하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일상에 필수 요소가 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들이 멈췄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모든 것이 다 함께 변하고 있어서 인식하지 못한 것이었다. 우리가 느낄 수는 없지만 지구가 자전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변한다. 지구의 자전을 느끼라는 말이 아니다. 지구는 돈다는 걸 믿는 것처럼 변하고 있는 가치를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변하고 있다.
--- 「N잡러 허휘수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