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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장 침몰가족(8개월~두 살 반) 2장 가노 가문(탄생 전) 3장 쓰치의 발생(탄생~8개월) 4장 전우, 메구(두 살 반~여덟 살) 5장 하치조지마(여덟 살~열여덟 살) 6장 아버지 야마 씨(배 나온 20대) 7장 돌보미들(아이에서 어른으로) 8장 극장 개봉(쓰치, 감독 되다) 9장 인간 해방(앞으로의 쓰치) 에필로그 |
저가노 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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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박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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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 고군분투 중인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란다
영화는 내가 만나고 싶던 사람들을 찾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이 책은 다르다. 육아에 고군분투 중인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란다. 세상에는 이런 방식의 육아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특수한 환경에서 자란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또 지금 아이가 없는 사람들도 읽어주면 좋겠다. 침몰가족에 모였던 어른들은 대부분 육아 경험이 없었다. 그들이 느낀 갈등과 기쁨이 담긴 기록은 더 나은 육아 힌트가 될 테고, 아이라는 존재가 좀 더 가깝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엄마는 영화 개봉 후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공동육아의 힌트를 얻은 것도 과거에 공동육아를 했던 사람들이 세상에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야. 그래서 침몰가족을 보고 힌트를 얻는 사람이 있다면 참 좋겠어.” 내 어린 시절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아이 가운데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자란 아이도 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누구라도 옆에 있어 준다면 아이는 대체로 잘 자란다. --- pp.11~12 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아이를 키우느라 나 자신까지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공동?) 육아 참가자 모집 중 나는 쓰치를 만나고 싶어서 낳았습니다. 집에 틀어박혀 종일 가족만 생각하느라 타인과 아무런 교류도 없이 살다가 아이는 물론 나 자신까지 잃어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공동육아라는 말에서 공동은 대체 무엇이고 어디까지 가능할까요. 아이와 어른, 여자와 남자 그리고 어머니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등 아이와 지내다 보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 pp.14~15 미혼의 싱글맘인 엄마의 엄마는 경성에서 태어난 여성사 연구자, 하지만 주어진 환경의 특권으로 선택하는 자유는 반대한다 할머니는 여성사 연구자였다. “가노 미키요는 제 할머니입니다”라고 상영 후 토크에서 이야기하면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할머니를 ‘민바’라고 불렀다. 할머니가 어린 시절을 보낸 히로시마에 있는 요코가와시네마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니가타의 니가타시민영화관시네윈도에서 내 영화를 상영했을 때 할머니를 잘 아는 사람들이 보러 와주었다. 많은 사람이 영화를 본 감상과 함께 할머니와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할머니를 인터뷰한 『젠더 연구를 계승하다』라는 책에는 상세 프로필이 실려 있었다[한국에 『천황제와 젠더』와 『대화를 위해서』가 번역되었다]. 1940년 일본 통치하의 경성(현재 서울) 출생.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어학 수업에서 한국어를 선택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가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단다”라고 처음 알려주었다. 할머니에게 일상 회화를 공부한 성과를 자랑하려고 했는데 나보다 한국어가 유창해서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했다. (......) 할머니는 나를 무척 아껴주었다. 설날에는 세뱃돈을 주고 비싼 초밥도 사주었다. 나는 할머니가 쓴 책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쿠타에 있는 할머니의 집에서 ‘젠더’나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본 적은 있었다(의미는 전혀 몰랐지만). 대학에서 참고 도서가 할머니가 쓴 책이어서 놀라기도 했다. 할머니는 저 높은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며 무언가를 지적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자신이 뿌리를 내린 지점에서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피폭자로서, 여성으로서, 아시아를 침략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 pp.47~51 너는 말이야, 괴짜계의 금수저라고 엄마와 둘이 살면서 나 ‘자신’의 선택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 말을 듣기만 하면 되는 식으로 점차 달라졌다. 함께 살았던 어른들을 촬영하러 갈 때, 그들이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긴장되었다. 영화에는 빠졌지만, 자주 나와 놀아주던 안초 씨의 집을 찾아가 술을 마시며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가 말했다. “너는 말이야, 그런 환경에서 자란 괴짜계의 금수저인데 평범하게 커버렸네. 그러면 안 돼.” 물론 농담 섞인 말이기는 했지만 나는 억울했다. 그 밖에도 차분한 모범생 같다는 말도 들었다. 기억 저편에 있는 폭군 쓰치는 하치조지마로 이사한 뒤 사라진 것 같았다. ‘괴짜계의 금수저’라는 혈통은 엄마와 둘이 사는 동안 끊어지고 만 것일까. --- pp.102~103 침몰가족의 바깥에 있는 아버지, 야마 씨 “뭐랄까, 너네는 자유 참가지만 나는 아니야. 너네는 침몰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어. 너와의 관계는 줄곧 이어지지만.” “운동회에 가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가 있었어. 으스대는 느낌으로 말이야. 나는 완전히 손님 같은 느낌이 들었어.” 야마 씨가 침몰하우스에 왔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가 마음속 응어리를 가졌던 사람은 엄마뿐이고, 침몰가족의 어른들에게는 아무런 감정도 없다고 생각했다. 침몰가족 어른들에 따르면 야마 씨는 침몰하우스에서 엄마와 서로 물건을 내던질 정도로 크게 싸운 적이 있다고 한다. 몇 사람은 야마 씨와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했던 모양이지만, 그런 일도 있어서 대부분 그와 사이가 멀어졌다. --- p.136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언론에 소개된 침몰가족 침몰가족은 당시 새로운 대안의 삶으로 미디어에 소개되었다. NHK ‘쓰치 군 두 살 우리들의 육아일기’(1996년 9월 17일 방송), 후지TV ‘우리 애를 키워보실래요?: 침몰가족이라는 시도’(1998년 5월 17일 방송), 요미우리신문 ‘가족의 형태 NOW: 따뜻한 관계를 찾아 혈연이 아닌 일곱 명의 편안한 공동생활’(1998년 3월 28일 기사) 같은 타이틀을 달고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1997년 5월 잡지 『현대사상』의 스트릿 컬쳐 특집 기사에서 「돌봄을 위해 사람들이 찾아오는 ‘침몰가족’ 공동육아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침몰가족을 소개했다. 돌보미들과의 대담 속에서 엄마는 “딱히 무언가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고 어느새 보니 이렇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침몰가족은 종교적·정치적인 신념을 공유하는 운동이나 사상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위한 모임이었다. --- p.153 독박 육아 등 현재 육아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 방송이나 인터넷 미디어, 신문에서도 「침몰가족」이 다뤄졌다. ‘독박 육아’, ‘9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서로 지지하는 공동체’ 등 이 영화는 이야기의 실마리가 될 주제가 풍부하다. 여러 취재 요청을 받으면서 지금 일본 사회는 침몰가족에 주목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영화를 통해 풍요롭게 살아가는 힌트를 얻고 육아 스트레스에서 잠시 해방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뜻밖의 발견이었다. --- p.192 고마워요 경제적으로 빠듯한 싱글맘과 갓난아기를 구해준 사람은 분명 그곳에 와준 사람들이었다. 의무도 계약도 없었다. 오고 싶은 사람들이 오는 느슨한 관계. 기저귀를 갈고 밥을 먹이고 함께 놀아주었다. 침몰가족에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주말을 나와 함께 놀아준 야마 씨는 최선을 다해 나와 엄마를 마주했다. 촬영을 하면서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을 때도 변함없었다. 야마 씨와 엄마의 의견이 엇갈렸지만, 평일과 주말에 경험한 두 세계는 모두 누군가가 내 곁에 있어 준 행복한 시간이었다.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엄마에게는 그러한 장소를 만들어줘서 고맙다. 다른 누구보다도 부모가 가장 아이에게 애정으로 대해야 한다는 규범이 있다면, 엄마는 규범에서 벗어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혼자서 나를 키울 수 없음을 인정한 뒤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혼자 할 수 없다’라는 지점에서 시작해 전단을 뿌린 결과 많은 사람이 엄마에게 걸려들었다. 나는 그 판단에서 엄마의 사랑을 느낀다. --- pp.200~201 |
나의 엄마는 비혼의 싱글맘
나는 모르는 어른들 사이에서 자랐다 우리는 침몰가족! “남자는 일하러 가고, 여자는 가정을 지키는 가치관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이혼하는 부부도 늘어나고, 가족의 유대도 약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일본은 침몰한다.” 어느 정치인의 말이다. 그래? 그렇다면 우리가 침몰가족! 그리고 낯선 어른들 손에서 나는 쑥쑥 자랐다. 엘리트 부모에게서 자랐지만 어떤 특권도 반대! 취직도 못 하고 결혼도 못 한 청년들의 모임, 낙오연대와 운명적인 만남 미혼의 싱글맘, 엄마는 육아를 반드시 혈연으로 맺은 가족인 친정이나 아이 아빠와 나누고 싶지 않다. 혼외자 차별과도 당당히 마주하겠다. 그래서 거리에서 공동육아 전단지를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또 당시 엄마가 활동했던 낙오연대 사람들에게도 공동육아를 제안했다. 낙오연대는 취직도 못 하고, 결혼도 못 하고, 섹스도 못하는 청년들의 교류 활동이다. 엄마는 그들의 아지트인 셰어하우스를 보고 공동육아하우스라는 힌트를 얻어 ‘침몰하우스’가 탄생한다. 그리고 저자는 모르는 어른들에 둘러싸여 신나는 나날을 보냈을 뿐이라고 회상한다. 사람이 사람을 부르고 모이는 곳, 침몰하우스 돈을 주고받지 않는다, 그러나 식사와 맥주 정도는 제공한다 돌봄은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 그림책을 읽어주거나, 빨래를 개거나, 장난감 기차를 갖고 노는 아이를 지켜보거나 한다. 아이는 누군가와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돌보미들은 저마다 아이와 관계를 맺으며 변화하는 모습을 노트에 적었다. 보통 공동육아라고 하면 육아를 품앗이해서 서로의 아이를 돌봐주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침몰가족은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아이가 있든 없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누구라도 육아를 할 수 있다. 혈연도 아닌, 육아 경험도 없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어울릴 수 있는 장소가 침몰하우스다. |